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누구에게나 양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完

 

 

 

 

 

 

 

 

 

 

 

 

 

 

 

 


왜 이렇게 나를 가만두지 못해서 안달일까? 최근들어 생각할 것이 많아 복잡한 걸 느끼는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다. 대답 같은건 할 틈도 주지 않고 등을 보이는 긴토키의 뒷 모습이 측은했다. 평소의 모습이 활달하고 장난을 즐겨 하는 그 였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뜬금없이 그런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며칠 후, 소고는 해결사 사무실에 찾아갔다. 퇴근 즈음의 시간이니 긴토키 역시 둔영에서 일을 하고 들어올 것이라 생각해 사무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속으론 이래도 되는걸까 하고 고민했지만 그보다 긴토키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조금 기다리다 혹시나 해서 문을 살짝 당기자 힘없이 열리는 문을 보곤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같이 있었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모습을 보고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쇼파에 앉았다. 얼마 후 신파치와 함께 들어오는지 작은 말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어? 오키타씨?”

 

신파치가 안을 보곤 놀라서 외쳤다.

 

“어, 안녕 문이 열려있길래 들어와서 기다렸어, 상관없지?”

 

신파치는 그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네 뭐, 저희 전골 먹으려고 했는데 같이 드세요”

 

신파치는 잔뜩 장을 봐온 봉투를 들곤 부엌으론 들어갔다. 뒤에 신파치를 따라 들어오는 긴토키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 왠일이야?”

 

그의 물음에 소고는 부엌쪽의 신파치가 신경쓰이는지 한번 돌아보곤 말했다.

 

“놀러왔어요”

 

“아. 그래 밥먹고 가. 우리 마침 저녁 먹을거였으니까”

 

긴토키는 그를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긴토키는 먼저 들어간 신파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너무나 놀랐다. 그가 집에 찾아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과 기대감이 점점 그를 다시금 괴롭게 만들었다.

 

밥을 먹으려 모여 앉았을 때 신파치는 그날따라 말이 없는 둘 때문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오키타씨, 그거 아세요? 요즘 긴상은 더 어린애가 되어간다니까요? 인형같은걸 방에 잔뜩...”

 

“자”

 

긴토키는 신파치의 말을 급히 자르고는 전골을 국자로 적당량을 덜어주었다. 그릇을 받으려 손을 내밀자 그냥 앞에 손수 내려놔 주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소고는 그런 긴토키를 보곤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둘의 행동에 신파치가 물었다.

 

“둘이 왜 이렇게 어색해 보이죠?”

 

“...! 뭐.. 뭐가?”

 

긴토키는 눈에 띄게 움찔 하고 놀라며 물었다.

 

“아니.. 뭐 그냥 느낌이..”

 

“아니거든! 그런거! 내가 지금 좀 피곤해서 그래 그치? 오키타군?”

 

“아.. 네 뭐.. 형씨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하하”

 

어색하기 그지 없는 둘의 대화가 이상하다는걸 신파치는 단숨에 알았다. 하지만 신파치는 별 생각없이 넘기는 듯 했다. 긴토키도 소고도 신파치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식사시간이였다.

 

대화를 하러 왔지만 이 상태로는 무리라고 생각한 소고는 밥을 대충 먹고는 이만 돌아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신파치는 긴토키에게 말했다.

 

“긴상, 아이스크림 사오는거 어때요?”

 

“응..?”

 

“오늘 점프도 발매하는 날이잖아요, 요리는 제가 거의 했으니까 긴상이 가서 사와요”

 

신파치는 긴토키의 등을 떠밀었다. 신파치는 둘이 싸웠다고 생각했다. 우선 오키타가 이렇게 와서 목적을 말하지 않고 집 앞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것도 그렇고 항상 유쾌하게 장난을 치던 긴토키가 유난히 이상했기 때문이다.

 

계단을 내려가던 소고가 떠밀려 나온 긴토키를 뒤돌아 보곤 걸음을 멈추었다. 긴토키는 민망한 듯 뒷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나 편의점 가야되서..”

 

아.. 이말은 하지말걸.. 긴토키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얘기하러 왔어요 나”

 

“무슨얘기?”

 

긴토키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냥.. 뭐 전에 그렇게 말하고 그냥 가버렸으니까”

“아 그래?”

 

“네 뭐, 누구라도 신경쓰지 않겠어요?”

 

“넌 안할줄 알았어”

 

“제가 착하진 않지만 그렇게 나쁜놈도 아니라고요”

 

긴토키는 그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나랑 어떻게 지내고 싶어요?”

 

그의 물음에야 비로소 긴토키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말했잖아”

 

긴토키의 말에 소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가 나쁜 새끼로 남길 바래요? 좋은 사람으로 남길 바래요?”

 

“니가 좋은 녀석 일 리가 있냐?”

 

“전처럼 계속 지내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음..”

 

“역시 넌 좋은 녀석은 아니네 그거 완전 이기적이잖아”

 

“...”

 

“나 안받아줄거면 이 이상의 행동하지마 그게 날 도와주는거야”

 

“...”

 

“난 지금도 너한테 키스하고 싶어”

 

긴토키는 그에게 한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소고는 그런 그를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왜 쳐다보기만해?”

 

“안할거잖아요”

 

그의 말에 긴토키는 아무말없이 서있다 그를 와락 껴안았다. 키차이 때문에 긴토키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그는 갑작스런 긴토키의 행동에 떨어지려고 긴토키의 팔을 꽉 움켜 쥐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으면 안돼?”

 

“...”

“이정도는 그냥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주라”

 

긴토키는 그를 품에 안고 조금만... 조금만... 하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는 그 모습에 단순히 신경쓰인다는 문제가 아니라 미얀한 감정이 들었다. 히지카타가 아닌 이 사람을 좋아했다면,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랬다면 빌어먹을 죄책감 따위도 느끼지 않았을텐데

 

 

그 이후로 그는 긴토키를 더욱 신경쓰고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둔영에서 마주치면 약간은 어색하지만 인사정도만 간단히 했다. 그와는 반대로 신파치는 웃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댔다. 그래서 그는 그런 신파치에게도 일부러 약간은 어색하게 대하게 되었다.

 

하루는 히지카타가 그에게 물었다.

 

“해결사하고는 어떻게 지내?”

 

그의 질문에 소고는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다 뱉을 뻔 했다.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었기에 그는 괜시리 찔려 한참 기침을 하다 답했다.

 

“어떻게 지내긴 뭘, 똑같죠 뭐”

 

“그래?”

 

“그럼 뭐 별 다를게 있습니까?”

 

“아니 그냥 궁금해서”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그를 좋아한다고 밝혀왔기 때문에 그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둘은 꽤나 친했고 그의 뒷덜미에 남긴 키스마크가 자꾸 떠올라 화가났다.

 

“그녀석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마”

 

“...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아니.. 그냥”

 

히지카타는 마시던 음료수를 마저 입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말해야겠어”

 

쭉 어색하게 피해오던 긴토키가 둔영에서 소고를 마주치자 앞을 막아서곤 말했다.

 

“...뭘요?”

 

“너, 나 맛있는거 사준댔잖아, 내가 좋아한다는 말 했다고 해서 취소하는건 아니지?”

 

“내가요?”

 

“응 전에 약속 취소해서 사준댔잖아. 사줘. 나 원래 이런거 귀신같이 얻어먹는 사람이잖아”

 

그의 표정은 당당하면서도 단호했다. 긴토키가 오히려 이렇게 행동해주는 쪽이 그는 좋았다. 계속 어색한 사이로 있기엔 주위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 뭐.. 그래요”

 

“오늘. 오늘사줘”

 

강경하게 나오는 긴토키를 보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불고기 먹어도 돼?”

 

“네. 형씨 먹고 싶은거 먹어요”

 

뭔가 상황이 이상해졌다. 그를 동정해서 일까? 긴토키가 말하는 데로 맞춰주고 있었다. 그리곤 스스로 자신이 꽤나 철들었다고 생각하며 약간은 뿌듯해했다.

 

“많이 먹어도 돼?”

 

“아니요”

 

뭐, 사람 천성이 쉽게 변하진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의 단호한 대답에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내가 살게 많이 먹어”

 

“나 별로 안먹을거예요. 그리고 오늘 나한테 얻어먹으려고 온거 아니예요?”

 

“음.. 그냥 오늘 내가 살테니까 담에 니가 사”

 

“...?”

 

“니가 오늘 사면 다음에 밥 같이 먹기 힘들 거 아냐”


“형씨”

 

“응”

 

긴토키는 짧게 대답을 하곤 지나가는 점원을 붙잡고 주문을 했다.

 

“이상의 행동은 하지 말라고 한건 형씨예요”

 

“응 근데?”

 

“...그니까”

 

“이건 니가 하는거 아니잖아. 내가 하는거잖아”

 

“...”

 

“그냥 못이기는척 따라줘. 너 원래 나쁜새끼잖아”

 

긴토키는 그가 찾아 왔던날, 그를 품에 안았을 때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첫사랑이였던 타카스기가 불현 듯 떠올랐다. 그때에 비하면 비교적 나은 상황이 아닌가. 그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 애썼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의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 이였기에 그는 크게 계산하지 않았다. 왜 포기하려 생각했을까 하고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여자도 아닌 남자에 휘둘리면 더 기분 더러울텐데”

 

“여자나 남자나 마찬가지지 뭐”

 

긴토키는 그의 그릇에 다 익은 불고기를 덜어주었다.

 

“먹어. 신파치나 카구라랑 오면 전쟁해야 되는데 이렇게 여유롭게 먹으니까 어색하다”

 

“신파치도 데려오지 그랬어요?”

 

신파치의 이야기에 소고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넌 데이트에 동생이나 친구 데려오는 사람 봤어?”

 

“데이트?”

 

“응 너랑 나 데이트 하고 있잖아. 방식이야 어쨌든”

 

“그냥 밥먹는거잖아요”

 

“데이트가 별거야? 그냥 밥먹고 차나 한잔 마시고, 아니면 영화보던가 술마시던가, 이 레파토리에서 거의 벗어나질 않거덩?”

 

“아하- 그래서 끝은 다 모텔이겠네요”

 

긴토키는 그의 말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 자신이 고백했을때의 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어 곁눈질로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어이.. 그래 그때 내가 좀 지나치게 솔직한 부분은 있었다고 생각해”

 

“응? 그거 떠올리고 한 말 아닌데요?”

 

“근데말야, 니가 여자도 아니고 그런걸 굳이 숨겨야 할 필요있어?”

 

“글쎄요 제가 숨겨달라고 한적은 없어요”

 

“그..그치?”

 

“근데 좀 놀라긴 했어요”

 

“왜?”

 

“그런식으로 볼거라곤 생각 못했으니까”

 

긴토키는 약간은 기가 죽어 그가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리곤 물었다.

 

“음.. 나 많이 싫어?”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소고는 그가 히지카타와 닮은 부분이 많다는 걸 떠올리곤 말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다 라고 짚어낼수는 없었지만 언뜻언뜻 그가 하는 행동이 그와 겹쳐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는 대답했다.

 

“음... 싫다... 라기보다는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난 형씨가 좋아요. 다른 의미로”

 

 

 

 

 

 

오랜만에 양이지사들을 검거했다. 성공적이였지만 신센구미도 피해를 입었다. 적지않은 부상을 입은 대원들을 부축하라고 명하며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어깨가 뜨겁게 달아오르는게 아까의 접전에서 한놈의 칼에 꽤 깊이 스친 듯 했다. 피에 축축히 젖어들어 제복이 살짝 달라붙어가는걸 보며 옷을 벗을 때 약간은 애를 먹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은 소고를 찾고 있었다.

 

“히지카타씨 어깨 다친겁니까?”

 

그가 별일 없다는 듯이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여유롭게 걸어왔다. 얼굴에 묻은 다른이의 피 말고는 큰 상처는 없어보여 히지카타는 한시름 놓았다.

 

“다친데 없어? 있으면 가서 치료해”

 

“당연히 없죠”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얼굴에 묻어 있는 다른이의 검붉은 피가 그는 거슬렸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새삼스러웠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피가 묻은 얼굴을 한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듯 잡곤 엄지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볍게 문질러 닦아주었다. 손에 닿는 솜털의 부드러운 감촉이 기분 좋았다.

 

“뭐.. 뭐야”

 

“피 묻어서”

 

“내가 닦을 수 있어”

 

그는 얼굴을 거칠게 돌리고는 뒤돌아갔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야.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대충 뒷 수습을 마친 후 그는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벗으려 겉옷을 잡았을 때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어깨의 상처를 인식하곤 약간은 힘겹게 옷을 벗어 제꼈다. 옷에 늘러붙어 있던 피가 상처에서 떨어지며 상처가 다시금 살짝 벌어졌는지 어깨 부근이 다시 뜨거웠다. 읏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상처 부근의 옷을 벗었을 때 조용히 방문이 열렸다.

 

“히지카타씨”

 

소고였다. 그는 들어왔다가 그의 어깨의 상처를 바라보곤 말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의무실 안갔습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끼 섞인 그의 말투에 히지카타는 말했다.

 

“늦었어, 그리고 별거 아냐, 그보다 왜왔어?”

 

“아 이거 곤도씨가 전해주라길래.. 봐요 혼자는 힘들잖아”

 

답지 않은 그의 상냥한 말투에 히지카타는 조금은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소고는 그의 앞에 마주보고 앉았다. 상처를 소독해주려 약품을 꺼내는 모습, 그리고 그가 도통 보여주지 않던 말투가 자꾸만 그녀와 겹쳐 보임이 원망스러웠다.

 

왜 너는 그녀의 동생이였을까? 아니 나는 왜 너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마음이 생겨버렸을까

 

소독약을 찾아 솜에 묻히고는 상처 부위에 가져다 대자 벌어진 상처의 통증이 강해져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허세가 너무 심하다니까? 이녀석아”

 

“허세라니 이자식아”

 

가벼운 장난을 치며 그는 한편으로는 마음같은 것은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가능해.

 

‘나를 두고 가는 거니까 뒤돌아보면 안돼요’

 

사람이란 간사했다. 그녀를 매정하게 찬 것도 모자라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주지도 못한채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녀의 혈육에게 그녀에게 품었던 마음, 형태는 달랐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는 자신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걸 이해한 여자였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걸 믿어준 여자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것마저 웃으며 이해해줄까? 그 이전에 이 녀석은 무슨 표정으로 날 쳐다볼까?

 

소고는 그의 어깨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언뜻언뜻 스치는 손가락이 살짝 닿을때마다 그 부근이 간지러우면서도 뜨거웠다. 어깨의 통증 때문에 본인이 예민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가까이에 있는 그녀석의 피부가 눈에 들어오자 아까 만졌던 촉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다 되었다며 어깨의 상처를 툭 건드는 바람에 상처 부근을 붙잡고 고꾸라졌다. 그는 그런 히지카타를 보고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히지카타는 그 웃음소리가 계속 듣고 싶었다.

 

 

 

 

 

 

 

“...어어?”

 

어느날과 다름없이 일을 마친 후 방으로 들어온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가 아니라고 잘못들어왔다고 생각했는지 밖에 나가서 다시 확인을 했다.

 

지붕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그리고 방에 가득 떨어져 잇는 지붕의 잔해가 그를 열받게 만들었다. 그런 자신의 방의 상태에 어이가 없어 한동안 그 상태를 바라보다 뚫려 있는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어? 니 방이였어?”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말하는 긴토키를 보고 그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지붕에 있는 그를 보곤 달려 올라가 멱살을 쥐었다.

 

“어떻게 할꺼예요? 형씨. 나 지금 진짜 열받았거든?”

 

“아.. 미얀”

 

“미얀? 사과하면 다 끝나는줄 아시나본데 다 짤라버릴거야”

 

그는 신경질적으로 잡았단 멱살을 놓으며 뒤돌아섰다.

 

“너무한다 진짜”

 

“누가 할 소리를 지금..”

 

“난 맨날 너 때문에 고민하고 있단말이야. 그런 사람에게 너무 말 막하는거 아냐? 멱살까지 잡고 말야”

 

그는 그가 잡은 옷자락을 당겨 정돈하며 말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이건 내가 책임지고 다 정리해줄게”

 

“됐어요 이건 무슨 개같은 논리..”

 

“하루하루 먹고 사는 나같은 사람 안 불쌍해? 봐주라 좀-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너무한 말 듣고 있는 내 심정은 어떨거같아?”

 

긴토키의 말에 그는 할말을 잃었다.

 

“봐준다는걸로 알게!”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소고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그는 손을 뿌리쳤다.

“그건 그렇고 생각해봤어?”

 

“무슨..?”

 

“대답 생각안했어?”

 

“이미 했잖아요?”

 

“언제? 음.. 아직 생각중이구나? 천천히 생각해봐”

 

그는 자신의 할말만 남긴채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소고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자신이 전보다 더 그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긴토키는 그가 자신의 말에 할말을 잃고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을 보고 그가 자신에게 약간은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좋아하고 있어요 라고 말한 부분을 다시금 떠올리곤 그는 씨익 웃었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그걸로도 괜찮지 뭐.

 

 

 

 

 

 

 

“오늘 너랑 같이 자도 되?”

 

히지카타는 늦은시각 베게를 안고 찾아온 그를 보곤 이건 무슨상황인가 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아.. 지붕이 좀.. 이상이 생겼나봐요 방이 좀 엉망이 돼서”

 

말하면서도 어색했는지 그는 머리를 살짝 긁적였다.

 

“상관은 없지 뭐.. 저기 옆에 깔고 자”

 

히지카타는 자신의 침구 쪽을 가리켰다. 그의 말에 말없이 그는 그 쪽에 침구를 펴고 침구위에 앉아선 물었다.

 

“안자? 늦었는데”

 

“먼저자, 나 이것 마저 하고”

 

“네 뭐 그럼”

 

히지카타는 안대를 쓰고 누워있는 그를 힐끗 보았다. 그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묘하게 그를 어지럽혔다. 어째서인지 계속 집중력이 흐트러져 그가 온 이후로는 하나도 일을 처리하지 못해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살짝 뒤척거릴 때마다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가벼운 이불의 마찰음이 그렇게 크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저 녀석은 남자다. 그리고 내가 사랑한건 저 녀석이 아니야, 그는 수차례 되뇌이며 마저 했던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옆자리에 누워 그가 조용히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언저리가 뭉클하고 설레었다. 안대를 벗겨보고 싶어 그의 얼굴 가까이에 손을 뻗었다가 만약 깬다면 뭐라고 해야할지 알수 없어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숨을 쉴때마다 가볍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를 보자 따뜻한 그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어 자꾸만 시선이 귀 아래로 보이는 하얀 목덜미와 벌어진 유카타 사이로 보이는 가슴 부근에 자꾸 시선이 고정되어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반대방향으로 뒤돌아 누웠다.

 

 

 

 

“히지카타 자?”

 

한참 잠을 못 이룬채 두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자다가 깬건지 아니면 쭉 깨어 있었는지 모를 그가 물어왔다. 그의 물음에 히지카타는 놀랐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니가 말걸어서 깼어 왜”

 

“잠이 안와서”

 

“너 그러니까 맨날 늦잠 자는거야 허튼 소리 말고 어서 자”

 

히지카타는 눈을 감고 잠이 들려 노력하고 있었다. 이내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딜 가려는 걸까 하고 생각할 때 그가 바짝 뒤에 다가와서 물었다.

 

“어깨 많이 아파?”

 

“...잘거니까 말시키지 말고 너도 얼른자”

 

히지카타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는 히지카타의 말을 무시하곤 다친 쪽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의 행동에 히지카타는 일어나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내가 그냥 빨리 자랬지”

 

“아프냐?”

 

그는 이마에 안대를 쓰곤 예민하게 반응하는 히지카타의 행동을 보곤 킥킥 웃었다.

 

어깨가 아픈 것은 다른 문제였다. 히지카타는 그를 그대로 끌어안고 싶었다.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의 본능에선 그를 끌어안고 싶다. 그대로 그의 입술을 깊게 빨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어 보고싶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의 손목을 뿌리치듯 놓았다.

 

“장난치지 말고 쳐자, 나 피곤해”

 

그는 다시 돌아누웠다. 그런 기분은 히지카타에게 있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였다. 그가 자신의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불안한 것인지 초조한 것인지 설레는 것인지 심장이 크게 뛰는 뛰는 것이 도통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가 작게 뒤척이는 소리 하나하나에 청각이 곤두세워져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히지카타 자?”

 

“왜 또, 왜”

 

그는 돌아보지 않은채 말했다. 그러자 그가 바짝 다가와서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도 잠 안오는거 아냐?”

 

그의 입김에 그는 순간 몸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닥치고 자라 나 피곤해”

 

히지카타는 눈을 감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등 뒤의 그가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등 뒤에 얼굴을 파묻은 그가 약간 발음이 파묻힌 말투로 말했다.

 

“으음.. 나 전혀 잠이 안와”

 

그가 숨을 내쉬자 등 뒤에 그가 얼굴을 파묻은 부분이 순간 뜨거워 졌다. 그리고 등뒤의 그의 손이 히지카타의 단단한 가슴 쪽에 닿았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 그의 손목을 잡곤 한손으론 머리를 침대 시트에 짓눌렀다.

 

“너.. 이새끼야 너 뭐하는거야?”

 

“히지카타씨, 나랑 자고 싶은거 아냐?”

 

그 말에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자신의 생각이 들켰다는 불안함과 무서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가 놀라 짓눌렀던 손을 떼자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그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나오는 미소였다. 그런 그의 모습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 순간은 무언가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였다.

 

“부장- 안아줘요”

 

그는 히지카타의 품에 안겨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었다. 부장. 그가 히지카타를 부장이라 부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거의 비꼬아 놀릴 때 쓰는 호칭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부르는 그 호칭이 싫지 않았다.

 

“아.. 너.. 무슨..”

 

“너 나랑 하고 싶잖아. 그냥 아무 생각하지마”

 

책임전가. 그가 절대로 행하지 않는 일이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고자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래 난 잘못이 없어. 품에 안긴 그가 하는 말에 그는 약간의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그를 탐하고 싶다. 탐하고 싶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다.

 

그의 얼굴을 한손으로 감싸자 그는 웃으며 다가와 입술을 포게어 왔다. 그 순간 남은 한가닥의 이성마자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꼈다. 혀가 뒤엉켜 있을 때 그는 유카타 품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드러난 하얀 속살이 매끄러워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목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목 옆에서 뛰는 맥박을 입술로 느끼는 것이 따뜻하고 포근해 좋았다. 쇄골과 목을 빨아들였을 때 그의 입술에서 작게 새오나오는 신음에 그는 자신이 아닌 것 같은 흥분감을 느꼈다. 피를 보아도 쉽게 흥분하지 않는 그 였기에 그 자신도 그런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정신없이 그를 탐하고 있었다.

 

“...흐읏.. 역시.. 넌.... 하아... 쓰레기 새끼야...”

 

“..하아.. 알아..”

 

“...개.. 개새...끼.. 하아...”

 

그가 드문드문 해오는 욕설도 좋았다. 멈출수도 이성을 차릴수도 없어 그는 그의 입에 키스했다.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아래에서 내려다본 그의 반쯤 감긴 눈에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좋아 언제까지고 그 순간을 유지하고 싶었다.

 

 

 

“히지카타 이녀석아”

 

갑자기 얼굴에 차가운 물이 쏟아져 그는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앞엔 소고가 실실 웃으며 자신에게 뿌린 것으로 보이는 작은 물통을 들고 앉아 있었다.

 

“어...어어..?”

 

“늦잠? 그 귀신부장님께서?”

 

그는 히지카타의 눈 앞에서 놀리듯 크게 웃었다. 그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그의 어깨를 잡곤 자신이 남긴 자국이 생각나 그의 목덜미를 유심히 보았다. 없었다. 그냥 꿈이였을 뿐이였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인지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그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무거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꿈에서 그가 자신에게 욕을 지껄이던게 생각나 그는 허탈하게 피식웃었다.

맞아 난 쓰레기야

 

 

그 날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이였다. 늦잠을 잔 것부터 시작해서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 느낌, 그리고 보통 쉽게 낫는 상처정도였던 어깨도 그날따라 통증이 심해져 의무실을 찾았다.

