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35

2018. 10. 26. 15:19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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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갈게. 한 마디 했을 뿐이다. 내 말을 듣자마자 말 없이 전화기를 들고서 내 집 주변에 대원들의 배치를 명령하는 히지카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뭘 하느냐고 묻자 분명히 그 새끼는 널 만나러 올 거라며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상한 확신을 하며 내 옆에 6번대 대장을 함께 배치한 것이다. 무섭게 감이 좋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신뢰? 신뢰는 모래성과 같아서 쌓아올리기는 어렵지만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와 히지카타의 관계에는 신뢰라는 가벼운 단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장벽이 있다. 알지도 못하는 6번대 대장놈이 아무렇지 않게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말했지만, 말도 안된다. 히지카타가 지금 나도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나에게 조금 냉랭하게 대하고 있지만 나에겐 히지카타가 고개를 숙이게 하는 방법이야 아주 많다. ....물론 요즘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에도 먹히지 않으면 더 강하게 눌러서 널 죽여버릴거야. 죄책감 때문에 쿠리코 얼굴도 못 쳐다보게 만들어주지. 

......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항상 카무이와 누워 있던 이 집이었다. 달빛이 스며들던 이 창문에서는 이제 잔뜩 긴장되는 핏빛 붉은색의 경광등이 번쩍이며 침입하고, 늘 술을 사다가 마시던 편의점 앞부터 시작해서 집 밖은 지금 다들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다. 이 안에는 나를 조롱하며 탓하는 동료들.. 
이 6번대 대장놈의 말이 맞다. 내가 처음부터 그 새끼를 넘길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다른 때와 같이 편안하게 누워 있었을거야. 지금 이렇게 내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었겠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느꼈다. 이런걸 미련이라고 하는건가? 다시 이 녀석과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건 아니다. 이 녀석과 이렇게 끝내고 다시... 다시 히지카타와 둘의 생활로 돌아갈거야.


"나 잠시 나갔다올게"
"그래. 밖에 다른 놈들이 너무 조용한데 무슨 일 없는지도 한번 보고"

6번대 대장놈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집에 그만 가고 싶다며 계속해서 투덜투덜거린다. 아, 더는 못듣겠다. 도망치듯이 문을 열자 섬뜩한 고요함과 함께 시원한 바람, 그리고 역한 피비릿내가 훅 파고 들었다. 피비릿 냄새의 정체에 불길함을 느낀 나는 놀라서 허겁지겁 밖을 바라보았다. 감시하고 있던 모두가 다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한 두명이 아니었다. 복도에 쓰러져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착각이라도 하는 것 같은 검붉은 핏물. 고의적으로 뿌려놓은 것 같이 흐르고 있는 핏물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많은 사람들을 소리없이, 단시간에 이렇게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 한 명 뿐이었기 때문이다. 널부러진 시체들을 뛰어넘어 미친듯이 달렸다. 핏 물 때문에 철벅철벅하고 지저분한 소리가 난다. 집 밖에 깔려있던 그 많은 동료들도 모두 쓰려져 있는 채로 소름끼치게 고요했다.. 그 녀석은 언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시체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반짝 반짝 하고 얼굴을 비추는 붉은 경광등, 아래에 흐르는 시뻘건 피... 나를 만나러 온거야? 왜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만나려고 한거야? 놓쳤다는 아쉬움 보다는 복잡함이 앞섰다. 이렇게까지 해서 나를 보러 왔으면서 왜 그냥 갔을까?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뒤 늦게 밖에 나온 6번대 대장은 허겁지겁 나를 향해 달려와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다. 나는 말을 잊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나도 잘 모르겠다고 겨우 대답했다.
 

[전에 경찰이 추적하고 있었던 그 18살 소년에 대해 아직 성급한 확신이라며 천천히 수사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경찰의 입장에서도 어린 나이에 신센구미의 부국장을 납치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다고 보기엔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 걸까요? 다음 뉴스입니다.....]

