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거 원샷하는거다?"

 

"형씨 잘마시나보네요?"

 

"당연하지 난 살면서 취해본적이 없어"


긴토키는 얼마전에도 숙취에 시달려 끙끙 앓았던 일이 생각났지만 무시했다.


"아하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취하면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남자들은 주량이 쎈걸로 은근한 자존심을 내세우곤한다. 둘다 술을 못 마시는건 아니고, 타고날 정도로 잘 마시는 편도 아니였지만 주량승부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형씨 전에 벚꽃놀이 할때 취하지 않았었나요?"


"아냐, 그거 취한거 아냐 나 그냥 연기한거야"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곤 그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렇게 여러번 술만 연거푸 들이키다 긴토키가 먼저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있어? 음..아니면 누구 좋아해본적있어?"


긴토키는 당연히 지금은 그런상대가 없을거라고 혼자 가정하고 뒷 질문을 덧붙였다.


"형씨는요? 아 많겠구나"


연애경험이 꽤 있다고 들은걸 되새기곤 말했다.


"나야 당연히 많지! 내 나이가 몇갠데"


"그중에 젤 기억남는건 어떤사람이예요? 다 똑같이 기억에 남는건 아닐거잖아요"


"응?.."


긴토키는 약간 망설였다. 현재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과거 얘기를 하는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 안할래"


"왜요? 재밌을거같은데"


"내가 너 재밌으라고 그런거 얘기 해야되는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물어본거잖아"


"전 없어요"


그 말에 긴토키는 웃으며 말했다.


"너 그래서 모르는거야, 진짜 처음 키스하면 종소리가 울린다니까?"


"도데체 날 몇살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진짜야, 너 해봤어? 안해봤잖아"


"..."


긴토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반응 없는 그의 행동에 두눈을 크게 떴다.


"해봤어?"


"아.. 아뇨"


"누구랑? 너 전에 나랑 있을 때만 해도 해본적 없었었잖아?"


"아니라니까요?"


"아냐 니 반응, 없는사람의 반응이 아니야 누구야? 누구? 어떤여자야?"


"아니라니까 이인간아!!"


소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긴토키는 그의 반응에 아.. 알았어 하고 작게 말하고는 술을 따랐다.


"장난이야 장난-"


"그러는 형씨는 나름 첫사랑이라고 말할만한 사람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라도 있나봐요"


"첫사랑같은 소리- 다 비슷비슷해 밍숭밍숭하거든?"


"그 나이 먹어도 없는 사람이 있긴있구나 다 있다고 하던데"


"아닌사람도 있다 이녀석아!"


긴토키의 발끈하는 모습에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한참을 한잔씩 주고 받으며 쓸데없는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 얘기라던가,

뭐 점프만화의 신작이야기라던가 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 긴토키가 문득 생각났다는듯 말했다.

 


"비번 언제야?"


"낼 모레요"


"그날 별일없지? 나랑 놀자"


소고는 긴토키의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비번날 딱히 할일도 없기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손님... 저희 마감시간인데요"


소고는 벽에 가만히 기대어 잠들어 버렸고 긴토키는 옆 테이블의 취객들과 싸우다 직원의 말을 듣고는 알겠다고

말하곤 잠들어 있는 소고를 흔들어 깨웠다.


"가자아- 너어 역시 취했지이-?"


소고가 눈을 비비며 깨서는 흐느적 거리는 긴토키를 보며 본인도 비틀비틀 일어섰다.


"아뇨- 저어.. 그냥 졸려서어.. 잔거거든요?"


술김에도 긴토키는 데려다 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리고 소고역시 됐다며 그냥 가라고 술집 앞에서 혀꼬인 소리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럼 자고 갈래? 우리집에서?"


"외박하면 욕먹어요"


"누구..한테?"


"누구긴.. 히지카타말고.. 또있어요?"

 

 

둔영에 도착해선 긴토키는 앞의 경비병들에게 소고를 넘겼다. 마침 잠깐 나갔다 들어오던 야마자키는 그 둘을 보곤 어이없다는듯이 한번 쳐다보고 말을 걸었다.


"해결사 형씨? 오키타 대장?"


"으응? 어 야마자키구나 야, 얘가.. 너무 취했어어"


"제가 봤을땐 형씨도 만만치 않은데요? 집엔 어떻게 가요?"


"집..? 왜못가? 내집인데?"


"아니..제말은 그게 아니고.. 태워다드릴게요 기다리세요"

 

야마자키는 소고를 방 근처까지 데려다주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다행히도 얌전히 기다리는 긴토키를 차에 태웠다.