 

“다크써클”

 

소고가 그의 앞에 와서 눈 밑을 가리켰다.

 

“어...”

 

“피곤하다더니 진짜였습니까?”

 

그는 히지카타의 책상 앞에 의자를 거꾸로 놓고 앉아 등받이 부근에 팔을 얹은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

 

‘부장- 안아줘요’

그 말이 그의 얼굴을 보면 자꾸 생각나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신이 이상해졌나 보네요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그가 그의 앞에서 이러다 죽을짖도 몰라 히지카타 이녀석아 하고 다름없이 장난을 걸어왔다.

꿈이라지만 그의 생각을 완벽하게 적용하고 있던 탓에 그는 죄를 지은 듯 그의 얼굴을똑바로 바라볼수가 없었다. 꿈에서 끝난 것이 아닌 아직도 자신이 그에게 그러한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그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 더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어릴때부터 봐온 사내아이, 동료에게 그런 추악한 인간의 감정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더욱 꿈에서 그와의 관계가 미치게 좋았다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부장님, 오랜만이예요”

 

순찰을 하다 너무 머리가 아파 한참 거리를 무작정 걸어다니다 어떤 여자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고 앞을 보았다. 전에 둔영에 잠깐이나마 함께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밝게 웃어보였다.

 

“어... 오랜만이네”

 

히지카타는 그녀가 웃어 보이는게 신기했다. 사실 마지막이 그렇게 좋게 끝난 것은 아니였기에.

 

“잘지내셨죠? 시간되시면 커피라도 한잔 하실래요?”

 

카페에서 둘은 마주보고 앉았다. 둘은 약간의 침묵을 지킨 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부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뭐가?”

 

“제가 거짓말 한거, 맞아요 알고 계셨겠지만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한점 죄송해요 너무 늦게 말씀드린 점도 포함해서요”

 

“아... 그거 나한테 미얀하다기 보다는.. 소고녀석한테 미얀한거 아냐?”

 

“뭐.. 그렇죠 제가 다음에 오키타 대장께 직접 사과할게요”

 

“응.. 그래”

 

“그리고.. 저 사실 아프다고 한것도 거짓말이였어요”

 

“...”

 

“그렇게 해서라도 부장님 곁에 있으면서 조금은 가깝게 지내고 싶었어요. 좋게 보이진 않으시겠지만 저를 너무 미워하진 말아주세요. 사람에겐 다 그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 싶은게 있잖아요? 반대로 아무리 해도 안되는게 있고.. 결국 전 그 두개 다 깨달아버렸네요”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옅게 웃어보였다.

 

 

“그랬구나 딱히 신경 쓰고 있지않아”

 

그는 덤덤히 말했다. 사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저 저기 케이크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가끔 둔영 놀러가도 될까요?”

 

“놀러?”

 

“그냥 부장님 뵈러 가고 싶어서요 따로 만나주시진 않을거잖아요 아, 자주 찾아가진 않을게요”

 

그녀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런 그녀가 순간 안쓰러웠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포기를 한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차마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면 약간의 두려움에 움츠려들 것이다. 찾아갔을 때 니 까짓게 여길 왜 와? 라는 경멸의 시선을 보낼까봐 그녀는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마주친 것은 우연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렇게 모질지 않은 그를 보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다시금 하늘이 나에게 주는 기회일지도 몰라.

 

 

 

 

 

 

 

 

 

 

 

 

 

 

 

 


 

 

 

 

 

 

 

 

 

 

 

 

 

 

 


재수없고도 뭔가 찜찜한 꿈을 꾼것 같았다. 그리고 더불어 전날 너무나 많이 마셔댄 술 때문에 날카로워져 미친듯이 울리는 알람을 신경질적으로 껐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아- 늦었다. 더 일찍나가야 히지카타와 안 마주칠텐데 너무 늦게 일어나버렸다. 마음속으론 착잡했지만 몸이 움직여주지않아 일어나자마자 깨질듯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갑자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소리에 또 머리가 울리는 그는 미간을 찌푸리곤 문을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못일어날줄 알았더니"


"...."


"자"


무언가가 그를 향해 가볍게 날아왔다. 얼떨결에 놀라 받아들고 보니 오렌지주스였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곤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뭐해, 얼른준비해"

 

히지카타는 그 말을 마치고 방문을 닫곤 나갔다. 저새끼가 확실히 나를 잘 알긴 잘 안다니까. 그는 히지카타가 닫고 나간 방문을 한참 쳐다보며 오렌지주스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다.

 

준비를 마치고 나갔을때 그는 다시한번 소스랏치게 놀랐다. 문을 열자마자 히지카타가 방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가자"


"..."


갑자기 왜이러는거야? 그는 그를 무시하곤 등을 돌렸다. 그러자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뒷덜미를 잡곤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너, 나한테 화난거 아니라고 했잖아"


"...내가?"


"응 너 또 기억안나는구나"


그의 말에 문득 꿈이라고 생각했던 흐릿한 기억들의 조각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온몸에서 소름이 쫘악 돋아오름을 느꼈다. 모든것이 기억나는건 아니였기에 더 무서웠다.


"....아...."


"니가 화 안났다고 했으니까 이제 너, 나 피하지마"


"완전 개같은 논리잖아? 내가 왜.."


"낼 비번이네 뭐해?"


"그건 왜?"


그날 따라 계속 대답할 틈을 안주는 그가 이상했다.


"나랑 어디 좀 가자"


"나 약속있어"


그는 긴토키와의 약속을 생각하곤 대답했다.


"깨면 안돼?"


"내 약속인데 왜 니가 깨라 마라 명령질이야? 내맘대로 약속잡지도 못해?"


"음.. 뭐 그런건아닌데"


사실 소고의 맘 한구석엔 히지카타가 말하는데로 약속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기꺼이 허락을 하는게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왜 그녀석이 시키는데로 해야해? 라는 거부감이였다.


"너 어제 나랑 한 이야기 기억안나지?"


"아냐 기억나"


"그래? 정말 기억나?"


"...."


그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분명히 집까지 와서 야마자키가 방 앞까지 데려다 준 것까지는 또렷히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후에 자신이 혹시나 무슨 말을 했을지 미친듯이 불안했다. 에이 설마..


"기억 안나지? 너 이거 들으면 기절할껄?"


히지카타가 그가 당황하는 표정을 보곤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낼 12시에 카부키쵸 거리에서봐- 오면 알려줄게"

 

히지카타는 내일 보자는 짧은 말을 남기곤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약간의 도박수를 둔것인데 이렇게 미끼를 덥썩 물어올줄은 알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안색이 싹 변하는 소고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계속 놀리고 싶었다. 그 녀석의 당황하는 모습은 흔히 볼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긴토키는 그날 완전히 늦잠을 잤다. 신파치가 해결사 사무실에 들리지 않고 곧 바로 신센구미 둔영으로 출근을 하기에 깨울사람이 없었다. 신파치가 무어라고 해명을 해 놓았겠지- 그는 대충 씻고 편의점에서 딸기우유를 하나 사들고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일을 하는 내내 아파보였는지 다른 인부들이 계속 아프냐며 물어왔다. 그도 그럴것이 긴토키는 그날하루 혼이 빠져나간 사람마냥 힘없이 걸어다녔고 거의 일을 하지 못한채 그늘에 앉아있는 일이 허다했다.


"제가 몇번을 말해요? 술이 사람을 마시게 하면 안된다고 경고했잖아요"


"....어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요?"


"아냐.. 차렸어... 근데 신파치... 소리좀 지르지 말아줄래? 나 진짜 힘들어..."


그날은 일이 끝나자마자 신파치에게 잡혀 사무실까지 끌려갔다. 신파치는 술병난게 분명하다며 저녁으로 죽을 끓여주겠다고 했다. 컨디션도 안좋은데에다 일까지 해서 신파치의 말에 저항할 힘도 없었다. 쇼파에 쓰러지듯 누워서 틀어져있는 티비를 초점없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그 광경을 보고 신파치는 한심하다며 잔소리를 다시 한 바가지로 해댔다. 엄마다 엄마.. 그는 그의 잔소리에 귀를 막았다.

 


Rrrrr-


평소엔 잘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이 울려 긴토키는 귀찮다는듯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분명 스팸전화겠지 하곤 누구인지 확인도 안한채 귀찮은듯 전화를 귀에 가져다댔다.


[형씨, 저예요- 혹시 지금 앓아 누워있는거 아녜요? 하하]


그 목소리와 웃음 소리에 그는 누워있던 몸을 급히 일으켰다.


"어... 아니거든 그런거- 근데 왠일로 전화를 다해? 넌 좀 괜찮아?"


[저야 뭐 하나도 안취했으니까 당연하죠]


"웃기시네, 나야말로 하나도 안취했거든?"


그냥 괜찮냐는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한것일까? 아까까지만해도 죽을것같이 널부러져 있던 그는 갑자기 온

몸에 생기가 도는걸 느꼈다.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와 설레임에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거 물어보려고 전화한거야?"


[...아.. 뭐 그런것도 있고]


"정말?"


[네.. 뭐..그리고 저 내일 못볼거같아요]


"응? 왜? 안돼 싫어"


[뭐야- 저 일이 있어서요 제가 담에 맛있는거 살게요]


긴토키의 장난섞인 진담에 전화기 너머로 그가 어이없다는듯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얘기하려고 전화한

거구나 그는 물에 젖은 생쥐처럼 추욱 쳐졌다.


"왜애- 무슨일인데"


[일이라니까요 일]


"너 원래 일 열심히 안하잖아- 빠지면 안돼?"


[할땐 꽤 하거든요? 갑자기 유치하게 왜이래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긴토키의 태도가 우스웠는지 웃고 있었다.


"아냐 그냥..그래 그럼 담에봐"


긴토키는 핸드폰을 건너편 쇼파에 던져놓고는 다시 쇼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신파치는 그런 긴토키를 보곤 의아한듯 누구냐고 물었지만 긴토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 일 안간다구 했죠?"


"아냐 갈거야"


"안간다면서요?"


"파치야.. 그냥 그런다면 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안되냐..지금 긴상은 술병으로 앓고 있단말이야"


"낼 소풍이라도 가기로 했어요? 비와서 소풍 취소된 초등학생처럼 왜이래요?"


신파치는 시무룩하게 쇼파에 쓰러져있는 긴토키를 보며 만든 죽을 그릇에 담아 내밀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바람도 적당하고 구름도 적당히 있어 외출하기엔 적절한 날씨였다. 히지카타는 일을 하다가 올 것이고 그는 비번이라서 실컷 늦잠을 자던 그는 느즈막하게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그는 무척이나 불안했다. 혹시나 술을 먹고 좋아한다 라던가.. 그런 소리를 하진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가서 해명을 무어라고 해야할지 전날 한참을 고민하느라 전날 하루종일 넋을 놓고 있었다. 만약 그런 소릴 했다면 난 원래 술마시면 아무에게나 그런 헛소리를 하곤 한다는 변명을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속으로 이제 두번다시 술 같은거 안먹어! 라고 다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는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약속장소엔 이미 먼저 도착해서 담배를 피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도착해 얼굴을 마주보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히지카타씨, 내가 무슨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나 그거 약간 취해서 그냥 헛소리 한거예요"


"배안고파? 밥먹자"


얼떨결에 끌려온 음식점에서도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아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뭐 먹을거야?"


"음.. 난 이거.., 아니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돌아갈때 알려줄게"


"너 진짜 죽고싶어?"


계속되는 말 잘라먹기, 다른 이야기로 돌리기가 그를 슬슬 짜증나게 만들었다. 이런곳에 반 억지식으로 불

러다놓고 아무렇지 않게 밥이나 먹고 있으라니


"우리가 언제부터 싸웠다고 밥도 같이 먹기 힘든 사이가 됐어?"


"...응?"


틀린말은 아니였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그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음을 그 순간 깨달았다. 그리고 순간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게 뱉는 말이 그에게 제 마음이 들킬까 무서워 뭐라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주문하신 음식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다행히도 빠르게 나왔다. 그것을 소고는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이 무슨맛이였는지, 달았는지 짰는지 매웠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보자"


"영화? 히지카타씨 일 안합니까?"


"니가 지적할건 아니잖아? 일 맨날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루 땡땡이치지뭐. 가자 예매 해놨어"


"예매?"


히지카타가 예매해놓은 영화는 현재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액션판타지 영화였다. 그 표를 보고 괜시리 심술이 난 그는 표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나 이거 안보고 싶은데 나 저거보고싶어"


그가 가리킨건 굉장히 야하다고 평이 난 영화였다. 포스터에 있는 다 벗고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고 소고는 분명 히지카타는 당황한 표정으로 보겠거니 하고 그의 표정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살폈다.


"너 나이 안돼서 못봐"


덤덤히 말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은 그는 영화관 안에 있는 매점에 들어가선 말했다.


"나 팝콘도 먹고싶고 핫도그도 먹고싶어요"


"방금 밥먹었잖아?"


"조금씩 먹고싶은데 그렇겐 안팔잖아요 음료수도 음.. 포도주스도 먹고싶고 오렌지 주스도 먹고싶고.."


열받아 할 그의 표정을 보고싶어 그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곁눈질로 그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래 먹고싶은거 다 사"


원하던 반응이 아니여서 그는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니가 사는거야 라고 말하곤 한입씩만 먹고 버릴예정인 군것질 거리를 잔뜩 주문하곤 들고 오라는듯 히지카타의 품에 안겨주었다. 보통때라면 장난하냐며 화를 내야 할 그가 별말없이 자신의 말에 응해주는게 이상해서인지 더욱 심술이 났다. 예매율 1위의 영화라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본 영화라 그런지 꽤나 재밌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말은 별로 해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오며 히지카타에게 왜 이딴 영화를 보자고 했냐며 투덜댔다. 그런 그의 말에 재미있는데 왜 그러냐고 한마디 하는 히지카타와 오랜만에 영화관 안에서 한바탕 싸움을 했다.

 

초반엔 계속 밀어내려 자꾸만 화를 내며 집에 돌아가려 했지만 어느샌가 그의 페이스에 휘둘려서 인지, 혹은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서 인지 평소와 다름없이 티격태격하며 싸우곤 자신도 모르게 피식웃었다.

 

어느새 시간도 훌쩍 지나가 있었다.

 


"어... 히지카타씨 오랜만에 사격할래요?"


그냥 돌아가기가 싫었는지 그가 먼저 물었다. 말을 꺼낼까 말까 약간 고민하다 꺼낸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조금 놀란듯 그를 한번 보고는 웃으며 좋다고 말했다.

 

 

 

 

 

 

 

 

 

 

 

"어이 거기 천연파마머리, 심부름 좀 해라"

 

나이 많은 대장급 인부가 긴토키에게 말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와 험악한 인상 때문인지 모두가 잘 따르는 고참이였다.


"저... 곧 6시 인데요.."


긴토키는 귀찮은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니까 빨리 뛰어갔다와 임마! 얼른!"

대못을 사오라는 지령을 받고 그는 투덜투덜 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가뜩이나 기분도 안좋은데 하필 이럴때 심부름이라니 하지만 이내 심부름을 하는 쪽이 더 편할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곧장 돈을 받아들고 거리로 나갔다.

 

철물점을 가려면 한 거리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 거리는 놀 거리가 굉장히 많은 곳이였다. 시간이 6시가 되어가서 그런지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도 이곳저곳에서 꺄르르 웃어대고 있었다. 니넨 좋겠다 뭐가 그렇게 신나니? 그는 거리의 사람들을 신기하게 관찰했다.


사격장. 그곳을 볼때면 출제때 소고가 인형을 잔뜩 선물해줬던 것이 생각나 항상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 인형들은 그의 방에 있는 선반에 반듯이 전시해 놓았다. 그걸 본 신파치는 이게 다 뭐냐며 손대려는걸 난리를 치며 막았다. 그때 신파치는 다 큰 어른이 이딴 유치한 인형을 이렇게 전시해 놓냐며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신파치에게 상관하지 말라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내기할까?"


"내기?"


"진사람 소원하나 들어주기 어때?"


"유치하게 소원은 무슨 소원입니까?"

 

응? 이 목소리는? 긴토키는 익숙한 목소리에 사격장 안을 자신도 모르게 숨어서 지켜보았다. 검은 제복을 입은 한명과 유카타 차림의 그, 히지카타와 소고였다.


"나 먼저한다?"

 

히지카타의 목소리였다. 가벼운 사격총 소리가 여러번 들리었다.


"아- 오늘은 안맞네"

 

"늙어서 손 떨리시나보네요 히지카타씨"


소고의 목소리였다. 그리곤 또다시 사격총 소리가 몇번 울리다가 멈추었다. 소고는 사격을 멈추고 히지카타를 쳐다보더니 히지카타에게 겨누곤 가차없이 쏴댔다.


"야, 이자식아 너 뭐하는거야? 으 따가워"


히지카타는 넘어져선 소고에게 말했다.


"너 지금 일부러 봐준거잖아. 이녀석아"


그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일부러 너한테 져주겠냐? 뭐 어쨌든 이거 내가 이긴거다? 점수판이 내가 높잖아"

 

사실 일부러 봐준게 맞았다. 히지카타의 입장에선 그날 그의 기분도 맞춰줄겸 제안한 내기였다.


"이 자식이 진짜!"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토키는 뭔가 씁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돌아왔네"

 

한참을 뒹굴며 싸우다 히지카타가 소고에게 말했다.


"..."

 

그의 말에 소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는 이런게 좋아"


"응..?"


히지카타는 웃으며 그 녀석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다.


"그리고 너 취해서 별일없었어. 그냥 너랑 하루 놀고 싶어서 내가 장난친거야"


"뭐? 장난?"


너란 새끼의 장난이란거에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줄알아? 소고는 한편으론 안심하면서도 밤새 고민했기에

웃는 그 녀석이 맘에 들지않아 노려보았다.


"나 피하지마. 소원은 그걸로 할게"


"병신"

 

 

긴토키는 자신과 있을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소고의 설레임에 가득찬 표정과 그걸 감추려 히지카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것, 그리고 둘의 대화를 듣고 둘의 사이에 뭔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그 동안 있었던 모든일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 자기가 데리고 갔던 여자를 싫어했는지, 그 여자와 히지카타의 관계를 오해해서 얘기했을때 왜 그녀석이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축제때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았는지.. 그리곤 술자리에서 했던 키스 이야기를 떠올리곤 혹시...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엔 왜 저러지? 하고 별생각없이 넘겼던 별일 아니였던 일들이 그 순간 모든게 설명되는 것이였다.


그 날 긴토키는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광경을 지켜보다 그들이 돌아가고 한참후에야 털레털레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결사 사무실엔 신파치가 왜 연락이 안되냐며 다들 걱정했다며 또다시 한무더기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신파치의 말이 그날은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아 그는 미얀하다는 짧은 말을 하곤 신파치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아. 긴상"

 

신파치가 따라들어왔다.

 

"그냥 가 오늘은, 나 피곤하다야 잔소리도 그만하면 됐잖아?"


"갑자기 왜이래요? 그런거 아니구 이거"

 

신파치의 손엔 작은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신파치는 그 상자를 살짝 들어올리며 웃었다.


"아까 둔영에서 나오다가 오키타씨 만났어요 긴상 전해주라는데요?"


".....아..."


"또 타바스코 같은걸로 장난쳤을거 같기도 한데..포장이 안뜯어져 있으니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요?"


긴토키는 그 상자를 받아들곤 한참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안좋아하세요? 긴상이 좋아하는 초콜렛이라구요"

 

"아.... 이거 너 먹을래?"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신파치는 어이없이 웃었다.


"긴상, 진짜 어디 아프신거예요? 장난하지마요"


"아냐 진짜야"


"됐어요 나중에 또 무슨소릴 들을지 모르는데.. 피곤하신거같은데 쉬어요 낼봐요!"


손을 흔들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긴토키는 다시금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진짜로 줄 마음은 없었다. 설령 신파치가 받아 들었다 하더라도 곧 바로 뛰어가서 취소한다며 빼앗아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오해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냥 혼자 오해하는 것일꺼야 라고 생각하며 은근한 기대감에 살짝 들뜨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얼굴엔 약간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마츠다이라가 왔다. 자주 오지 않는 그가 둔영에 온것은 거의 두어개의 이유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의 딸에 대한 상담이였다. 곤도는 천성이 좋아서 인지 언제나 그의 말을 잘 받아주었다. 그런 그와는 반대로 히지카타는 왜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와서 하냐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고, 소고는 받아쳐주는 곤도의 옆에서 한마디씩 깨는 이야기로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오늘 기분도 별론데 같이 술이나 마실까?"

 

항상 같은 레파토리였다. 사실 곤도나 히지카타는 그와 술을 마시는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우선 먹기싫어도 억지로 술을 먹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술을 마시면 일명 '개'가 되는 마츠다이라 때문에 챙겨야 하는 그들의 입장으론 마음 놓고 술을 마시는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고는 원래 술을 마시면 누군갈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였고 옆에 히지카타와 곤도가 있었기에 그를 챙겨야 한다는 마음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의 입장에선 술을 사주는 마츠다이라와의 술자리를 싫어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오히려 같이 가면 어리다는 이유로 그에게 안주를 고르라고 해주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를 둘과는 다르게 좋아했다.


넷이서 나가는 길에 우연히 야마자키를 만난 히지카타는 야마자키를 잡아 끌며 같이 가자고 했다. 야마자키는 그들이 자신을 데려가려는 이유가 운전 혹은 뒷치닥거리를 시키는것 밖엔 없다는것을 알고 울상을 지으며 따라나섰다.


"곤도, 이제 너도 결혼해야하지않아? 얼른 상대 알아보라고"

 

술을 마시고 조금 취했다 싶을때 꼭 나오는 말이였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그들은 바짝 긴장하곤 했다. 히지카타는 야마자키에게 귓속말로 챙겨야 하니까 좀 도와달라고 속닥였다. 그리곤 옆에서 따른 술을 마시려 잔을 드는 소고의 팔을 마시지 못하게 붙잡았다.


"...? 왜요?"


"적당히 마셔, 너 많이 마셨어"


"좀 마셔도 되지뭐, 어차피 야마자키가 운전할거 아닙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평소와 같이 티격대는 그를 보고 야마자키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화해 하셨어요? 다행이다. 그 동안 얼마나 눈치봤었는데요"


"화해는 무슨, 그런적 없거든?"

 

야마자키의 말에 소고는 그를 째려보곤 다시 술을 들이켰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옆에 앉은 곤도와 야마자키의 어깨에 양팔을 올리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곤도는 저.. 선생님 이제 그만 가시는게.. 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무슨 소리냐며 연거푸 술을 더 시키는 것이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마츠다이라에게 잡힌 야마자키와 곤도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곤 조용히 그 방을 빠져나갔다. 시끄러워서 그런것도 있고 술을 마시고는 있지만 마음 편히 마시지도 못하는 자리가 유쾌하지만은 않아 담배나 한대 필 생각이였다. 시끌벅적한 술집의 소리가 밖에 나오니 조금은 가라앉아 들리는게 좀 낫다고 생각했다.

담배 한대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들였다. 내뱉으면 검은 하늘에 잠시 뭉쳤다 흩어지는걸 흰 연기를 하늘을 올려다볼겸 멍하니 올려다 보고있었다. 날이 흐려서 인지 그날따라 반짝이는 것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히지카타씨, 여기서 뭐합니까?"

 

뒤를 돌아보니 소고녀석이 걸터앉아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나왔어? 앉아"

 

히지카타가 제 옆에 앉으라는 뜻으로 옆자리를 툭툭쳤다.


"왠지 계속 있으면 나도 당할것 같아서요 아저씨가 어깨동무하면 무겁단말이야, 맛있는걸 사줄땐 좋지만"


그는 작게 투덜거리고는 히지카타의 옆에 앉았다.


"상태보니까 몇잔 더 마시면 가겠고만?"