"여기 전단입니다. 구역 정해졌습니다. 전단 붙이고 오라고 하십니다"
 

야마자키는 전단뭉치와 함께 우리에게 구역이 배정된 표를 건네주었다. 배정된 인원들과 함께 전단지 뭉치를 들고 나가면서, 익숙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카무이와 함께 히지카타를 찾는 전단을 붙이던 그 때.. 그 새끼,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꽤나 열심히 붙여줬었는데.. 답지 않게 지금 나 후회하는건가? 나와 함께 전단지 배포 구역을 담당하는 두명은 봉투를 뜯자마자, 대장 우리 얼른 이거 붙이고 가서 쉬죠. 대충 붙입시다. 하고 털털하게 말하면서 전단지 뭉치를 성의없이 주워들었다. 덤덤하게 전단지가 포장되어 있는 종이 포장을 뜯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넘겼던 사진.. 그 녀석의 웃는 모습이 있을 생각하니 같이 전단지를 붙여주던 카무이의 모습과 전단지에 들어있을 카무이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혼란스럽다. 자기 자신의 수배전단을 붙이면서 나를 위로해주는 그 녀석. 전단지에 있는 이 녀석이 진짜 이 녀석인가? 아니면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진짜인가? 전단지에서 이 녀석이 말하는 것만 같다. 내가 도와줄까? 도와줄까? 도와줄까? 괜찮아 곧 찾을 거야. 난 네 눈 앞에 있잖아. 카무이는 손을 내밀며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어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잡지도 못하고... 그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벽만 바라보면서, 허공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뜯은 봉투에서 꺼낸 전단에 있는 사진은 카무이가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의 아저씨... 어디에서 봤었지... 어디에서 봤었지... 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작년에 여러명을 납치 감금 및 살해 죄로 사형이 확정된 범인이었다. 심지어 죄명에는 그때 그 사건처럼 민간인 납치 감금 및 살해 죄 라고 쓰여져있었다. 이미 수배중인 이 녀석을 갑자기 왜.. 이 시점에서 수배하고 있는 거지? 카무이는 어떻게 된 거지? 배정된 양을 허겁지겁 붙이고 히지카타를 찾아갔다.
히지카타는 내가 올 줄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등장에 별로 놀라지 않았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히지카타가 앉은 책상으로 가서는 카무이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히지카타는 내 눈을 살짝 피하면서, 조금 있다가 회의가 시작될 거니까 그때 오라며 답했다.


"아니... 회의는 회의고... 내가 넘긴 놈이니까 그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왜 갑자기 대상이 바뀐거야?"
".....그니까 이따 회의에서 알려주겠다고 하잖아. 나가"
"그래. 나갈게. 내 핸드폰은 이제 줘"
"....아직 안돼"

히지카타와 내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지금 나한테 뭐 문제 있어?"
"...."
"내 핸드폰은 왜 가져가서 안 주는건데? 그리고 지금 네 태도도 그렇고.. 오늘 전단에 있는 그 범인도 그렇고.."
"회의 때 봐. 나가"

....죽여버리고 싶다. 왜 저러지? 신경질 적으로 문을 쾅 소리나게 닫고 나오자 두 명이 부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척을 하다가 나를 힐끗 바라본다. 분명 뭔가가 있다. 핸드폰도 그렇고.. 지금 나를 감시하는 듯 붙어있는 이 놈들도 그렇고.. 분위기가 이상하다.

"대장, 회의실로 가시죠"

이 둘은 다시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뭐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회의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깊숙히 의심했다면 조금 예상이라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둘이 어째서 나를 감시하는지 고민할 틈도 없이 회의실 앞에서 쿠리코를 마주쳐 버린 것이다. 히지카타에게 뭘 전해주려 왔는지 손엔 흰 종이가방을 들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은 당황한 듯이 발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태도에서 이대로 자신을 아는척 하지 말고 지나가달라고 사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일부러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고선 다가가, 비아낭거리며 말을 걸었다.

"하, 또 히지카타를 만나러 오셨나봐요? 구질구질하게 직장까지 쫓아와서는.."

나를 노려보며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으나, 쿠리코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나에게 등 돌리는 쿠리코의 어깨를 잡고선 다시 말했다.

