​책을 읽지 않는 편은 아니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목적은 항상 같았다. 전술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책. 그 외의 책들에 관해서는 읽어 보고싶다 라는 생각조차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것인데 왜인지 히지카타는 그날따라 머리를 식히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서점을 찾았다. 필요한 책을 사서 바로 나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구입했기에 서점이라는 공간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목적 없이 들어간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앞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어떤 장르의 책인지, 그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고 딱히 상관없었다. 집어 들은 책은 소설이었다. 평범한 소설이었는데 앞 부분에서 파악한 내용은 이러했다. 어떤 남자가 어릴 때 사랑했던 그녀를 잊지 못해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을 그대로 닮은 어린아이에게 그녀의 모습을 찾으며 집착해가는 내용이었다. 히지카타는 앞부분의 내용을 꽤 읽어 내려가다 문득 그의 상황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소리 나게 덮고는 내려놓았다. 사실 뒷부분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궁금함과 동시에 무서워졌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자 서술자의 신분은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소설일 뿐이고 그 두꺼운 책의 뒷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범죄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무서웠다. 그리고 약간은 자신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되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 녀석에게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그녀와의 갈증이 타다 못해 밑바닥을 드러내며 닮은 그를 보며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만약, 아주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그 녀석과 함께 있다면, 단순히 지금의 관계가 아닌 그 이상의 관계가 된다면 행복해질까? 아니었다.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의 그 이상의 죄책감을 그는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녀석에게 미츠바란 그 녀석 자신의 모든 것일 테니.

  

그런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 그는 소고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조심스레 마음을 말하고 싶고, 묻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되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붕이 망가져서 이틀 정도를 더 그와 같은 공간에서 잠이 들었다. 옆에서 잠이 든 그를 보며 그의 손가락 끝을 두어 번 건드려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그가 조금이라도 뒤척이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떼었다. 그와 함께 있는 그때가 좋으면서도 괴롭고, 아슬아슬했지만 다른 면에선 안정적이었다. 미치도록 곁에 두고 싶고 함께 하고 싶지만 일정 거리 이상으론 가까이하면 안 되는 그런 사이였다. 그와 소고의 사이에는 미츠바라는 거대한 존재가 벽이 되어 존재기에. 그는 그 벽을 절대로 거역할 수 없고, 소고 역시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히지카타는 종종 긴토키와 소고가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둘의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긴토키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그간 지켜본 긴토키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그는 큰 생각 없이 소고에게 다가가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긴토키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고가 미워 극단적일 때는 그대로 끌고 와 다시는 그 녀석 앞에서 웃지 말라며 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 녀석이 순순히 맞고 있을 녀석이 아니기에 하는 생각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보다 더 극단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소고와 자신의 관계라는 걸 그는 다시금 깨달았다.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에 잡혀 도착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는 한참 해결방안을 찾다가 다른 여자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곤도에게 요시와라에 가자고 말했다. 곤도는 그의 말을 듣고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바로 찬성했다.

  

“둘이가? 소고는?”

 

“어린 새끼가 그런 데를 왜가?”

 

소고에겐 이런 곳에 간다는 것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곤도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토시, 너와 함께 가면 여자들이 많이 붙어서 너무 좋아.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어? 하며 혼자 재잘거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곤도의 말대로 많은 여자들이 따랐다. 그는 그다지 선택하지 않았고, 곤도가 좋다는 유녀들로 적당히 골라 술을 마셨다. 히지카타의 옆에 앉은 유녀는 소고와 닮은 연갈색 머리칼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풍겨오는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섞인 강렬한 향수가 머리가 울릴 정도로 역겨웠다. 그녀가 옆으로 바짝 다가오자 그는 더 다가오지 말라는 듯 말했다. “향수 냄새가 너무 독하네요” 그는 한마디 하곤 적당히 술만 마셨다. 다른 남자들은 저런 역겨운 향수를 좋다고 하는 걸까? 그는 의문이 생겼다. 어느새 곤도는 그의 술을 따라주던 여자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 틈을 타 그는 이만 돌아가겠다고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오실 거죠? 그땐 향수를 좀 줄일게요”

 

확신 있는 말투를 듣고 히지카타는 그녀가 그 술집에서 나름 잘 나가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말에 그저 가벼운 목례로 답을 한 후, 그 술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생각했다. 괜히 이런 곳에서 마셨네 옆에 네가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둔영에 도착하자 돌아온 그를 보곤 소고가 와선 말했다.

