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분명히 믿는다. 히지카타 역시 얼마나 많은 고민 후에 행동으로 옮겼는지는 내가 더 잘 알기 때문에.


도망쳤다. 히지카타가 나가서 대원들을 소집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히지카타가 건네준 돈과 통장을 냅다 들고서 최대한 멀리 가려고 뛰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히지카타가 나에게 나가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히지카타는 당연히 나를 옆에 두는 선택을 할 줄만 알았지, 나에게 도망가라고 할 줄은 정말로..예상 못했다.


우선 나를 감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할 법한 작은 시장으로 가서 대충 모자와 옷을 사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히지카타는 내 뒷모습만으로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나를 못 본 척 해줄 것이다. 아무리 나를 찾겠다고 했어도.. 부하들을 데리고 나를 쫓더라도 일부러 내가 가지 않을 법한 곳을 조사하도록 지시할 것을 나는 안다.

.... 정말로 그럴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쿠리코가 히지카타 옆으로 이동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맞닥트렸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지..?

정신이 아득했다.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이 오니 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건 카무이 한 사람 밖엔 없었다. 하지만 정말 카무이를 찾아가야 할까? 그건 그거대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자신의 정체를 그렇게 감쪽같이 속여 놓고, 내가 히지카타를 찾고 있을 적에... 

이 일을 지금 생각하면 뭘 하나..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되버렸는데.... 내가 그렇게 찾아 헤메이며 찾아놓은 히지카타는 결국... 결국 쿠리코의 옆자리에 가버린거고.. 히지카타를 찾던 나는 이제 히지카타에게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조용한 곳에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요시와라에 가서 술이나 마실까? 그러다가 잡히면 어쩌지? 잡히면... 아니, 그냥 자수할까?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단순하게 도망친다던가, 숨는다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나는 쫓는 사람이지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서 술을 마셔야겠다. 한창 술을 마시다가 잡히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지카타가 준 돈은 다 술값으로 탕진해버려야지. 잔뜩 술에 취해서 헛소리나 하고 있을 때, 신고를 받은 히지카타가 와서 날 쳐다보는거지. 탁자 위에 술병과 함께 자신이 준 봉투가 널부러져 있는거야. 자신이 준 돈을 술 값으로 전부 날렸다는데에서 오는 그 한심함에 잔뜩 찬 분노... 그 표정을 보고싶다. 자신이 준 돈으로 안전하게 숨어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 근처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허무하게, 헛소리나 하면서, 술 냄새 풍기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잡히면 얼마나 황당할까? 내가 온순하게 네 생각대로 살아줄 줄 알았어? 그렇게 더러울 정도로 성실하게 목숨 부지하면서 살아갈 줄 알았냐고. 


간판 조명이 깨끗하게 빛나는 것을 보니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나 보다. 딱 봐도 요시와라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어떤 술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도 몇 없었고, 귀 아플 정도로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밝혀져 있는 주황색 불빛이 은은한 게 마음에 든다. 히지카타가 준 두툼한 봉투를 얼핏 보니 거의 3~4백 정도는 넣어준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돈을 뺐을까? 쿠리코의 눈을 피해서 이런 돈을 빼내기도 힘들었을 텐데.... 마지막에 나에게 던졌던 통장이 생각난다. 그 새끼가 찾아서 넣었다는 내 돈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져서 통장을 열어보자 작은 메모가 하나 끼워 있었다.


'가끔 돈 보내줄게.'


... 그렇게 나를 보냈으면... 그렇게 나에게 말로라도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을 거면.. 이런 짓은 왜 하는데 이 씨발 새끼야. 이런 짓을 자꾸 하니까 내가... 내가.... 자꾸 기대하잖아. 차라리 나를 위해서 히지카타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줍잖은 친절이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몰아세운 게 아닌가... 그 메모를 꾸깃꾸깃하게 구겨서 던져버리려고 했지만 메모를 구겨 쥔 손을 펴서 버릴 용기가 없었다. 다시 그 구깃한 종이를 펴서, 익숙한 그 글씨체를 보면서 한참....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통장에 잘 끼워두었다. 