"왜 무시하세요?"
"이 손 놔!!!.... 당신이랑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으니까 말 걸지 말아주세요"
 

그때 나를 쳐다보는 쿠리코의 눈빛이 공포에 가득 찬 것 같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건 당연하겠지만 쿠리코가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건 생각보다 짜릿하고 즐겁기도 했다.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어째서 내가 넘긴 놈을 제치고 다른 사람을 체포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잡히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진행하는 사건을 바꾼 것 같았다. 전단에 박아넣은 그 놈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고, 회의에 참석한 모든 대장들은 그 의견에 다른 의견없이 고분고분했다. 어째서 많은 동료가 죽어버린 카무이의 사건에 대해선 조금의 의문도 없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카무이를 쫓을 일은 없다는 것에 약간은 안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고민이 더 생겨버렸다. 내가 이 녀석과 이별의 방법으로 택한 방법이 실패해버렸으니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번에 연락을 끊은 것으로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연락을 할 이유는 없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럼 끝난건가?
"다음 회의 주제입니다. 그 전에..."
회의 진행자는 화면을 뒤로 넘겼다. 그 뒷 화면에는 현직 경찰의 범죄행위에 대한 행동강령인 국중법도를 띄워놓았다. 또 시작인가? 결국 이것에 대한 교육인거였던거야? 지루함을 느껴 길게 하품을 하며 책상에 털썩 엎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왔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타박타박 하는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낯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꼭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왠 사람 한명이 나와서 말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 대표라도 되나? 하는 생각에 다시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오키타 소고 입니다"
내 이름 언급에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인다. 벌떡 일어나서 보니, 그 여자는 바로 쿠리코였다. 아니 시발 사람이 몇번 시비 건 거 가지고 지금 여기까지 나와서 동정심 유발하는 거야? 나는 그대로 쿠리코를 향해서 조용히 말했다. 이럴 때 소리를 높이는 것은 추하기 때문에 여유있게 말하는게 남들 눈에도 좋게 비치는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금 당신은 아버지와 히지카타씨를 등에 업고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인데, 제가 아무리 많은 일을 저질러 봤지만 회의실까지 난입해서 이렇게 당당히 말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요. 쿠리코씨에게 제가 조금 건방 떨었던 거야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와서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치면 지금까지 저에게 불만 많은 다른 일반인들은 뭐가 됩니까?"
"지금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거 같은데요. 당신이 저에게 조금 건방 떨었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쿠리코는 꽤나 당당하면서도 화가 잔뜩 난 듯, 책상위에 비닐에 넣어져 있는 작은 물건을 내려놓았다. 회의실에선 정적이 흐르고, 그 작은 물건이 무엇인지 몰랐다.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코리코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죠"
쿠리코는 그 작은 물건을 손으로 들어서 보여주었다.
"이미 지문감식 끝났고, 당신 집에 있는 도청장치 압수했습니다. 이제야 무슨 일인지 실감이 좀 나시나요?"
.....뭐지?
"신센구미의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는 저희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최근까지 도청한 흔적까지 남아있습니다...! 뿐만아니라 히지카타씨가 없을 때 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붙여서 저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쿠리코는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쿠리코의 발언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회의실 안의 대장들과 대원들은 모두 웅성거리며 나를 돌아본다. 히..히히지카타는 어디에 있지? 내가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살피자 쿠리코는 눈물을 닦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히지카타씨를 등에 없고서 눈에 뵈는게 없는 건, 어느 쪽이죠?"