"그래서 깨려나왔잖아 이녀석아"

 

깨러 나온건 아니였지만 히지카타의 말은 맞았다. 실제로 조금 알딸딸한 기운에 조금씩 시선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바라본 그가 담배를 피는 모습이 그날 따라 조금 다르게 보여 그가 물고 있던 담배를 빼앗았다. 그

리곤 제 입에 물곤 크게 한입 빨아들였다.

 

"이녀석아 너 미쳤어?"

 

히지카타가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이는 그를 보곤 놀라 후다닥 담배를 다시 빼앗아 바닥에 짓눌러 담배불을 꺼트렸다. 담배를 펴본적이 없는 그가 담배를 폈기에 그는 눈에 눈물이 고이도록 한참 기침을 해댔다. 하나도 좋은지 모르겠는 이딴걸 왜 피는지 그는 알수가 없었다.


"나한테 니코틴 중독자라 그럴땐 언제고 니가 담배를 펴? 기다려 물이라도 떠다줄게"

 

정신없이 기침을 하다가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히지카타의 손을 가지 말라는듯 강하게 잡았다.


"콜록콜록, 아 이제 괜찮... 콜록콜록"


히지카타는 그가 잡은 손을 한번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참 기침을 하던 그가 기침을 멈추곤 아- 어지러워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담배 연기 때문인지 뭔가 머리가 더 띠잉하고 울리는 기분이였다.


히지카타는 그의 머리를 제 어깨쪽으로 끌어 당겼다. 어지러워서인지 그가 끌어당겼을때 힘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게 되었다.


"어지럽다며, 기대고 있어"

 

싫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밀어내려 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사실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였을것이다. 어깨에 맞닿아 힐끗 본 히지카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


"별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왜?"


"그냥.. 반짝반짝해서 예쁘잖아"


그런말 미치게 안어울려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그 상태 그대로 기대어 있었다. 무엇과 닮았다고 표현하기가 어려운 그의 익숙한 체취가 편해 기분이 좋았다. 가슴 한켠에 있는 무거운 죄책감이 자꾸만 안된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는 그 순간만큼은 그 상태로 마냥 설레기만 하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불륜 드라마의 주인공이 이런 심정이려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했다. 사랑해선 안될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의 마음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것이라고 어느순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이러기 싫었어.. 근데 어떻게해 라고 되뇌이며 조금은 합리화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뭘 어쩌겠다는게 아니잖아? 그냥 옆에만 있는건데, 다를것 없이 그냥 지금처럼.

 

"히지카타씨"


"왜"


"그 유우라는 여자, 좋았어요?"


"뭐.. 일잘하니까 싫진않았어"


"아하"


"갑자기 왜?"


"그냥"

 

그는 잠깐 동안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누나는?"


히지카타는 그의 질문에 놀랐다. 그가 자신에게 미츠바에 대한 감정을 대놓고 물어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는 놀란듯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잠깐 생각하곤 대답했다.


"... 좋았지 당연히"

 

"당연히?"


"멍청아, 그렇게 예쁜 여자를 안좋아하는 남자가 어딨어?"


그의 대답에 잠시 취해있던 이성이 흐릿한 시야를 걷은듯 또렸해졌다. 소고는 그에게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근데 히지카타씨 새삼 대단하네요"

 

"뭐가 또"

 

히지카타는 오늘따라 이상한 그의 말에 물었다.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이 고백을 해오는데 그걸 거절합니까? 나라면 아마 죽어도 못할꺼야"


"...."

 

"행복을 바라고 그랬다.. 뭐 그런게 가능한가? 착한척 하는 남자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해 참"


"무슨말이 하고 싶은거야?"

 

"... 잊었어? 우리 누나"


이 말을 할까 말까 잠깐 사이에 고민했다. 자신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지 모르지만 마냥 묻고 싶었다.


키스, 나한테 한거 아니잖아 너

둘은 키스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히지카타가 꺼내려 했던적은 있었다. 그는 아마 사과를 하려 했을것이다. 하지만 소고는 그때 그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며 넘겼다. 그리고 쿨한듯 말했다. 고작 그런일 가지고 사과는 무슨, 됐어

히지카타의 입장에선 어이없을것이라고 생각한 건 몇일 후였다. 키스하자마자 다 토해놓고, 몇일간 피해놓고 이제와서 쿨한척이라니. 그에게 '고작 그런일'이 아니였다는 거니까.

 

히지카타는 분명 실수였다고 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을 그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다.

그 편이 더욱 좋았다.

 


"잊었길 바라고 물어보는거야?"


당연히 못잊었어, 라는 대답을 기다린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애매한 그의 대답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


"죽어도 잊으면 안되지 이 나쁜새끼야"

 

그의 말투가 약간은 날카로웠다. 누나는 너를 평생 기다렸어

 

"걱정마 잊고 싶어도 못잊어"


히지카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고는 그의 대답이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하지만 잊었다는 대답을 들었다면 그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넌 진짜 귀여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꼬맹이야"

 

히지카타는 약간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그거, 귀엽다는 말도 싫고 꼬맹이라는 말도 싫고 너도 싫어"


그의 말에 히지카타는 작게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느껴져 그 역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빤히 보는 시선이 어색해서 였는지 소고는 잠깐 눈을 맞추고는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서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가 가끔은 평범한 어린애 같이 보여 귀여웠다. 그런 감정이 특히 요즘 점점 커지는 자신이 어색했다. 의지할 곳없이 어린 나이에 혼자 남아있는 그의 모습이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보는것 같다고 생각해서 였는지 마냥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터 들었던건 사실이였다.

더불어 이렇게 승질 드럽고 감당안되는 녀석을 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 주나, 하는 묘한 책임감과 나밖에 없을꺼야 라는 우월감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녀석의 입술을 볼때면 자꾸 시선이 가는걸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엔 자기도 모르게 그려지는 그와의 키스장면에 묘하게 흥분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과의 키스 이후에 모든것을 게워낼 정도로 역겨워한 걸 알면서, 그 이후에 그렇게 후회를 했으면서.

 

그리고 가장 크게 그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은 소고가 그녀에 대해 물었을때 였다. 잊은건 아니였지만 순간 생각치 못했다. 그녀를. 그리고 그녀석은 그녀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간과 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재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먼저 와 있는 다른 인부들이 정신 바짝 차리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는걸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듯 예예- 라고 대답하며 간단한 장비를 챙겨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형씨, 왜이렇게 늦어요? 자꾸 이러면 짤라버릴겁니다"


그 날의 관리인은 이 녀석인 모양이였다. 소고는 반갑다는듯이 긴토키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가 누굴짤라? 이 세금도둑아 니가 먼저 짤려야 하지 않겠냐?"


"뭐야 말투 왜이래요? 제가 초콜렛까지 줬는데"


그냥 지나치려 하는 긴토키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그는 말을 붙였다.


"그거 되게 비싼거예요, 외국꺼라던데"


"아직 안먹었어 그리고 따라오지마 나 일해야 되거든?"


나 삐졌어- 그니까 얼른 풀어줘 라고 말하는 그의 심리였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약속 취소해 놓곤 히지카타와 사이좋게 놀고 있던 그에게 조금은 화가났다. 그리고 더불어 히지카타와 있을때 그의 표정이 머리에 새겨져 자꾸 떠오르는게 생각하기 싫었다.


"뭐야- 비싼거 알고 아껴먹는겁니까?"


"그런거 아니야 그리고 따라오지 말라니까 왜 자꾸 따라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따라오지 않았다면 더 서운했을 것이다.


"저도 일하는 중인데요? 관리인이니까 여기에서 가장 일 안할거 같은 사람 감시하는거죠"


긴토키는 자재를 내려놓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한테 초콜렛은 왜 줬어?"


그가 좋은것은 사실이지만 이 순간 왠지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약간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기 때문이다.


"선물받았는데 전 그런 너무 단 초코렛은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역시나.. 라고 해야하나 긴토키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랬구나, 그럼 약속은 왜 깼어?"


"일 있었다고 했잖아요"


"너 히지카타랑 사격하는거 봤어"


"뭐야 지금 제가 거짓말 했다고 생각해서 화났습니까?"

 

긴토키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뭐.. 일단 그녀석 인정하기 싫지만 내 상관맞잖아요? 상관님께서 억지부러서 그런거니까 표정풀어요 내가 담에 맛있는거 살게요, 근데 내가 왜 이거 형씨한테 변명하고 있지?"


"화난건 아니야 오해하지마"


긴토키를 부르러 온 다른 인부는 그가 소고와 함께 있는걸 보곤 그냥 돌아갔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럿이서 한 곳을 공사하고 있는 모양이였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곤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너한테 상관이야?"


"히지카타요? 인정하긴 싫지만 상관은 맞죠"


"난?"


"우린 친구라면서요?"


솔찍하게 표현하는 그 였기에 그 순간이 마냥 답답하게 죄어왔다. 답답함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나 너 좋아해"


"예예 나도 사랑해요"


그는 긴토키의 말에 웃으며 장난식으로 받아쳤다. 소고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가끔씩 있는 미묘한 느낌은 긴토키의 장난 때문이다 라고 생각할 뿐 그 이상의 생각도 해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이런 말도 그가 늘상 해오는 장난의 일종이라 생각하곤 같이 받아쳤다.

 

"나 장난하는거 아니야"


"나도 장난 아니예요"


그는 여전히 장난치듯 웃으며 말했다. 그는 긴토키가 여전히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말 하기까지 엄청 고민하고 말하는거야, 장난치지마"

 

긴토키의 진지한 말투에 그는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나 너랑 이렇게 지내기 싫어, 나 너 볼때마다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 얼굴도 한번 만져보고싶고 입술도 한번 만져보고싶고... 너랑 이런저런 야한짓도 해보고싶고 그래"


소고는 그의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놀라서 그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도 모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저기... 형씨..."


"몰랐어? 어떻게 몰라? 아니지 모를법도 하지 너 나한텐 관심도 없잖아"


"...아니..저..."


"근데 뭐, 너랑은 상관없겠지."


긴토키는 내려놓았던 자재를 다시 주워들었다. 안들어도 좋을 법한 끔찍한 말을 들은거 마냥 소고의 표정은 충격에 뻥져 있었다.


"혀..형씨"

 


그는 그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 돌아서자마자 사실

그는 후회했다. 이제 친구로써 곁에 있지도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리는거겠지

 

 

 

 

 

 

 

 

 

 

 

 

 

 

 

 

 

 

"자- 이거 원샷하는거다?"

 

"형씨 잘마시나보네요?"

 

"당연하지 난 살면서 취해본적이 없어"


긴토키는 얼마전에도 숙취에 시달려 끙끙 앓았던 일이 생각났지만 무시했다.


"아하 그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취하면 어떤 기분일지 정말 궁금하다니까요?"


남자들은 주량이 쎈걸로 은근한 자존심을 내세우곤한다. 둘다 술을 못 마시는건 아니고, 타고날 정도로 잘 마시는 편도 아니였지만 주량승부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형씨 전에 벚꽃놀이 할때 취하지 않았었나요?"


"아냐, 그거 취한거 아냐 나 그냥 연기한거야"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곤 그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렇게 여러번 술만 연거푸 들이키다 긴토키가 먼저 물었다.


"좋아하는 사람있어? 음..아니면 누구 좋아해본적있어?"


긴토키는 당연히 지금은 그런상대가 없을거라고 혼자 가정하고 뒷 질문을 덧붙였다.


"형씨는요? 아 많겠구나"


연애경험이 꽤 있다고 들은걸 되새기곤 말했다.


"나야 당연히 많지! 내 나이가 몇갠데"


"그중에 젤 기억남는건 어떤사람이예요? 다 똑같이 기억에 남는건 아닐거잖아요"


"응?.."


긴토키는 약간 망설였다. 현재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과거 얘기를 하는건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기 안할래"


"왜요? 재밌을거같은데"


"내가 너 재밌으라고 그런거 얘기 해야되는거야? 그리고 내가 너한테 물어본거잖아"


"전 없어요"


그 말에 긴토키는 웃으며 말했다.


"너 그래서 모르는거야, 진짜 처음 키스하면 종소리가 울린다니까?"


"도데체 날 몇살이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진짜야, 너 해봤어? 안해봤잖아"


"..."


긴토키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다 문득 반응 없는 그의 행동에 두눈을 크게 떴다.


"해봤어?"


"아.. 아뇨"


"누구랑? 너 전에 나랑 있을 때만 해도 해본적 없었었잖아?"


"아니라니까요?"


"아냐 니 반응, 없는사람의 반응이 아니야 누구야? 누구? 어떤여자야?"


"아니라니까 이인간아!!"


소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긴토키는 그의 반응에 아.. 알았어 하고 작게 말하고는 술을 따랐다.


"장난이야 장난-"


"그러는 형씨는 나름 첫사랑이라고 말할만한 사람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라도 있나봐요"


"첫사랑같은 소리- 다 비슷비슷해 밍숭밍숭하거든?"


"그 나이 먹어도 없는 사람이 있긴있구나 다 있다고 하던데"


"아닌사람도 있다 이녀석아!"


긴토키의 발끈하는 모습에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한참을 한잔씩 주고 받으며 쓸데없는 티비에 나오는 드라마 얘기라던가,

뭐 점프만화의 신작이야기라던가 하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 긴토키가 문득 생각났다는듯 말했다.

 


"비번 언제야?"


"낼 모레요"


"그날 별일없지? 나랑 놀자"


소고는 긴토키의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비번날 딱히 할일도 없기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손님... 저희 마감시간인데요"


소고는 벽에 가만히 기대어 잠들어 버렸고 긴토키는 옆 테이블의 취객들과 싸우다 직원의 말을 듣고는 알겠다고

말하곤 잠들어 있는 소고를 흔들어 깨웠다.


"가자아- 너어 역시 취했지이-?"


소고가 눈을 비비며 깨서는 흐느적 거리는 긴토키를 보며 본인도 비틀비틀 일어섰다.


"아뇨- 저어.. 그냥 졸려서어.. 잔거거든요?"


술김에도 긴토키는 데려다 주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리고 소고역시 됐다며 그냥 가라고 술집 앞에서 혀꼬인 소리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럼 자고 갈래? 우리집에서?"


"외박하면 욕먹어요"


"누구..한테?"


"누구긴.. 히지카타말고.. 또있어요?"

 

 

둔영에 도착해선 긴토키는 앞의 경비병들에게 소고를 넘겼다. 마침 잠깐 나갔다 들어오던 야마자키는 그 둘을 보곤 어이없다는듯이 한번 쳐다보고 말을 걸었다.


"해결사 형씨? 오키타 대장?"


"으응? 어 야마자키구나 야, 얘가.. 너무 취했어어"


"제가 봤을땐 형씨도 만만치 않은데요? 집엔 어떻게 가요?"


"집..? 왜못가? 내집인데?"


"아니..제말은 그게 아니고.. 태워다드릴게요 기다리세요"

 

야마자키는 소고를 방 근처까지 데려다주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다행히도 얌전히 기다리는 긴토키를 차에 태웠다.

 

차에 타서 가는 도중 긴토키는 야마자키에게 물었다.

 


"야. 야마자키 쟤 요즘 이상하지 않냐?"


"오키타 대장이요? 음.. 조금 이상하긴한데.."


"그치?"


"네 근데 저.. 형씨.. 운전 방해 되니까 가만히 좀..."


취해서 인지 자꾸 말을 할때마다 가까이 붙어대는 긴토키를 애써 밀어내며 야마자키가 말했다.


"어떤데?"


"음.. 별거아닐수도있는데.. 요즘 부장님하고 안싸우거든요 그래서 다들 무서워하고 있어요"


"아- 그래?"


"네 둘이 또 왜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적막이 더 무섭다고요 우리들은"


긴토키는 뭔가 생각하듯 말없이 창 밖을 쳐다보았다.

술이 취해서 인지 창밖의 불빛이 물을 뿌려놓은듯 뿌옇게 번져 보였다. 취해서 뭔가 생각날듯 말듯한 복잡함이 귀찮은 그는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네 놈은 또 자는거냐?"

긴토키는 손으로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다.


"어.. 타카스기.."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타카스기 신스케였다. 그는 부잣집의 도련님이라 그런지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은은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다니는 서당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여자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항상 시비를 거는 유일한 한명이 긴토키였다. 항상 싸우는 둘을 말리는건 카츠라와 사카모토. 물론 그들도 어느날부턴가는 그냥 그 둘의 싸움을 무시하는게 일상이 되고 있었다.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반대인 그에게 호기심이 많았고, 그런 그를 관찰했다. 긴토키는 골목대장같은 느낌의 우왁스러운 아이였다면, 타카스기는 공부부터 시작해서 검술까지 잘하는 일명 우등생이였다.

 

타카스기는 화를 잘 내는 타입은 아니였다. 말이 많지 않고 조용한 타입이였으나 긴토키가 괴롭혀 올때만 화를 내고 말을 많이했다. 그리고 긴토키는 그의 그런 모습이 자신을 통해서만 나온다는것을 재밌어했다.


그는 검정색 머리카락이지만 빛을 받으면 보랏빛으로 빛나는 매력적인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체구가 크진 않았지만 그 특유의 기품 때문인지 그가 그렇게 작아보이지는 않았다. 긴토키는 그런 그에게 장난을 치려 매일 키가 작다며 놀려대며 머리를 쓰다듬는 장난을 즐겨 했다. 타카스기는 그 장난을 쳤을때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긴토키가 그 장난이 얼마나 기분 나빳을지를 깨달은건 먼 훗날이였다.

 

그래도 둘은 사이가 꽤나 좋았다.

 

긴토키가 가끔 그 답지 않게 무언갈 진지하게 물어볼때면 꽤나 진지하게 들어주곤 했다. 진지한 말을 들어줄때의 그의 눈동자가 새삼 너무 깊어서 빠질것 같다고 생각했다. 긴토키가 졸때 깨우는건 타카스기였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조는척을 할때도 있었다. 눈을 떴을때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 눈 마주침이 좋았다. 그 순간은 그의 눈동자에 자신만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그를 향해 품은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을때는 유곽에 놀러갔을 때였다. 그와 타카스기는 같은 유녀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유녀는 타카스기를 선택했다. 결국 그 때문에 그는 다른 여자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 유녀 때문인지 그는 마음이 괜시리 착잡했다. 술만 연거푸 들이키는 긴토키를 보고 그 유녀는 술만드시겠어요? 하고 눈꼬리가 휘어지게 눈웃음을 보내며 물었다.

아니- 그는 짧게 대답하곤 그녀의 옷을 거칠게 잡았다.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였다. 여자의 분냄새와 향수냄새가 이다지도 흥분되지 않았던가. 무표정으로 그 여자를 안았을때 그는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알수없었다. 타카스기는 뭘하고 있을까? 그 여자와 뒹굴고 있으려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만 자꾸 반복되었다.

 


"나 말고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죠?"


관계가 끝난후 그 여자가 한 말이였다.


"여자는 다 알아요 나를 안을때 남자가 나를 생각하는지 아닌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적어도 그 순간만은 저와 있다고 생각해주는게 예의라구요 그런것도 다 안다구요

그 여자는 긴토키에게 또다시 눈꼬리가 휘어지게 눈웃음을 보냈다.


긴토키는 그 여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사카모토의 말에 의하면 타카스기는 그 여자와 단순히 술만 마셨다고 했다. 그 말에 그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 어느날과 같이 타카스기에게 다가가 그 일을 놀려댔다.

 

"너 이자식 그 여자랑 술만 마셨다며? 다행이다. 그 여자가 날 선택안해서"

 

긴토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놀려댔다.


"...넌?"


"응?"


"그러는 너는 즐거웠나보네"


책을 정리하며 덤덤히 말하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타카스기의 말에 무슨 뜻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자신에게 물어온 그 질문에 그 날밤 여자와 관계를 맺었던 자신이 괜시리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이 그를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는걸 깨달았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그저 그를 바라볼때마다 설레는 감정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항상 시비걸고 싸우는식의 표현밖엔 해보지 않았던 그 였기에 그를 향한 감정을 알았을때도 표현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쟁중엔 서로의 등을 맡기며 기대는것이 긴토키는 좋았다. 서로를 의지하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다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는 넷이서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때, 전쟁중 만난 어떤 여자를 보고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왜 이런 전쟁터에 여자가 있을까? 로 시작하다가 나중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카모토와 카츠라는 원래 말이 많아서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타카스기, 넌 어떤 여자가 좋아?"

 

긴토키가 별 말을 하고 있지 않은 그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음.. 글쎄 약간은 빈틈있는 쪽이 나을것 같아 넌?"


의외였다. 타카스기가 빈틈있는 여자를 말하다니.


"아.. 나.. 나는 자존심쎄고 싸가지 없는 쪽이 좋아"


"사서 고생이다 그거"


타카스기는 그의 말에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긴토키가 가리킨건 타카스기였다. 그리고 긴토키도 약간은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타카스기는 항상 긴토키에게 넌 항상 빈틈투성이야 라고 말한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답하며 보여줬던 약간의 미소가 그를 더욱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넷이서 한집에서 합숙을 하던 어느날이였다. 그 공간이 크진 않아서 잠을 잘때는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다같이 잠이 들어야 했다. 그런것이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긴토키는 타카스기와 한 공간에 있다는게 기분이 좋아 계속 들떠있었다.

 

"긴토키- 긴토키-"

 

카츠라가 그를 살짝 흔들며 깨웠다. 그러나 그는 카츠라가 또 무슨 터무니 없는 이유로 자신을 부르는것인지 귀찮아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카츠라는 종종 긴토키를 깨워 리모콘이 사라졌어- 와 비슷한 시덥잖은 이유로 그를 깨우곤했다.


"사카모토- 자는거야?"


사카모토를 깨우는 소리도 들렸다. 사카모토는 정말로 자는듯 코를 골며 대답이 없었다. 또 무슨 병신짓을 하려나, 긴토키는 그저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타카스기 다들 자는것같아"

 

타카스기? 그 이름에 그는 자는척을 하면서도 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 이리와"


몇걸음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지는 뭔가 끈덕진소리- 뭐... 뭐야? 키스...? 하는거야? 그쪽을 볼 수 없었기에 소리만을 듣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누가 들어도 키스라고 생각할 법한 소리였다. 에이 무슨 말도 안돼 그는 다시 생각하고 그저 잠이 들으려 노력했다. 키스라니 타카스기가? 카츠라와? 아냐 그냥... 뭐.. 다른거.. 뭐가 있을까? 한참 생각했다. 그 상황을 믿을수가 없어 자꾸 그에 대체할만한 상황을 찾고있었다. 그러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그 둘의 상황을 보지 않고 있기에 오해하고 있다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에 들으려 애써 양을 한마리 한마리 세어나가고 있었다. 왜 드라마나 소설, 만화책을 보면 그렇게 오해할만 상황이 종종 나오곤 하지않은가?

 

 


"타카스기 아까 긴토키가.."


"니 입에서 그 녀석 이름 나오는거 기분나빠"


"아니.. 그게.."


카츠라는 말을 하다가 어째서인지 자꾸 말을 멈추었다. 입을 맞추는듯한 그 소리가 계속 들려올때, 그리고 타카스기가 카츠라에게 자신을 그렇게 말하였을때 그는 그 순간 자는 척 하였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오해한게 아니였다. 그 둘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약간은 빈틈있는 쪽이 나을것 같아'


그가 가리키는게 혹여나 자신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대감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였다. 그가 가리킨건 그 어떤 여자도, 자신도 아닌 카츠라였다. 심지어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카츠라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질투할 정도로.


"긴토키가.. 좋아하는 여자 물어봤을때 가리킨거, 그거... 나야?"


"너 여자 아니잖아"


"어쨌든!"


"응 맞아, 너야"

 


자신과 사카모토가 깰까봐 속닥이는 그들의 말이 달콤하고 간지러웠다. 그리고 누구든 그들의 말을 들었다면 느꼈을것이다. 지금 저 둘이 정말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긴토키는 옆으로 돌아누워있던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랜세월 그를 좋아했던 그의 마음이 이런식으로 끝날 줄 몰랐기에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 그가 너무 어려서 감정에 대한 조절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눈에서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옆선을 타고 흘러 베갯잇을 적셔갔다.

 

소리를 죽이고 흐느낀다는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는 그날 처음알았다.

