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9.










잔뜩 구입해 두었던 수면제도 쓸모가 있었다. 조용하고 시커먼 밤.. 그 밤이 외롭게 환해지는 그 밤을 홀로 지새우지 않도록 내 눈을 얌전히 감겨주었다. 가끔은 재수 없는 악몽도 꾸지 않았다. 


직업 특성 상 지금까지 접수되었던 수 많은 실종 사건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울면서 찾아온 수 많은 사람들의 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발견 되더라도 시체로 발견이 되었고, 아니면 지금까지도 '실종'이라는 글씨가 붙은 채로 전단지에 박혀 사람들의 손으로 전달이 되어 가방이나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차가운 벽에 붙어 외롭게 바람에 흩날리게 된다. 실종..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외치는 한 명이었다. 동료가 눈 앞에서 죽는 일이야 흔하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실종이라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사메가 요구한 돈을 입금했다. 너무나도 큰 액수였지만 거절 할 수 없었다. 7번대 단장인 덩치 큰 그 놈은 꽤나 거들먹 거리는 태도로, 찾으면 연락하겠다며 사람을 시켜 전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서 우리는 하루사메의 그 어떤 일에도 우리의 권력을 내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정도 걸리겠냐는 물음에 심부름 왔던 하루사메의 단원은 글쎄요.. 저는 말을 전하기만 할 뿐이라서.. 하고 말 끝을 흐릴 뿐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가고,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겠구나.. 이 빠르고도 느린 시간에 너는 빠르게 부식 되고 있을지, 어디에선가 우리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가빠온다.


책상엔 얼마 전에 추가로 주문한 전단지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꽤 많은 양이라서 나머지 묶음은 책상 아래에 놓여 있었다. 풀어서 주문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와중에 카구라에게 전화가 왔다.


"... 웬일이야?"

[..별일 없으면 나 라면이나 한그릇 사줘라 해]

"...그런 여유 없어. 끊어"

[밥을 먹는게 여유가 있어서 먹는건 아니잖냐 해. 나와라 해]


자기 할 말만 하고서 전화를 툭 끊는다. 약간 황당하기도 해서 끊어진 핸드폰을 한번 바라보고는 주머니에 넣고 다시 책상을 바라보자 창문에서 톡톡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카구라였다. 창문을 바라보는 나에게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항상 저렇게 엉뚱하다. 





차이나와 라면 가게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뭔 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약간의 기분 전환에는 도움이 되었다. 내부에 있으면 자꾸만 히지카타의 텅 빈 책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와보는 곳이네. 형씨는 항상 가는 곳이 있잖아? 형씨랑만 돌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혼자 먹고 싶을 때 오는 곳이다 해"

"그럼 혼자 오지. 왜 이런 곳에 나를?"

"긴쨩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또 무슨 일이 터지셨길래"

"나. 해결사를 떠날거다 해"

"...갑자기 왜? 그렇게 형씨가 떠나라고 할 때는 떠나지도 않더니"

"가족을 찾았으니까"

"아..... 그렇구나"


지금이야 놀랄 힘이 없어서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많이 놀랐다. 카구라가 없는 해결사라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형씨도 카구라의 이런 통보에 잡지도 않을 것이고, 쿨하게 보내주겠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라고 우울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


"형씨는?"

"아직 말 안했다 해. 사실 언제 갈 지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조만간 꼭 떠날 거야"

"뭐야. 안 가겠다는 거잖아"

"아냐. 세달 안에는 꼭 나갈거다해"


이상하게 굳은 의지를 보이는 내 옆에 이상한 왈가닥..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려는 와중에 대충 주문한 라면이 나왔다. 평소라면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야 할 카구라는 이상하게 오늘 얌전하게 라면을 먹었다. 분명 복잡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너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해. 아무리 친해도 가족과 가족이 아닌 친한 사람의 경우는 약간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해. 내가 환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뭐.. 어쨌든 좋겠네. 가족을 찾았다니.."

"그 마요라는 아직이지?"

"....응...."


잠시의 침묵 후에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짓 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루사메까지 부탁하게 됐어. 아무래도 좋으니..."

"하루사메?"