-
얼떨떨 한 상태에서 팔이 뒤로 포박된채 수갑이 채워지고, 취조실으로 끌려왔다. 어이없어. 히지카타 불러줘. 내 앞에 있는 대원에게 말했다. 그 대원은 내 말에 조금 움찔하면서 자.. 잠시만요.. 하고는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서류 뒤적거리지 말고 히지카타 부르라고..!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야 하는거 아냐?"
신경질적인 내 말투에 대원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장님은 10분 정도 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우선 질문을 하고 있으라고..."
씨발.. 하고 작게 말하자 눈치를 보며 지...질문할게요...! 하고는 질문을 시작했다.
"도청을 하신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 하십니까?"
"......"
"대답이 없으신 건.. 긍정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도청을 하게 되신 이유는...."
"....."
"혹시 쿠리코씨에 대한 스토킹..."
"..안닥쳐?"
"....하..하지만"
"닥쳐. 내가 누군줄 알면서도 이런식으로 나를 취조하는거야?"
아 씨발. 작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들킨거지? 절대로 확인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긴 5분 후에 침묵을 깨며 히지카타가 들어왔다. 같이 있던 대원은 벌떡 일어나며, 부장님! 저 이만 나가봐도 될까요? 하고 울먹거리며 묻는다. 히지카타는 귀찮다는 듯이 턱짓으로 나가는 쪽을 가리키고는 내 앞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히지카타는 내 눈을 애써 피하는듯 보였다. 주머니에서 내가 전에 내밀었던 사진을 책상 앞에 올려놓으며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같이 산다는 친구가 이 녀석이지?"
"...."
"그게 아니라면 전에 집에서 경찰들을 배치했을 때 집을 온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었고... 네 핸드폰에 연락도 없었으니.. 이 녀석이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집에 도청... 이라..."
"...히지카타.. 그러니까 나는...!"
"하루사메 7사단 단장과 함께 살며 부국장의 집을 도청...그 이후에 생긴 납치..."
"하루사메 단장? 무슨 소리야 나는...."
"모른다는 말은 하지마. 한 집에 같이 살면서 그 정도도 몰랐다는게 말이 안 된다는건 잘 알거야"
혼란스럽다. 하루사메 단장은 분명히 덩치 큰 갈색머리의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발끈해서 제대로 설명하라고 말했다. 히지카타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면서 다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카무이의 프로필이었는데 직업 칸 옆에 '하루사메 7사단 단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 그 동안 7사단에서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들과 함께 옆에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함께 쓰여 있었다. 클립으로 그 종이에 함께 붙어있던 사진에는 멀리서 몰래 찍은 듯한 카무이의 모습과 그 옆에 내가 7사단 단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그 덩치의 남자가 함께 이야기를 하는 모습, 그리고 단원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게 전투능력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 7사단의 단장이였을 줄이야.. 그러고보니 히지카타를 찾았다고 하면서 나에게 확신을 주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상하게 확신에 찬 말투, 그리고 혼자서 불안한 나. 그래서... 너는 그래서 확신에 차있었던거야. 네가 말 만하면 히지카타는 풀어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정신이 아득해지며 히지카타 납치 사건이 있었을 때가 떠올랐다. 같이 전단지를 붙여주면서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렇게 히지카타를 위해서 밤을 지세울때, 핸드폰을 붙잡고 난리를 칠 때, 매번 히지카타의 제보를 받고 갔다가 실망해서 돌아오는 나를 보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는 히지카타... 그리고 안에서 난리치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거야?
"...이..이거..."
"...모르는척 연기하지마"
"지..진짜 몰랐어...!"
"..다시 묻는다. 도청을 한 이유"
히지카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도청을 한 이유... 그걸 어떻게 내가 내 입으로 이야기 하겠는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 다음은 고문실이야. 적과 내통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 이걸 네가 모르진 않을거야"
"....네가.."
"..."
"네가 나를 고문할 수 있어?"
나는 히지카타를 보고 씨익 웃었다. 히지카타 네가 나를 이길 수는 없어. 