메뉴판을 들고 고민 없이 꽤나 비싼 양주를 겁 없이 시켰다. 전에 마츠다이라 선생이 한 잔 정도 인심 쓰며 줬던 적이 있는 그런 술이었다. 공들인 듯한 유리병과 날씬하게 빠진 유리잔, 그리고 얼음과 온더락 잔을 내밀며 어떻게 드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마츠다이라 선생은 한번 마셔보라며 이런 술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거라면서 스트레이트로 줬었지. 멋모르고 받아서는 겁 없이 원샷으로 마시자, 옆에서 히지카타가 애한테 이런 술을 그냥 주면 어떻게 하냐며 낄낄거리면서 웃는 마츠다이라 선생에게 화냈던 기억이 난다. 얼음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처음 마셔보는 끈적한 양주 때문에 켁켁 거리는 나를 보면서 히지카타는 온더락 잔에 물과 얼음을 채워서 줬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추억이나 생각을 하면 뭘 하나.. 스트레이트 잔에 양주를 잔뜩 따랐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영롱한 액체. 망설임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뜨겁다. 그리고 얼음을 하나 집어 먹었다. 안주는 필요 없냐는 직원의 질문에 필요 없다고 대답하고선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연거푸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띵하고 울린다. 앞에 있는 바텐더에게 근처에 있는 호텔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바텐더는 그렇게 좋은 곳을 찾지 않으신다면.. 하고 고민하며 어떤 호텔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와서 거닐었던 그 거리는 번쩍번쩍하고 시끄러웠다. 바닥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 찍힌 화려한 전단지가 잔뜩 깔려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범죄자로 알고 있는데, 범죄자들은 잠이 없나? 요시와라의 길목을 걸으며 느낀 점이었다. 시간이 몇 시인데 다들 뛰어나와서는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고 말야. 밤에 싸우랴, 술 마시랴 나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이 물에 떨군 잉크처럼 흐릿하게 번진다. 눈앞이 흐릿흐릿했다. 양주 한 병을 안주도 없이 들이켜서 그런지 귀도 먹먹한 것 같았다. 바텐더가 추천한 호텔은 '사색' 이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는데, 말만 호텔이지 오래되어 보였다. 내 행색이 돈이 없어 보였나 보다. 어떤 곳도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숙박비를 계산하며 물었다.


사색이 뭘 뜻하는거죠? 죽은 사람의 얼굴 빛인가?


농담한 건데 알바생인지 주인인지는 말이 없었다.


에이, 농담이에요~ 왜 정색을 하고 그래?


그 주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차갑게 열쇠를 툭 던져주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방 키에 달린 번호를 보자 내가 묵을 숙소는 3층의 모퉁이었다. 호텔 복도 바닥은 검붉은색 싸구려 카펫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얼룩이 있는 걸 보아하니 청결하진 않은 모양이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방안의 색상을 붉은색, 보라색, 갈색 등등 조금은 따스한 느낌을 주는 색상들이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들어가서 잠시 침대에 앉아 있을 때, 프론트에서 전화를 했는지 호텔방 안의 전화가 울렸다.


[요시와라 특성상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겠냐마는, 그래도 조용히 있어주세요. 저희도 피곤하니까]

내가 뭐 애새끼도 아닌데 층간 소음 걱정하시는 건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있어달라는 뜻입니다 당신, 얼마 전까지 경찰이었던 오키타 소고 아니야?]

.....날 신고하시겠다?

[아뇨 안 하겠다고 했어요. 경찰이 들이닥치면 저희도 피해가 크다고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감히 네가 뭔데 나를 협박해? 내가 누군 줄 알고.. 내가 누구인 줄 알아? 내가 바로..... 신세구미에.... 아, 이젠 아니구나...