카구라는 움직이던 젓가락을 놓고 물었다.


"아,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네. 엄청 덩치 큰 범죄 조직이야"

"...그렇구나, 곧 찾게 될거다 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하는 카구라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확신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구라에게 다그치듯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카구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별 뜻 없는 위로에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느냐고 답했다. 그러게.. 요즘 아무것도 아닌 증거에도 이렇게 열 올리고 있어. 나 상태 지금 좀 별로지? 거의 한 젓가락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라면을 한 젓가락 정도 집어서 한입 먹었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

"입금 확인 됐어"

"그래?"

"단장. 정말 죽일거야?"

"응"


지하 감옥으로 안내하라며 나는 아부토의 앞에 섰다. 히지카타 그 새끼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둘 수 없다. 정말로 빨리 죽여버리는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왜 내가 잠깐의 시간을 망설였을까? 나를 미행하는 것을 안 순간 그 즉시에 잡아다가 죽여버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잠깐, 잠깐, 단장. 일단 진정해봐"

"뭘?"

"조금만 늦게 죽이자는 거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렇게 하자. 돈 받고 경찰 놈들 앞에서 죽이자. 어때?"

"...."

"간만에 들어오는 큰 돈이잖아. 찾아주면 받는 돈도 큰데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리기가 너무 하잖아? 우리 단원들도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찾았다고 하면서 돌려준다고 한 다음에 장소 찍어주고 오라고 한 다음 그 새끼들 보는 눈앞에서 죽이자. 그래도 되잖아? 그게 더 재밌을 텐데."


아부토는 신난 듯 씨익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이런 걸 생각하는 걸 보면 확실히 아부토는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가 찾아도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는 위험한 새끼들인 것도 알고 부탁했을 거니까. 그렇게 하자"

"...뭐지? 왜 이렇게 순순해?"


아부토는 내 태도를 보고 굉장히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네 말대로 하겠다는데 왜? 아니면 그냥 가서 죽여?"

"아, 아니야 아니야. 그래. 잘 생각했어"


아부토는 자신이 오늘 선물로 받은 고급 양주가 있는데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잠깐 고민하는 나를 보곤, 왜 고민을 하냐며 잡아 끌었다. 다른 때라면 거절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술이 땡기기도 했고, 집에 가봤자 지금의 오키타에겐 누나의 남자친구가 너무도 가득 차서 나의 존재는 밤이 무서운 어린 아이의 곁을 지켜주는 커다란 곰인형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와 먹으려고 사오라고 시켰다며 과일도 깎아서 놓고, 얼음도 꺼내서 유리 컵에 몇 개 담은 후, 술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유리컵을 받아 들면서 꽤나 급하게 술을 들이켰다. 독한 술이라 그런지 마시자마자 몸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진다.


"어때? 괜찮지?"

"응. 독하네. 오랜만이다. 너랑 이렇게 술 먹는 것도"

"그러게. 오늘은 내가 꼭 먹고 싶어서 일부러 준비 했어"

"그런 것 같아. 근데, 무슨 날이야?"

"음.. 그냥 내가 단장 너랑 술 먹고 싶은 날이야. 사실 오늘도 바쁘다고 할 줄 알았는데.."

"뭐, 맨날 바쁜 건 아니니까"


별 말 없이 계속 잔을 부딪치면서 한참을 마셨다. 너무 높은 도수라서 그런지 금방 눈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뭐냐 답지 않게. 단장 너 취했냐?"

"응 좀 취한 것 같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런 걸 갑자기 생각하게 되고"

"그 주변 사람들이야.... 안타깝겠지 뭐.." 


주변에서 수 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내 손으로 끝낸 적은 수없이 많다. 손에 묻은 뜨거운 피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할 틈도 없었고....




누나는 나에게 오키타와의 관계를 물었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햇빛에 하얗게 반사되어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누나는 빛나고 있었다. 누나는 굉장히 침착해서 무서웠다. 마지막까지 나는 누나를 정말 좋아했다고 말할 것이다. 누나는 마지막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죽으면 정말로 영혼이 되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걸까? 그리고 나를 따라다닐까? 그렇다면 나를 봐주지 않는 사람을 죽여버린다면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일까? 그럼 그건 그것대로 좋을 수도 있겠다.