 

 

 


카츠라와 타카스기는 절대로 둘이 그런 사이라는걸 내비치지 않았다. 둘은 필요한 대화만 가끔 할뿐, 아마 긴토키 역시 그날 그들의 대화나 그 행각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긴토키는 그 날 이후 타카스기에 대한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칼로 자르듯이 깨끗히 잘라지는것이 아니기에 그의 얼굴을 항상 마주보며 잊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였다. 그 결심 이후에도 그를 바라보면 특유의 은은한 기품에 취하듯 홀리는 것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카츠라가 그의 옆에서 여전히 바보같은 행동을 하며 그를 미소짓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흩어졌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수 없었다. 긴토키 역시 그 세월에 맞추어 많이 변했기에 타카스기를 엄청나게 그리워한다거나, 그런일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길진않았지만 연애도 종종했고 사람들과 교류도 활발했고, 딱히 그런 생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긴토키가 3명의 친구들중 가장 먼저 마주친건 카츠라였다.

 

카츠라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긴토키는 내면 남아있는 질투심 때문인지 반가우면서도 반갑게 인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머뭇머뭇 거리다 용기내어 물었다.


"즈라, 저.. 그 녀석.. 타카스기는? 잘지내? 너라면 계속 연락할것 같아서 왠지.. 하하"


혹여나 둘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걸 눈치챌까봐 그는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 타카스기.."


그의 말에 의하면 같은 양이지사지만 과격파로 조금 안좋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하는 카츠라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그는 둘의 사이가 많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어째서 그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물론 즈라녀석도 녀석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겠지만.. 자신이였다면 그를 그렇게 두지 않았을거란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때 드는 막연함에 의한 것이였다.


그 말을 듣고 다른 매체를 통해 그의 소식을 접했을때 그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지 못한 그가 생각나 뼈를 깎아내는 듯한 안타까움에 그를 가질 기회를 자신이 아닌 카츠라에게 준 하늘을 수 없이 원망했다.


그는 가끔 졸다 일어났을때 그를 깨우려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어릴적 모습 그대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시절의 마음이기에 잊었다고 해도 잊을수 없는,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첫사랑' 이라는걸알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긴토키는 타카스기를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숨이 멎을정도로 놀라움과 그리움에 심장이 쿵쾅쿵쾅뛰었지만 그것이 아직도 그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를 좋아하던 마음과 오랜 시간에 의해 곁들어진 환상이 본인앞에 나타났다는 것에 의한 것이였다. 그리고 그는 더이상 예전에 함께 했던, 그가 오랜기간 사랑해왔던 그의 모습이 아니였다.

 

알수 없는 몇마디를 나눈채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난 이후, 알수없는 허무함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어떤것이 방영되고 있는지도 알수 없는 티비를 하루종일 틀어놓은채 술만 연거푸 마셔댔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다시 마주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라고.

 

그 날을 기점으로 그는 또다시 약간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는 그날 그 녀석이 들어오면 반드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6시가 되자마자 긴토키와 어디론가 나가선 들어오는 기척이 없자 그는 초조하게 시계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하지만 그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진 않았다. 계속 고민을 했지만, 어쨌든 만나서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옆방에서 기척이 들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자신을 피하려고 방문을 잠궈놨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열게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 없이 방문을 훤히 열어놓고는 침구에 그가 쓰러져 누워있었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가 쓰러져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술냄새- 그렇게 술좀 자제해서 마시라고 일렀는데도 또 이렇게 술에 만취해서 들어온 그를 보고 내일은 아침일찍 오렌지 주스를 사서 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다른때보다 숨소리가 조금 거칠었다.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칼을 가만히

정돈해주었다. 그리고 복숭아빛으로 달아올라 있는 그의 볼을 가만히 꼬집었다.


쓰러져 자는 그 녀석을 옆에 앉아서 보고 있자니, 전에 자신에게 어이없게 입을 맞추었던 일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피식웃어버렸다. 치사한 새끼 나도 나지만, 너도 할말없어

 

"물..."


"응?"


"물...물줘"


자던 그가 눈을 반쯤뜨곤 한 첫마디였다.

히지카타는 눈을 뜬 그를 보고 소스랏치게 놀라 크게 움찔했다가 이내 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히지카타가 건넨 물을 마시고는 다시 누워 아무일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곤 곧 다시 눈을 다시 뜨곤 옆에 앉아있는 히지카타는 반쯤 풀린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히지카타는 하얗게 빛나는 달빛이 살짝 맺혀있는 그의 눈이 구슬같아 예쁘다고 생각했다.


"어...? 히지카타..?"

 

그가 히지카타를 보곤 눈을 두어번 깜빡 거렸다.


"히지카타... 맞아?"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히지카타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소고는 그런 그에게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리곤 그의 머리칼 끝을 조심스레 살짝 잡아당겼다. 의외의 행동에 히지카타는 뭐야..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선을 쭉 타고 가다가 이내 멈칫하고 멈추었다.


"아... 나.. 어떻게 해.."


취해서 그러려니 하고 히지카타는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 너 죽여버리고 싶어.."


"..."

 

네 녀석이 날 죽이고 싶어하는게 하루이틀일이냐-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죽을래.."


"...너답지않은데? 부장자릴 차지한다고 해야지"


"..아 몰라... 그딴거.. 짜증나"


쥐어짜듯이 그 말을 하곤 그는 팔목으로 제 눈을 가리었다.


"...음.. 그게...미얀해.. 빨리 말했어야 하는데.. 미얀.. 화난거 알아"


그가 이 말을 바라고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어차피 술 취해서 기억도 못할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말해주고 싶었다.


"그딴 소리 하지마..."


"너 기억 못할거같긴한데.. 그래도 내가 지금 답답해서 그래 내가 잘못했..."


"..화.. 안났어"


소고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내일 또 나 피할거잖아"


"..화.. 안났어.. 그냥... 그냥...."


눈을 가리고 있는 팔목 옆으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눈물이라는걸 알았다. 히지카타는 그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본적도 없을 뿐 아니라 자존심 쎈 그에게 절대 어울리지 않는것이였기에 그의 모습에 놀라 두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새삼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우는것을 감추는것을 보고 그 녀석 답다고 생각했다.


무슨일이길래 이 녀석이 눈물을 보일정도로 힘들어할까?

울고 있는 사람에게 너 울어? 왜 울어? 라는 질문만큼 상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질문이 없다. 여자들이야 그런 위로가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쉽지 않은 남자들로써는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는게 죽기보다도 싫은것이다.

 

히지카타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가 잠들때까지 아무말없이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그가 눈물을 보여서인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잠든것을 대충 확인하곤 나와 방문을 닫고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궁금했다.

 


해결사랑 둘이 마셨나? 해결사녀석이 어떤 눈으로 저를 보고있는줄은 알고 있는건가?


'니가 그 녀석이랑 가까운건 알지만 누가 보면 너 걔 부모인줄 알겠다야'


부모..라.. 그런자식이 있었다면 아마 하루하루 피가 바짝바짝 말라버렸을거다. 학교 갔다온다고 나가는 순간부터 아무일도 못하곤 집에서 손톱이나 물어 뜯으면서 오늘 하루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해달라며 물이라도 떠다놓고 싹싹 빌고 있을것이다. 다른 부모들은 병원비라면 얼마든지 물어줄테니 제발 맞고오지만 말아라 라며 말하는걸 뼈저리게 부러워할것이다. 그런말을 입밖에 내는 순간 아마 병원비로 집안 파산하는 날이 올것이기때문이다.

 

지금도 그녀석 뒷치닥거리를 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냥 다른 이유없이 신센구미를 책임지고 있는 부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녀석이 제일 어리니까 조금은 더 신경쓰는것이다.


그럼 키스는 홧김에 한건가? 그전에 왜 화가났을까?

다른대원들이 그런 키스자국을 남기고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별 신경 안썼거나 그런거 보이고 다니지 말라고 한소리 하곤 넘어갔을거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 문득 미츠바가 떠올랐다.

 

둘은 많이 닮았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도 많이 얘기했기에 소고도 그걸 알고있겠지만 히지카타는 소고에게 한번도 닮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뭔가 자신이 미츠바에게 마음이 있다는걸 이 녀석이 눈치챌까봐. 대충 알고있는 눈치긴했지만 괜히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 그의 생각을 확신시키고 싶진 않았다. 옆에서 야마자키나 곤도가 닮았다며 얘기하면 퉁명스럽게 뭐가 닮았냐며 저렇게 싸가지없는 저 성격을 좀 보라며 혼자만 부정해왔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나면 발끈한 그 녀석과 또다시 거하게 싸우곤 했다.


순간 그녀와 그 녀석을 햇갈렸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였다. 그녀라고 잠시 착각했다면 더욱이 그러지 못했을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미츠바의 존재란, 옆에 있기만해도 너무 떨리어 손대기도 힘들정도로 설레는 그런 존재였다. 멱살을 잡고 벽에 밀친채 억지로 키스를 했다는건 그 녀석에게 한것이 맞았다. 그 녀석이니까 그렇게 거칠게 대할수 있는거다.


그가 소고에게 느끼는 감정은 미츠바에게 느꼈던 감정, 그리고 어느 다른 대원들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의 중간? 아니 중간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두 감정이 형채를 알아볼수없게 뒤엉켜 존재하는 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그런것이였다.

 

 

 

 

 

 

 

 

 

 

 

 

 

 

 

 

 

 

 

 

 

 

 

 

 

 

 

 

 

 


왜 나를 불렀을까? 순순히 가야하나? 아니면 그냥 못들었다고 할까?

가면 그 새끼는 어떤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있을까?

 

그는 짧은 순간에 마음속으로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

 

그를 피하고 있는것은 사실이였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피하는 꼴은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내 히지카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히지카타는 자신의 상관이라는걸 다시 한번 인지했다.


집무실에 들어가자 책상에 앉아 담배를 물고 무언갈 열심히 쓰고 있는 익숙한 모습의 그가 보였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곧 키스했을때의 잔상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려 마른침을 꿀꺽삼켰다.


그의 앞에 서자 히지카타는 그제서야 봤는지 일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왔어?"


"..."


"회의 왜 안왔어?"


"..."


"아까 보니까 일도 카미야마 혼자 하고 있던데 어떻게 된거야?"


"..."

 


소고는 사뭇 덤덤한 표정으로 평소와 다름없이 물어보는 그의 태도에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도 보고싶지 않아 평소라면 마주보고 시덥잖은 표정으로 쳐다보기라도 했겠지만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린채 그가 하는 질문을 우두커니 서서 받고 있을 뿐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태도가 의아한건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저렇게 얌전히 있을리가 없는 그가 조용히 히지카타의 앞에 서 있다는게 더 이상해 저희들끼리 진짜 어디 아픈가봐- 라며 속닥였다.

 


"진짜 어디 아픈거야?"

 


히지카타가 이마에 손을 얹으려 손을 뻗자 소고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라며 한발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행동에 히지카타는 한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그리곤 잠깐 나가서 이야기하자며 손목을 잡아 끌었다. 잡아끄는 손목엔 손자국의 멍을 가리기 위해서 였는지 감겨있는 하얀 붕대가 눈에 띄어 히지카타는 미얀한 마음을 가져서인지 손목을 놓고 그의 표정을 잠시 살폈다.

 

나가자. 그가 다시한번 짧게 말했다.

 


그 말이, 그리고 그가 자신의 옆에 서 있다는게 괜시리 싫었던 소고는 신경질적으로 옆에 있던 물컵에 담겨 있던 물을 히지카타의 얼굴에 던지듯 부어버렸다. 그 물은 정확히 히지카타의 안면에 강타하고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더러운 새끼"

 


놀란 대원들의 시선, 그리고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히지카타를 뒤로 하고 그는 집무실을 씁쓸히 빠져나갔다.

 

 

 


그 새끼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구나.. 그게 맘에 안드는건가? 나는.. 그럼 그 녀석한테 뭘 바라고 있는걸까?

 

사실 바라는것 따위 없다는걸 알았다. 그건 그냥 어리광이였다. 어린 애들이 관심 받기위해 부모님께 부리는 어리광. 무얼해주어도 싫다 싫다 하고 울어대는 그런 어리광.

 

 

 

방에 있으면 왠지 히지카타와 마주칠거라 생각한 그는 밖으로 나와 근처의 강가의 파랗게 빛나는 잔디밭에 털썩 누웠다.


올려다본 하늘에 그날따라 유난히 몽글몽글하게 떠다니는 구름이 부슈에서 어릴때 보던 하늘과 닮아있어 자신도 모르게 부슈의 어느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넷이서 소풍겸 근처의 강가에서 도시락과 과자같은 것들을 먹으며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는 곤도에게 강가에서 물수제비 따위의 하찮은 놀이를 배우고 있었고, 그 모습을 히지카타와 미츠바는 나란히 앉아 지켜보았었다.

 

강가에 유난히 많이 피어있는 하얗게 빛나고 있던 카라꽃을 그녀는 예쁘다고 했었나보다.


그 다음날 문앞에 카라꽃으로 서투르게 신문따위로 볼품없이 만들어진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미츠바는 그 꽃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꽃을 화병에 꽂아두곤 그날 하루종일 콧노래를 부르며 그 어느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원래 장미꽃이 가장 좋다고 말했던 그녀가 이젠 카라꽃이 제일 좋다며 그 꽃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꽃을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어린마음에 그는 미츠바가 저런 새끼 따위 때문에 제 누나가 웃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땐 자신의 누나를 그 녀석이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어떤거예요?"

 

곤도가 근처의 어떤 여자에게 차여 시무룩하게 앉아있을때 어린 그가 물었다. 그 말에 곤도는 말했다.


"어렵게 생각할게 있어? 그냥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다. 그거지"


"고작그거예요? 별것도 아니네 뭐"


"고작이라니 이녀석아! 그거 엄청 큰거야. 그리고 말야, 그 사람의 하나하나가 마음에 크게 박히는거야 사소한것도... 음... 예를들어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것과 니가 좋아하는 어떤사람이 네 이름을 불러주는게 크게 다르게 느껴지는거지. 그리고 생각하기 싫어도 자꾸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것- 뭐 그런거지."

 

곤도는 본인이 말하고도 자기 방금 멋있지 않았냐며 혼자 호들갑을 떨었다.


"전 곤도씨가 좋지만 그정도는..."


소고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거랑은 다른거지. 아직 니가 어려서 모르는거야. 좀더 크고 그런 상대가 나타나면 다- 알게 된다"

 

곤도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말에 소고는 미츠바가 그 꽃을 받고나서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던 일을 떠올리곤 쳇- 하고 짧은 투정을 부렸다.

 

 

 


그 새끼와의 키스가 충격적이였을거야 계속 생각 나는걸 보면

하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게 그는 이상했다. 진절머리나게 싫은 그 녀석인것인데 어째서 가까이 맞대 왔던 입술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것인지, 왜 뒷모습을 보면 가서 한번 끌어 안아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것인지


그리고 문득 그 사람의 하나하나가 마음에 크게 박히는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츠바가 하얗게 빛나는 꽃을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라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 누나가 좋아했던 사람에게 이런 마음을 품다니 최악이다.


누나.. 난 마지막까지 누나의 행복을 빼앗는 나쁜 동생이야

 

 

 

 

 

 

"소고, 오늘 한잔하러가자 오랜만에"


곤도가 그에게 손으로 술잔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웃어보였다.

그의 그런 모습에 피식 웃고는 따라나서려는 찰나 둘의 곁으로 담배를 피며 걸어오는 그를 보곤 흠칫 놀랐다.

셋이 먹자는 소리였구나

 


"아.. 곤도씨 나 오늘 바쁜일이있어서요 둘이 마셔요"


"응? 니가 바쁜일? 뭔데?"


곤도가 그의 대답에 놀란듯 물었다.


"그래 그 일이 뭔데?"


히지카타가 그에게 물었다.


".. 니가 알거 없잖아"


그는 짧은 대답을 하곤 돌아섰다.


"응? 너희 또 싸웠냐? 같이 가 이녀석아"

곤도는 소고의 뒷덜미를 잡고는 반 강제로 질질 끌고 갔다.

 

 

 


좋은 곳을 반견했다며 곤도가 끌고 간 곳은 작은 오뎅바였다. 앞쪽에 위치한 오뎅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오뎅이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곤도를 사이에두고 앉은 둘.

별말이 없는 둘을 보고 곤도는 둘의 머리를 양팔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또 무슨일로 싸운거냐? 응? 꽤 크게 싸운 모양인데?"


곤도에게 잡혀 그의 가슴팍 즈음에서 눈이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선을 피했다.


주문한 사케가 나오자 곤도는 둘을 놓아주고는 컵에 가득 술을 따랐다. 그리고 각자의 앞에 한잔씩 놓곤 말했다.


"자, 한잔 하고 풀어"


곤도 옆에 있는 히지카타가 자꾸 의식이되서 정말 미쳐버릴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것을 느껴올때마다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워 정신을 간신히 다잡았다.

 

술잔에 투명하게 비친 제 모습이 초라하고 추해 보이는지 소고는 술잔을 그대로 쥐곤 단숨에 털어넣었다.

 

 

"곤도씨. 저 오늘은 진짜로 몸이 별로라 먼저 가야겠어요"


잔을 내려 놓음과 동시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자 곤도가 자리에거 같이 일어섰다.


"소고-"


"진짜예요 따라오지 마세요 저 진짜 머리가 아파서.. 오늘은 둘이 드세요"


그는 곤도에게 안심하라는듯이 억지로 씨익 웃어보였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타에씨가 말야.... 그래도오 나르을 조금은 생각하는...게에.. 아닐까아..?"


"아.. 글쎄"


곤도는 어느덧 술에 취해 자꾸 했던말을 녹음기 마냥 반복하며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 근데에.. 니네 왜 싸웠어어?"


"몰라"


곤도의 말에 히지카타는 술을 한모금 들이켰다. 그날 따라 술이 더욱 씁쓸하게 입안을 적셔왔다.


싸운건...가? 아니지 내가 잘못한거지

생각해 보니 이렇게 크게 그 녀석이 화난적이 몇번 없었던것같았다. 항상 자신을 괴롭히는게 일상인 그 녀석인지라 싸우는게 일상이였다. 차라리 자신에게 와서 전보다 몇배 심하게 개지랄 개지랄을 떨어도 좋고, 전처럼 죽여버린다고 달라들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가서 미얀하다고 할까? 이 생각도 안해본건 아니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 미얀해, 잘못했어- 라는 말은 해본적이 없어서인지 그는 그런말을 하는 자신을 상상하곤 도리질을 쳤다. 그리고 그 녀석도 이런말을 듣고 싶어할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여기 사케한병이요~ 응?"


작은 술집에 요란하게 주문을 하며 들어오는 사내, 긴토키였다.


"이야, 이게 누구셔? 세금 도둑들이잖아? 근데 왜 둘만 있어? 오키타군은?"


긴토키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리곤 히지카타의 옆자리에 의자를 빼곤 털썩 앉았다.


"친한척 옆자리에 앉지마"

히지카타는 턱을 괴곤 능글맞게 웃는 그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좁은 가게인데 어쩌라고? 취한 주정뱅이 옆에 앉아서 오타에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거든? 오타에 이야기라면 이미 신파치에게 잔뜩 듣고 있어서 말이야"


긴토키는 주문한 사케를 한모금 마셨다.히지카타는 그를 볼때마다 뒷덜미에 있었던 자국이 계속 떠오르는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묻고싶었다. 그러나 무슨 대답을 들을지 조금은 무서워 물을수 없었다.


혼잣말을 하며 취해 주정을 부리던 곤도가 취해서 몸을 못가누고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탁자에 엎드려서 쿨쿨 잠에 들었다. 긴토키와 함께 있으니 괜시리 감정소비가 생긴다고 생각이 들어 그는 엎드려 잠들어 있는 곤도를 흔들어 깨웠다.

 


"그렇게 흔든다고 일어나겠어? 왜, 그때 오키타군 끌고 갈때처럼 끌고가지 그래?"


긴토키는 피식웃고 오뎅바에서 오뎅 하나를 꺼내 보란듯이 먹음직스럽게 한입 베어물었다.


그 말에 그는 곤도를 흔들어 깨우다 말고 긴토키의 앞에 섰다.


"술 먹으러 왔으면 시비걸지 말고 곱게 술이나 마셔"


"이게 시비건거야? 그냥 말한건데- 안그래 영감?"


긴토키는 앞에서 요리를 하고있는 주인장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노려보는 그에게 술 한잔을 따라 내밀었다.


"받아. 왜이렇게 죽일듯이 쳐다보시나?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겠어 이거, 아! 지금 신고하면 오키타군이 오려나?"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내민 잔을 귀찮다는듯이 옆으로 쳐냈다.

 

"..그 새끼 데리고 장난하지마"


"장난? 나 장난한적 없는데?"


긴토키는 사케잔에 술이 없음을 확인하고 사케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사케병은 너무 작아- 라고 작게 투덜거렸다.

 

 

"근신기간 동안 데리고 있어줘서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네 녀석이 연락 안한건 재수없었지만..."

 


히지카타는 뒤에 무슨말을 할듯 말듯 망설였다. 그리고 그의 그 망설임을 보고 긴토키는 그가 무얼 묻고 싶은것인지 눈치챘다.

 

"아아 너 봤구나?"

 

그는 술을 한잔 들이키곤 자신의 뒷목을 가리켰다. 그리곤 씨익 웃었다.

히지카타는 그런 그의 멱살을 쥐고 긴토키를 일으켜 세웠다.

 

"이 새끼가 진짜 죽을라고"


"아이고, 경찰이 사람죽이네 이거- 세상 참 말세야 말세, 걱정마 무슨상상을 하는지 알겠지만 그 이상은 없었으니까"


긴토키는 실실 웃으며 제 멱살을 쥐고 있는 히지카타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장난친것도 아니야"


"그게 장난이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눈 돌아가는건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한번 정도는 그냥 넘어가 달라고"


"이 자식이 진짜 뭐라는거야? 그 새끼 남자라고"


"알아, 근데말야 왜 니가 흥분하고 난리셔? 니가 그 녀석이랑 가까운건 알지만 누가 보면 너 걔 부모인줄 알겠다야, 우리 곧 자주 보게 될 건데 사이좋게 지내자고"


살기를 띄는 히지카타에게 웃기다는 듯이 얘기하곤 다 먹은 사케잔을 아쉽다는듯이 마지막 한방울까지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는 주인장에게 외상으로 달아놓으라는 짧은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생각했다. 남자인데 그를 좋아하는거냐 라고 긴토키에게 물어놓고 그를 데리고 장난치지 말라고 큰소리 쳤지만 그 녀석에게 억지로 키스했던 부분을 생각해보면 본인도 크게 다름이 없음을.

 

 

 

 

 

그 날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대원들이 떠드는 소리와는 다른 소란스러운 소리에 옆의 대원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늘 지붕수리하는 인부들이 왔다나봐요, 아무래도 사람이 많아서 좀 시끌벅적하네요"


오늘이였구나, 그는 그 말을 듣고 큰 관심없이 넘겼다.

 

현재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건 히지카타에 대한 문제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어이없으면서도 부정할수 없는 마음과, 자존심때문에 누구에게 털어놓을수도 없는 자신, 그리고 자신의 누나가 좋아했던 상대를 자신이 좋아하고 있다는데에서 오는 자기혐오가 그의 목을 거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소고는 히지카타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늦잠을 자면 그가 깨울까봐 어느때 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고, 회의도 나갔다. 필요한 정도의 말 정도만 간단히 했다. 그런 그의 태도를 의아하게 생각한 곤도가 또다시 무슨 일 이냐, 아직도 화해 안한거냐며 끈덕지게 물어왔지만 그 말에 그는 저 요즘 사춘기예요 라고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을 했다.

 

 

 

 

 

"찾았다!"


그 목소리에 올려다보니 지붕위에서 못과 망치, 목자재등등을 가득 들고 씨익 웃는 긴토키가 있었다.


"응? 형씨 여기서 뭐해요?"


"뭐하긴? 일하러 왔잖아"


"진짜 지붕수리 하러 온거예요?"