 

차에 타서 가는 도중 긴토키는 야마자키에게 물었다.

 


"야. 야마자키 쟤 요즘 이상하지 않냐?"


"오키타 대장이요? 음.. 조금 이상하긴한데.."


"그치?"


"네 근데 저.. 형씨.. 운전 방해 되니까 가만히 좀..."


취해서 인지 자꾸 말을 할때마다 가까이 붙어대는 긴토키를 애써 밀어내며 야마자키가 말했다.


"어떤데?"


"음.. 별거아닐수도있는데.. 요즘 부장님하고 안싸우거든요 그래서 다들 무서워하고 있어요"


"아- 그래?"


"네 둘이 또 왜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적막이 더 무섭다고요 우리들은"


긴토키는 뭔가 생각하듯 말없이 창 밖을 쳐다보았다.

술이 취해서 인지 창밖의 불빛이 물을 뿌려놓은듯 뿌옇게 번져 보였다. 취해서 뭔가 생각날듯 말듯한 복잡함이 귀찮은 그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네 놈은 또 자는거냐?"

긴토키는 손으로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어.. 타카스기.."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타카스기 신스케였다. 그는 부잣집의 도련님이라 그런지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은은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다니는 서당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항상 시비를 거는 유일한 한명이 긴토키였다. 항상 싸우는 둘을 말리는건 카츠라와 사카모토. 물론 그들도 어느날부턴가는 그냥 그 둘의 싸움을 무시하는게 일상이 되고 있었다.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반대인 그에게 호기심이 많았고, 그런 그를 관찰했다. 긴토키는 골목대장같은 느낌의 우왁스러운 아이였다면, 타카스기는 공부부터 시작해서 검술까지 잘하는 일명 우등생이였다.

 

타카스기는 화를 잘 내는 타입은 아니였다. 말이 많지 않고 조용한 타입이였으나 긴토키가 괴롭혀 올때만 화를 내고 말을 많이했다. 그리고 긴토키는 그의 그런 모습이 자신을 통해서만 나온다는것을 재밌어했다.


그는 검정색 머리카락이지만 빛을 받으면 보랏빛으로 빛나는 매력적인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체구가 크진 않았지만 그 특유의 기품 때문인지 그가 그렇게 작아보이지는 않았다. 긴토키는 그런 그에게 장난을 치려 매일 키가 작다며 놀려대며 머리를 쓰다듬는 장난을 즐겨 했다. 타카스기는 그 장난을 쳤을때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긴토키가 그 장난이 얼마나 기분 나빳을지를 깨달은건 먼 훗날이였다.

 

그래도 둘은 사이가 꽤나 좋았다.

 

긴토키가 가끔 그 답지 않게 무언갈 진지하게 물어볼때면 꽤나 진지하게 들어주곤 했다. 진지한 말을 들어줄때의 그의 눈동자가 새삼 너무 깊어서 빠질것 같다고 생각했다. 긴토키가 졸때 깨우는건 타카스기였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조는척을 할때도 있었다. 눈을 떴을때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 눈 마주침이 좋았다. 그 순간은 그의 눈동자에 자신만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그를 향해 품은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을때는 유곽에 놀러갔을 때였다. 그와 타카스기는 같은 유녀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유녀는 타카스기를 선택했다. 결국 그 때문에 그는 다른 여자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 유녀 때문인지 그는 마음이 괜시리 착잡했다. 술만 연거푸 들이키는 긴토키를 보고 그 유녀는 술만드시겠어요? 하고 눈꼬리가 휘어지게 눈웃음을 보내며 물었다.

아니- 그는 짧게 대답하곤 그녀의 옷을 거칠게 잡았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였다. 여자의 분냄새와 향수냄새가 이다지도 흥분되지 않았던가. 무표정으로 그 여자를 안았을때 그는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수없었다. 타카스기는 뭘하고 있을까? 그 여자와 뒹굴고 있으려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만 자꾸 반복되었다.

 


"나 말고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죠?"


관계가 끝난후 그 여자가 한 말이였다.


"여자는 다 알아요 나를 안을때 남자가 나를 생각하는지 아닌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적어도 그 순간만은 저와 있다고 생각해주는게 예의라구요 그런것도 다 안다구요

그 여자는 긴토키에게 또다시 눈꼬리가 휘어지게 눈웃음을 보냈다.


긴토키는 그 여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카모토의 말에 의하면 타카스기는 그 여자와 단순히 술만 마셨다고 했다. 그 말에 그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 어느날과 같이 타카스기에게 다가가 그 일을 놀려댔다.

 

"너 이자식 그 여자랑 술만 마셨다며? 다행이다. 그 여자가 날 선택안해서"

 

긴토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놀려댔다.