앞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보니 판매용인 맥주와 양주가 몇 개 들어있었다. 다 꺼내서 병 채로 들고서 그대로 들이부었다. 자고 싶다. 내일은 카무이 녀석을 한 번 찾아볼까? 이 새끼는 분명히 나를 보고 싶어 할 텐데.... 


확신했던 이별도 결국은 상대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져야 할 이 녀석이, 지금의 나에게는 약간은 찾고 싶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히지카타도 처음엔 내가 반드시 옆에 두고 있어야 할 사람이었겠지. 지금은 이렇게 버렸어도.. 옆에서 같이 잠드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쿠리코가 되어버린 것도.... 


무작정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다. 절대로 취한 상태는 아니다.


[네. 뭐 필요한 거라도...]

내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지금 협박질을 했다 이거지? 

[...많이 취하신 거 같은데 그만 주무시....]

아, 됐고. 하루사메 7사단 단장으을... 만나고 싶은데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손님, 저희는 그런 건...]

여기서 장사 하루 이틀 해!? 하다못해 그놈들이 가끔은 찾아올 거 아니야!! 그게 언제냐고...!!!

[.....]


프론트는 말이 없다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씨발 지금 내가 경찰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거야? 내가 경찰으로서 조사하러 가면 살살 기면서 난리 쳤을 새끼들이.. 들고 있던 술 병을 바닥에 던졌다. 와장창하고 멋있게 깨져야 할 병이 호텔 바닥의 카펫 때문에 깨지지 않고 그만 데구르르 굴러다니는 것이다. 하, 시발 아무것도 마음대로 안된다니까? 역시 내가 내 직위를 잃어버려서 그런 건가?....

방안이 너무 고요해서 티비를 틀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티비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이 방 안을 잔뜩 비추었다. 티비에는 익숙한 모습의 히지카타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 시민 여러분들께 심려 끼쳐 드린 부분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스파이가 내부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대중들은 현재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최대의 공적을 올리기도 하는 등, 실력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요, 잡았을 경우 그의 처분이 궁금합니다.]

[...당연히 내부에 있는 법대로 처리합니다. 최대 사형, 최소 징역 15년 이상으로 일단은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우선 오키타 대장을 찾은 이후에 논의될 것 입니다.]

[현재 어디로 갔는지 위치 경로는 파악되셨습니까?]

[...멀리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찾을 예정입니다]


티비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다시 눈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해놓고, 너는 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걸까?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 눈빛을 보자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다시.. 자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더라도 히지카타를 만나야겠다....잊기 위해 마신 술이, 고요함을 잊으려 틀었던 TV가 다시 나를 견딜 수 없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꽤 길었다. 히지카타는 무어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옆에서 인터뷰를 하는 아나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우스꽝스러운 광고가 시작 될 때, 충동적으로 호텔안에 있는 전화기를 다시 신경질 적으로 들고서 경찰 신고 다이얼을 눌렀다. 하지만 다이얼이 눌리는 번호는 프론트 라고 쓰여진 버튼 한개 뿐이다. 버튼을 누르자 다시 프론트에 전화가 걸렸다.


[...또 7사단 단장을 찾으시는 겁니까?]

아니, 그런거 아니고 경찰.. 경찰을 불러줘

[...그건 안됩니다. 지금 호텔을 나가시면 불러드리죠]

씨발 왜!! 지금 당장 경찰불러!!!!!!

[...급한 일이신가요? 무슨 일이시죠? 지금 저희가 올라가겠습니다]

오지마!! 오면 다 죽여버릴거야

[협박치곤 과하시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경찰을 지금 부르면 이 호텔에 묶고 계신 손님들 모두 피해를 입습니다. 당신만 범죄자라고 생각하나본데 그런거 아니니까 자수할거면 곱게 혼자 하라는 뜻입니다. 이해했어요?]

......

[그리고... 좋은 소식인진 모르겠지만 당신이 아까 찾던 7사단 단장이 직접 당신을 찾던데....]