  

“왜 혼자와? 곤도 씨는? 나도 오늘 술 먹고 싶었는데- 나도 데려가지”

 

둘이 요시와라를 간 것에 대해서는 모르기에 그가 투덜투덜거렸다. 그런 그의 뾰로통한 표정이 귀여웠다.

 

술을 덜먹은 애매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잠들면 편했을 텐데 적당한 감정선, 적당한 이성으로 그를 마주 보고 있기가 더 힘들었다.

 

히지카타가 그냥 뒤돌아가자 소고는 따라오며 자신과 한잔 더하자며 졸라댔다. 방금 전까지 속으로 차라리 더 취할 걸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됐다고 말하며 먼저 잔다며 안으로 들어가 침구에 몸을 눕혔다. 기억을 잃을 정도의 취한 상태에서 나오는 자신의 본성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무서웠기 때문이다. 요시와라에 간 것이 해결은커녕 더욱 확신시켜주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소고는 낮의 둔영에서 낮잠을 청했다. 히지카타가 집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확인했기에 방해가 될 사람은 없었다. 한참 낮잠에 빠져들었을 때, 누군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흔들어 깨우는 조심스러운 손짓이 히지카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저... 대장.. 손님...이 오셨어요”

 

잠에서 깨어 안대를 벗자 대원 한 명이 약간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손님? 근데 나를 왜? 곤도씨나 히지카타에게 말해”

 

둔영까지 찾아와 그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그는 그를 깨운 대원에게 짜증 난다는 식으로 툴툴거렸다.

  

“그게... 대장을 찾는데요?”

 

“나를?”

 

그러고 보니 오늘은 지붕공사 휴일이었나, 그것을 확인한 소고는 분명 긴토키일 것이라 생각하고 대원이 말하는 손님을 만나기 위해 대원의 안내를 따랐다. 안내하는 대원이 자꾸만 저.. 대장.. 그런데.. 라고 말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는 듯 자꾸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어 댔지만 그의 태도를 소고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대원에게 빨리 안내하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곤 동시에 따로 연락을 할 것이지 왜 귀찮게 이런 식으로 찾아왔을까 하고 생각했다. 대원은 이 안입니다 하고 짧은 말을 남기고서도 자꾸만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그는 약간은 의아하게 그 대원을 쳐다보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옆으로 당기고 들어가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 유우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녹차 따위를 얌전히 마시다가 들어온 그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장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그를 향해 조용히 웃어 보였다. 당연히 다시는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이곳 둔영에.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의 앞자리의 의자를 빼내어 털썩 앉았다.

  

“나를 찾아? 왜? 설마 내가 다시 둔영에서 마주치고 싶다고 해서 손수 찾아오셨나?”

 

“뭐.. 그렇다고 해둘게요”

 

그녀는 살짝 웃어 보이며 책상에 상자 하나를 놓고 그의 앞으로 조심스레 그의 쪽으로 밀었다.

  

“뭐야?”

 

“선물이에요 대장. 아, 이제 대장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오키타군이라고 불러야 하나..”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리고 너한테 이런 거 안 받아. 나 찾은 용건이나 말하고 꺼져”

 

표정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평소 때보다도 차가운 무표정에 그녀는 그를 보고 약간은 조심스레 말했다.

  

“사과하러 왔어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아, 그거라면 별로 받을 생각 없어. 용건이 끝났으면 돌아가. 다시 오지 마”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그녀도 함께 일어섰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만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가려던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물론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쪽이랑 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만큼 나.. 괴롭혔잖아요 ”

 

그녀의 대답에 그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재밌다.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요... 그리고 이걸로 앞에 나타날 일은 없으니 걱정 마세요..”

 

“너 따위 때문에 걱정까지 할 것 같아?”

 

“....저 오늘은 정말로 사과하러 온거예요 너무 적대 하지말..”