하지만 그건 단순한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히지카타는 내가 웃음을 얼굴에 띄우고 난 후 잠시의 침묵 후에 내 머리칼을 억세게 움켜쥐고는 자신을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왜 내가 너를 고문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거지?"
그리고는 바로 안에 있는 수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들고선 말했다. 들어와. 바로 고문실로 이송해. 쎈 척 하긴, 그래도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니까? 나는 끝까지 히지카타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는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꺼내어서 입에 물었다. 입에 문 저 담배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너는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밖에 없고, 풀리지 않는 의심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게 될거야. 히지카타, 결국 너는 나에게 끝까지 이길 수 없으니까.
끌려간 고문실은 으슬으슬 추웠다. 맨날 고문을 하는 입장에서 고문을 받는 입장으로 의자에 앉게 될 줄은 몰랐다. 대원들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앉혀놓고는 문을 닫고 나가선 그 앞에서 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근데, 사실일까? 아닌 것 같은데.. 부장님이 화나실 만도 하지.. 아무리 그래도 오키타대장인데.. 이럴줄은 몰랐다. 무슨 소리? 집을 도청해왔다는데?? 도청 때문에 더 그런시는거겠지... 게다가 부장님이 납치당하셨을때 마츠다씨에게 쿠리코씨가 도움을 요청하셨데. 집을 좀 찾아봐야겠다고 도와달라고. 원래 목적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유서나 단서를 찾으려고 하신건데 갑자기 저 도청장치가 나왔다더라.. 누군가가 뒤집어 씌운거 아닐까? 글쎄.. 그러기엔.. 증거가.... 갑자기 그들의 대화가 끊기고 히지카타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밖에 있던 대원들에게는 잠시 대기하라며 소리쳤다. 내 앞에 서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연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나도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정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쿠리코가 바람을 피고 있다며 증거를 모아온 것도 그렇고, 그걸 내가 돌아오자마자 보여주는 것도 그렇고"
"...."
"...도청을 한 이유는 뭐야"
"...."
"네가 입을 다물면 나는 이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어. 도청을 통해서 내 스케줄을 알아내고 7사단 단장과 작당을 해서 나를 납치한 후, 하루사메에 의뢰해서 찾게 한 다음 돈을 받아 챙겼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 그 이후 단장 녀석을 경찰 측에 넘기려 한 이유는... 세력 싸움인가?"
"..."
"대답해. 심지어 얼마 전 네 집을 지키고 서있던 모든 대원들이 죽어버린 일이 있었지. 그때 너와 이 녀석과 접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세워지던데.. 사실인가?"
"...아니야. 나 그런거 절대 아니야. 그 새끼가 단장인것도 몰랐어. 하루사메에 있는지도 몰랐고... 접점이라니 무슨 소리야! 바람쐬러 나갔을 뿐이고.. 나갔을 땐 이미 다들.... 정 그렇다면 하루사메를 뒤져봐. 내 기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 모두 죽어버려서 네가 밖에 나간 시간 동안 뭘 했는지 증명해줄 사람은 없어. 하루사메? 그래, 네 말대로 뒤졌어. 물론 네 정보는 없었지. 하지만 이 병원"
히지카타는 나에게 병원 진단서를 내밀었다. 날짜를 보니 히지카타가 납치된 상황에서 내가 자살을 하려 했을 때 카무이가 날 데리고 갔었던 병원이었던 것 같다. 보호자 이름 란에는 모르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병원은 하루사메가 주로 이용하는 곳이지. 심지어 이 보호자명을 사용하는 건 하루사메 밖에 없어. 왜 너의 진료기록이 여기에서 나오는 건지 설명해봐"
"...그건...상관없어. 그 녀석이 자신이 아는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을 뿐이라고!"
"....7사단의 단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병원까지 데려간다..? 도청을 한 이유.. 이야기해"
"...."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주지"
히지카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갑자기 내가 하루사메에서 심어 놓은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이런 황당한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도청을 한 진짜 이유를 말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본인 앞에서 네가 섹스는 하는지 궁금했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으며, 지속적으로 도청을 한 이유는 단지 너의 신음소리가 듣고 싶었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짧아진 담배를 발로 밟아서 끄며 히지카타는 다시 말했다.