그 말 끝이 흐려갈때 무렵, 내 방의 문고리가 당기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철컥- 이상한 위압감이다.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수화기를 떨어트리고, 이상할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술 병을 잡고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겁없이 문으로 터벅터벅 가서는 문을 벌컥 열고는 내다 보았다. 앞에는 카무이가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술에 취해서가 아니다.


하하, 왔어?

....

들어와.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빼앗겨버렸어. 네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진 않아서.

얼마나 마셨어?

글쎄.. 얼마 안 마셨어 자! 들어와! 와서 너도 마셔.


카무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와선 침대에 걸터앉았다.


자 마셔


병 채로 내밀자 카무이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는 한 모금 들이켰다. 카무이 옆에 누워선 천장을 보면서 생각 없이 말했다.


나 찾았지?

당연하지. 그런 당연한걸 왜 물어?

왜? 날 걱정해서?

걱정? 그럴리가. 경찰보다 먼저 널 잡고 싶어서

잡아서 어쩌게?

.....


카무이는 다시 한번 술병을 들고선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잊었던 이 녀석의 정체가 떠올라버렸다. 술에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러움과 함께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오른다. 몸을 일으켜선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야 이 씨발새끼야

....

잊고 있었어. 너 7사단 단장이라며? 하루사메 소속.... 이었다며? 야 이 개새끼야....! 재밌어? 재밌었냐고...! 내가... 내가 히지카타 찾아다닐때 무슨 기분이었냐? 웃겼지? 씨발 내가 데리고 있는데 저 병신 같은 새끼는 되지도 않는 종이 쪼가리 들고 다니면서.... 다니면서....

...그땐 나도 우리 쪽이 데리고 있다는 걸 몰랐어. 그러니까 나도 너를 도와준거고.. 물론....

너는 충분히!! 충분히 데리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하면서 날 도와줄 수도 있는 소름끼치는 새끼야!! 

그래. 나중에 알았을 때는 나 역시 즐겼던 건 사실이야. 너한테 보내준 걸 아직도 후회해.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근데 뭐, 지금은....

지금은 뭐. 뭐, 이 새끼야!!

너도 할 말 없잖아? 너도 날 잡으려고 손수 먼저 전화까지 해놓고?

....경찰이 범죄자를 잡는 게 이상해?

아니, 지극히 정상이지. 그럼 범죄자가 사람을 납치하는 건? 네 말에 따르면 이것도 정상 아냐?


할 말이 없었다. 아.... 나는 한숨과 함께 그대로 쓰러져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너는 날 왜 찾았어?


카무이가 건조하게 물었다.


그냥 생각났어..

그러니까 왜.

몰라 그냥 생각났어. 몰라.... 다 짜증나,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다 짜증나!! 

...처음엔 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어.

은근히 순진해 빠졌네... 날 믿었어? 왜? 내가 뭔데? 

그러게.

그래서, 지금은? 팔아버리려고 왔어?

아니, 죽여야지.

어차피 죽을거 자수하게 해줘.

그런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착해 빠지진 않아서.

 

하지만 죽이겠다고 말하는 카무이의 표정에 살기는 전혀 없었다. 카무이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병을 옆에 탁자에 놓고선 내 옆에 같이 누웠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이 새끼는 나를 다 용서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본인을 팔아 넘겼고 죽이려고 했던 사실도 이미 다 잊었구나,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나를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구나. 호텔방의 은은한 조명으로 꿈틀거리는 따스함 때문인지, 그런 이 녀석의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용서해버리는 어이없는 행동 탓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가만히 눈을 맞추다가 내가 먼저 카무이의 손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이며 물었다.


전에 경찰들이 진 치고 있던 집 앞에..  왔었지? 왜 왔어?

너한테 물어보려고.

뭘?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니까.


너랑 헤어지려고 했었어. 너랑 헤어지려고 했어. 너랑 헤어지려고.... 술 김이라도 이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섞어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도 죽을 뻔 했어. 이거 봐. 나 고문도 당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이해할거지?