 

“그니까 그런 거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부장님께서는 와도 좋다고 하시던데요”

 

그녀의 그 한마디가 그를 자극했다. 어디서 만났는지 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하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그 새끼야 뭐 네가 말하니까 그냥 대충 알겠다고 했겠지 뭐”

 

“...”

 

“아, 너 같은 년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

 

“바퀴벌레. 혹은 거머리라고 하는 거야, 암퇘지 같은 년”

 

그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책상에 놓여있는 그녀가 준 선물을 들고선 말했다.

 

“이거. 무서워서 어떻게 받아? 니가 또 무슨짓을 할지 모르는데?”

 

그리곤 책상 아래로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상자채로 짓밟혀 보이는 그 안의 내용물은 쿠키였다. 그녀는 그 모습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됐지 이제? 꺼져”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일단 그녀가 이 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끔찍이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만을 보러 왔다는것도 말이 안되기에 그는 더 신경쓰였다. 괜히 낮부터 기분 잡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야마자키가 순찰 갈 시간이라며 그를 불러냈다. 자꾸만 히지카타 쪽이 신경쓰여 그는 야마자키에게 물었다.

  

“히지카타는?”

 

“부장님이요? 뭐... 아까 보니까 엄청 바쁘시다던데요? 말 걸기도 무섭던데”

 

“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만날 틈도 없을 거라 생각한 그는 순순히 순찰을 따라나섰다. 물론 그의 머릿속은 하루 종일 복잡해서 퍼엉 하고 터질것만 같았다.

  

 

그녀는 히지카타를 기다렸다. 딱 봐도 바빠 보이는 상황이라 그냥 말없이 잠자코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녀가 소고에게 당한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왔기에 생각보다 크게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잊지 않은가? 오히려 홀가분했다. 히지카타가 바쁜 일이 끝나 밖으로 나와 음료수를 마시고 있자 그녀는 다가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녀를 본 히지카타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하.. 찾아와도 된다고 하셔서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시선을 맞추지 못하곤 말했다.

  

“아 어어.. 근데 진짜로 찾아올 줄은 몰랐어”

 

“많이 바쁘세요? 잠깐 이야기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히지카타는 알겠다고 말하곤 그녀에게 음료수를 하나 건넸다.

 

히지카타와 마주 앉은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오키타 대장을 먼저 찾았어요. 사과하려고요. 역시 여전하네요 오키타 대장”

 

“그렇지 뭐.. 근데 니가 진짜로 사과하러 올 줄은 몰랐어. 그냥 내버려 두지 그랬어, 그 녀석 엄청 화냈을 것 같은데”

 

“지금 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그녀의 표정에선 화색이 돌았다. 그가 걱정하는 쪽은 그녀가 아니라 소고 쪽이었다. 분명히 그녀를 만나곤 오늘 하루 종일 기분 나쁘게 보낼 그를, 그리고 더불어 혹시나 또 무슨 사고를 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인데 그녀가 그렇게 물어오자 당황했다.

 

“아니.. 뭐..”

 

“괜찮아요 그 정도는 예상하고 왔어요 그보다 전 오늘 부장님을 만나서 더 기뻐요”

 

 

그녀는 활짝 웃어 보였다. 간단한 대화만을 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그녀는 돌아갔다. 그녀는 분명히 예뻤다. 요시와라에서 만난 유녀보다는. 분명 다른 남자들도 그녀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를 끌어당기진 못 했다. 그녀는 분명히 그 녀석보다 예쁘고 작고 가녀리고 성격도 얌전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게 그는 그녀에겐 그 이상의 어떠한 감정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그 녀석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녀에게 느끼길 바랐다.

  

 

 

 

 

 

 

 

 

 

“어제. 나 기다렸지?”

 

긴토키가 다음날 그의 앞에 나타나선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다 알고 있어 라는 말을 하듯이 기고만장했다.

  

“내가? 내가 형씨를요?”

 

“응”

 

“이건 또 무슨 개소리..”

 

“생각 안 났어? 보통 맨날 있다가 하루 눈에 안 보이면 생각나는 거 아냐? 거짓말! 나 기다렸잖아! 연락 올 거라고 생각했잖아!”

 

“아.. 뭐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소고는 들러붙는 긴토키가 귀찮은 듯이 대충 대답했다.