'누나가 잘못 본 거니?'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내 반응은 한눈에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라면 그렇게 서투르게 행동하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반응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누나가 두려웠고, 두려운 만큼 누나에게 나의 안 좋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나를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오키타가...'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소고는 모르는 거니?'

'....아.. 아마도'

'.......'


누나는 그래도 내 변명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묻는 말에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확신에 찬 표정에는 진실을 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었다. 누나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


'... 계속 감시도 했었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야 할지 계속 생각했어. 결론은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제 우린 여기까지로 하자'

'네? 여기까지.. 라는 건'

'말 그대로 여기까지 라는 거야.'

'...'

'왜 소고가 너를 그렇게 싫어했는지도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나는 네가 소고에게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거야 나는.... 게다가 엄마와 아빠도 안 계시고......'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누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나에게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다가오지마'

'누나..'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누나는 머리가 아픈 듯이 머리를 붙잡고 들고 있던 빨랫감을 떨어트렸다. 


'...저 어디가 아프신..'

'... 너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그냥 좀 내려갈래?'


누나는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옥상의 난간을 붙잡고 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내려가라는 다소 격앙된 말투에 옥상에서 내려간 것 뿐이다. 누나는 분명히 홧김에 그렇게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떻게 나를 대해야 할 지도 몰랐을 것이고.. 누나는 나에게 하기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하면서 스스로 굉장히 괴로웠던 것 같다.. 혹은, 약간 당황하기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고였는지, 경찰의 말대로 혹시 자살이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단지 자살 보다는 사고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누나가 그때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정말 그대로 쫓겨나게 되는 운명이었을까? 누나가 살아있었다면.. 그때 그렇게 사고를, 혹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나와 오키타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누나가 나를 정말로 쫓아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쫓아냈다고 하더라도, 누나는 누나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둘의 삶의 터전을 잡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키타는? 또 다시 나에게로 눈길을 돌렸을 것이다. 어떤 루트를 탄다고 하더라도 오키타와 나는 지금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거라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니"


아부토는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나는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홀짝 들이켰다. 


"컨디션이 별론가? 얼굴이 좀 빨갛네. 원래 얼굴색 잘 안변하잖아?"


아부토는 내 얼굴에 손을 대려 가깝게 손을 뻗었다가 다시 손을 거두었다. 


졸음이 쏟아진다. 소파에 올라가 이미 앉아 있던 아부토의 무릎을 베고서 누웠다. 아부토는 자연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작게 웃었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잠들어. 집에 가야지. 동생이 기다린다며"

"...기다릴까?.."

"...당연히 그렇겠지"

"왜 당연하다고 해? 당연한 게 어딨어"

"네 옆에 있잖아. 항상 당연한 아부토가"


특유의 장난끼 있는 말투가 우스워서 잠결에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나도 모르게 감기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고마워 하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조금은 용서했을지도 모르잖아. 오키타 녀석이 애타게 찾는 누나의 남자친구를 내가 데리고 있고, 어쩌면 내가 당신의 곁에 보내줄 수도 있는데.


동생의 괴로움을 보시겠습니까?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당신의 남자를 되찾으시겠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 틈을 연다. 누나와 누나의 남자친구는 내가 처음에 봤던 그대로였다. 반짝반짝 했다. 오키타는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빛이 복잡했다. 자신의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향하는 이상한 마음의 행방. 그 이상하고도 괴상한 마음의 방향에 자기 자신을 마음 속 깊이 증오 하고 있을 것이다. 옆에 있는 누나의 존재 때문에 더욱. 어째서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 나는 내 눈 앞의 이 둘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옆의 오키타에게 히지카타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말해서는 안된다는 압박, 그 자연스러운 압박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일까?