"정리 끝났어?"
"..."
나는 히지카타를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그럼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지"
밖에서 대기하던 대원들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말없이 커다란 욕조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진심일까?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가 소름끼친다. 다. 물고문?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버틸 수 있을거야. 물이 넘실넘실 거리는 모습이 외부의 빛에 의해서 반짝반짝 거린다. 그 표면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히지카타는 내 뒷머리를 거칠게 잡고는 말했다.
"아직도 말 할 생각 없어?"
하, 이런 물러터진 놈. 그런 정신머리로 날 고문할 생각을 하다니.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웃는 내 입꼬리를 보며 약간 약이 올랐는지 거칠게 물 속으로 내 머리를 쑤셔넣었다. 차가운 물이 내 피부에 닿으며 귓 속에서 소리가 웅웅 하고 울린다. 몇 초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으려나? 전에 일분을 못버텼던 것 같은데 조금은 늘었으려나.. 아냐 히지카타는 그렇게 오랜 시간 나를 이 물 안에 담궈 놓을 수 있는 정신력이 없어. 당연히 그렇게 고통스럽기 전에 나를 빼내줄거야. 하지만 한계점이 왔을 때에 묶인 두 손으로 아무리 발버둥쳐도 히지카타는 나를 빼내주지 않았다. 발버둥 치는 나를 무자비하게 붙들고 점점 더 힘주어 내 머리칼을 눌러댔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소리를 지를 수 없어서 뻐끔거리는 입에선 수 많은 물방울만 뽀글뽀글 나올 뿐이다. 죽을 것 같아... 정말... 정말 죽을 것 같아....! 살려줘...! 히지카타, 내가 잘못했어 다 말할게 다 말할테니까 제발 꺼내줘 너 이렇게 나 죽일거야? 정말 다 말할게 정말이야.. 정말이야..... 히지카타 나 좀 살려줘...! 다 말할게. 그런거 아니야! 다 말할게! 희미한 정신만 간단히 잡고 있을때 히지카타는 나를 끄집어 냈다. 공기가 그렇게 달콤한 지 몰랐다. 뚝뚝 떨어지는 물,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히지카타는 다시 물었다. 대답은? 자.. 잠깐만...자..잠시만...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공기를 들여마시는데 급급하며 간신히 마시는 달콤한 공기의 쾌락에 몸을 떨었다.
"대답"
히지카타는 다시 단호하게 묻는다.
"헉...허억..하아...하아... 나...나는...ㅎ..하루...사메... 가 아니야... 오...오해..."
"그거 말고 도청한 이유"
"하악....하아... 하아.. 아..아냐... 나는... 그런...그런게..아...아냐"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히지카타는 다시 나를 물에 가까이 가져갔다. 아..아아....아..아니야..난.. 아니...... 다시 물에 담가지고.. 한참 후 다시 대답을 묻고, 그것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반쯤 탈진한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며 계속 연거푸 그 소리만을 했다. 모..몰랐...어.. 하아...하아... 미...믿어줘.. 하루사메...를 몰라... 정말...ㅈ..정말...아니야....내 풀린 눈을 보며 히지카타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원들에게 나를 의자에 앉히라고 명했다. 의자에 앉아서 추욱쳐진 채로 거칠게 숨만 몰아쉬는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도청한 이유"
"..... 아니야... 그런... 하루사메....같은...게..아냐.... 믿어줘..."
"그거 말고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나는 간신히 히지카타를 쳐다보며 계속 아니야.. 아니야... 하고 반복하다가 스르르 눈 앞이 까맣게 물들어버린다. 꿈이길 바랐을 것이다. 히지카타가 나를 정말로 고문을 할 줄은 몰랐기에.. 이렇게 모질게... 아니면 히지카타도 지금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나? 제발..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제발 자신을 확신시켜달라는 간절한 마음도 있을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하냐고...
무언가의 충격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로 깨어나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눈을 뜬 것은 다시 고문실이었다. 히지카타는 담배를 하나 피우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 있는 대원이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내 옷이 잔뜩 젖어 있는 걸 보니 찬 물을 부어 나를 깨운 모양이다. 
"도청한 이유를 말해"
"...."