  

“정말? 그럼 나 오해한다? 나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긴토키의 말이 아주 다른 것도 아니었기에 그는 약간은 당황한 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뭐, 그쪽이 보고 싶다거나, 좋아서 생각이 났다는 것과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너 방 쪽 지붕 다 됐어, 방 정리해줄게”

 

긴토키가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 나 청소나 정리 잘하는 편은 아닌거 알지?”

 

그는 덧붙였다.

  

청소 정도의 문제였다면 굳이 긴토키를 방에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긴토키는 안에서 공사한 부분을 봐야 한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소고는 누군가를 방에 들이는 것을 약간은 껄끄러워했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인지 딱히 방에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싫어했다. 그래서 그가 히지카타에게 장난스레 청소를 해달라고 맡겼을 때 스스럼없는 자신에 약간은 놀랐다. 자신이 없는 자신의 공간을 남에게 부탁해 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요 들어와요”

 

그는 긴토키를 방으로 안내했다.

 

“생각보다 깔끔하네”

 

긴토키는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마음에 둔 사람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의미로 설레는 일이였다. 남자들의 방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색채도 화려하지 않고 딱히 꾸며놓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그의 향기로 가득한 공간과 서투르지만 정리되어 있는 모양새가 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빨리할 거 하고 나가요”

 

그가 투덜거렸다.

  

“왜 빨리 나가래? 나 오래 있고 싶은데?”

 

사실 안에서 지붕 공사와 관련되어할 일은 없었다. 이미 거의 끝마친 상태였지만 그는 그것을 그럴듯한 핑계로 구실 삼았다. 대충 그 부분을 보는 척을 하고는 지붕의 망가진 잔해와 공사 중 떨어진 쓰레기들을 청소해주었다. 자신의 공간의 일이라 그런지 그것을 보고 소고도 함께 거들었다.

 

끝나고 벽에 기대어 추욱 늘어져 앉아있자 소고가 그에게 음료수 한 잔을 건넸다. 긴토키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앉으라는 뜻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고는 별 생각 없이 그의 옆에 자신도 벽에 기대어 앉았다.

  

“잠은 어디서 잤어? 상태 보니까 여기선 못 잤을 것 같은데”

 

긴토키의 물음에 그는 괜스레 약간 고민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히지카타가 옆방이라서 거기서 잤어요”

 

“....아 ..옆방이야?”

 

“네”

 

긴토키는 그의 말을 듣고 짐작하고 있는 그의 마음이 걸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내가 만들어준 셈인 건가? 하는 생각에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자꾸만 나는 연결고리식의 역할 밖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다. 하지만 이내 히지카타의 마음이 그를 향해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하기에 별다른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그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 방에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을 생각에 나타나는 질투심이였다.

 

옆쪽의 창문에서 햇빛이 살며시 쏟아졌다. 옆에 앉은 그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화사하게 빛났다. 그의 공간 안에 둘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음료수나 마시면서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답 같은 것 들은 적 없다며 계속 그의 옆에 편하게 있을 구실을 찾고 있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에 일은 곧 끝날 것이고, 이렇게 그의 공간 안에 함께 있을 구실도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즈음이면 그의 마음을 나에게로 향하게 돌려놓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한번 향하면 그 순간은 다른 쪽에 시선이 쉽게 가지 않는다는 것쯤은 긴토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은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

  

공간을 둘러보고 있을 때 책 꽂이 쪽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어 그는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약간의 세월을 탄 듯한 양장 표지로 되어있는 책으로 보이는 것에 금박으로 ‘Okita’ 라고 영어 스펠링이 필기체로 작게 쓰여 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은 그 금박이였다.

  

“이거 뭐야?”

 

긴토키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펼쳤다. 책은 아니었고 앨범이었다. 안에는 어릴 적 사진들이 한 장 한 장 침착하게 꽂혀 있었다. 이런 섬세한 면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아.. 그거 앨범이에요 내껀 아니고.. 누나 거예요"

  

“음. 봐도 돼?”

 

“이미 보고 있으면서 뭘. 난 잘 안 봐요”

 

“왜?”