오키타 내 어깨를 붙들고 눈에 투명한 눈물과 터질듯한 울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외치듯이 말한다. 제발.. 제발 좀 어떻게 해줘...!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 이미 누나는 없고 누나의 남자친구는 실종 상태잖아. 누나가 없다니? 게다가 실종? 무슨 소리야 저기에 있잖아. 누나 옆에 있잖아.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게 무슨 뜻이야? 나도...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까? 오키타는 내 말에 어깨를 꽉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빼고서 조금 섬뜩하다 싶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히지카타 데리고 와. 히지카타, 실종 아니잖아. 네가 데리고 있잖아. 왜 나한테 숨기고 있어? 너, 내 이런 모습 즐기고 있는 거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야. 내 말 들어봐 오키타. 양 팔을 잡자마자 내 눈앞에 있는 오키타는 나무 인형이 박살나듯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작은 파편 안 쪽으로 또르르 굴러가는 눈알이 나를 감시하듯이 천천히 굴러간다. 손에 쥐고 있는 떨어진 양팔 만을 멍하니 쳐다본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아부토는 날 어찌할 줄 몰랐는지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다급하게 시계를 보니 시계 바늘은 벌써 3시 22분을 가리키고 있다. 돌아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아부토가 깼는지 한 손으론 눈을 부비며 내 팔을 잡았다.


".... 깼어? 어디가"

"...이제..가야지"

"지금이 몇 신데 집에 가, 그냥 여기서 자자. 어차피 아침에 다시 올 거 아냐, 아이고 발에 쥐 났다"


아부토는 제 다리를 잡고는 괴로운 듯이 몸을 베베 꼬아 댄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다. 지금 이런 최악의 기분의 내가 왜 굳이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 그냥 여기서 자야겠다. 빠르게 납득하고는 다시 아부토의 무릎을 베고서 누웠다. 


"아악! 이 망할 놈아! 나 방금 다리 저리다고 소리친 거 못 들었냐!"


소리치는 아부토를 무시하고는 멍하니 누웠다. 동시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히지카타 그 새끼가 지금 결혼한 여자를 골랐던, 누나가 살아있어서 누나와 결혼을 했던 오키타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결국 그 녀석이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생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너는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을 언제 쯤 포기 할 수 있어? 네가 마음만 품지 않았어도 나 역시 별 마음 없이 지금 감옥에 가둬 놓은 저 새끼를 마음 편히 경찰 집단의 부국장으로만 바라보며, 집단의 실리만을 위해, 바로 죽였던가, 살려 보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서 아부토에게 말했다.


"아부토, 지하 감옥에 가자"

"....아니.. 이 시간에 거긴 왜 또 가자는 거야..."


아부토는 계속 다리를 부여잡고서 나를 원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빨리 가자. 내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는지 아부토는 잠시의 침묵 후에 열쇠를 챙겨 들고는 앞장 섰다. 아부토는 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왜 가자고 하는지 물어봐도 돼?"

"... 그냥"

"그 경찰 놈 죽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왜 그 새끼한테 이렇게 집착하는지..."

"집착?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짜증 나서. 그리고 아직 안 죽인다고 했잖아. 돈 다 받아 챙기고 그 새끼들 보는 앞에서 죽이기로 했잖아. 걱정하지마. 기억하고 있어."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찾아간 그 감옥에서 누나의 남자친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부토에게 문을 열게 했다. 아부토는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귀를 찌르듯이 크게 울린다. 수면제로 인한 수면 상태가 아니었는지 누나의 남자친구는 미세하게 눈을 떴다. 다짜고짜 멱살을 움켜 잡고 미친 듯이 팼다. 짜증나. 왜 이렇게 까지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이 새끼는 예전부터 내 시야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입 안이 찢어졌는지 입 사이로 흐르는 피를 묶인 손 때문에 닦지 못하고서 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너무.... 재수 없어서.. 간만에 내가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흥분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간만에 진하게 맡아보는 피비릿내와 낑낑대며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아부토와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의 웅덩이 가운데에 누나의 남자친구가 움찔 거리고 있었다. 단장, 그만해. 진짜 죽는다 진짜. 아부토 역시 나에게 몇 대 맞았는지 입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나에게 부탁을 넘어선 사정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거친 숨을 고르며 억지로 진정된 나는 그 새끼를 말 없이 쳐다보다가 씩씩대며 감옥 밖으로 나갔다. 아부토는 그런 나를 잠시 돌아보았다가, 주위 관리병들을 불러서 쓰러진 누나의 남자친구의 입에 호흡기를 물리며 응급처치를 지도하고 있었다. 