전에 얘기를 한적은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이 일을 하러 올줄은 몰랐기에 그는 놀란 표정으로 두눈을 깜빡였다. 뒤에선 신파치 역시 자재를 잔뜩 들곤 긴상- 이쪽으로 가야해요 라고 외쳤다.

 


"아, 가봐야겠네 좀 있다가봐!"


긴토키는 씨익 웃어보이곤 신파치가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해결사로써 신센구미와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해왔기에 다른 대원들도 온 긴토키를 알아보곤 적지않게 놀라했다.

 

"해결사 형씨, 근데 여기 진짜로 지붕수리 하러 온거예요?"


관리를 맡은 야마자키가 한창 지붕에 망치질을 하는 긴토키에게 물었다.


"왜?"


"아니 이런데에 이런일을 하러 올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이 없으니 별수있나, 내가 적당히 땡땡이 쳐도 좀 봐주라고"


"제가 그런것까지 어떻게 해요? 전 업체 윗사람하고만 얘기한다고요"


"예예 그러시겠지 그쪽은 갑이고 난 을도 아닌 한낱 인부에 불과하니까"


긴토키는 입을 삐쭉 내밀고 야마자키에게 투덜거렸다. 그리곤 망치질을 하다말고 아래를 흘깃 쳐다보았다.
일을 하러 갔는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희 일끝나면 몇시쯤 들어와?"


"교대시간 물어보시는거예요? 여섯시인데.. 왜요?"


"그냥 물어보지도 못하냐 이녀석아"

긴토키는 야마자키의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지붕공사 업체사장에게 호되게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붕공사일은 해가 떨어지면 할수없는 일이였기에 6시에 끝났다. 이 일을 맡은 공사업체 사장은 전에도 몇번 일한적이 있는 사장이였다. 보수가 꽤나 괜찮은지라 사람이 몰렸지만, 전에 몇번 안면을 터놓은지라 일을 하고 싶다고 찾아갔을때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5시반은 뒷정리를 시작하는 시간이였다. 그래서 모든 일하는걸 중단하고 정리에 들어간다. 털털한 성격의 그는 일을 하는것보다 그 뒷정리가 더 귀찮고 하기싫었다.


긴토키는 신파치에게 6시에 일이 끝나면 사무실에 들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돈도 있는데 저녁을 같이 먹자는 신파치의 말에 긴토키는 선약이 있다며 신파치의 등을 떠밀었다. 6시 반쯔음이 되자 한명한명 돌아오는 대원들을 보고 긴토키는 지붕을 타고 그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연갈색으로 빛나는 그를 겨우 발견하곤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소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위에 있는 그를 발견하곤 그쪽 지붕아래로 다가갔다.

 


"어? 형씨 왜 안갔어요?"


"너 기다렸지"


"저요? 절 왜?"


긴토키는 그 말에 지붕에서 그가 있는 아랫쪽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너 만나고 가려고- 나 밥사줘"


"...얼른들어가시죠"


그를 지나쳐 가려는 소고를 보고 긴토키는 후다닥 그를 앞질러섰다.


"야- 너무한다 너 나름 갑 아니야? 일하는 사람 밥 한번 못사줘?"

 

"제가 형씨를 고용한건 아니잖아요"

 

"음... 그런가? 그래 그럼 내가 사줄게!"

 

뭐야 이 어이없는 대답은? 소고는 긴토키를 수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돈은 있어요?"

 

"응 있어, 오늘 일당 받았잖아"

 

긴토키는 일당으로 받은 봉투의 입을 벌려 얼마나 줬나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한쪽눈을 찡긋감고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난 원래 그날 번건 그날 바로바로 써버리는 편이거든, 가자 가츠동먹을래?"


망설이는 그를 보곤 긴토키는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밥을 사준대도 망설이는 애가 있네? 내주위에 다 식충이들만 있는건가?"

 

너무 돈이 많이들어서 뷔페 같은 곳이 아니면 갈 염두도 안나는 카구라, 맨날 밥달라고 찾아오는 하세가와..

 

"가츠동 싫으면 다른거 먹을까? 라면먹으러 갈래? 아니면.."


"가요, 가"


소고는 긴토키를 급하게 잡아끌었다. 안갈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왜그러지? 나야 좋지만 그는 급히 잡아끄는 소고가 좋으면서도 뭔가 느낌이 이상해 그가 바라보던 쪽을 뒤돌아 보았다. 그곳엔 막 나왔는지 담배를 물고서 아직 불도 붙이지않은 히지카타가 서있었다. 별관심없이 긴토키는 고개를 돌렸다.

 

 

 

 

"왜이렇게 안먹어? 맛없어?"


"몇 입 먹지도 않은채 젓가락을 내려놓는 그를 보고 물었다.


"아뇨 그냥 입맛이 없어서 그래요"


"너 이렇게 안먹으면 키 안큰다?"


"잘 안먹어도 클사람은 다 크잖아요"


"아- 그건그렇지 나도 많이 굶지만 키 크잖아"


"굶는다는게 자랑입니까?"


"아니, 키 크다는게 자랑이지"


긴토키의 말에 억지로 웃어준다는 식으로 한번 웃고는 나가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요즘 고민있구나?"


가만히 표정을 관찰하던 긴토키가 말했다.


"없어요"


"너 되게 티나"


"아니라니까요"


"나랑 술마시자 원래 이러때 한잔하는게 젤 좋아"


응?응?하고 대답을 제촉하며 조르는 긴토키를 보고 마지못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것도 있었지만, 긴토키의 말투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어린애 같은 엉뚱한 면이 있어서 인지 웃으며 털털한 말투로 조르거나 말하면 긍적적으로 조금은 생각하게 되는것이였다. 소고는 그런 면이 그의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술 잘마셔? 너랑 간단히 먹은 적밖에 없던거 같다야, 대작할래?"


"술도 형씨가 사는거죠?"


"뭐? 야 너 정말 양심도 없다 밥 얻어먹었으면 술은 니가 사야되는거 아냐?"


"형씨가 먹자고 한거잖아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구나 아주?"


"저 원래 벼룩의 간 좋아해요 많이 있는 사람 뜯어서 뭐해요? 없는사람꺼 뜯어야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을 볼수 있거든요"


"그.. 그렇구나.. 우리 오토세 할멈네 집으로 갈까?"


긴토키의 당황하는 표정과 말투를 보고 소고는 그날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거기 싫은데요? 제가 아는데 갈거예요"


그리고 긴토키는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뭔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계속 옆에서 시덥지 않은 농담을 건네며 장난을 걸었다.

원래 표정이 그렇게 밝은 녀석은 아니였지만 누가 봐도 알수 있을정도로 표정이 어두워서 무엇이 그렇게 이 녀석을 어둡게 만들었을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어둡게 만들수 있다는건 밝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

전에 인터넷돌아다니다가 히지오키를 못파는 이유는 미츠바누님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글을 봤었는데 왜요...? 그게 더 미묘해서 좋은거 아닌가....(히지오키가 왜 안메이저요...ㅠㅠ)

 

 

 

 

 

 

 

 

 

 

 

 

 

 


"내려"

 


억지로 차에 태워서 데리고 온곳은 둔영이였다.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땡땡이 치다 잡힌거니 억지로 끌고 온것에 대해선 맘에 안들었지만 딱히 할말이 없었다.

그런데 데리고 온곳이 둔영이라니-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다시 히지카타는 손목을 거칠게 잡고 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안끌고가도 따라갈거니까 이것좀 놔!"


손목을 어찌나 세게 잡고 가는지 뼈가 아려왔다. 소고로써는 왜 그러는지 선뜻 이해가 가는 상황은 아니였다.


"야! 이거 놓으라고 읏.. 아프다고! 진짜아파! 이새끼야 "

 

 

누가 봐도 화가 나 보이는 히지카타와 그런 그에게 잡혀 끌려오는 그를 보곤 대원들도 간단히 목례만 하곤 슬슬 자리를 피했다.

 

걸음이 빨라서그런지 뒤에서 잡혀 끌려오는 소고의 발걸음이 자꾸 엉키어 몇번을 넘어질뻔한게 몇차례. 몇번을 저항했지만 그럴때마다 더욱 거세게 조여오는 손목이 끊어질듯 아파서, 그리고 뒷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의 분노가 그를 약간은 움츠리게 만들었다. 대원들이 아무도 없는 집무실로 끌고와서야 그는 잡고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이자식아 너 이거 보여?"

 


소고는 잡혀있던 팔목을 보여주며 다그치듯 물었다. 잡혔던 손목에 시퍼렇게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씨발 쪽팔리게 이게뭐야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쉬는 동안 뭐했어?"


"그거 물어보려고 여기에 이렇게 끌고 온 거야?"


"해결사 녀석이랑 뭐했어?"


화가 난 듯한 그의 목소리에 그는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제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일기라도 써서 가져다줬어야되는건가?"


히지카타는 그의 말에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소고 역시 지지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딴거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이런식으로 끌고온거냐고 묻잖아"


"그래 그럼 질문을 바꿔서, 이거 뭔데?"


히지카타는 가까이 다가와 뒷목의 데일밴드를 가리켰다.


"이거 키스마크아냐?"


"...?!"

 

그 사실을 알고 있을리 없는 소고는 놀란 표정으로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히지카타씨, 드디어 미친겁니까?"


"뭐?"


"아까부터 요시와라를 갔냐느니 뭐 어쩌느니 하는거 보니까- 왜? 나 발정난거같아보여요?"


"..."


"그리고 형씨랑 뭐했냐고 물어보는건 뭡니까? 쓰리썸이라도 했냐고 물어보지 그래?"


비아낭 거리는 그의 말투와 표정에 히지카타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지금 내가 너랑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본데.."


"전혀 그렇게 안보여요 근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화를 내니까 그렇지"


소고도 그가 화가 났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그런 그에게 맞춰주기도 싫었고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는 히지카타에게 너만 화난거 아냐, 나도 화났어. 라고 말하듯 대들었다.


소고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오기도하고 그 전에 그가 원하는 확실한 상황설명을 듣지 못해서 인지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았다. 증거보다 더 정확한 감이라는것이 사람에게는 있다고 하듯이 히지카타에게도 그런 비슷한것이 느껴졌다. 해결사 녀석이 이상해 라고

 

 

"진짜 이거 물어보려고 이렇게 끌고온거야? 진짜로? 이거완전 바람난 여자한테 다그치는것도 아니고 뭐야?"


소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손자국으로 멍든 손목을 한번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뭐야- 너 혹시 나한테 꼴리냐? 여자들한테 인기가 그렇게 많아도 다 떨쳐내길래 고자새낀가 했더니 그건

아니였나보네"

 

평소에도 저런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녀석이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더욱 열받게 하려 일부러 더욱 강하게 쓰고 있다는것 정도는 히지카타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머리로 알고있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는게 왜인지 본인도 알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그녀석의 의도대로 화가 점점 더 치밀어 오른 그는 소고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채곤 벽으로 강하게 밀쳤다.


"너 그입 닥쳐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부딪친 머리와 등이 아파서인지 소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곤 제 눈앞에 열받은 표정의 그를 보곤 피식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어? 진짠가보네 장난으로 한 말인데"


같이 지내면서 항상 싸우면서 지냈지만 오늘처럼 이녀석이 얄밉게 느껴진건 처음이였다.


"그래 존나 꼴린다"

 


그는 홧김에 벽에 몰아 붙인 그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생각치도 못한 히지카타의 행동에 소고는 당황했는지 아무저항도하지 못한채 그 순간 멍해지는것을 느꼈다. 도톰한 입술이 아랫입술에 닿아 축축하고 물컹한 것이 입안을 헤집어 오는걸 느꼈을때 옅은 담배향이 은은하게 퍼져왔다. 히지카타의 손이 그의 뒷머리를 가볍게 손가락에 엉켜올때 그는 그제야 이게 무슨일인가 하는 생각만 멍하게 들었다. 가까이 보이는 히지카타의 콧날과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을 본 순간 그는 그제서야 인지했다.

 

지금 설마 나 이새끼랑 키스하는건가?


둘의 타액이 겹쳐져 츄읍-츄읍 하는 끈덕진 마찰음이 둘만 있는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거칠게 몰아붙인것에 비하면 부드러운 키스에, 그리고 그가 쓰다듬는 머리카락이 간질간질하면서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늘게 뜨고 있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내려앉았다.

 

 

 

 

 

'토시로씨 옆에 있고 싶어요'


요즘 자꾸만 꿈에 나타나는 그 장면의 마지막 말이 갑자기 머리에 울리며 미츠바의 마지막이, 그리고 마지막 까지 그를 기다렸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의 앞에선 순한 양이 되는 소고였지만 그녀가 히지카타를 기다리는걸 느낄때마다 옆에서 괜한 승질을 내곤 했었다. 그런 소고에게 미츠바는 항상 옅은 미소로 답했다. 결국 마지막에도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해보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와서 히지카타를 원망하는건 아니지만 평생을 기다렸던 그 댓가가 결국 그거야. 바보같이

 

누나- 누나는 왜 이런자식을 좋아했어?

 

 

순간 갑자기 올라오는 강한 반감에 그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강하게 밀쳐냈다. 둘은 서로 약간의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덮쳐오는 역한 기운에 소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헛구역질을 해댔다. 괴로움에 가늘게 떨리는 그의 어깨를 보고 히지카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어.. 소..소고 너 괜찮.."

 


변명이지만 홧김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짓을 했다는게 그도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이 정도의 겪한 반응이 나올거라곤 생각도 못한 히지카타였기에 그런 그에게 급히 다가가 물었다. 히지카타가 조심스레 가늘게 떨리는 그의 어깨를 잡자 그는 그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곤 집무실을 뛰쳐나가선 화장실에 변기를 붙잡고 먹은것부터 시작해 누런 위액까지 고통스럽게 게워냈다.

화장실을 지나가던 다른 대원들이 그런 그를 발견하곤 어디 아프냐며 괜찮냐고 물어왔지만 소고는 거칠게 욕과 함께 그냥 빨리 꺼지라고 소리쳤다.


무슨일이냐고 중얼거리며 나오는 대원이 화장실 밖에 멍하니 서있는 히지카타를 발견하곤 다가와 오키타 대장, 어디 아픈거같아요 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런 대원에게 대충 어어 그래 하고 아무렇지 않은척 대답을 하곤 가보라며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그에게 다가갈수가 없었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왜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했는지, 왜 그런 짓을 해버렸는지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돌이킬수 없는 일에 다가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토시로씨 옆에 있고 싶어요'

 

자꾸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좀 진정이 됐는지 구역질이 멈추었다. 하지만 일어설 힘이 없어 일어서려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벽에 기대어 그대로 탈진해 흘러내리듯 한참을 앉아있었다.

 

히지카타 역시 그녀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것도. 그래서 그는 히지카타에게 접근해 왔던 다른 여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유우라는 그 존재가 거슬렸던 것이다. 동생인 자신이 봐도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그가 반할까봐 약간은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즈음이였다.

 


'대장, 아까 순한 표정지으니까 누님하고 굉장히 많이 닮았어요'

 


닮았다는 말은 그 대원이 아니고도 다른 사람에게도 많이 들었다. 부슈에 살때부터 시작해서 곤도도 그렇고 야마자키도 그렇고 대원들 뿐만이 아니라 그냥 같이 지나가기만 해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에 그는 항상 남매인데 닮는게 당연하잖아? 라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답했었다.

 

오해를 해서 화가났고 도발에 화가났다면 때렸어야지. 평소처럼 죽이려고 달라들었어야지

그 새끼 지금 나를 통해서 누나를 보고있는거야 그래서 나한테 키스한거야 더러운새끼

 


하지만 곧 키스 했을때의 그와 맞닿았던 입술이, 그가 쓰다듬었던 손길을 자꾸 생각하는 제 자신에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몸서리 쳤다. 그리고 그 순간 수만가지의 생각이 드는것이었다.

 

왜 나는 유우라는 여자랑 히지카타가 사귈까봐 무서웠을까? 평생 누나를 잊지 못했으면 좋겠어서?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자꾸 그 더러운 새끼가 막무가내로 해온 키스가 자꾸 생각나는걸까....

 

누나- 누나는 왜 이자식을 좋아했어..

 

 

 

 

 

 

 

 

"어라? 소고는?"


아침 회의 시간에 1번대에 소고 대신 앉아있는 부대장을 보고 곤도가 물었다.


"아.. 아프다고 회의는 못오겠다고 하시던데요?"


"아파? 어디가? 어이 토시, 그녀석 어디 아프냐?"


곤도가 부대장에게 말을 듣곤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항상 아침에 깨우는게 일이였기에 당연히 알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은것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 히지카타는 깨우러 가지 않았다.

안간게 아니라 못갔다고 말하는게 더 정확하겠지만.

 

나올때 열린 방문을 힐끗봤을때 언제나갔는지 모르게 소고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래? 너라면 알것같았는데 회의끝나고 한번 가봐야겠다"


회의엔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보고, 그리고 새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자료조사 등등 여러가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리고 기타 사항으로 부대의 지붕이 망가져 비가 오면 비가 새는 문제로 지붕 수리를 맡겨야 한다는 사소한 문제를 논의 했다.

 

 

그리고 그는 짜여진 조를 확인했다. 소고녀석은 오늘 1번대 카미야마와 순찰 이라.. 회의가 끝나고 그는 급히 소고와 같은 조로 짜여진 카미야마를 찾았다. 같이 있으면 그 녀석이 올거라 생각해 붙잡고 얘기라도 해볼 생각으로 카미야마를 불러 일부러 자질구레한

이야기로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소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장님 저 이만가봐야되는데요?"


"어.. 어어.. 근데 소고는? 같이 안가?"


"문자남기셨던데요? 데리러 오라고.. 병원가셨나봐요"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꺼내물며 알겠다고 가보라며 손짓했다.


아프긴, 뻔히 나 피하는거 보이는구만 그는 담배를 한모금 깊이 빨아들였다. 담배도 별로 안땡기는 날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털이에 문질러 꺼트렸다.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긴토키는 아침이라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옆에 놓인 시계를 확인했다. 5시 반? 신파치가 왔나 이런 이른시간에? 이런 꼭두새벽에?

그는 하품을 길게 하고는 귀찮은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문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냥 들어오지 뭔 문을 두드리고 그래 하암-"

 

귀찮은듯이 문을 열곤 눈을 비비곤 눈을 떴을때 그는 소스랏치게 놀랐다.


"역시 자고 있었네요"

 

생각치도 못한 시간에 생각치도 못한 사람의 등장으로 긴토키는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 몇신데 당연히 자고있지 하암-..이 새벽에 왠일이야?"


소고는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쇼파에 털썩 누웠다.


"나 여기서 좀 자다가 갈래요"


"응? 상관은 없는데.. 너 여기 왜왔는데?"


"그냥요 안돼요?"


"아니그건 아니지만.. 잘거면 방에가서 편히 자- 같이 잘래?"


긴토키가 아직 잠이 덜깼는지 눈을 부비면서 말했다.


"그러다 진짜 잠들면 완전 자버릴거같아요"


쇼파에 누워선 안대를 꺼내 쓰며 말했다.


긴토키는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안대를 살짝 위로 올리곤 말했다.


"그냥 편히 자, 내가 깨워줄게 좀 이따 신파치도 오니까 깨워줄꺼야"


긴토키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긴토키는 시계를 보곤 하품을 하며 아- 이런 이른시간에 일어나는게 말이되? 라고 중얼거렸다.

손을 잡아끄는 긴토키의 손길에 그는 별다른 저항은 하지않았다.


"또 잠 못잤어?"


긴토키가 그의 옆에 누워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며 잠에 취해 웅얼웅얼 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뭐.."


괜시리 대답을 잠시 망설이곤 옆에 누워있는 긴토키를 힐끗보았다. 피곤해서인지 이미 잠들어있는 그를 보곤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전에도 잠을 잘 자는 편은 아니였지만 요즘은 눈을 감으면 거대한 바다에 삼켜지듯 두려움이 몰아치는게 숨이 멎을 것같이 답답했다. 두려움 이라는것에 대한 존재를 크게 느껴본적이 별로 없는 그 였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어째서 그 꿈이 괴로운가? 질문이 또 하나 생겼다. 그리고 꿈속에서 미츠바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어째서 마주하기 힘든지 자꾸만 생각나는것이었다.

 

 

두 눈을 깜빡이며 텅 빈 천장의 벽지 따위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 또다시 머릿속은 풀지 못한 질문이 하나하나 되뇌여지며 시끄럽게 충돌하고 있었다.


"뭐야, 또 못자는거야?"

 

긴토키가 잠에서 깼는지 그를 보곤 웅얼거렸다. 그리곤 이마에 쓴 안대를 끌어내려 씌워주었다.


"신파치는.. 아마 9시반이나 10시쯤 오거든? 그때 깨워줄테니까 얼른자"


긴토키는 이불 속에서 그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니가 뒤척이니까.. 나도 깨잖아"


안대를 써서 보이진 않았지만 쌔액쌔액 하고 울리는 숨소리가 긴토키가 다시 잠들었음을 알려주었다. 소고는 그 손을 뿌리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잡은 손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랬을꺼야

 

 


 

 

"긴상 이제 깨워야 하는거 아니예요?"

 

"그러게 깨워야 되는데 너무 곤히 자서.."

 

...무슨소리지? 그는 중얼대는 사람소리에 안대를 벗어재꼈다. 눈앞에 보이는 약간 낯설은 공간에 순간 여기가 어디지? 하고

생각했다가 이내 새벽에 긴토키의 집에 찾아온 것을 기억해 내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시계의 바늘이 1시를 가리키고 있는것을 보곤 서둘러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엔 부재중전화 23통, 문자 36통. 전부 카미야마였다. 부대에서 나오면서 오늘 같이 나가는 사람을 확인하곤 카미야마에게 만날 장소를 따로 남긴것인데..


"어- 일어났어? 너무 잘자더라 너"

 

긴토키가 얼빠진 표정으로 한참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그를 무시하곤 카미야마에게 온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장님 저 도착했어요 어디세요?] 부터 시작해서

[연락좀 주세요 제발요] 주로 징징거리는 문자.

[부장님이 물어보시는데 저 뭐라고 해요?ㅜㅜ] 그 문자를 보곤 그는 잠깐 멈추었다. 다음 문자는 대충 얼버무렸다며 담에 맛있는거 사달라는 자질구레한 내용이였다. 그 문자를 보고 그는 약간 안심했다.

 

 


"너 잘때 핸드폰 무섭게 울리더라"


"열시쯤에 깨워준다면서요?"


"깨우긴했어- 근데 니가 안일어난거라니까? 어차피 땡땡이 칠거 아냐?"


그 말에 소고는 긴토키를 한번 노려보곤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평소 맨날 일 안하고 놀러다닌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별일없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괜히 히지카타에게 불려가거나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뭐 남탓 할 것도 없이 본인 잘못이니 그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카미야마에게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걸었다.

 


근처에 있었다며 곧 바로 긴토키의 집에 도착한 카미야마를 보고 소고가 긴토키와 신파치에게 인사를 하자 신파치가 소고와 카미야마를 붙잡았다.


"오키타씨, 벌써 가시게요? 점심 먹고가요 다 됐는데"


요리를 하다 왔는지 신파치가 앞치마를 두른채 그에게 다가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긴토키도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 먹고가

라고 인심쓰듯이 말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넷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신파치는 오랜만에 긴상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어서 요리를 열심히 해봤다며 많이 먹으라고 둘에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대장, 왜 여기 있었던 겁니까?"


"아.. 뭐.. 어쩌다보니.. 하하"


카미야마의 물음에 소고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일 끝나고 부장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던데요?"


"나?"


"네"


카미야마는 단답으로 짧게 대답하고는 곧 긴토키에게 말을 건넸다.


"아참 형씨 요즘 혹시 일 없으시면 저희 지붕수리 하는거 하시면 딱 좋을텐데~"


"응? 지붕수리? 우리 이미 맨날 지붕 수리 하고 다니거든?"


"아 그래요? 저희도 좀 일 많아서 큰데에 맡긴것 같던데 하시면 좋잖아요- 은근히 돈도 잘줄텐데"


"그래? 니네 어디에 맡겼는데?"