내가 말이 없자 이번엔 다른 고문을 하려 하는지 대원 두 명이 책상을 하나 가지고 왔다. 뭘 하려는걸까? 아직도 정신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해서 반쯤 감긴 눈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고 있었다. 뒤로 묶은 수갑을 풀더니 한 손을 책상 위에 두고, 의자와 나를 사슬로 묶었다. 그리고 책상 위 에 있는 어떤 기계에 내 손을 올려놓고 기계에 팔을 단단히 묶었다. 새끼 손가락을 어떤 기계에 고정시켰는데, 그 정체를 알 수도 없이 몽롱한 상태였다.
"대답"
"....아..아니야...나는.. 아..아니.."
히지카타는 책상에 있는 그 기계의 손잡이 부분을 거칠게 당겼다. 순간 손가락 끝이 잘려나간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다. 손톱을 빼는 기계였던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 그리고 나는 무의식 상태에서도, 이렇게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도 소리지를 힘은 남아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덜덜 떨자 쇠사슬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짤랑짤랑 거렸다. 떨어져 나온 손톱과 손톱이 빠진 부분에 남아있는 살, 그리고 희미하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피가 보인다. 미세하게 몸을 떨면서 히지카타를 올려다 보았다. 히...히지카타...히...히지카타.......내가 힘겹게 이름을 부르자 히지카타는 다시 말했다. 대답해. 네가 결백하다는 증거. 그게 필요하니까 어서 도청한 이유를 말하라고...! 히...히지카타..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대답해..!!! 
내가 말이 없자 이번엔 다른 손가락을 기계에 끼운다.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이 흐른다. 나무 탁자 위에 내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이 툭툭 떨어진다. 아아아악! 요..용서해줘 마.. 말할게!! 말할게....! 하...하지마...! 말할게....! 히지카타는 나를 다시 보았다.
"...도...도청한 이유... 도청한 이유...그... 그니까... 그...그게... 시...시켰어. 그... 같이 사는.. 그 녀석이 시켰어...!"
"... 나를 납치하기 전 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 이후에도 도청을 시도한 이유는 뭐지?"
"....그...그...그게.. 나... 나도 모...몰라 나도...몰라"
"그럼 내가 납치 되었을 때도 알았다는 거네"
"...처...처음엔 모..몰랐어.. 지..진짜야.. 대원들에게.. 물어보면 잘 알거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게 설마.. 연기로 될 거라고는... 생각 못할 정도로... 열심히...."
"그 녀석이랑 같이 살게 된 이유는 뭐야. 경찰인 네가 그런 녀석과 같이 살게 된 이유"
"...가... 가족이야...! 네가 저..전에 찾았었던... 그....그 녀석.... 그..그녀석이야....그..그래서.. 그래서..."
"도청을 시켰을 때 순순히 응한 이유는 뭐지?"
".......그... 그건...."
"정말 스파이인가?"
"........아..아냐..스..스파이는 아냐....!"
"스파이는 아니지만 그 단장 녀석이 시키는 일에 순순히 응했고.. 하지만 납치사건의 범인이 단장이라는건 몰랐다..? 말이 안맞잖아. 어디부터 거짓말인거지? 다시 말해봐"
"지... 진짜....지...진짜야....! 미...믿어줘....."
히지카타는 내 말을 믿고 있지 않았다. 의심의 눈빛. 정말로 나를 스파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정황으로는 무엇하나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네 섹스 신음소리를 듣고 싶어서 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고문을 받고도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히지카타는 대원들에게 턱짓을 했고, 대원들은 우르르 몰려와선 나를 붙잡았다. 다시 시작되는 고문이라는걸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히...히지카타...! 아냐...! 진짜야.. 나... 저...정말이야...! 믿어줘...! 히지카타아아아....!! 무자비하게 손잡이가 당겨지고 손가락이 잘리는 듯한 고통...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아아아아아악...! 히지카타... 히...히지카타... 아아아아....! 미...믿어 달란 말이야아.....! 하악...하아...하아... 헉.. 헉.. 히..히지카타...히지...카타.. 히지카타.....히지카타...히지카타.. 살려줘... 나 정말로.. 정말로 아...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살려줘... 너무 아파.. 이거 진짜.. 너무 ...너무 아파... 나 아니야.. 미...믿어줘... 믿어줘... 하악... 하아... 미...믿어줘.. 아...아파... 그만해... 아파... 너무..너무 아파... 하악...하아...하악.......
히지카타는 신음하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대원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책상에 엎드려서 땀과 물에 범벅된 몸을 떨며 신음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제발... 사실을... 말해"