저대로 죽었어도 괜찮겠네. 아부토와 같이 사는 집에서 피 묻은 손과 튄 옷을 갈아 입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러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키타는 잠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소리에 미동 없이 앉아 있다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장난해?"

"...."

"....왜 연락도 없이..."

"...깜빡 했어. 미안"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오키타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성질에 못 이겨 제 핸드폰을 나에게 집어 던졌다. 세게 던진 건지, 아니면 내가 잘 못 맞은 건지 머리에서 붉은 피가 가늘게 한 방울 흘러내린다. 손으로 스윽 닦으며 이상하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그런지 평소엔 서로의 행방과 연락의 유무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저 녀석의 이런 태도가 낯설기도 하고 이상하게 기분이 살짝 좋기도 했다. 


"웃어? 핸드폰 못 봤어? 전화는 왜 안 받아?"


나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70통이 넘는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미안. 못 봤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지? 내가 너를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그런 것 따윈 관심도 없었다는 거잖아"

"아냐. 했어"

"했는데도 이랬어?"

"응"

"했다고?"

"네가 나를 기다릴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내 말에 오키타는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일방적인 관계지. 지금도 그렇잖아. 너 지금 불안하지? 왜? 왜 불안한지 내가 말해볼까? 누나의 남자친구도 사라진 이 와중에 나 마저 없으면 어쩌나 그 걱정하고 있는 거 아냐?"

"....그게 잘못됐어?"

"아니. 잘못됐다고 한 적 없어. 하지만, 너도 지금 내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있잖아"


내 말에 오키타는 내 앞에 걸어와서는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 이랬어. 우리 관계가. 뭐가 더 필요해? 지금까지 내내 아무렇지 않았으면서 갑자기 왜 그러는데"

"그러게. 그러는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너도 변했잖아.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크게 간섭하는 사이였던가? 너만큼이나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갑자기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오키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치사하다. 치사하고 더럽다. 다 보여. 네 빨간 눈동자의 미세한 동요에서.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내가 다시 전처럼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잖아. 거칠게 떼어놓고는 다시 말했다.


"누나의 남자친구를 만약에 찾는다면, 더 이상 이렇게 나를 이렇게 찾지도 않을거고, 의존하지도 않을거잖아"

"아니야"

"아, 그렇네. 말을 잘못했네. 결국은 나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건가? 어차피 그 새끼 옆에는 부인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을 테니까"

"...섹스할까?"

"아니. 나 지금 너랑 섹스하면 너 죽여버릴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해"


완전 최악이다. 지금은 오키타를 만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라면 전에 이 새끼를 떠났을 그 때처럼 관계가 끝난 후, 이 새끼를 죽여버린다거나,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영영 이 곳을, 이 녀석 곁을 떠날 것 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충동적이다. 이런 상태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안 해"

"그럼 왜 이 새벽에 괜히 여기까지 왔어? 너, 내 상태 보러 왔구나? 얼마나 지랄하는지 보려고"

"아니. 그냥 너한테 이런 말 하고 싶어서. ...투정 부리고 싶어서 왔어"


네가 아니라고 세차게 부정해주길 바라서 왔어. 네가 훤히 다 보이는 거짓말으로라도, 아니야! 너를 좋아해,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 그렇게 네가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어. 미안해...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해주길 바랐어. 단순히 내 입을 막기 위한 짧은 입맞춤이 아니라 나를 안심할 수 있도록 나를 한 번 안아주기를..


"...투정...?"


내 대답에 오키타는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오키타는 자신이 섹스하자는 제안에 내가 순순하게 응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털어놓을 시간도 없이, 내 스스로의 쾌락에 취해서 자기 만족 정도의 감정만으로 끌어왔고, 이 정도의 관계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쪽이 이상해진 것이 맞는가?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 녀석은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냐,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데...