 


신센구미 내부라.. 사실 신센구미 관련 일이라면 죽어도 안한다고 난리를 쳤어야할 긴토키였지만 그 일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일'이라는 명목으로 맨날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은 소고와 카미야마가 가볍게 인사를 하곤 집을 떠나자 신파치가 긴토키에게 물었다.


"긴상, 별일이네요? 신센구미 관련 일이라면 죽어도 안하신다고 하시는거 아니예요?"


"파치야- 우리가 지금 일 가릴때야? 아니니까 그렇지!"


"음..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긴 있었군요 긴상.."


당연하지! 그는 쇼파에 누워선 어제 읽다만 점프를 다시 꺼내들어서 어디까지 읽었나 페이지를 확인했다.

그러고보니 그날 그렇게 간일에 대해선 물어보지도 못했네

 

 

 

 

 

 

 

 

 

 

 

 

 

 

 

 

 

 

 

 

 


"다음에 봐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환히 웃으며 긴토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 그래.."


뒤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았다. 우연으로도 자주 만나는 사이였으니 아예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건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나가는 그를 급하게 붙잡았다.


"데려다줄게"

 

"됐어요 무슨"


자신의 손을 가만히 밀쳐내며 말하는 그의 뒷모습을 본 그는 그의 뒷목에 남은 울긋한 자국을 보곤 소스랏치듯이 놀랐다.

아 몰랐는데... 그리곤 다시 그를 급박하게 붙잡았다.


"잠깐만 잠깐만!"

 

황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그를 보곤 소고는 이번엔 또 뭐냐고 물었다. 급하게 들어가서 가지고 나온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데일밴드였다.

 


"뭐예요?"


"아니 별거아닌데.. 뒤돌아봐"


수상쩍은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것을 느낀 긴토키는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며 괜시리 화를 냈다.


"그니까 너 방금보니까 다친곳이 있길래 잠깐 뒤 돌아봐"


"어디요?"


그는 뒷목에 울긋한 자국위에 데일밴드를 조심스레 붙여주었다. 소고는 긴토키가 붙여준 데일밴드쪽을 매만지며 하나도 안아픈데.. 하고 중얼거렸다.

 


"작은 상처야 작은- 일주일정도 있다가 떼면 되지 않을까?"


그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소고에게 그냥 씨익 웃어보였다.

 

"가자!"


그의 어깨를 감싸며 이끌었다.

 

 

 

 

그는 일부러 걸음을 천천히 했다.


바람도 크게 불지 않는 딱 적당한 날씨다. 밤이여도 서늘하지 않았고 그날따라 가늘게 떠있는 초승달이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날이다.

 

그러고보니 그를 처음에 만났던 날도 초승달이 유난히 눈에 박혔던 것이 생각났다.

 

 

"너 처음 만났을때도 초승달이였어"


"에? 그런걸 기억하고있어요?"


"그날 우연히 하늘을 봤거든"


"그 표현 참 시적이네요 형씨와는 안어울리게"


그 말에 긴토키는 작게 웃었다.


"나 만나러 또 올거지?"


"음.. 일있으면?"


"일없어도 와, 너랑나 절친한 친구잖아?"


그말에 소고는 미츠바에게 그렇게 소개 했던 일을 떠올렸다. 긴토키는 말을 이었다.


"AS끝내주지? 계속해줄게"


"딱히...."


"아닙죠 고객님, 나름 너 VIP야 니가 의뢰 젤 많이 했을걸? 이 정도 서비스는 해드려야지"


"형씨가 왠일이예요? 그리고 형씨 요즘 좀 이상해요"


"나? 내가 뭘?"


"우리들 싫어하는거 아니였어요?"


"우리들이라니? 아아 신센구미? 아직도 싫어하는데?"

 


"요즘 형씨가 저한테 너무 과한 친절을 베푸니까 약간 무섭다고요 이거, 나중에 왠지 엄청난 청구금액이 날아올것같은 불안함 같은거? 아무리 그러셔도 전 안넘어갑니다?"


"넌 친구니까!"


"친구같은 소리.."


"아아! 아니다 친구지만 너무 편해지는건 별로야 음.... 일단 내가 나이는 너보다 훨씬 많잖아?"

 

친구라고 편하게만 다가갔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있음을 생각해내고 긴토키는 급하게 말을 수정했다.


"나이많은게 자랑입니까?"


"응 자랑이야 여튼 너 안오면 내가 찾아갈거야"


"그럼 체포할거예요"


"체포당하면 너랑 취조실에서 얘기도 하고 그러려나? 난 초코파르페로 부탁해"


그 말에 소고는 소리내어 웃었다.


"형씨는 이런점이 재밌어서 좋아요"


"응?"


"근데 요즘 과한거 아녜요? 다른사람이 보면 형씨가 나 좋아하는줄알겠어"


재밌다는 듯이 웃는 그 모습을 보고 긴토키는 그저 아.. 그런거 아냐.. 이정도의 간단한 대답을 했다.


"소름끼치죠? 그러니까 작작해요 형씨도"


그 말에 긴토키는 아무대답도 하지 않았다.

 

장난식으로 말한것에 반응이 보이지 않자 그는 긴토키는 올려다 보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에 웃으며 형씨? 하고 되물었다. 그런 그를 보고 긴토키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다가 애써 웃어보였다.


사아아하고 바람에 부딪치는 나뭇잎의 마찰음이 그 순간 유난히 크게 들리었다.


"다왔네 난 갈게 또 보자"


먼저 뒤돌아서서 걷는 그의 뒷모습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그의 머리칼이 여운있게 느껴진 것인지 소고를 조금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한달만에 둔영에 도착한 그는 경비병들과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곤 바로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그는 조금은 놀랐다. 히지카타에게 전에 장난식으로 청소좀 해놓으라고 말한걸 정말로 실행해 놓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왠일이야? 그는 오랜만에 돌아온 본인의 공간에 새삼 한번 둘러보곤 침구위에 풀썩 몸을 눕혔다.

 


'나 만나러 또 올꺼지?'

'너 안오면 내가 찾아갈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긴토키의 새삼 진지한 표정이 자꾸 머리속에 맴돌아 괜시리 마음이 복잡했다.

 

소고는 긴토키의 그런 괴짜스러운 모습을 좋아했다.

시시껄렁한 농담도 그렇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그도 곧 잘 따랐다. 그 밖에 여러가지의 도움을 받은 일도 있었고, 실력도 있고 그리고.. 히지카타와의 닮은 면이 었다는것도 한 몫 했을것이다.

 

그에겐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는 아니여서 그런지 그냥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 넣은것 마냥 잔잔하게 울렸다. 사소하다고 생각한 그는 깊이 생각하진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잡았다. 그냥 사람이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는 그 순간이 지금이라고 단정했다.

 

 


문 밖에선 타박타박 하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히지카타인가? 또 일하다 이시간에 들어오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발걸음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내어 움직이던 발걸음이 멈추더니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누가 멋대로 들어오래?"

 

소고는 몸을 반쯤 일으키곤 히지카타를 쳐다보았다. 그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지 히지카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 내일올줄알았는데"


"아침에 못일어날것같아서요 근데 주인도 없는 방엔 왜온거야?"


"아니 그냥.."


"없어진거 있으면 히지카타씨가 가져간 겁니다? 나 책상위에 이만엔정도 두고 갔던거같은데..."


"잘 정리 됐나 확인하려고 그랬다 이녀석아!"


결국 머리를 한대 얻어맞고는 아픈지 머리를 매만지는 그를 보고 살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손치워 이녀석아"


그는 히지카타의 손을 쳐내며 노려보았다.


"너 없어서 심심했어"


"지금당장 꺼지라고 할땐 언제고? 그 다음엔 뭐? 걱정?"


"그.. 그거야 당연히 걱정하지! 네 녀석이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데!"


"돌아왔으니까 이제 더 사고치고 다닐거니까 기대하세요"


입이 댓자로 나와선 투덜투덜거렸다.


"얼른 잠이나 자- 내일 일어나야되니까"


문을 닫고 나가려는 히지카타에게 그는 닫히는 문을 손으로 저지했다.


"음.. 방청소 해달라는건 그냥 한말이였는데 진짜 해놔서 놀랐어요"


"...응?"

 

의외의 말에 히지카타는 놀란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니까.. 음.. 다음에도 부탁한다고요"


시선을 못마주치고 답지않게 말도 살짝 더듬으면서 말하는 그를 보곤 히지카타는 피식 웃었다.

그냥 고맙다고 하지 이 자식이

 

"아 그리고 나 뭐 먹고싶어요"

 

"응? 근데"

 

"라면끓여주라"

 

"너 내일 팅팅붓는다"

 

"괜찮아요 누가 나 자세히 보는사람도 없을거니까"

 

"그나저나 니가 끓여먹으면 되잖아,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둘다 있긴한데 귀찮으니까 좀 해주라 히지카타 이녀석아"

 


내가 미쳤어? 하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 히지카타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석의 손에 이끌려 부엌까지 이끌려 왔다는걸 알았다. 소고는 식탁에 앉아서 얼른해 히지카타- 하고 말하며 턱을 한손으로 괴곤 쳐다보고 있다.

저자식이 아주 나를 부려먹네 부려먹어


"라면은 건강에 안좋으니까 국수먹어"

 

"그거 만들기 귀찮은데"

 

"니가해? 나한테 만들으라고 시켰잖아 암튼 라면은 안돼"

 

"할줄은 알아요? 왠지 맛없을거같은데"

 

"사람시켜놓고 지금 그게 할말이야? 이녀석아"

 

"알았어- 빨리해 히지카타 빨리"

 

 

히지카타는 소고가 해달라는것을 투덜거리면서도 거의 다 해주는 편이다. 그리고 그걸 알고있기에 소고도 곧 잘 이용해먹었다. 물론 그런 부탁은 사소한 일일 경우 해당되는 내용이지만.

 

어느날은 무리한 일을 막무가내로 한참을 우겨댔을 때가 있었다. 뭐 사실 그 일도 괜한 고집이였지만, 절대 안된다는 히지카타의 단호함에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래 그럼 어쩔수없지- 하고 약간 유순한 말투를 사용해서 말하자 히지카타는 굉장히 당황해했었다. 결국 그때 소고는 자신의 고집대로 이루었지만, 히지카타가 갑자기 순순히 말을 들어준 그 이유를 후에 짐작했을때 그는 기분이 좋지않았다.


돌아갈때 그 모습을 옆에서 본 다른 대원중 하나가 말했다.

 

'대장, 아까 순한 표정지으니까 누님하고 굉장히 많이 닮으셨어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는 히지카타 앞에서 다시는 그런 표정을 보이지않았다. 자신을 통해 미츠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히지카타는 먹음직스럽게 김이 폴폴 나는 국수 한그릇을 앞에 내려놓았다.


"히지카타씨는 안먹어요?"

 

"난 생각없어 너 먹어"

 

젓가락으로 국수 한젓가락을 집어선 한입 먹고는 말했다.

 

"맛없어"

 

"너 내가 먹어서 맛있으면 죽어"

 

히지카타가 소고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들곤 몇가닥을 먹곤 말했다.

 

"완전 맛있거든 이거? 사먹는것보다 훨씬 낫거든?"

 

그의 말에 소고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같이 먹어"

 

"음.. 그럼 마요네즈 넣어서 먹을까?"

 

"됐어 그냥 꺼져"

 

"장난이고 너 먹어 난 생각없어"

 

그리곤 앞에 앉아서 그가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살쪘어"


그의 말에 한참 먹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좀 쪄도 되지 뭐? 그리고 사람 먹는데 앞에서 그딴 얘기할바엔 그냥 꺼지는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이 더 보기좋아"


"웃기지도 않네 진짜"


"진짜야"


"..."


그는 의외의 말에 먹는걸 잠시 멈추고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돼지야"


그럼 그렇지


"죽어 히지카타 이녀석아!"


먹다 말고 그렇게 또 부엌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게 된 건은 둘다 항상 있던 일이라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그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소고는 이런 순간이 나름 재미있었다. 한참을 투닥투닥 싸우다 히지카타가 소고의 볼을 가볍게 잡아 늘였다.


"이만 자자 내일 오랜만에 일하러 가잖아 너"


평소라면 더 대들었을 그였지만 그날 히지카타의 손길과 살짝 미소짓는 얼굴이 새삼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달까- 알수 없는 오묘함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어째서 자꾸 그녀석이 만진 볼 언저리가 자꾸 생각나는지 알수 없었다.

 

 

 

 

 

 

 

 

 

-

 

소고는 손바닥에 잡히는 단풍잎에 그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단풍잎?

하늘에 가득 떠있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밤이구나

주변을 둘러보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전에 살던 부슈의 집이라는것을 알았다. 어째서 그런곳에 자신이 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시골 특유의 으스스한 나무 그림자가 조용한 마찰음을 내며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볍게 들리는 말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인채 말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겼다.

 

 

 

"다같이 에도에 가서 군대를 만들거라는게 사실이예요?"


"누가그래?"


"소고가 어제 신이 나서 말했어요"


"바보같긴"


"저도.. 데려가 주세요"

 


이 말소리... 그는 말소리가 들리는 곳을 나무 뒤에서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미츠바와 히지카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많이 본... 많이 본듯한 장면이였다.

 

"전.. 소고의 부모와 같은걸요 그 애에겐 내가 있어야해요.. 그리고 나.. 모두와..."


아.. 이건.. 다시 보고싶지 않은 장면이다. 이미 겪었던 일인데도, 그는 더이상의 말을 듣고싶지 않았다. 뛰어나가서 말리고 싶은 그 한마디가 남아있었기에-

 

"토시로 씨와 함께 있고 싶어"


아...

 

 

 

 

 

 

 


"이녀석아- 일어나"

익숙한 목소리에 그는 벌떡 일어나 안대를 벗어제꼈다. 그를 깨운 히지카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꿈이였다지만 일어나자마자 그 녀석을 보자 갑자기 확 기분이 나빠진 그는 투덜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 근래 이틀 쭉 똑같은 꿈을 꾸었다. 같은 꿈을 연달아 꾸었다는게 그는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함이랄까

 


샤워 후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대충 닦아내곤 아직 꿈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일까 그는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대충 닦아내 머리카락에서 아직도 천천히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간지러웠다.유카타의 어깨부분이 살짝 젖어갈때 쯔음 히지카타가 열어놓은 방문 밖에서 그를 보곤 들어와 그의 덜 닦은 머리 위에 수건을 풀썩 얹었다.


"잠 덜깬거야? 이러고 있으면 감기걸린다"


꿈은 꿈일 뿐이니까- 이미 다 끝난 이야기고.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곤 그가 얹은 수건으로 마저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 냈다.

 

 

 

 


준비를 마치고 회의실로 향하려던 차에 그는 히지카타를 마주쳤다. 아침엔 원래 상태가 저기압이기도 하고 딱히 그 와중에 친한척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말없이 뒤돌아서 가려는 와중 히지카타가 그를 불렀다.

 

"목 뒤에 다쳤어?"


그는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말에 그제야 생각이나 데일밴드가 붙여진 뒷목 부근을 손가락으로 살짝 어루 만졌다.


"네 뭐.. 근데 가볍나봐요 아프진않아"


"봐봐"


"안아프다니까?"


히지카타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잡아 끌었다.


"방에 하나있으니까 그거로 붙여줄게"


"아 괜찮다니까"


"그럼 좀 봐봐 니가 뒤를 잡혀?"


"싸움같은건 안했는데.. 그냥 어쩌다 다쳤나봐요"


히지카타는 목 뒤에 붙어 있는 데일밴드를 떼어냈다. 그러자 소고가 물었다.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죠?


"..."


상처? 라기엔 이건.. 히지카타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그건 누가봐도 키스마크라고 생각할 자국이였기 때문이다. 그 자국을 보자마자 그는 머리를 새게 얻어맞은듯 머리가 띠잉 하고 울리는듯히 놀랐다.

왜그러냐고 묻는 그녀석의 말에 다시금 정신을 차린 그는 다시 그 자리에 밴드를 급히 붙여주었다.

 


"어.. 어어 좀 더 붙여야겠다야"


"흐음- 이상하네 여튼 먼저갑니다"


소고는 히지카타를 뒤로하고 먼저 회의실로 향했다. 히지카타는 그것을 보고 그리고 그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그 순간 수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왔다갔다 하는것을 느꼈다.


에이 그럴리가- 말도 안돼-

혹시 모르는거긴한데..

 

 

회의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무슨말을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땐 모두가 흩어지며 소소한 농담따윌하고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그 여자랑 해봤어?"


"무슨소릴 하시는거예요!"


"좋아하는 여자 있다며? 뭐야 설마 해보지도 못한거야?"


익숙한 음담패설. 히지카타가 본 곳에는 소고녀석이 다른 대원들을 놀리며 음담패설따위를 던지고 있었다.

그에 더불에 다른 대원들도 함께 옆에서 키득키득 웃으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대장, 너무 그러지마세요 차였데요"

 

"차여? 진짜? 그럼 입으로라도 한번 해달...아얏"

 

뒤에서 험악한 표정으로 서있는 히지카타를 보곤 다른 대원들은 재빠르게 도망치기 바빴고, 소고는 자신을 때린 히지카타를 노려보았다.

 


원래도 그런 말을 하면 찾아가서 혼내곤 했지만 아침에 본게 있어서 그런지 그날따라 히지카타는 더욱 예민한 상태였다. 심지어 저런 농담을 하는 녀석이였다- 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은 시장통마냥 시끄러운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따라와 이녀석아 너 오늘 나랑 같이 순찰이야"

 

 

 

 

 

"와 운전 오랜만이다 근데 저희는 어디쪽으로 갑니까?"

 

소고는 운전석에서 핸들을 매만지며 말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소고를 보는 그는 자꾸 그녀석의 목쪽으로 시선이 가는걸 멈출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게 주체되지 않았다.


"..그것도 안보고 왔어?"

 

"당연히 히지카타씨가 보고왔을거 아녜요?"

 

"안봤어 가서 보고와"

 

 

 

 


아 유치하다- 본인답지 않게 지금 괜한 일로 화풀이 한다는걸 히지카타도 알았지만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괜히 툴툴거렸다. 서로 말없이 있어도 어색한 사이는 아니였지만 오늘 따라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고는 히지카타를 한번 보더니 말을 꺼냈다.


"라디오 틀까요?"


"아니"


"그럼 음악?"


"닥치고 운전이나 해"

 

그의 표정이 굳어있는걸 보고 그는 말없이 라디오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시시한 사연따윌 소개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히지카타는 짜증이 확 밀려와 신경질적으로 전원버튼을 다시 눌렀다.

 


"싫다고 했잖아, 운전이나해"


"히지카타씨 그거 신경과민이예요 신경과민"


"닥쳐"

 


가볍게 대꾸 해주고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평소에 자주 티격태격하는 사이인건 맞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확 가라앉은 히지카타를 보고 소고도 의아했다. 무슨일 있냐고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 히지카타의 태도에 그 역시도 슬슬 짜증이 몰려오고 있었다.

 

 

"일 끝나고 오랜만에 사격할래요?"


"혼자해"


히지카타는 곁눈질로 소고를 한번 훑어 보더니 말을 이었다.

 

"쉬는 동안 뭐했어?"


"뭘하긴요 자숙하고 있었죠 얌전히"


"요시와라 갔었냐?"


"그런데가서 암퇘지들한테 내돈 퍼주는건 사양이거든요"


"그럼 공짜로 노셨나봐?"

 


소고는 그 말에 히지카타를 한번 쳐다보고는 브레이크를 신경질적으로 밟았다. 때문에 차는 귀가 찢어질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멈춰섰다. 히지카타는 그렇지 않아도 겹친 화가 그 탓에 더욱 열받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소고는 사실 그 정도의 농담이였다면 화를 내진 않았겠지만, 히지카타의 태도 그리고 비아낭대는 말투가 농담이 아니였기에 그를 더욱 열받게 만들었다.

 

 

"내가 너 운전 이런식으로 하지 말랬지"


히지카타의 낮게 깔린 저음을 듣는둥 마는둥 소고는 무전기를 꺼내들고 야마자키에게 연결했다.


"어- 야마자키 지금 우리 카부키쵸 d구역쯤이야 여기로좀 와"


"너 지금 뭐하는.."


"땡땡이 칠거야"


"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고는 차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부서질듯 무섭게 닫히는 차문과 함께 열려있는 창문틈으로 차키를 던져 넣곤 말했다.


"야마자키 불렀으니까 야마자키한테 운전하라고 하세요 부장님"

 

 

 

 

 


한참을 걷다 소고는 곧 후회했다. 내가 내릴게 아니라 그녀석에게 내리라고 할걸- 키 주지말고 그냥 가지고 올걸그랬나 어떻게 하면 더 열받게 할지 약간은 궁리하는 와중 경단집에 앉아서 경단과 단팥죽을 먹고 있는 긴토키를 발견했다.


"어? 형씨"


긴토키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 오키타군 제복입은 모습보니까 또 새롭네"


소고는 긴토키의 옆에 앉아 그가 먹으려고 놓아둔 4개짜리 경단을 집어 들었다.


"그렇죠? 형씨는 여기서 뭐해요? 일?"


노란 안전모를 쓰고 평소의 옷차림이 아닌 작업복같아 보이는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고 그가 물었다.


"오늘은 지붕 수리공이야 지금 신파치도 하고 있는데 나 땡땡이 치고있어"


"나도 땡땡이 치는중인데"


"이거봐! 우리 닮았지?"


긴토키의 말에 그는 그냥 피식웃었다. 그리곤 이내 긴토키가 데려다줄때의 상황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근데 넌 돌아가도 역시나 땡땡이 치고 있구나 어때? 가니까 좋아?"


"세상에 일하는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난 좋은데? 일좀 있었음 좋겠어 둔영에 일없어?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난 사소한것도 완전 오케이거든?"


"음.. 지금은 없는것 같은데 있으면 바로 의뢰할게요"


"너 지금 땡땡이 치는거면 나랑 같이 놀자"


긴토키는 소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이미 같이 놀고있잖아요?"

 

 

 

 

 

 

 


히지카타는 곧 바로 다시 연락을 취해 야마자키에게 오지 말라고 다시 일렀다. 하지만 그도 바로 일을 할 생각은 나지 않았기에 운전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신경과민이예요 신경과민'

 

갑자기 소고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나 지금 좀 피곤해서 예민해진건가봐

히지카타는 차에 있는 라디오 버튼을 눌렀다. 그냥 조금 쉴겸 라디오따위나 들으며 시간이라도 떼울 셈이였다. 조금만 듣다가 다시 일을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꾸 화를 내게 되는것 같아요. 관심없는 사람에겐 오히려 화를 내지 않게 되죠 보세

요 대표적으로 어머니들은 항상 자식들에게 화만 내시죠 하하

 

예를들어 관심없는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 그럴경우 그냥 조심해 빨리나아 등등 겉치레에 가까운 얘기를

하게 되지만 관심있는 사람일경우 어쩌다그랬어! 그러니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이렇게 화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화를 내기전에 3초정도 생각해 보고 말을 해보세요.

 

걱정해서 화를 내는거지만 상대는 그걸 서운하게 생각할수도 있지않겠어요?]

 

 

시시하다. 시덥잖은 라디오를 잠깐 듣다가 그는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는 당연히 꺼버렸다. 그런 감성팔이 식의 라디오는 들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후, 그는 순찰을 하다 긴토키와 함께 웃고있는 소고를 먼 발치에서 발견했다.

 

해결사녀석. 전에 의뢰일이 있고나서 연락을 다 피하고는 나중에 성의없이 문자가 달랑 한개 왔다.

[잘 된거잖아? 우리 서로 힘빼지말자고^ㅇ^]

어떻게 하면 그렇게 문자도 열받게 보내는지 그것도 재주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소고녀석은 모르는거같았는데.. 여자에 흥미도 없는애가 진짜 여자랑 놀았을것 같진 않은데..

그리고 저녀석은 왜 나한테 자기가 데리고 있다고 말도 안해준거야? 내가 뻔히 걱정이되서 그런다고도 말했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잠깐 지켜보던 그는 긴토키가 소고를 바라보는 눈빛, 손길을 보고 알수 없는 분노로 끓는걸 느꼈다.