나는 왼손에 감긴 붕대를 보여주면서 계속 말했다.


너 물고문 당해봤어? 씨발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샤워실에서 솨아아 하고 쏟아지는 물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끼쳐. 욕조도 당분간은 못 볼 것 같아. 물 닿는 게 소름 끼칠 정도더라고. 그래서 결심했지. 누군가를 죽일 땐 반드시 익사시켜서 죽일 거야.

너 자수한다며? 죽을 거라면서

음.. 역시 아직은 못 죽겠다


카무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웃어? 이거 보라고. 나 존나 아팠다니까? 진짜 뒤질뻔했다고.

그 정도 당하고 도망친 거면 상대가 너무 무른거 아냐?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다시 히지카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카무이는 이어서 말했다.


제대로 고문할 생각이면 저렇게 조금 하고 끝났겠어?


그래 맞아. 히지카타 너도 얼마나 힘들었어? 히지카타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내 생각 계속하겠지? 나를 잡는다고 했으니까.. 나를 잡는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쫓으려고 하겠지? 그리고 혹시나 정말로 나를 찾아버릴까 봐 조마조마 하겠지? 손톱 두개로 끝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본인도 고통스러울 테니까 속으로 제발 눈앞에 나타나지 말기를 빌고 있겠지? 사실은 미치게 보고 싶으면서..

 

네 표정 보니까 알겠다. 너 고문한 새끼. 그 새끼구나? 누나의 남자친구.


카무이는 몸을 일으켜서는 옆에 놓아두었던 술을 한모금 마셨다. 눈 앞이 술기운 때문에 어질어질했다. 몸이 한 없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 와중에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음..뭐.....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긍정의 뜻을 담은 애매한 답을 해버렸다. 


그 새끼도 너 고문하면서 즐겼을거야.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웃는 이 녀석을 보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히지카타가 정말로 나를 아꼈다면.. 그랬다면 나와 함께 도망쳐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고문이 아니더라도 취조실에만 나를 쳐 박아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손을 내밀어서 이 새끼가 쥐고 있던 술을 빼앗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서는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카무이를 거칠게 끌어안고 키스했다. 나는 취했다. 취해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히지카타는 그럴 의도는 없었을 거고, 이 새끼가 말 한 것처럼 즐기지도 않았을 거고, 처음에 내가 생각 했던 것처럼 누구보다도 슬퍼했을거야. 카무이는 내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서 그대로 침대 위로 함께 쓰러졌다. 이 새끼 아래에서 내 왼손을 들어서, 감겨있는 붕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치료는 왜 해줬을까? 최소한의 배려였을까? 치료라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었을까? 좆같네 씨발. 그만. 나는 단호하게 카무이에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안되겠어. 가야겠어.

어딜? 너 취했어.

취한게 어때서?


비틀비틀 걷는 나를 보며 카무이는 나를 뒤따라와서는 말했다. 


오늘은 가만히 있는게 좋을 것 같은데

놔!! 지금 가서 죽여버려야겠어

그래. 죽이는거 좋지. 근데...

죽이고 나도 자수 하던가 하면 되잖아! 놔!!


카무이는 내 목을 잡고선 벽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쿠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앞이 느리게 흔들린다. 그만하자. 카무이는 그대로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나는 취했다...


한참을 잤다. 그 날 나는 카무이와 손을 잡고, 어쩌면 내가 이 새끼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내가 이 새끼의 옆을 선택하도록 강요한 것은 다름 아닌 히지카타였다. 아니, 히지카타는 아니다. 히지카타의 옆에 있는 그 여자. 그 여자다. 결정했다. 내가 그 여자를 죽이게 되는 방식은 익사다. 한참을 데리고 논 다음에 숨을 끊어주겠어. 네가 나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내가 가지고 놀아주지. 