"...넌?"


"응?"


"그러는 너는 즐거웠나보네"


책을 정리하며 덤덤히 말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타카스기의 말에 무슨 뜻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자신에게 물어온 그 질문에 그 날밤 여자와 관계를 맺었던 자신이 괜시리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이 그를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는걸 깨달았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그저 그를 바라볼때마다 설레는 감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항상 시비걸고 싸우는식의 표현밖엔 해보지 않았던 그 였기에 그를 향한 감정을 알았을때도 표현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중엔 서로의 등을 맡기며 기대는것이 긴토키는 좋았다. 서로를 의지하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다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는 넷이서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때, 전쟁중 만난 어떤 여자를 보고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왜 이런 전쟁터에 여자가 있을까? 로 시작하다가 나중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카모토와 카츠라는 원래 말이 많아서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타카스기, 넌 어떤 여자가 좋아?"

 

긴토키가 별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그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음.. 글쎄 약간은 빈틈있는 쪽이 나을것 같아 넌?"


의외였다. 타카스기가 빈틈있는 여자를 말하다니.


"아.. 나.. 나는 자존심쎄고 싸가지 없는 쪽이 좋아"


"사서 고생이다 그거"


타카스기는 그의 말에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긴토키가 가리킨건 타카스기였다. 그리고 긴토키도 약간은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타카스기는 항상 긴토키에게 넌 항상 빈틈투성이야 라고 말한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하며 보여줬던 약간의 미소가 그를 더욱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넷이서 한집에서 합숙을 하던 어느날이였다. 그 공간이 크진 않아서 잠을 잘때는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다같이 잠이 들어야 했다. 그런것이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한 공간에 있다는게 기분이 좋아 계속 들떠있었다.

 

"긴토키- 긴토키-"

 

카츠라가 그를 살짝 흔들며 깨웠다. 그러나 그는 카츠라가 또 무슨 터무니 없는 이유로 자신을 부르는것인지 귀찮아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카츠라는 종종 긴토키를 깨워 리모콘이 사라졌어- 와 비슷한 시덥잖은 이유로 그를 깨우곤했다.


"사카모토- 자는거야?"


사카모토를 깨우는 소리도 들렸다. 사카모토는 정말로 자는듯 코를 골며 대답이 없었다. 또 무슨 병신짓을 하려나, 긴토키는 그저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타카스기 다들 자는것같아"

 

타카스기? 그 이름에 그는 자는척을 하면서도 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 이리와"


몇걸음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지는 뭔가 끈덕진소리- 뭐... 뭐야? 키스...? 하는거야? 그쪽을 볼 수 없었기에 소리만을 듣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키스라고 생각할 법한 소리였다. 에이 무슨 말도 안돼 그는 다시 생각하고 그저 잠이 들으려 노력했다. 키스라니 타카스기가? 카츠라와? 아냐 그냥... 뭐.. 다른거.. 뭐가 있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 상황을 믿을수가 없어 자꾸 그에 대체할만한 상황을 찾고있었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그 둘의 상황을 보지 않고 있기에 오해하고 있다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에 들으려 애써 양을 한마리 한마리 세어나가고 있었다. 왜 드라마나 소설, 만화책을 보면 그렇게 오해할만 상황이 종종 나오곤 하지않은가?

 

 


"타카스기 아까 긴토키가.."


"니 입에서 그 녀석 이름 나오는거 기분나빠"


"아니.. 그게.."


카츠라는 말을 하다가 어째서인지 자꾸 말을 멈추었다. 입을 맞추는듯한 그 소리가 계속 들려올때, 그리고 타카스기가 카츠라에게 자신을 그렇게 말하였을때 그는 그 순간 자는 척 하였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오해한게 아니였다. 그 둘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약간은 빈틈있는 쪽이 나을것 같아'


그가 가리키는게 혹여나 자신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대감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였다. 그가 가리킨건 그 어떤 여자도, 자신도 아닌 카츠라였다. 심지어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카츠라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질투할 정도로.


"긴토키가.. 좋아하는 여자 물어봤을때 가리킨거, 그거... 나야?"


"너 여자 아니잖아"


"어쨌든!"


"응 맞아, 너야"

 


자신과 사카모토가 깰까봐 속닥이는 그들의 말이 달콤하고 간지러웠다. 그리고 누구든 그들의 말을 들었다면 느꼈을것이다. 지금 저 둘이 정말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긴토키는 옆으로 돌아누워있던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세월 그를 좋아했던 그의 마음이 이런식으로 끝날 줄 몰랐기에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 그가 너무 어려서 감정에 대한 조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눈에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옆선을 타고 흘러 베갯잇을 적셔갔다.

