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27

2017. 12. 14. 22:33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7.











해가 질 무렵이었다. 비가 올듯이 어두웠고 사람들의 손엔 비상 우산이 들려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햇빛 덕에 답답한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 그런 틈을 타고 카구라가 나를 찾아왔다. 항상 카구라와 만나는 그 카페는 이제 카구라가 오기만 해도 나에게 보고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상한 신호처럼 나는 그곳에 가게 된다. 가면서도 왜 내가 카구라가 왔다는 말에 그곳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이상하다. 카구라는 이번엔 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로…. 굉장히 여유 있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팔짱을 끼고서 당당하게, 바보 오빠야, 내가... 조금은 잘못한거냐해? 아니면 오빠에게... 좋은 일을 해준 거냐해? 하고 밝게 웃었다.


"좋은 일이라니?"

"웃긴 일이 있었어 얼마 전에. 근데 그 전에 이 사람하고 무슨 사이야?"


카구라는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정확히 오키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사진 속에도 오키타는 히지카타와 그 국장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 갑자기 뭐야?"

"어떻게 아는 사이야?"

"... 뭔데"

"가족... ?"

"아니야"

"거짓말 싫어"


그 말을 할 때 카구라는 표정을 확 굳혔다.


"뜬금없이 뭐야?"

"그런 게 아니면 고아원에서 보낸 편지가 왜 오키타가(家) 앞으로 되어 있는 건데?"

"편지?"

"응 이거다 해"

카구라는 편지를 내밀었다. 그 편지는 전에 오키타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편지였다. 받아서 주머니에 구겨 넣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편지였다. 그래서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던 그런….


"... 언제 가져갔어?"

"가져간 거 아니다 해! 나도 얻은 거다 해!"


카구라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떨어트린 편지.... 아침에 오키타가 건네줬었던 그 편지는 내가 히지카타 그 새끼의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볼 때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걸 몰랐다. 이후 히지카타는 오키타를 입원을 할 지경까지 폭행한 녀석, 그러니까 나를 조사하던 중 자신의 책상 아래 떨어져 있는 이상한 종이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 편지를 봤을 때는 오키타의 단순한 개인 편지인 줄만 알고 입원해서 자리를 비운 그 녀석의 자리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하지만 보낸 이에 쓰여있는 고아원의 이름이 미치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럴 나이도 아니었기에 가능성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돌봐줄 사람이 없이 혼자가 된 오키타가 고아원을 알아본다거나, 절대 그럴 리 없지만 가족을 잃은 고아들의 상심을 이해하고 혹시 봉사 활동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쓰럽다는 생각도 함께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이상한 고민과 함께 망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고아원에서 편지를 받기까지의 모든 일을 자신의 결혼과 즉시 연결시키며 다시금 납덩이처럼 무거운 죄책감을 느낀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을 것인지 더 얹을 것인지 모를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이 편지를...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게 된다. 그 편지 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카무이, 잘 지내니? 원장님이란다. 카구라를 찾았단다 꼭 알려주고 싶었어. 연락 부탁해]


편지 봉투 앞에 쓰여 있는 오키타(家) 앞으로 라는 수신인, 그리고 편지 안에 적혀 있는 카구라라는 익숙한 이름. 누나의 남자친구는 혼란과 함께 동명이인 일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하다가 편지를 들고 카구라가 있는 해결사로 뛰어와서는 편지를 보여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다.


'너, 고아원 출신이야? 아,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은 실례인가…? 사과할게. 하지만 궁금한 게 있어서….'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카구라로써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예민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카구라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히지카타는 이상하게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며 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카구라 역시 그 편지를 보자마자 나와 자신의 옆에서 친분이 있었던 오키타 녀석에게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바보 오빠야,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이 뭐였는 줄 아냐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자 중 한 명에게 팔려 상처받은 예수가 된 기분이었어...."

"예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배신감 같은 걸 왜 느꼈겠어?"

"... 어쨌든!"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눈치 없는 백발 무사는 뭐야, 오빠 찾는다더니 찾은 거야? 하고 심드렁하게 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정보를 흘렸다 해. 조심해"

"그 말은 내가 아니라 그 쪽에게 하는 게 맞을 텐데"


내 말에 카구라는 웃으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다. 큰 비는 아니었지만 직접 맞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비는 아니었다. 우산을 쓰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여전히 양털 같은 시커먼 구름이 하늘이 보이지 않게 잔뜩 메우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도 손을 꽉 붙잡고 놓아줄 것 같지 않은 그런 먹먹함을 담고서.

아부토는 어두운 한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까지 오는 음침한 날씨에 저런 거구에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뭐야? 왜 기다리고 있어? 수상하게?"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잖아. 별일은 없으신지 궁금해서 말이야"
"말은 잘하네? 있으면 네가 먼저 알았겠지"
"그래. 사실 얼굴 본지도 오래되었잖아. 보러왔어"
"뭐야 시시하게"
"난 시시하지 않은데"
"그래?"
"꽤 오래 못봤잖아"

그 말에 비웃듯이 웃었다. 가끔 나의 목을 죄어오는 듯한 아부토의 집착다운 행동이 나를 약간 짜증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해. 짜증 나려고 하니까"

".... 뭐가 짜증 나는데?"
"이런 너의 태도. 내가 어떻게 뭘 하던 내버려 둬"
"내가 최근 단장 너에게 얼마나 많은 간섭을 했다고 그래? 우리 요즘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냥 알겠다고 하고 가"
"단장, 나는..."