 




-

아침에 이 녀석이 옆에 있어서 순간적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모든 일이 떠오른다. 자주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이 새끼와 나의 상황이 지금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닌지라, 술먹고 진상짓을 한 것 같기도 해서 조금은 쪽팔린다. 카무이는 눈을 뜬 나를 보며, 속은 괜찮아? 하고 농담 섞어서 내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면서 답지 않은 장난을 쳐댔다. 다 기억난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허리를 끌어안으며 호텔에 더 있지 말고 자신과 함께 하루사메로 가자고 했다. 훨씬 안전할 거라고.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다면 정말로 악당이 되면 그만이라며 웃었다. 경찰과 악당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경찰일 때에 가지고 있던 자부심과, 악당이 되어버린 그 비참함은 이 녀석이 절대로 모를 것이다. 



샤워를 하려고 별생각 없이 욕실에 갔다가 옆에 있는 욕조를 보고 흠칫 놀라서 뒷 걸음질을 치다가 마침 일어나서 나를 찾던 카무이와 부딪쳤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세면대로 가서는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수도꼭지를 당겼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싸늘하게 식으며 땀이 함께 흘렀다. 카무이는 눈치챘는지 뒤에서 다가와서는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어깨에 턱을 얹고 말했다.


"왜? 힘들어?"


장난끼 담긴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새끼에게 어제 고문의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에 대해서 미치도록 후회했다. 하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이 새끼가 나를 안아주자마자 약간 안도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씻을까?"


카무이는 다시 물었다. 나는 긍정의 뜻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음...욕조만 보면 그 새끼가 한 짓이 생각나서 그런 건가?"


카무이는 나를 욕조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냅다 던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당탕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언제라도 물이 가득 찰지도 모르는 욕조 안에서 병적으로 벗어나려고 팔을 저었다. 카무이는 바로 들어와서는 발버둥 치는 나를 강제로 감싸 안으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속삭인다. 아니, 씨발 내가 안 괜찮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파도에 밀려나온 물고기처럼 거칠게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강제로 입을 맞췄다. 입안을 돌아다니는 미끌미끌한 혓바닥, 그리고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나는 이 녀석에게로부터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카무이는 내 거친 반응에 다시 씨익 웃으면서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다시 말했다.


"자아, 천천히 숨 쉬는거야. 알았지? 설마 키스하는 법도 잊어버린거야?"

"....그... 그만....나..나갈래..나가자...하아....허억..."


나가자는 내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자. 괜찮지?"


괜찮긴 뭐가...! 나는 다시 발버둥 치고, 손을 뻗어서 욕조의 옆을 겨우 잡았다. 카무이는 재밌다는 듯이 내 팔을 잡아서 자신의 목 뒤로 둘렀다. 자, 나를 잘 잡으면 되잖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잡아야 한다는 무의식은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면서 카무이의 목을 완전히 끌어안았다. 


"허억....나...나가자...제발..하아...헉... 제발 나가자..."

"그래. 가자. 한 번 하고 가자"

"나가서 하자.. 나가서.."

"아니, 여기서"

"...이....씨발새끼..."


내가 입고 있던 바지 버클을 풀며, 기억에 덧씌워줄게. 하고 씨익 웃었다. 벗긴 바지를 옆으로 휙 던져놓고는 다리를 잡아당겨선 제 어깨에 걸쳤다. 기대고 있던 몸이 욕조 아래로 쭈욱 미끄러지는 것, 그리고 위로 보이는 공포스러운 수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욕조 아래로는 차가운 물이 점점 차오른다. 옷이 축축하게 젖어들며 살갗을 휘감아온다. 그 감촉이 마치 커다란 구렁이가 나를 켜켜이 감싸 안는 것 같다. 내 옆으로 물이 넘실넘실, 아슬아슬하다. 살려줘.....! 무..물이...물이...! 카무이는 작게 속삭인다. 기다렸지? 여기는.. 이 나와 함께 있었던 집이야... 집이야... 하고 말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시작되어야 할 애무가 한참 동안 없다가 카무이는 갑자기 키득키득 웃었다. 한 쪽 눈을 힘겹게 살짝 뜨고 쳐다보자 카무이는 어깨에 걸쳤던 다리를 내려놓고는 나가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정말이지 추할 정도로 힘겹게 욕조에서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욕조에 물은 없었고, 당연히 내 옷도 젖지 않았다. 이마에 잔뜩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한참 밖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카무이가 내 앞에 와서 내 상태를 빤히 쳐다보기에, 흐르는 땀을 힘겹게 닦으며 소리쳤다.