"...사...사실이야.. 정말.....정말이야 히....히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조용히 날 묶어두었던 사슬을 풀었다. 힘이 다 빠져서 신음하며 몸을 떠는 나를 보며 고개를 홱 돌린다. 언뜻 눈물이 보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참을 수 없는 손가락 끝의 고통의 뒤에서 조용히 웃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히지카타는 다시 대원들을 불러 나를 철창에 집어 넣게 했다. 담요 하나를 툭 던져주며 얌전히 있으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온 몸이 젖은 솜 처럼 무거웠다. 손톱이 뽑힌 왼손을 보며 벽에 기대 앉아 있다가 담요를 덮고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선잠에 빠져들었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어둡고 깊은 잠에 들었다. 영영깨지 않기를 잠시 기도하기도 했으나, 히지카타가 나에게 내게 언뜻 보인 눈물.. 그 눈물의 빛을 보니 다시 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빛이 나에겐 승리의 확신이었다.
잠시 눈을 떴을 때는 내 손을 만져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고문으로 지쳤기 때문에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조용히 번지는 담배향과 흐릿하게 보이는 이목구비를 보고선 히지카타라는 걸 알았다. 손톱이 뽑힌 내 손을 보고선 가만히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 모습에 울컥해서는 히지카타의 목을 감싸 안아버렸다. 당황한 히지카타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다시 잠이 들자 조용히 눕혀주고, 담요를 덮어주고는 나갔다. 역시 나는 이긴 것이다. 역시나 히지카타는 나에게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히지카타, 네가 나에게 이기려면 더 고문했어야해. 물에 더 처박았어야지. 진짜 죽일 작정으로 했었어야지. 손톱을 뽑으려면 2개가 아니라 내가 거품 물면서 소리 질러도 10개 다 뽑아버렸어야해. 내가 눈물을 보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계속 했어야 해. 잠도 재우지 말고 하루종일 고문했어야지. 다른 범죄자를 잡아서 고문 했을 때처럼. 네가 앞에만 서면 다 술술 불어버리는 그런 범죄자들.. 그럼 놈들처럼 나를 가차없이 대했어야지. 그렇게 나를 똑같이 했어야지. 괜히 귀신이 아니잖아? 하지만 너는 결국.. 내 뒤에 있는 누나 때문에... 결국은.. 누나 때문에... 나를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거야..... 그러니까 너는 평생 나를 이기지 못하는거야.... 결국 나한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될껄..
다음날 또 다시 고문실의 의자에 앉았다. 솔찍하게.. 조금 쫄린다. 눈은 치켜뜨고 있었지만 욱씬거리는 손끝의 고통, 그리고 물 안에서 발버둥치던 기억이 살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욕조에 가득 담겨 있는 물을 보자마자 갑자기 구역질이 나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히지카타는 내 앞에 와서는 다시 물었다.
"... 너.. 진짜로 그 녀석이 시킨거야?"
"그렇다고 어제 대답했잖아"
"...."
히지카타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전에 스파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고 있어?"
"...."
"왜... 왜그런거야"
"...믿어줘. 그런거... 아니야"
히지카타는 나를 묶었던 사슬을 풀었다. 순간 다시 물 고문이 시작되려나 하는 생각에 움찔했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바로 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나에게 툭 던졌다. 꽤나 많은 양의 지폐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다니지도 않는 녀석이 갑자기... 무슨 돈을 이렇게...
"난 네가 도망쳤다고 할거고... 우리의 부주의로 놓쳤다고 할거야. 바로 떠나"
"...어...어딜가라는거야...! 히지카타...!"
"여기 있으면 넌 사형아니면 최소 감옥에서 7년 이상은 썩어야 해. 내 위치에서 널 묵인할 순 없어"
"......히..히지카타... 왜... 날 못믿는거야?"
"...못믿게 만들잖아. 네가...!!"
히지카타는 답답하다는 듯이 나에게 소리지르고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지카타가 말하는 '내 위치'에는 신센구미의 부장이라는 위치도 있겠지만 쿠리코의 남편이라는 위치도 포함해서 말하는거겠지...
"내가 널 못 본척 한다고 하더라도, 쿠리코도, 마츠다이라 선생님도 너를 용서하지 않을거다. 뒷 문으로 조용히 떠나. 배치한 대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내가 벌어줄게."
".......히지카타....."
"그렇다고 착각하지마. 내가 널 용서하는 건 아니야.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크다는거.. 알아둬"
"..."
"잘 도망가. 다시 잡혀오면.... 그땐 정말로.. 사형이다"
"..히...히지카타..나... 내...내가 어..어디로..."
"네 통장에 있는 돈 다 찾아놨어.다른 사람 명의 카드에 넣어놨으니까 챙겨가"
히지카타는 통장과 주민등록증을 툭 던졌다.
"가.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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