오키타는 다음날 자살을 시도했다. 내가 잠이 든 후, 집에 있던 수면제를 20정도 넘게 삼킨 것이다. 옆엔 히지카타의 얼굴이 박혀있는 전단지와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알약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다행히 집에 같이 있었던 내가 바로 발견을 했고,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다. 바로 하루사메의 의료담당에게 끌고 가선 위 세척을 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다급하게 끌고 온 적이 없었던 터라, 의료담당도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아, 7사단 단장이구나? 하고는 옆에 있는 침대에 그 녀석을 눕히는 것을 도와주고 치료를 해주었다.


"단장, 이 놈은 누구야? 처음 보는데"

"그냥 아는 사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7사단 단장 말이면 그래야지 뭐"

"심각해?"

"아니. 뭐.. 바로 발견했으니 큰 문제는 없어. 세척 다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깨어나면 이상한 공간에 의심을 품을 테니 바로 근처의 평범한 병원에 입원 시켰다. 보호자 명을 적으라는 말에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이름과 정보를 남기고 이 새끼 옆에 앉았다. 왜 갑자기 자살을 결심했을까? 정말 죽고 싶었을까? 

마침 아부토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때린 경찰 놈은 우선 치료 중이라며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는 이야기였다. 덧붙여서 정말 죽이지 않을 생각을 하긴 했느냐며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오늘은 들어가기 힘드니 다음날 보자는 짤막한 대답 후 전화를 끊고서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오키타는 이미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었다. 들어온 나와 눈을 마주치자 무엇이 우스운지 눈꼬리를 휘며 웃어 보였다.


"....정말 죽으려고 했어?"

"뭐, 죽는다고 했잖아"

"...그럴거면 더 삼키지 그랬어?"

"이 정도면 죽을 줄 알았어"

"...."

"또 이렇게 일어나서 네 얼굴 볼 줄 몰라서 뭔가 민망하네"

"..."

"표정이 왜 그래? 왜? 왜 짜증 났어?"


계속 이렇게 무기력한 네 상태가 짜증나. 게다가 죽는다는 말 하는 것도 재수 없어. 정말로 죽지도 못할 거면서 죽는다고 지껄이는 것도 짜증나고 이렇게 누워 있는 것도 짜증나. 나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짜증나.


"하... 일어났으면 됐어. 나 바쁘니까 먼저 갈게"

"......히지카타는"

"...."

"......아직도 아무 말 없지?"


병실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나에게 걸어온 마지막 말이었다. 제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을 나에게 보란 듯이 씨익 웃어 보이던 그 얼굴을 잔뜩 울상이 되어서 나에게 물었다. 걱정되어서 미치겠다는 그 표정. 그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오키타는 나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차라리 나를 좀 때려 달라고 하고 싶어. 조용히 맞아줄 테니까 때릴래?"

"....입 닥치고 잠이나 더 자. 끝나고 연락할게"

"...."

"내가 언제까지 너에게 이렇게 호의적일 거라고 생각해?" 


내 말에 오키타는 조용히 눈동자만 움직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의뿐이야?"

".... 나 역시 너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이렇게 등신 같은 모습 계속 보이지마. 오늘 이런 상황. 진심으로 재수 없으니까"


오키타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창 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갈게"


병원을 나와서 하루사메로 향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치밀어 오르는 화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하루사메에 들어오는 나를 보고, 아부토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아마도 경찰을 그렇게 만든 데에 대한 질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걸었다.


"아깐 안 온다면서 왜 왔어?"

".. 그냥 답답해서"

"답답하면 같이 드라이브라도 할까? 그럴 땐 어디라도 나가야지. 이런 데에서 있을게 아니라"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부토는 자신이 모시겠다며 가자고 했다. 잠깐이라도 바깥을 보면 좋잖아? 아부토는 웃어 보이면서 바다에 잠깐 갔다가 오자고 했다. 조수석에 앉으라고 문을 열어주면서 장난식으로 오늘은 네가 내 조수니까~ 하고 말하고는 괜히 내 눈치를 본다. 그 꼴이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창 문을 다 열고 바람을 맞았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게 싫어서 원래는 바람을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뺨을 스치는 거친 바람이 좋다. 아부토는 이 차가 뭐 엄청 비싼 외제차라며 차 자랑을 해대며, 누군가를 태운 것은 처음이라며 으스댔다. 오늘 따라 말이 많았다. 그렇게 오늘의 내가 폭탄처럼 보였나보다. 