"헉...헉..야... 야 이 씨발새끼야!!.. 헉..허억... 사..사람 말이.. 말 같지 않냐? 헉..허억...하아.."

"아, 미안. 말같지 않았던 건 아닌데 뭔가 짜증나잖아"

"하아... 씨발....."

"왜 이 정도까지 트라우마를 만든 사람을 왜 계속 생각하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


그 말에 카무이 얼굴을 다시 홱 올려다보았다. 그때의 그 표정이 새삼스럽게 상처받은 표정으로 보여서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옷 입어. 나가자"


...분명 나와서 침대에서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화났나?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면서 어제 샀던 모자를 푹 눌러 쓰자, 귀찮으니 쓰지 말라며 모자를 벗겼다. 모자 쓰면 네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갑자기 또 나를 배신할지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웃는 모습에 또다시 열이 확 오른다. 하지만 이상한 힘이었다. 이 새끼와 손을 잡고 걸을 때만큼은 나 역시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모자를 쓰지 않아도 되었고,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었다. 카무이는 전화기를 들곤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응. 내 방에 있는 욕실에 욕조 치워. 지금 출발하니까 15분 쯤 걸려"


카무이는 전화를 끊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전에 와봤었지? 거기서 하자"


그럼 그렇지.



화풀이 인지도 모르겠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들어가자마자 머리칼을 홱 움켜쥐는 손길도, 옷을 벗기는 악력도 평소보다 너무 거칠어서 이 새끼 역시 화났구나.. 하고 속으로만 삼켰다. 키스도, 애무도 거칠었다. 평소라면 자국 남지 않게 내가 조심시키는 것도 있지만 본인도 조금은 신경 썼었는데 지금은 말릴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짐승처럼 거칠게 핥아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잠자코 있었다. 달래줄 생각으로 뒷 목에 손을 살짝 둘렀는데, 카무이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눈치보는거야? 왜 안말려"

"...내가 네 눈치를 왜봐?...이제 말릴 이유 없잖아. 출근도 안하니까"

"출근만이 문제는 아니었겠지. 그때는 거기에 그분도 계셨으니"

"아냐...그건 아니... 아앗....!"


카무이는 혀로 애무하던 목을 물어버렸다. 아 씨발 더럽게 아프네. 평소와는 확실히 다르다. 거칠게 다리를 벌려서는 손가락을 밀어 넣는 것도, 내가 이물감에 움찔하며 신음을 지를 때에도... 보통 때엔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심하게 나오는 신음을 이를 꽉 물어 참았다. 장난끼도, 사랑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섹스였다. 뭐 애초에 우리 둘의 사이에서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만이 들 정도의 과격함이었다. 질척질척하는 소리의 점점 리듬이 빨라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헤프게 내지르고 있었다. 

끝인 줄 알았던 행위는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내 허리를 잡는 손목을 힘겹게 잡으며 그만하자고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카무이는 귀찮다는 듯이 내 머리를 거칠게 누르며 다시 삽입을 시작했다. 


함께 샤워를 한 후,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허리를 잡으며 소파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카무이는 바닥에 앉아서 내 얼굴을 보면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발정 났었냐? 하고 화났냐는 질문을 돌려서 비아냥대고 싶었지만 괜한 도발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화는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내가 히지카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여자를 익사시킬 수 있을까? 가장 멋있고 잔인하게 물에 빠트려 죽일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요시와라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카무이와 돌아다녔으니 아마도 이미.. 히지카타의 손에 내가 이 새끼와 함께 요시와라에 있다는 정보까지는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입을 맞추는 카무이를 쳐다보며 가만히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는데"

"할 말?"