그리곤 그 순간 화가나서 였는지 저 해결사 녀석, 혹시 쟤 좋아하는거 아냐? 하는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상상을 해버렸다. 저 목에 키스마크 남긴사람이 저새끼 아냐? 그리고 그 상상의 끝에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차에서 내려 그 둘에게 다가갔다.


다가온 그를 보고 긴토키도 소고도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소고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할때 그는 거칠게 그의 손목을 억지로 잡아 끌었다.

의아한 행동에 소고가 잡아 끌려 가면서 잠깐- 잠깐만, 하고 외쳤지만 그의 귀에는 웅웅 거리는 소리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를 그자리 그대로 앉아 날카로운 눈매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였다.

 

 

 

 

 

 

 

 

 

 

 

 

 

 

 

 

 

 

 

 

 

 

 

 

 

 

 

꽤 시간이 흘렀다.

긴토키는 여전히 히지카타에게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가끔 연락이 왔지만 그는 거의 안받거나 그저 몰라 못찾았어 라는 식의 성의 없는 대답으로만 일관할뿐이였다.

몰라 몰라 될데로 되라지뭐- 난 그냥 내가 하고싶은데로 할꺼야. 그는 고민을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니였기에 그렇게 생각하곤 이내 잊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항상 깨우러와서 옆에서 자곤했는데 오늘은 옆에도 아무도 없다. 너무 일찍일어났나? 그는 눈을 비비곤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진짜? 11시?


방문을 열고 밖에 나가자 아직 쇼파에서 자고 있는 긴토키를 발견하곤 다가갔다.

 


"형씨 지금 몇신줄알아요? 형씨가 좋아하는 그 아나운서 일기예보도 끝났다고요"


"..."


"이제 일어나야 하지않을까요? 11시인데"


"..."


추운듯 웅크리고 자는 그를 보곤 긴토키의 어깨를 잡곤 흔들었다. 그 바람에 살짝 실눈을 뜨더니 이내 다시 눈을 감는 긴토키를 보곤 11시라고요 11시! 라고 외치며 다시금 그의 몸을 흔들었다.


"나.. 좀... 아픈거같아"


또 장난인가? 해서 눈치를 살폈지만 긴토키의 상기된 얼굴과 약간 거친 호흡을 보곤 긴토키의 이마에 제 손을 얹었다. 어 진짜네 약간 높은 열이 손바닥에 서서히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계속 불편하게 자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밤과 새벽엔 확실히 기온이 떨어지는건 사실이니까- 약간 자신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은 미얀한 감정을 느꼈다.

 


"일어나요"

 

"아-.. 나 아프다니까.."

 

"들어가서 자요 여기 추우니까"

 

"그냥여기있을래.. 움직이기 싫어"

 

"형씨 계속 그러면 끌고갈겁니다?"

 

긴토키가 이불을 뒤집어 썻다가 그의 말을 듣더니 다시금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아 정말- 환자한테도 가차없네"

 

"덜 아픈거같은데요 뭐"


그는 긴토키의 뒷덜미를 잡아채선 그대로 질질 끌고 방에 밀어 넣었다. 아야야 긴토키는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침구에 힘없이 널부러졌다. 그리곤 이불을 다시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세상이 어질어질한게 핑핑 도는것 같은 기분이다. 열이 있는지 약간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다시 잠들었는지 조용한 그를 보곤 소고는 방문을 조용히 닫아주었다. 그는 아플때 사람을 간호해 본적이 없었다. 본인이 받은적은 있었어도 해본적은 없었기에 그런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약먹고 자면 나았던거같은데?

 

그는 기억을 되살려 약을 샀다. 감기약이랑 요즘 잠을 통 못자는탓에 가벼운 수면제까지- 그리고 죽을 먹었던거같아서 주위를 둘려봤지만 해결사 사무실 근처엔 죽같은걸 파는곳이 없어 다시 돌아왔다. 잠깐 약먹으려면 밥먹어야되는데- 설마 내가 해줘야 되는거?


그는 한숨을 푹 쉬곤 부엌에 들어갔다. 요리라.. 어릴땐 누나가 많이 해줬으니 해본적이 없고, 신센구미에 와서는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들이 있으니 해본적이 없었다. 해본 요리라면 누구나가 할수있는 계란 후라이나, 간단한 라면끓이기 정도?

죽... 끓여줘야겠지?

 

 

 

 

 

 

 

 

"형씨 잠깐 일어나봐요"


흔들어 깨우는 감각에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아.. 아직도 머리가 울리는게 감기가 제대로 걸린 모양이야
그는 지끈거리를 머리를 제손으로 짚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밥 먹어야죠 밥"


"응..? 아 밥.. 야 오늘은 그냥 대충먹... 응?"


그의 앞에 놓여진 그릇에 담겨있는 멀건 죽을 보고 긴토키는 놀라서 쳐다보았다.


"죽먹고 약 먹은다음 자는게 젤 좋다잖아요"


"니가 만든거야?"


"완전 고맙죠 형씨?"


"이야.. 아프니까 별일이다있네 니가 해준 요리도 먹고"


그는 그릇을 들고 멀건 하얀죽을 한번 그리고 약간 뿌듯해 하는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한숟갈 떠서 김이 폴폴 나는 죽을 두어번 입으로 후후 식힌후 한입 물었다.


"사실 별로 맛은없어요"


응 맛없다. 그는 한입 넣곤 바로 생각했다. 맛은 없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단 맛이 느껴져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아냐 괜찮아 달아서 좋은데? 나 단거 좋아하잖아"


그래, 아주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너 아니였으면 이렇게도 안먹어. 근데 니가 만든거니까 먹어주는거야. 이렇게 웃으면서-

 


"맛없다고 했으면 그릇에 얼굴 박아버렸을지도"

 


그 말에 긴토키는 그를 한번 째려봐주고는 다시 먹던걸 이었다. 그는 항상 먹던것처럼 먹음직스럽게 그릇에 담겨 있는 죽을 다 먹어 치웠다. 넌 안먹어? 긴토키가 묻자 소고는 아.. 난 환자가 아니니까 다른거 먹을거예요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니가 해놓고도 썩 먹기는싫지? 나니까 이렇게 먹어주는거다 긴토키는 나름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형씨 이거"


물과 약을 건네 받았다. 약 봉지와 물 한컵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온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먹어요 이거 먹고 자면 괜찮데요"


"아.. 고마워 사왔어?"


"뭐 바로 앞에 있으니까"


"나 걱정되서 사온거..아니야?"


"나 때문에 아팠다는 소리 듣기싫어서 사온겁니다"


그냥 걱정했다고 해주지 긴토키는 아픈와중에도 입을 쭈욱 빼곤 뒤돌아 누웠다.


"쉬어요 나 밖에 있을테니까"


"나 수건 차갑게 해서 머리에 얹어주거나 그런건 안해줄꺼야?"


....? 소고는 그말을 듣곤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픈사람 간호할때 그거 기본아냐? 나... 오늘 진짜 아프다고"


긴토키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최대한 불쌍한 듯한 표정, 말투로 말했다. 인간이란 아프다고 부탁하면 피도 눈물도 아닌사람이 아닌이상 굉장히 싸게 먹히는 존재라는걸 알기 때문이다.

 


"아플때 혼자있으면 진짜 서롭다는거 몰라? 그냥 옆에 있으면 안돼?"


그 말에 그는 곁눈질로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문을 닫곤 나가버렸다.


어라..역시 저..저저 나쁜새끼- 아플때 사람 서롭게 하면 두고두고 얼마나 생각나는줄알어? 넌 나 다 나으면 죽을줄알어

 

 

긴토키는 이불을 끌어올리곤 감기약에 첨가되어있는 수면제 때문인지 다시금 스르륵 잠에 들었다.

 

아파서인지 뭔가 기분나쁜 꿈을 꾸었다. 뭔가 이상한 괴물들에게 쫓기거나 갑자기 알수없는 무언가에 공격을 당해서 크게 다친다거나.. 그 꿈이 너무 생생해 그는 꿈속에서 숨이 막힐듯 괴로웠다. 꿈이 꿈인지 인지 하지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그 공포에 몸서릴때 쯔음

 

 

 


앗 차가워!

 


그는 눈을 번쩍떴다. 온몸에 기분나쁜 식은땀과 함께 자기 이마 위에 올려져있는 차가운 물수건- 그리고

거친 숨을 쉬는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그녀석까지

 


"놀래라-"


"아... 하아..뭐.. 뭐야?"


"뭐긴요 해달래서 해주잖아요"


"...안해줄것처럼 하더니"


"형씨는 왠지 두고두고 울궈먹을거같아서"


"응 그럴라고 했어"


그말에 소고는 작게 웃었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긴토키의 배 부근을 편한듯 베고 누웠다.


"아- 형씨 계속 누워있으니까 심심하긴하다"


"어이.. 나 환자라고.."


"오늘만 이렇게 아프고 낼부턴 나랑 다시 놀아줘요"


"빨리 나아요 뭐 이런식으로 말해주면 안돼?"


"더 아파도 상관없으니까 내일은 나랑 놀아줘 뭐 그런뜻인데요"


긴토키는 그냥 알았다는 듯이 자기 배를 베고 누워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가볍게 쓸어 내렸다. 덮은 이불 위로 느껴지는 약간의 무게감이 그는 마냥 좋았다. 손에 가볍게 엉키는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어질때 그가 말했다.

 


"만지지마요 누워있을때 머리만지면 졸린단말이야"


"자 그럼"


"감기 옮을거같아요"


"이정도로 안옮거든?"


"부대에선 병걸리면 바로 격리 시키는데"


"감기가 병이냐.."


"병이긴 병이죠 형씨 지금 누워있잖아요-"


"환자 취급이나 제대로 해주고 말하시지?"


".."


"야 자?"


".. 으음.. 아니..요.."


잠에 취해서 몽롱한 말투와 흐느러진 발음의 그의 목소릴 듣고 긴토키는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뭐야- 누가 환자야?

움직이고 싶은데 그가 누워있어서 깰까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는 그런 자신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냥 계속 이대로 있었으면- 니가 계속 내 옆에 이대로 있었으면-

 

따스함을 느끼며 조용히 눈꺼플을 닫았다. 아마.. 지금은 나도 악몽을 꾸지 않을거야

 

 

 

 

 

 

 

 

 

 

 

 

 


얼마전까진 히지카타는 정말 미친듯이 바빴다. 그 덕에 나름 찾아본다고 하지만 찾지도 못했고, 거의 생각도 못했다는 말이 맞을정도로 일에 시달렸다. 일은 제대로 해야만 했기에 그 책임감에 아무것도 못했다는게 맞다.


가끔 긴토키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답장은 거의 오지도 않고, 가끔오는 답장은 성의없기 짝이 없었다. 분명 또 연락을 보고 귀찮은듯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장을 했을 그를 생각하니 정말이지 다시는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을정도로 화가났다. 하지만 그 녀석만큼이나 편하게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는 일이 애석할 뿐이다.


복잡한 일이 해결되고 오랜만에 하는 순찰에 그는 새삼 순찰이 정말 좋다- 고 느꼈다. 짜증나는 일도 많지만 어쨋든 답답한 심정은 좀 풀어지기에 그러고 보니 그녀석 돌아오는 날도 얼마 안남았다. 그냥 해결사에게 의뢰 취소하고 혹시나 정말 혹시나 안 돌아오면 다시 의뢰할까-

 


순찰이 끝나고 그는 운전을 하는 야마자키에게 카부키쵸에 내려주고 먼저 가라고 일렀다. 야마자키는 알겠노라고 대답하고 차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담배가 떨어졌네

 

그는 차에서 내려선 근처 편의점에 들렸다. 늘 피던 담배를 구입한후, 해결사의 사무실 방향으로 길을 걷던 중 그는 걸어오던 어떤 사람과 크게 부딪쳤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던 터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 바람에 부딪친 사람이 쓰고 있던 갓이 벗겨져 떨어지고 말았다. 미얀한 마음에 그는 갓을 주워 같이 넘어진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아 죄송합니.."


"이 새끼야 앞 안보고다....녀...? 어..어어?"

 

 


그 갓의 주인- 그토록 찾던 그녀석이다.

 

 

 

그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이자식! 그는 찾았다는 기쁜마음과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화를 내려는 찰나 잽싸게 도망가려는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이거놔 이녀석아!"

 

 

역시 말버릇도 여전하네 버릇없는 말투 목소리, 자신의 손에 잡혀있는 그를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그는 끓어오르듯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실 화를 냈다면 그가 어이없이 니가 뭔데 지금 나한테 화를 내는거야? 라는 식의 반응으로 더욱 거세게 반항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화를 내지 않은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 하며 차분히 그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좀 하자"


"얘기는 무슨얘기?"


그가 히지카타의 말을 듣고는 도망치려던 몸부림을 잠깐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에 있었어?"


"...아 당연히.."

 


부슈.. 라고 말하기에 지금 마주친 이곳이 부슈와는 너무나 먼곳이기에 그는 뭐라고 해야할지 한참 망설였다.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어?"


"걱정?"


"어 걱정"


"...이럴땐 나도 사고 안치거든?"


"가자-"


"어딜?"


"밥먹으러- 안먹었지?"

 

약간은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보곤 막무가내로 팔목을 잡아 끌었다. 자꾸 주저하는 그를 보곤 히지카타는 물었다.

 


"밥 먹었어?"


"안먹었어! 근데 지금 그딴 이유가 아니잖아"


"그럼?"


"근신중이라 만나서도 안되는 사람을, 부장님이 어떤분이신데 부장님께서 이러시니 제가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비꼬는 말투와 반존대, 아 오랜만이다. 히지카타는 입가에 미소를 살짝 지었다.

 


"지금은 그냥 선후배 사이에 밥이나 먹자고, 너 내 선배잖아?"


그 말에 그녀석 눈이 토끼눈이 되어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물었다.


"히지카타씨 맞아요?"


"응"


"또 못난이 오타쿠 버전인가.."


"아니라고 이녀석아!"

 

 

 

 

 

 


결국 소고는 히지카타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뭐 먹고 싶은거 있어? 오늘은 니가 먹고싶은거 사줄게 라는 인심좋은 말에 소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마츠다이라가 기분 좋을때 가끔 데려가주는 비싼 스시집을 말했다. 그곳에 있는 초밥은 물론 맛있긴 했지만 도데체 무슨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하길래 이 가격이 나오나 하고 의문을 품을 만큼 비싼 곳이였다. 그래서 그는 마츠다이라가 그곳에서 밥을 먹자고 하면 굉장히 신나했다. 물론 그 이후에 오는 일거리는 충분히 힘든 일이였지만-

사실 당황해 하거나 장난하냐며 화내는 모습을 상상하고 말한 곳인데 그말을 들은 히지카타는 덤덤하게 알았다고 하며 가자고 이끌었다. 응? 이게 아닌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냥 해본 말이였다고 말하곤 몇번 갔었던 회전 초밥집에 가자고 말했다. 가서 비싼접시만 먹을거야 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어디있는데?"


맞다 아까 대답 못했었지- 그는 먹던 젖가락을 그저 쪽쪽 빨아댔다. 생각해보니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


"해결사 형씨랑 같이 있었어"


"해결사? 그 천연파마자식?"


응? 히지카타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였기 때문이다.


"응 어쩌다보니"


"아 그랬구나"


해결사 이자식...뭐하자는거야? 맨날 못찾았다고 해놓고는... 하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지금 그 녀석 이야기를 그닥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자식 왜 가만히 있지? 분명 만나면 나 죽인다고 난리 칠줄 알았는데.. 히지카타는 곁눈질로 옆에

앉아서 한입한입 먹는 그를 슬쩍 보았다.

 


"뭐, 밥먹는거 처음봐?"


"처음이겠어? 지겹게봤는데"


"보지마세요 닳아"


평소때와 다름없는 실없는 소리. 이번건 좀 오래갈줄 알았는데 벌써 풀린건가-


"만나면 죽인다고 난리칠줄알았는데 안그러네"


"그건 둔영돌아가서 할거니까 걱정마세요"


"아니..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히지카타는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지금 이렇게 얌전히 있는 녀석한테 괜시리 화난거 아니야? 라던가 그 전의 일을 말하면 난리가 날거같아 뭐라고 말을 꺼낼지 망설였다.


그리고 그런 히지카타를 보고 소고는 떠올렸다. 맞다 나 이녀석한테 화난 상태였었지? 하지만 축제때의 장면을 떠올리곤 인심쓰듯이 말했다.

 


"히지카타씨도 참, 나 완전 쿨한 남자거든요? 그딴거 뭐 기억도 안나요 남자가 되서 쪼잔하게 그런거 다 기억하고 있을줄알아요?"


응 너라면 기억하고도 남지- 특히 상대가 나라면 이라고 덧붙이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녀석에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그래

그래 하고 넘겼다.

 


"뭐야 오늘 왜이래요 히지카타씨 어색하게"


"내가 뭐"


"왜이렇게 순순해요? 곧 죽을때라도 된건가"


"너 돌아오면 또 맨날 싸울텐데 오늘 하루정돈 쉬어도 되잖아?"


"..아 역시 오늘 이상하단말이야- 히지카타씨 오늘컨셉 나쁘지않았어요, 이러니까 평소보다 좀 무섭긴 하네요"


"좀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말을 들을순 없는거야..?"

 

 

 

 

 

 

밥을 다 먹은후 히지카타는 해결사의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 말에 소고는 누굴 어린애로 아냐며 어이없어했다.

 


"너 미아될까봐 그런거 아니고, 길 모를까봐 그런거 아니거든?"


"그럼 얼른 꺼지시죠 부장님"


"그냥 내가 걷고 싶어서 그래- 가자"

 

히지카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자연스레 얹었다. 소고는 제 어깨에 얹은 손을 한번 보고는 히지카타를 살짝 올려다 보았다.


"왜?"


"니 녀석이 자꾸 이렇게 내 어깨에 손 올리니까 내가 키가 안크는거야"


"그거 키작은 사람들의 가장 어이없는 변명이야"


"나보다 몇센치 크지도 않으면서 있는척은"


"그래, 오늘은 절대로 아무말 안할테니까 그냥 막 말해라 막해"


히지카타는 담배 한대를 꺼내어 입에 물곤 한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내밷은 담배연기가 까만 하늘에 잠깐 뭉쳤다가 아스라이 흩어진다.

 


"담배 꺼 이녀석아"


"응?"


"아무말 안한다면서요? 얼른 꺼"

 


잘못말했다. 이녀석이 어떤녀석인지 뻔히 알면서 그는 밷어놓은 말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방금 꺼낸 한입 밖에 못핀 담배를 발바닥으로 비벼서 껐다. 씁- 한입만 더 피고 끌껄


"맞다. 나 아이스크림 사러 나왔었는데 아이스크림도 사주세요"


"그래.."


"그리고 곧 돌아가는데 생각해보니까 나 가기전에 방 엄청 난리 쳐놓고 나왔던거같은데 정리좀 해주세요"


"그래 해줄게"


"뭐야... 소름끼쳐 왜이래"


"왜 잘해줘도 지랄이야?!"


"내가 히지카타씨한테 잘해주면 뭔가 소름끼치지 않아요?"


그말에 히지카타는 순간 생각했다. 아니.. 난 니가 잘해주면 니가 왠일이야.. 라고 생각했던거같아 그래서

난 항상 너한테 속아넘어가는 바보라고 니가 놀리잖아!

 


"아니다 히지카타씨 맨날 내가 잘해주는척하면서 속이면 속았던거같은데, 그거 한두번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계속되면 그거 멍청한거 아닌가요?"

 

"니가 나쁜거지! 이녀석아!"

 

 

결국은 마지막에도 그 녀석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달까- 결국 되도 않는 말싸움을 하고 말았다. 아니 말싸움이랄까 그녀석 말에 넘어가 본인이 발끈한 거라고 봐야 맞겠다. 발끈한 히지카타의 모습에 소고는 재밌다는듯이 웃었다. 히지카타는 역시 그와 이런 관계가 피곤하면서도 떨어트릴수 없는 유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석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조금은 유별나잖아

 

 

해결사의 집앞에 도착해선 그가 사달라고 했던 아이스크림을 사서 안겨주었다. 그리고 간단히 인사했다.

곧 보자- 히지카타도 뜸들이는거 없이 그저 뒤돌아서 걸어갔고 소고는 꼭 살아서 봅시다- 라는 정말 여전히 어이없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기분좋게 걸음을 옮겼다. 본인이 왜 걱정을 했는지도 알수 없게 허무한 상황이였다. 그러고 보니 해결사 이자식은 나랑 도데체 뭐하자는거야? 히지카타는 뒤늦게 열이 뻗쳐 긴토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오시나"


들어가자마자 처음 들은 말이였다. 긴토키의 약간 열받은 표정에 소고는 건네받은 아이스크림을 긴토키에게 그대로 안겨주었다.


"자- 많이 사왔으니까 됐잖아요?"


"된게 아니라...아이스크림사러 가놓고 몇시간동안 안오면 난 무슨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겠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오나 라는 생각?"


"진짜 그 생각을 하고있겠냐.. 아 암튼 밥이나먹게 일로와"


"시간이 몇신데 아직도 안먹었어요? 저 밥 먹었어요"


"누구랑?"


"히지카타 만나서 같이 먹자길래 같이 먹었어요"


응? 히지카타? 그 마요라? 긴토키는 행동이 정지된듯 멈추었다.


"아.. 히지카타?"


그 순간 쇼파에 있던 핸드폰이 어느때보다 유난히 시끄럽게 울린다. 수신인란에 적힌 마요라 라는 이름으

로 저장된 이름이 선명하게 보이자 그는 핸드폰 배터리를 서둘러 분리해버렸다.


"전화 온거 아니예요? 또 집세 독촉받는거에요?"


"아.. 아니 스팸이야 스팸 광고전화 하하"


별 신경 안쓴다는듯 소고는 그냥 사왔던 아이스크림 중 포도맛 쭈쭈바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긴토키는 그런 그를 한번 보더니 물었다.


"히지카타가 어디있냐고 안물어봐?"


"아 그거 물어보더라고요"


"뭐라고 했어?"


"뭘 뭐라고 해요? 여기있다고 했죠"


"아.. 그래 언제가더라?"


"4일? 아니다 낼모레, 저 전날저녁에 갈거예요"


"아 그래? ...그래 귀찮은데 빨리 가버려라"

 

 

 

전부 다 맘에 안들었다. 그 날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왠일로 아이스크림 사오기 내기에서 그녀석이 졌기 때문이다. 가서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할때 까진 좋았다. 왜 하필이면 오늘 내가 이기고 난리냐 맨날 졌었는데 오겠지 오겠지 하고 기다린게 3시간- 오면 밥먹으려고 기다렸는데 심지어 밥도 먹었데 그리고 하필이면 히지카타를 만났어?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와 그녀석은 맨날 같이 다니는 사이인데 왜 둘이 만나는게 싫은지는 알수 없었다. 본인이 소고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것 쯤은 알았기에 여자도 아닌 히지카타를 만나는것 쯤은 사실 상관없는 것이다.


뭐 눈엔 뭐만보인다는건가- 그렇게 생각을 해도 기분이 찜찜하게 나쁜건 어쩔수 없었다.

 

다른 무언갈 먹고싶지도 않아 혼자 시위하는 마음으로 식빵과 밥을 식탁에 혼자 앉아서 우적우적 먹고 있자 쇼파에 앉아서 쭈쭈바를 빨면서 보던 소고가 긴토키 앞의 의자에 앉았다.


"형씨 식빵을 반찬으로 밥을 어떻게 먹어요?"


"남이사 뭘 먹던지 말던지 뭔 상관이야"


원래 이런 성격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말을 툭툭 내밷고 있었다. 소고는 약간 기분이 안좋은걸 눈치챘는지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쭈쭈바만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갈 주면 다시 받길 원한다. 정확히 1:1교환은 아니더라도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너도 이만큼은 해주겠지, 내가 이때 이렇게 했는데 너도 이때 이렇게 해주겠지 정도의 기대심은 약간은 품고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줄때 다시 받을것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긴토키도 잘 알고 있었다. 받는걸 기대하며 무언가를 주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고, 그만큼 괴로운건 본인이라는것도 잘 알기에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걸 기대하며 누군갈 도와준다거나, 그런적은 없었다.