"....오늘 내 상태, 그렇게 별로야?"


내 말에 아부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 아니! 그런가 아니고 그냥 오랜만이고 해서 내가 좀 신났어! 바다 본 지도 오래됐고.. 맨날 일 때문에 갔었고 하니까..... 뭐..."

"갑자기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물어봐"

"...카다를 좋아했었어?"

"아니, 절대"

"그 여자를 만약 내가 치우지 않았어도 지금의 네가 그렇게 이야기 했을까?"

"응"


아부토의 대답에 예상외로 망설임이 없어서 나는 아부토는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어?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아닌걸 아니라고 하는데 뭐, 게다가 네가 그렇게 싫어했잖아. 단장 네가 경찰에 팔아넘기지 않았다면 아마... 내부에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음.. 그러네"

"단장 너,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나한테 말하고 싶진 않은 거지?"

"...뭐, 별 게 아니라서"


아부토는 이상하게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냐 그 표정"

"그냥.. 행동이 먼저인 네가 고민도 하고, 좀 이상하잖아"

"..그래? 행동이 먼저니까 지금 운전대 내가 잡을까?"

"아냐 아냐, 내가 잘못했어 단장. 차 뽑은 지 얼마 안됐다고 방금 말했잖아 한번만 봐줘"


아부토는 한참 웃다가 다시 말했다.


"네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정도의 일이라면 엄청난 일이네. 그럴 땐 욕심을 좀 버리는 쪽으로 해봐. 왜, 옛 말에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잖아"

"고민이 뭔지도 모르면서 잘도 말하네"


아부토는 그냥 가볍게 웃어 보였다. 바다에 도착 했을 때는 새빨간 노을이 바다에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우수에 찬 듯 주황빛으로 번진 하늘과 바다.. 솨아아 하고 귓가를 울리는 바닷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밝은 웃음소리. 장황하게 별쳐진 모래밭... 부드러운 모래 사이의 삐뚤삐뚤한 조개껍데기,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서툴기 짝이 없는 삐뚤삐뚤한 모래성.. 뭔가 어색했다. 


"어때? 일로 오는 것과는 좀 다르지?"

"그렇네. 얼마전에 일로 왔을 때는 한 밤중에 바다에 바다에 빠트린다며 협박하러 왔었지?"

"협박만 하러 왔어? 전에 모래사장에 목만 빼놓고 파도에 잠겨 죽으라고 묻어 놓고 온 적도 있잖아"

"다른 사단 단장이 시멘트 붓어서 죽인다고 구경하러 온 적도 있었는데. 난 또 그 큰 바다에 뭘 어떻게 하나 했더니 단지 통에 가둬놓고 시멘트를 붓는 방식이라 실망했었는데"


웃으며 이야기 하는 나를 보며 아부토가 물었다.


"하하, 좀 풀렸어?"

".... 흠 글쎄"

"여기 앉아서 조금만 보다가 가자"


변두리 쪽에 놓인 나무 벤치를 가리키며 아부토가 말했다. 많이 낡았지만 놓인 장소가 바다의 변두리여서 그런지 나름 고급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단장. 너랑 와서 참 좋다"

"뭐냐? 전에도 자주 왔었잖아"

"응. 올 때마다 좋았어"


이상한 침묵. 