"화내지 말고 천천히.. 들어줬으면 좋겠어"


쿠리코의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이야기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쪽에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쿠리코의 처음 인상, 그다음 히지카타와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의 도청 이야기까지. 도청 이야기는 전에도 이 새끼가 화낸 적이 있었던 만큼 조금 망설였지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듣던 카무이는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를 물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 게다가 몰래 이런 일을 실행했다가 겪게 될 이 녀석과의 신경전.. 나에게 아직 이 녀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극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조심 해야한다.


"음... 내가 이 여자를 죽이고 싶어서"

"...."

"넌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생각보다 카무이는 흔쾌히 답해주었다. 내가 도와줄 게 있을까? 카무이는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전화가 한 번 왔는데 카무이는 대충 받아선 쉬고 있으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말로 그 이후엔 전화가 오는 일이 없었다. 맨날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던 내 책상이 생각나서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소파에 누워서 탁자에 쌓여있는 신문을 뒤적거리며 카무이에게 신문을 보느냐고 물으며 참 의외라고 말했다. 카무이는 그딴 걸 누가 보냐며 아부토가 한 번씩 사 오는 거라고 답했다. 심심해서 신문을 뒤적거리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뉴스에서 방송하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에서 반드시 같이 나와야 할 이 녀석이 같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만 나오지? 왜 너는 안 나와? 이 쪽 입장에서 내가 너를 도운 스파이라고 친다면, 너도 같이 나와야 하잖아"

"인질이 있어서 그럴거야"

"인질?"

"응. 경찰쪽에서 아직은 모르는거 같은데.. 인질이 도망갔다는걸 알면 나도 같이 수배하겠지. 어제 인질이 도망갔어"

"안 잡아?"

"귀찮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인 카구라가 인질이었다고 한다. 카구라가 동생이었다는 점에서 놀라긴 했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정보를 넘겨서 카무이가 경찰 내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던 그 당시에, 카무이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이유로 협박을 하고 있었던 카구라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지 카구라는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할 때 카무이가 건네줬었던 포크를 숨겨놓고 있다가, 얼마 전 식사를 건네주는 틈을 타서 함께 있던 모두를 찔러 죽이고 도망 갔다고 했다.  


"그럼 찾아야 하는거 아니야?"

"나한테 나중에 하루사메로 영입하라고 했었어. 그럼 다시 오겠지"

"너도 참 이상하다"

"너만큼 이상하려고"


카무이는 나에게 계획을 물었다. 계획..이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히지카타와 마츠다이라 선생이 절대로 그 근처에 나타나지 않는 시간을 알고 있으니 그때 그 여자를 납치할 거라고 했다. 누나의 남자친구, 마주치면 어떻게 할 거야? ... 그럴 일 없어. 세상에 절대는 없다는 거 몰라? 아니면.. 혹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같은 거.. 하고 있는 건가? 씨발 그런 거 절대 없다고 했잖아!!!!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카무이는 나를 쳐다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과민반응하지 마. 너무 티 나잖아. 정곡이 찔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나는 순간.. 히지카타도... 나를 체포하려고 할거고.. 그럼 나도 히지카타에게 맞서야 하는 입장이야. 그런 걸 왜 기대하겠어? 절대로 그런 일 없....."

"그래. 알아서 해"


카무이는 웃으며 답했다.








'은혼 > ing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무오키] Jacob's ladder 37 完  (2) 2019.02.12
[카무오키] Jacob's ladder 35  (1) 2018.10.26
[카무오키] Jacob's ladder 34  (1) 2018.10.06
[카무오키] Jacob's ladder 33  (0) 2018.08.04
[카무오키] Jacob's labber 32  (0) 2018.06.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