 

소리를 죽이고 흐느낀다는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는 그날 처음알았다.

 

 

 


카츠라와 타카스기는 절대로 둘이 그런 사이라는걸 내비치지 않았다. 둘은 필요한 대화만 가끔 할뿐, 아마 긴토키 역시 그날 그들의 대화나 그 행각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토키는 그 날 이후 타카스기에 대한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칼로 자르듯이 깨끗히 잘라지는것이 아니기에 그의 얼굴을 항상 마주보며 잊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였다. 그 결심 이후에도 그를 바라보면 특유의 은은한 기품에 취하듯 홀리는 것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카츠라가 그의 옆에서 여전히 바보같은 행동을 하며 그를 미소짓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흩어졌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수 없었다. 긴토키 역시 그 세월에 맞추어 많이 변했기에 타카스기를 엄청나게 그리워한다거나, 그런일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길진않았지만 연애도 종종했고 사람들과 교류도 활발했고, 딱히 그런 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긴토키가 3명의 친구들중 가장 먼저 마주친건 카츠라였다.

 

카츠라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긴토키는 내면 남아있는 질투심 때문인지 반가우면서도 반갑게 인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머뭇머뭇 거리다 용기내어 물었다.


"즈라, 저.. 그 녀석.. 타카스기는? 잘지내? 너라면 계속 연락할것 같아서 왠지.. 하하"


혹여나 둘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걸 눈치챌까봐 그는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 타카스기.."


그의 말에 의하면 같은 양이지사지만 과격파로 조금 안좋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하는 카츠라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그는 둘의 사이가 많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어째서 그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물론 즈라녀석도 녀석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겠지만.. 자신이였다면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을거란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때 드는 막연함에 의한 것이였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매체를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을때 그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지 못한 그가 생각나 뼈를 깎아내는 듯한 안타까움에 그를 가질 기회를 자신이 아닌 카츠라에게 준 하늘을 수 없이 원망했다.


그는 가끔 졸다 일어났을때 그를 깨우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어릴적 모습 그대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시절의 마음이기에 잊었다고 해도 잊을수 없는,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첫사랑' 이라는걸알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숨이 멎을정도로 놀라움과 그리움에 심장이 쿵쾅쿵쾅뛰었지만 그것이 아직도 그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를 좋아하던 마음과 오랜 시간에 의해 곁들어진 환상이 본인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의한 것이였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예전에 함께 했던, 그가 오랜기간 사랑해왔던 그의 모습이 아니였다.

 

알수 없는 몇마디를 나눈채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난 이후, 알수없는 허무함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어떤것이 방영되고 있는지도 알수 없는 티비를 하루종일 틀어놓은채 술만 연거푸 마셔댔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다시 마주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라고.

 

그 날을 기점으로 그는 또다시 약간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는 그날 그 녀석이 들어오면 반드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6시가 되자마자 긴토키와 어디론가 나가선 들어오는 기척이 없자 그는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그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진 않았다. 계속 고민을 했지만, 어쨌든 만나서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옆방에서 기척이 들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자신을 피하려고 방문을 잠궈놨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열게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 없이 방문을 훤히 열어놓고는 침구에 그가 쓰러져 누워있었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술냄새- 그렇게 술좀 자제해서 마시라고 일렀는데도 또 이렇게 술에 만취해서 들어온 그를 보고 내일은 아침일찍 오렌지 주스를 사서 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다른때보다 숨소리가 조금 거칠었다.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칼을 가만히

정돈해주었다. 그리고 복숭아빛으로 달아올라 있는 그의 볼을 가만히 꼬집었다.


쓰러져 자는 그 녀석을 옆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전에 자신에게 어이없게 입을 맞추었던 일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피식웃어버렸다. 치사한 새끼 나도 나지만, 너도 할말없어

 

"물..."


"응?"


"물...물줘"


자던 그가 눈을 반쯤뜨곤 한 첫마디였다.

히지카타는 눈을 뜬 그를 보고 소스랏치게 놀라 크게 움찔했다가 이내 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히지카타가 건넨 물을 마시고는 다시 누워 아무일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곤 곧 다시 눈을 다시 뜨곤 옆에 앉아있는 히지카타는 반쯤 풀린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하얗게 빛나는 달빛이 살짝 맺혀있는 그의 눈이 구슬같아 예쁘다고 생각했다.


"어...? 히지카타..?"

 

그가 히지카타를 보곤 눈을 두어번 깜빡 거렸다.