아부토는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부토의 거친 턱, 조심스럽게 만지던 손길이 생각난다. 아, 그건 정말 명백한 실수였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걸 저 새끼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명백하게 아부토는 같이 있을 때 항상 편하고 안정을 찾게 해주는 사람이다. 내 상황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욕심을 버리라니. 내가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그럼 어떤 걸 버려야 하나? 누나의 남자친구를 죽이면 오키타 녀석의 불안한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 될 것이다. 오늘 이 후, 그 다음 번에 또다시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면.... 그때가 히지카타의 죽음을 알았을 때라면... 그때엔 정말로 확실하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으려고 했다면 알약을 더 삼키지 그랬냐고 한 말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살려주기엔, 이미 납치한 우리 조직의 정체까지 밝혀버린데다가 나에 대해서 까지 알고 있다. 그걸 감안해서 넘긴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히지카타만 바라보는 오키타를 한 조직에서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는 오키타의 도청 행위, 범죄라는 이름의 장난을 통해 누나의 남자친구와의 육체적 관계를 상상하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치게 싫었기 때문이다. 함께 가까운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 나의 상상력은 자꾸만 몸집을 키울 것이고, 부정해봤자 이미 증식해버린 의심의 세포들은 멈출 수 없다. 둘 중 하나의 선택지...... 그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마요라를 찾으려고 오키타 그 새끼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던데, 어떻게 된거냐 해? 정말 죽여버린거냐 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

[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식적 인가? 하하 아직 오키타는 오빠가 하루사메인걸 모르는 눈치던데.. 봐, 진짜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니까 그런 비밀도 존재하는 거 아니냐 해? 내 제안을 거절하지마.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거다 해.]


[연락하지마]


[나 곧 내가 해결사를 떠날거다 해. 오빠랑 같이 생활할거다 해.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나오면 오키타에게 오빠의 정체를 말할거다 해. 히지카타가 어째서 사라졌는지, 내가 히지카타에게 어떤 정보를 줘서 움직였는지까지 다 말하겠다 해]


지금 이걸 협박이라고 하는 건가? 불안하다거나, 카구라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되려 카구라가 나에게 선택의 고민을 덜어준다고 생각되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비밀은 숨길수록 거대해지며 몸집을 키울대로 키웠을 때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번의 일을 통해서 나의 진짜 직업에 대해서도 밝혀야겠다.


[너 가고 나서 나도 생각해봤는데, 오늘은 부탁이니까 집에 들어오지마. 이번엔 내가 널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이번엔 오키타에게 문자가 왔다. 우겨서 퇴원은 한 모양이다. 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게다가 이렇게 나에게 죽여버린다는 말도 하는 걸 보니 약간은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엔 부숴 버리는 게 나은가? 멀리서라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 할 것인가? 


파도에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느니, 내가 다른 방법으로라도 붙잡고 있자. 하루사메와 경찰의 사이는 윗 쪽이 알아서 해주거나 뭐하면 우리가 쳐도 된다. 무서울 것은 없다. .....아니, 사실 무섭다. 누나의 남자친구와 오키타 사이의 변수, 그리고 이제 정말 오키타와 나의 관계가 충동적으로 끝을 맺자며 마냥 서로에게 욱해서 외치는 것 만이 아닌, 나와 오키타 서로가 정말 끝을 인지하고 헤어지게 될까봐.. 정말로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그런 이별을 맞이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불길함...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될 까봐 두렵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똑같은 결과가 올 것 같은 그런 막연함...이 무섭다.


아부토는 자판기에 파는 게 이런 것 밖엔 없다며 음료수를 들고 왔다. 시원한 음료수 캔을 받아들자 이상하게 머릿 속이 정리 되는 기분이다. 음료수를 받아 들면서 내가 물었다.


"아부토. 그 경찰놈 상태 어때? 많이 안 좋아?"

"음.. 많이 안 좋다기 보다는.. 5일에서 7일 정도면 회복 될 것 같기도 하고..? 왜?"

"아냐. 그냥 궁금해서"

"언제쯤 알릴까 생각하고 있어. 너무 길게는 끌지 않으려고"

"음.... 3일... 이나 5일 정도로 하자"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로 받지 않았다. 그래, 네가 전에 나에게 전화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두어통 전화를 하다가 문자를 했다.


[누나의 남자친구, 찾았는데. 전화 안 받을거야?]










-

너무 추워요ㅜ_ㅜ

'은혼 > ing 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무오키] Jacob's ladder 31  (2) 2018.04.28
[카무오키] Jacob's ladder 30  (1) 2018.03.06
[카무오키] Jacob's ladder 28  (5) 2017.12.30
[카무오키] Jacob's ladder 27  (2) 2017.12.14
[카무오키] Jacob's ladder 26  (5) 2017.11.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