 

근데 지금 왜 이녀석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불만을 토로 하고있는지- 사실 맘속에서 약간은 기대하고 있는것이다.

 

나는 너와 이렇게 있는거 둘만의 비밀이길 바랬고, 그래서 너도 나와같은 마음으로,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만 숨겨주길 바랬어

밥도 나랑 먹는다고 뿌리치고 와주길 바랬고, 나랑 최대한 오래 있고 싶은듯이 조금 더 있다 간다고 하길 바랬어


그리고 내가 좀 톡쏘듯이 기분안좋게 말하면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이녀석아

 

 

 

식빵을 반찬삼아 먹는게 사실 맛으로 먹는건 아니지만 더더욱 어떤 맛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생각없이 밥을 거의 먹어갈쯔음- 소고가 사왔던 딸기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어 앞에 내밀었다.


"디저트예요 딸기 좋아하잖아요"

 

 

내가 좋아한다고 딸기 사왔구나..
... 병신... 이거 하나에 또 기분 다 풀려서 실실 웃고있는 나란 새끼 진짜 병신.

 

 

 

 

 

 

 

 

 

 

한번 지독한 감기에 앓아 누운이후로 긴토키는 방안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자신이 나가서 잔다는 소고에게 이녀석아 니가 뭐 처음 남자랑 모텔간 여자야? 뭐 이리 비싸게 굴어? 그냥 같이 자는게 어때서? 라고 한마디 하자 바로 침구 하나를 더 꺼내어 옆에 깔았다. 그리곤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순진한여자로 취급되는것 보다는 썅년쪽이 더 낫네요

 


마침내 그가 가겠다고 말했던 저녁이 내일 저녁이다. 둘은 각각의 침구에서 천장을 보고 누웠다.

 

 

"내일 저녁에 간다고?"


"네"


"그러지말고 아침에 일찍가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요"


"내가 깨워줄게"


"형씨를 뭘믿고.. 아 맞다 약먹어야겠다"


그가 침구에서 일어나선 약을 찾았다. 그가 최근에 먹는약은 수면제였다. 수면제를 먹고 자는 그를 보고 긴토키는 옆에서 이런걸 뭐하러 먹냐고 한소리 했었다. 긴토키의 말에 그는 여기 있을때라도 푹 자려고요 가면 비상사태도 있어서 잘 못자거든요 라고 대꾸했다. 그 말이 괜히 안쓰럽게 느껴져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그 약이 효과가 있어 보이긴했다. 먹고 나면 곧 잠들곤 했으니까


물과 함께 약을 가볍게 넘기고는 다시 침구에 누웠다. 잘자요 하는 가벼운 인사 그리고 얼마 후 가벼운 숨소리가 방안에 간지럽게 퍼졌다.

 

"자?"


긴토키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자나 하고 한참 쳐다보는 와중 그가 긴토키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웠다.

등 돌리지마 정없어 보이잖아 긴토키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인건데

 

 


긴토키는 등을 돌리고있는 그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다시한번 속삭였다. 오키타군 자? 미동도 없는 그를 보자 약간은 욕심이 생겼달까 그의 귓볼을 입술만으로 가볍게 물었다. 이렇게 가깝게 있었던 적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혹여나 잠에서 깨어날까봐 두려운 것인지, 떨려서인지 긴토키의 심장이 소리가 들릴것처럼 미친듯이 뛰었다.


자는애 상대로 뭐하는거야 나- 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딱 오늘 하루만인데 오늘하루만 오늘이 마지막인데 라는 아쉬움이 그를 더욱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숨을 후욱 들이켰을때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정도로 좋은 향기에 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다. 머리카락에서 뒷목으로 미끄럼타듯 내려가는 자신의 입술이 그리고 그의 살결이 무척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뒷목으로 옮겨간 그의 입술이 조심스레 살점을 빨아들였다. 그리곤 깰까 무서워하면서도 그를 뒤에서 살며시 안았다. 이내 그가 뒤척여 긴토키에게 안긴 모양새가 되었을때 긴토키는 순간 놀라 손을 떼었다가 이내 그를 꼬옥 껴안았다.


잘자- 그는 그의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시간아 멈춰라..

 

 

 

 

 

 

 

 

 

 

 

 


 

 

 

 

 

 

 

 

 

 

 

 

사람은 누구나 승부욕이라는게 있다. 이겼을때의 그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거다. 정도에 따라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군가를 이기고나서 싫은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이겼다.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씨익 말려올라갔다.
그래, 어떻게 복수할까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저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네. 왠일이야? 히지카타 옆에서 긴토키는 저게 지금 무슨말이야? 하고 작게 물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제 그냥 가죠"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누르며 그는 긴토키를 잡아끌었다.


아- 이 기분. 이겼을때 이 기분. 오늘은 더 환상적인데?

 

 

 

 

"형씨- 사격 할줄 알아요? 사격할래요?"


"뭐 총잡고 쏘는건데 할줄은 알지 뭐 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사격하러 가요"


갑자기 조금 들뜬 그를 보고 긴토키는 조금 의아했지만 히지카타를 놀리는걸 좋아하는 소고였기 때문에 그저 돌아가서 놀릴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형씨 뭐 가지고 싶은거 있어요?"

그는 사격장에 진열된 상품을 쭉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다 장난감 뿐인데 뭐 가지고 싶은거 있겠냐.. 아! 저거! 저거 가지고싶어"


긴토키는 제법 비싸보이는 장난감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팔면 돈좀 되지 않을까?

 

"나 진짜 잘하거든요 이거, 진열되있는거 다 따줄수 있어요"


"니네 총도 쏘냐? 바주카포만 쏘는줄 알았더니만"


"기본적으로 간단히는 하죠"


"근데 잘해?"


"전에 히지카타랑 이걸로 내기한적 있거든요- 그때 둘다 잘 못했었는데 처음에 제가 졌어요"


"흐음"


"그날 이후로 그 자식 이기고 싶어서 밥먹고 한때 이거만 했어요"


"참나.. 그래서 이기긴했어?"


"바로 다음엔 이겼는데 그 다음부터는 비기는일이 많았어요 히지카타도 나 이기려고 엄청 열심히 연습하더라고요"


"이 세금도둑아- 밥먹고 사격만해?"


긴토키는 소고가 쓰고있는 갓이 앞부분을 손으로 툭 치면서 말했다.

그 바람에 조준하다가 잠시 멈칫할수밖에 없었다.


"왜요 이것도 나름 훈련이거든요?"

 


사격- 그러고보니 축제에 와서 사격을 같이 한적은 없었다. 에도에 와서 축제는 거의 일때문에 오는일이 많았고, 사격내기는 둘의 순찰중 돌아오던 어느날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사격장을 보고 시작됐다.

초반엔 상품을 다 쓸어갔었는데 나중엔 둘이 가자마자 주인의 표정이 굳는걸 보고 상품은 더 필요도 없으니 점수만 내겠다고 말하곤 이기겠다는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사격을 했다. 사격장주인은 이렇게 잘하는 사람도 처음보지만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는사람도 처음봤다고 말했다.

 

서로 한번씩 주고 받은 이후엔 거의 비겼었기에 그 결과가 맘에 안들어 괜히 시비를 걸었고 사격용 총으로 그 가게 안에서 총싸움을 한적이 종종있었다. 그 싸움을 보곤 주인이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라는말에 전혀 그런거 아닌데요 라고 말하며 씩씩거리면서 그 곳을 나가곤했다.


아- 오늘 같은 날 내기했다면 내가 한번쯤 져줄수도 있었을텐데

 

 

 

 

 

 

"오- 진짜 잘한다 새삼 니가 경찰같다야"


긴토키는 옆에서 그의 사격을 구경하면서 말했다. 자 여기- 소고는 긴토키에게 상품을 안겨주면서 거만하게 웃었다.


"아 역시 난 완벽하다니까"


"그래.. 근데 이거 좀 같이 들어줄래?"


부피 큰 인형따위가 너무 많아서 낑낑대고 들며 긴토키가 말했다.


"왜요? 그거 내가 주는 선물이예요 하나도 버리지말고 가져가요"


낑낑대는 모습이 재밌는지 그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아니 선물인건 정말 고마운데 같이 들어달라니까"


"본인이 받은 선물도 못들고 가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리곤 앞질러 가며 형씨- 우리 타코야키 먹어요~ 하곤 뛰어가는 그를 보곤 긴토키는 새삼느꼈다.

아 맞다 쟤 남 괴롭히는거 좋아했지

 


긴토키는 잠시 물건을 내려 놓고 벤치에 앉았다. 아이고 어깨.. 허리도 아프고 무거운건 아니였지만 그렇게 부피 큰 물건을 장시간 들고 있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인파도 많아서 그걸 안전하게 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풀어주는 와중 소고가 타코야키를 사가지고 그가 있는 벤치로 돌아왔다.


"네개 남았는데 난 이제 질려서요 형씨 이거 먹어요"


"...그냥 암말도 하지 말고 줬으면 더 눈물나게 고마웠을텐데 말이지"


"어차피 먹을거면서- 그냥 좋게좋게 드세요 형씨"


긴토키는 그런 소고를 한번 흘겨주곤 타코야키 하나를 입안에 넣었다. 역시 축제는 이런 군것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우물우물 씹었다. 약간의 싸구려 맛이 느껴지는 이 맛- 그래도 이게 축제의 군것질의 묘미라 생각하기에 먹음직스럽게 하나하나 입에 넣었다. 음료수를 사온다는 그에게 갔다오라고 손짓을 하곤 옆에 쌓여있는 인형따위를 쳐다보곤 피식웃었다.

 

이 나이먹고 이렇게 많은 장난감을 선물받은 적은 처음이다.

 

 

 

 

 


'아쉽다 나는 니가 싫진않았는데- 시간은 줄게 신센구미에서 나가'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아 그녀는 한참 그 옆의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인채 앉아있었다. 분명 모두가 즐거운 축제여서 시끌벅적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그 시끄러운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귓속에 웅웅 거리며 울릴 뿐이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호하게 나올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그리고 본인이 처음에 신센구미에 들어가기위해 만든 이유가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거라는것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왠 갓을 쓴 사내가 앞에 서있다. 누군가와 대화할 기분은 아니였지만 긍정의 의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안좋은 일이 있으신가봐?"


그리고 그 사내가 갓을 살짝 들어올려 얼굴이 비춰졌을때 그녀는 헉 소리가 나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키타 소고. 그리고 그 특유의 사악한 미소에 그녀는 놀라움과 무서움에 그를 한참 쳐다보았다.

 

 

"와 오랜만이다? 엄청난 우연이네"

 

그는 다 알고 왔지만 새삼 그녀를 보곤 쿡쿡 웃으며 말했다.


"아- 우연히 지나가다 아까 얘기 들었는데.. 너무 아쉽더라고 그래서 이몸이 직접 위로해줄까 해서"


"...."


"다시 둔영에서 너랑 마주치고 싶었는데"


그는 들고 있는 음료수 뚜껑을 느릿느릿 열었다.


"전에 니가 그런말 한적 있는거같은데- 흠 머라고 했었더라?"


그는 잘 기억이 안난다는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생각했다.


"아아- 나한테 뭐 히지카타를 좋아하냐 뭐 그런식으로 말했던거같은데"


그는 그 음료수를 들어 벤치에 앉아있는 그녀의 머리에 그대로 천천히 쏟아냈다. 얼굴사이로 끈적한 액체가 뚝뚝 떨어진다.

 


"글쎄 니가 한말을 따르자면- 히지카타는 너보다는 나를 좋아하나봐"

 


마저 다 쏟아내고는 빈 음료수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가 돌아갈때까지도 둔영에 있었으면 좋겠어"


"...."


"없으면 어쩔수 없지만"

 


이 말은 자기가 돌아가기 전에 빨리 나가라는 압박으로 들렸다.

 


"아 빨리 나가라는 압박아니야 나 진심이야"


그는 빈 음료수 통을 그녀가 앉은 벤치 옆에 얌전히 놓아주었다.


"먹을라고 샀는데 하나 더 사야겠네. 이 음료수 내가 너 사준거다?"


"...."


"힘내, 이래서 세상은 착하게 살으라는거야- 뭐 내가 할말은 아닌거같지만"


"...."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져 가는 그 뒷모습을 그녀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끈적이는 음료수가 뚝뚝 떨어지는 기분 나쁨. 그리고 축제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더욱 시끄럽게 들리는 순간이였다. 패배감이라는게 이런거 였구나 하고 인식되는 순간이였달까

 

 

 

 

 

그는 이겼다는 쾌감에 좋다못해 머리가 울릴정도로 행복했다. 아아 히지카타 니가 왠일이야 내 인생에 도움을 다 주고- 돌아가면 몇일쯤은 잘해줄까

 

"음료수는? 다 마시고 온거야?"


"아..맞다 뭐.. 다 마셨어요"


"치사하게 혼자만 마시고 오는거냐?"


"음료수 사러간다곤 했는데 준다는 말은 안했는데요?"


"아... 아니 보통사람들은 당연히 나처럼 생각하거덩..?"

 

 


집에 돌아가는길에 긴토키는 기분 좋아보이는 소고 때문에 그도 역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즐거운 마음뒤로 잊고 있었던 고민이 다시 슬그머니 떠올라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는 고민을 오래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닌지라 이내 잊고 그 녀석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쓸데없이 사람을 찾고 난리야? 그것도 왜 하필이면 나한테 부탁하냐고 고민하기 귀찮게-

 

 

 

하지만 그 고민이 3,4일이 지속되었을때 그는 고민을 털어놓으려 신파치를 찾아가기로 했다.

 

"어? 긴상 왠일이세요?"


"아니 그냥-"


"들어오세요"


신파치는 본인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방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츠우 포스터와 쌓여있는 음반들이 그의 생활은 여전하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전하네"


"그럼요! 사람이 변하겠어요?"


"아.. 그보다 내가 고민이있어"


"긴상이 고민이있다구요? 뭔데요"


마침 오타에가 가져다준 차를 긴토키의 앞에 내밀며 신파치가 물었다. 하지만 긴상의 고민이라고 해봤자 항상 엉뚱한 고민밖에 없었기에 신파치는 그렇게 놀라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뭐랄까.. 내가 장난감을 주웠는데 말야... 음.. 그게...아 뭐라고 해야하냐.."


"장난감이요? 뭔가 그 장난감도 정상이 아닌걸 주웠을거같은데요"


"아.. 뭐 확실히 정상은 아니지 흐음.."


그는 잠깐 고민을 하다 차를 한모금 마셨다.


"어차피 주인에게 돌려줄꺼야- 근데 그 주인이 막 잠깐 보여달라고 하고 막 난리를쳐! 근데 난 그러기 싫단말이야 어떡하지?"


"......?"


신파치는 이 인간 지금 무슨소릴 하는거야? 라는 표정으로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아... 아니 그니까"


"도데체 뭐길래 그럽니까? 분명 또 야시시한거죠?"


"아니 그런건 아닌데...."


"아니 본인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욕심을 내는거예요!!!"

 

원래 정상적인 고민같은걸 잘 해본적도 없는 긴토키인지라 신파치는 긴토키의 알수없는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몰아세웠다.
비유를 잘못했다- 아이고 머리야 그는 머리를 감싸쥐곤 한참 머리를 굴렸다. 그런 긴토키를 본 신파치는 말했다.

 


"지금 이딴걸 고민이라고 상담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온거예요?"


"아니다! 내가 너같은 떠다니는 안경한테 이런말을 하러온 내가 잘못이지!"


방문을 박차고 나가는 긴토키의 뒤에 신파치가 따라나가며 외쳤다.


"그딴거 고민하지말고 일이나 하란말이야!-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거예요?"


그니까 이 녀석아- 그것때문에 상담하러 온거였잖냐 긴토키는 울상을 지으며 뒤에서 외치는 신파치를 한번 노려보곤 불만가득한 발걸음으로 신파치의 집을 빠져나왔다.

 

 

 

 

 

 

 

 

 


몇일이나 연속으로 비가 내렸다. 긴토키도 소고도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간을 아무대도 나가지 않고 갇혀 있자니 답답하면서도 방안에서 조용히 듣는 빗소리를 이내 즐겼다.


"비올때 일하면 되게 짜증나는데- 이렇게 있으니까 좋긴좋네요"


쇼파에 누워선 쿠션을 꼬옥 끌어 안은채 그가 중얼거렸다.


"일 되게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얘기한다?"


"형씨 뭘 모르시나본데, 차라리 저 같이 대놓고 땡땡이 치는사람이 더 좋은사람이라는거 모르세요? 진짜 악질들은 열심히 하는척하면서 안하는 사람들이라니까?"


"뭐 그럴수도있겠네- 근데 대놓고 안하는게 지켜보는 쪽에선 더 열받긴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놓고 안하는거죠 열받으라고"


그렇지 히지카타가 나 보고 열받아 하는거 보려고-

 

원래 일하는걸 싫어했지만 그는 비오는날의 일은 더더욱 싫어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비오는날의 눅눅함과 행동에 제한이 생긴다는게 특히나 싫었다. 그냥 돌아다닐땐 갓을 쓰거나, 우산을 쓰기도 했지만 일할땐 우비를 자주 입었었는데 그 우비를 입었을때의 답답한 불쾌감을 특히나 싫어했다. 그래서 일부러 순찰하러 간다고 우겨서 차안에만 가만히 있는걸 선택했다.

 

하루는 히지카타와 순찰을 했었는데 비가 많이 왔다. 히지카타와 둘이 있을땐 직책이 낮은 그가 운전을 하는건 워낙 당연한거라 불만은 없었다. 와이퍼로도 빗물이 감당이 안되어 앞유리가 빗물로 얼룩져 앞유리가 불투명한 비닐을 통해 보는것 마냥 흐릿했다. 앞유리가 잘 보이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였다. 옆에서 내가할까? 하고 물어보는 히지카타의 말에 괜시리 열받아 그는 내가 더 잘하는데 왜? 하고 더욱 거칠게 운전을 하는 바람에 시내를 벗어나 외진곳으로 가버린데다, 옆에 있는 나무를 차마 보지 못하고 가벼운 사고가 났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헤드라이트가 깨지는 바람에 더이상은 운전은 위험했고 그렇다고 차안에 있는것 역시 안전하지 않기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잠시 동료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비안가져왔는데 저기까지 가려면 비맞고 가야되잖아 짜증나게'


'소고- 지금 이런 상황이 된게 누구때문인지는 아는거야?'


'당연히 히지카타씨 때문아닙니까? 애초에 날 자극하지 말았어야지'


'이자식 뒤집어 씌우는거봐? 난 뭐 말도 못해?'


'네 그냥 좀 닥치는쪽이 낫지 않을까요?'

 


그 말이 불씨가 되어 그 좁은 차안에서 한참을 싸우다 그가 먼저 차문을 박차고 나갔다. 카페까지 꽤나 걸었어야 했고, 비가 많이와서 조금만 맞아도 홀딱 젖는 상황이라 투덜거리며 걷는 와중, 뒤따라온 히지카타가 머리를 짓누르면서 본인 우비를 씌워주었다. 머리를 짓눌렀을때 또 싸움이라고 잠시 생각해 욱한 감정으로 뒤를 돌아보려다 본인 우비를 씌워주고 앞질러 뛰어가면서 걸어와라 먼저갈게- 하고 앞질러 뛰어 가는 모습을 보고 약간은 고마...운 감정을 느꼈달까-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선 기왕 줄꺼면 차안에서 주지 왜 비맞은 다음에 주냐며 괜히 투덜거렸다.


 

그가 항상 먹는 과일주스를 미리 시켜놨었어서 앉아서 주스를 빨대로 한두모금 마시다 힐끗 본 히지카타는 비에 다 홀딱 젖은 꼴이 분명 다른사람이였으면 물에 빠진 생쥐꼴로 굉장히 우스웠겠지만 그 모습이 조금은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저래서 여자들이 좋아하나보네 싫지만 약간은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인정하는 부분이 또 맘에 들지않아 비와서 추운데 왜 차가운 음료를 주문해놨냐며 시비를 붙였다. 그 말에 히지카타는 질렸다는듯이 넌 그렇게 나랑 싸우고싶은거냐? 작작좀해라- 라고 말하며 얼굴에 마저 묻은 빗물을 손으로 훔쳐주었다. 너 좋아하는 땡땡이 치고있잖아 지금? 이라는 말에 히지카타씨랑 있어서 싫어졌어요 라고 퉁명스럽게 받아쳤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음..

 

 

 

 

 

"오키타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그냥 빗소리 듣고있었어요"


"생각보다 소녀감성이네 그래"


"소리가 들려서 듣는데 감성은 무슨"


"아 그렇구나 빗소리보다 내 질문은 가치가 없었구나"


긴토키의 말에 소고는 약간 당황해 장난섞인 어조로 말했다.


"형씨 그런거 아니예요- 뭐라고 했었죠?"


"히지카타 보고싶어?"


긴토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놀랐고, 본인이 잠시 생각하던게 들킨것 같은 느낌에 더더욱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곤 긴토키를 쳐다보았다.


"대답해야됩니까? 나랑 히지카타 관계 몰라서 묻는거예요? 형씨?"


"에이- 아니까 물어보는..."


"절대 아닌데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리는 강한 부정에 긴토키는 작게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싫어?


"보기싫어 죽겠는데 곧 돌아가면 또 하루 왠종일 보고있어야 되잖아요 심지어 방도 옆방이라고요"


"그래?"


"그리고 다른사람이 보기엔 제가 괴롭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도 상당히 정신적으로 괴롭힘 당하고있거든요? 우리 부대 애들도 인정했다고요"


"걔네야 뭐, 니 기분 맞춰주느라 네네 그래요 그래요 그랬겠지뭐"


"아하 그런거구나- 그러고보니 안경이랑 차이나도 형씨 뒤에서 욕하고 그러던데 뭐 그런같은 맥락인가"


"뒤에서만? 난 앞으로도 자주 들어"


"아하-"


"참 니네 부대애들도 철없는 꼬맹이를 상관으로 모시고 있으면 얼마나 짜증나겠냐?"


"형씨같은 철없는 아저씨를 상관으로 모시고 있는 꼬맹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꼬박꼬박 대꾸하는 그의 대답에 긴토키는 바짝 다가와 앉았다. 소고는 그런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새삼 신파치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어"


"?"


"신파치가 아니고 니가 있었으면 내가 제대로 행동을 못했을거같아"


"지금도 제대로 행동 못하고있는건 마찬가지 아니예요?"


"너한테 하루종일 시달려있었을거같애"


"흠, 나 형씨한텐 나름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뭐, 여러가지 의미로"


긴토키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민망함과 어색함에 미간을 살짝 좁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할말이 있으면 마저해- 라는 뜻이였다.


"우리 닮지 않았어?"


"?"


"봐, 닮았어"


그는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눈동자색, 닮았잖아"

 

 


그 말에 순간 손잡고 자던 그 날의 잔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그는 반박할 말을 바로 찾지 못했다.

 

 


"...아..형씨도 빨간색이구나"

 

 


약간의 정적 후, 그가 내밷은 말이였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그런 말을 한것에 후회했다. 이건 누가 들어도 어색한티 팍팍나는 그런 대사잖아...

 

그가 마주쳤던 눈을 피하자 긴토키는 재밌다는듯이 웃었다.

 


"뭐야 이 반응은? 엄청 뭐라고 할줄알았는데 아하하하"


"형씨가 자꾸 그렇게 능글맞은 눈으로 쳐다보니까! 그 눈 진짜 맘에 안들거든요?"

 


긴토키가 한참을 웃다 그의 머리칼을 잔뜩 헤집어 놓았다. 그리곤 얼굴 옆선을 손끝으로 훑으며 말했다.

 


"나 너 이럴때마다 가지고 다니고 싶어"


그 말에 소고는 그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어"


"이건 또 무슨...."


"그리고, 나한테 잘해주는거라고? 하아.. 그런말하지마 긴상 기대한단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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