"히지카타... 맞아?"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소고는 그런 그에게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리곤 그의 머리칼 끝을 조심스레 살짝 잡아당겼다. 의외의 행동에 히지카타는 뭐야..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선을 쭉 타고 가다가 이내 멈칫하고 멈추었다.


"아... 나.. 어떻게 해.."


취해서 그러려니 하고 히지카타는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 너 죽여버리고 싶어.."


"..."

 

네 녀석이 날 죽이고 싶어하는게 하루이틀일이냐-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죽을래.."


"...너답지않은데? 부장자릴 차지한다고 해야지"


"..아 몰라... 그딴거.. 짜증나"


쥐어짜듯이 그 말을 하곤 그는 팔목으로 제 눈을 가리었다.


"...음.. 그게...미얀해.. 빨리 말했어야 하는데.. 미얀.. 화난거 알아"


그가 이 말을 바라고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어차피 술 취해서 기억도 못할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말해주고 싶었다.


"그딴 소리 하지마..."


"너 기억 못할거같긴한데.. 그래도 내가 지금 답답해서 그래 내가 잘못했..."


"..화.. 안났어"


소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내일 또 나 피할거잖아"


"..화.. 안났어.. 그냥... 그냥...."


눈을 가리고 있는 팔목 옆으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눈물이라는걸 알았다. 히지카타는 그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본적도 없을 뿐 아니라 자존심 쎈 그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것이였기에 그의 모습에 놀라 두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새삼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우는것을 감추는것을 보고 그 녀석 답다고 생각했다.


무슨일이길래 이 녀석이 눈물을 보일정도로 힘들어할까?

울고 있는 사람에게 너 울어? 왜 울어? 라는 질문만큼 상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질문이 없다. 여자들이야 그런 위로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쉽지 않은 남자들로써는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는게 죽기보다도 싫은것이다.

 

히지카타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가 잠들때까지 아무말없이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그가 눈물을 보여서인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잠든것을 대충 확인하곤 나와 방문을 닫고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궁금했다.

 


해결사랑 둘이 마셨나? 해결사녀석이 어떤 눈으로 저를 보고있는줄은 알고 있는건가?


'니가 그 녀석이랑 가까운건 알지만 누가 보면 너 걔 부모인줄 알겠다야'


부모..라.. 그런자식이 있었다면 아마 하루하루 피가 바짝바짝 말라버렸을거다. 학교 갔다온다고 나가는 순간부터 아무일도 못하곤 집에서 손톱이나 물어 뜯으면서 오늘 하루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해달라며 물이라도 떠다놓고 싹싹 빌고 있을것이다. 다른 부모들은 병원비라면 얼마든지 물어줄테니 제발 맞고오지만 말아라 라며 말하는걸 뼈저리게 부러워할것이다. 그런말을 입밖에 내는 순간 아마 병원비로 집안 파산하는 날이 올것이기때문이다.

 

지금도 그녀석 뒷치닥거리를 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냥 다른 이유없이 신센구미를 책임지고 있는 부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녀석이 제일 어리니까 조금은 더 신경쓰는것이다.


그럼 키스는 홧김에 한건가? 그전에 왜 화가났을까?

다른대원들이 그런 키스자국을 남기고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별 신경 안썼거나 그런거 보이고 다니지 말라고 한소리 하곤 넘어갔을거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문득 미츠바가 떠올랐다.

 

둘은 많이 닮았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도 많이 얘기했기에 소고도 그걸 알고있겠지만 히지카타는 소고에게 한번도 닮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뭔가 자신이 미츠바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이 녀석이 눈치챌까봐. 대충 알고있는 눈치긴했지만 괜히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 그의 생각을 확신시키고 싶진 않았다. 옆에서 야마자키나 곤도가 닮았다며 얘기하면 퉁명스럽게 뭐가 닮았냐며 저렇게 싸가지없는 저 성격을 좀 보라며 혼자만 부정해왔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나면 발끈한 그 녀석과 또다시 거하게 싸우곤 했다.


순간 그녀와 그 녀석을 햇갈렸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였다. 그녀라고 잠시 착각했다면 더욱이 그러지 못했을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미츠바의 존재란, 옆에 있기만해도 너무 떨리어 손대기도 힘들정도로 설레는 그런 존재였다. 멱살을 잡고 벽에 밀친채 억지로 키스를 했다는건 그 녀석에게 한것이 맞았다. 그 녀석이니까 그렇게 거칠게 대할수 있는거다.


그가 소고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츠바에게 느꼈던 감정, 그리고 어느 다른 대원들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의 중간? 아니 중간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두 감정이 형채를 알아볼수없게 뒤엉켜 존재하는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그런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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