 

“그냥”

 

그러고 보니 꽂혀 있는 윗부분에 미세하게 있는 먼지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며시 쌓여있었다. 괴로운 기억은 잊고 싶어서 그러려니 하고는 앨범을 순차로 넘겼다. 당연하겠지만 그녀 본인의 사진도 있었고, 몇 년 전의 곤도, 히지카타, 소고의 사진이 주로 있었다. 어릴 적 소고의 사진을 보고는 긴토키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요?”

 

“아니 웃겨서 지금 너하고 너무 똑같아서”

 

“당연하죠 같은 사람인데”

 

“귀엽다”

 

“징그러”

 

뒷장으로 넘길수록 나오는 건 그녀와 히지카타의 사진이었다. 활짝 웃는 그녀와 약간 어색해하는 히지카타. 그 옆엔 정성스레 쓴 듯한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그 둘의 사진을 보고 그는 그제야 새삼 깨달았다. 아, 맞다 히지카타 녀석, 얘네 누나랑 그런 관계였지? 잊고 있었네

 

“그만 봐요”

 

그는 긴토키의 손에서 앨범을 빼앗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오오구시군 사진이 많네.”

 

일부러 말했다.

 

“그래도 누나 사진이라도 있으니 보고 싶을 때 볼 수는 있잖아. 난 사진도 남은 게 없어서 볼 수가 없거든”

 

약간의 동정심 유발이랄까? 그는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그런 그의 말에 무어라도 답을 해야 할지 몰라 소고는 대답하지 못 했다.

  

“근데 이거 보니까 너희 누나는 모두를 정말 좋아했었나 봐, 너야 당연하겠지만 곤도도, 히지카타도”

 

“...”

 

“히지카타는 역시 좀 특별했나? 뒷 부분엔 이 녀석 사진밖엔 없던데?”

 

긴토키는 일부러 말했다. 약간은 안타까운 얼굴과 살짝 웃는 얼굴로 나는 말야,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아. 그냥 다시 한번 인지해 라는 뜻으로 한 말이였다. 긴토키의 말에 소고는 뒷 부분까진 안봐서 몰라요 라고 작게 대답했다.

  

긴토키는 그의 마음을 확신해 사실 불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그리고 나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약간은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째서 상처를 주려고 해? 라고 다른 사람들은 반박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 사람을 좋아하니까 내가 도와줘야지! 라는 바보같이 착해 빠진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세상은 넓으니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런 분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과 반대의 소유욕이 더 앞섰다. 어차피 그는 누나의 마음이 히지카타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내 옆에 있는 쪽이 훨씬 더 행복할 거야

그는 생각했다. 사실 히지카타가 아니라면 자신을 선택하게 할 자신도 있었다.

  

“한편으론 부럽네. 이거 히지카타도 봤어?”

 

긴토키의 말에 그는 멍하니 서선 망설이는 듯하더니 답했다.

  

“글쎄요.. 봤을...수 도 있고..”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모르는 문제의 정답 해설집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긴토키는 한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잘 어울리던데, 안타깝네.. 결혼했을 수도 있잖아? 그럼 히지카타랑 너 진짜 가족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기분은 좀 이상하긴 하겠다”

 

“..가족?”

 

“매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던 거네”

 

긴토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소고는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히지카타가 널 아끼나 봐. 너흰 이미 가족 같은 사이잖아”

 

“가족은 무슨..”

 

“가족이지 뭐, 네가 맨날 대들고 으르렁대도 그 녀석은 다 받아주잖아 그 녀석도 너희 누나가 생각나서 더욱 널 아끼는 걸 거야”

 

소고는 긴토키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긴토키는 안타까움을 머금은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그 녀석, 맘에 안 들긴 해도 좋은 녀석이잖아? 그건 너도 공감하는 부분이지?”

 

긴토키는 생각했다. 나는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아. 나쁜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그저 사실 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지. 역시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사디즘적인 성향이 있어. 니가 그 녀석 때문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니 뭔가 약간의 희열이 느껴지는걸 보니.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아껴주기만 하고 위해 줄 수만은 없는 부분이거든?

  

너는 말야, 닮았어. 싸가지 없고 자존심 쎈 타카스기를. 그리고 다른 부분에선 나를.

그래서 난 니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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