"그냥 알겠다고 해"

보통은 그냥 가벼운 한숨과 함께 그래... 그럼 먼저 가볼게. 하고 말한 후 뒤돌아서 간다거나, 왜 기분이 안 좋냐면서 날 위로하려 들어야 할 아부토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할 말을 해야겠어."

조금 기어오르려는 태도에 열이 뻗쳐서 빤히 쳐다보다가 말을 들어주겠다는 긍정의 태도를 취하며 아부토를 바라보고 섰다.


"네가 카다를 싫어하고 팔아넘긴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 여러 가지 이유 중 나와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렇지?"

"그렇게 오래전의 일을 꺼내면 어떻게 해. 기억 안 나"

"그렇게 내 옆에서 카다를 치워버렸으면 그 자리를 채워주려 하는 사람은 단장 너 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뭔 개소리야?"

"그럼 단순히 카다가 싫다는 것이 이유였어?"

"그랬겠지."

"... 참 이상해"

"뭐가"


나는 피곤하고 아부토의 이런 잔소리에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 단장, 나는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아.... 그러니까 나는... 이상해... 분명 너와 있으면 손해 보는 일이 많은데.... 왜 인지 모르게 함께 있는 게 항상 해.. 행복한것 같아.. 네 모든 행동에 내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너에게 내 모든 충성을...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이상하게 굉장히 어색해하며 말을 살짝 더듬으며 뭐 굉장한 말이라도 늘어놓듯이, 꽤나 감춰왔던 말을 쏟아내듯이 말을 뱉었다.


"... 평생은 너무 긴데.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행복? 그래 나도 너와 있으면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너와 계속 있잖아. 충성도 지금 정도면 됐어. 오늘따라 왜 이래?"


시시한 말을 거창하게 하는 아부토에게 덤덤하게 답하고는 지나쳐 나무다리를 건넜다. 빗소리는 바닥을 치며 조금 더 시끄럽게 울렸다. 강의 물은 점점 불어나선 꽤나 성질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아부토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서 왜인지 조금은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사실.. 안심했다. 아부토가 나에게 카다를 이야기 해왔을 때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혹시나 나를 원망하고 있다거나, 나를 떠나려는 의지가 있으면 어쩌나 하고 나답지 않게 생각했다. 아부토가 나에게 먼저 충성을 이야기해줘서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역시 그 여자 같은 건 아부토에게도 필요 없었던 거라는 우쭐함마저 들었다.


빗줄기는 조금 더 거칠어진다. 내가 향하는 목적지는 오키타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틀어 놓고선 오키타를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정체 모를 발걸음 소리에 몇 번이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며 다시 불안함이 엄습한다. 어제 병문안에서 많이 다친 거 같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도 오지 않으려나? 아부토에게 갈까? 아냐, 오키타가 오면 다시 나를 찾을 텐데 올 거야. 여기가 어딘데... 올 거야. 오겠지? 그리고 나를 보고 다시 웃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자식도 나를 보고 다시 웃어주겠지? 기다렸다는 듯이 침묵을 깨며 핸드폰의 문자음이 울렸다. 오키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겁지겁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집에 핸드폰 액정의 푸른 빛이 말갛게 번진다.


[오빠, 건강해야 해.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나의 덕분이니 잊지 말고!]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지만... 더 이상 짐덩이 같은 여동생이 아니야. 이젠 몽유병을 앓으며 헤매던 꼬맹이가 아니야]

[이제 잠에서 깨어서 오빠를 쫓는 여동생이 될 거야. 오빠를 다시 만난 이후 내 꿈엔 항상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가 손을 꼭 붙잡고 있거든^^]











-

며칠이 지났다. 오키타는 오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해볼까? 아냐. 내가 전에 직접 병문안까지 가서 말도 했는데 올 거야. 오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왜일까? 잠시 나에게 화가 난 걸까? 잠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시계 초침 소리가 짹각짹각하고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상하게 깊은 침묵과 어둠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어둠의 한 켠에 먹힐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문틈이 살짝 벌어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나오는 달빛을 타고 이상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이 나를 슬그머니 안아 올리며 핥아대는 이상한 기분....! 도망치듯이 이 집에서 뛰어나와서는 아부토의 집으로 달려갔다. 몇 번이나 느껴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공포심이었다. 검은 하늘속에서 발하는 형형색색의 빛들 조차 이상하게 나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이었다. 망설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아부토가 청소를 하고 있었는지 손에 잡동사니 따위를 들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 단장...?"


나는 숨을 적당히 고르다가 말했다.


"어... 아부토.. 오늘 나...여기에서 있으려고"

"그래. 어서 와"


아부토는 조금 이상해보이는 내 상태에도 다른건 묻지 않고서, 웃으면 왜 이렇게 땀을 흘렸어? 하고 물으며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동생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자주 와"

"... 내 침대 쓴 거 아니지?"

"걱정 마. 혹시나 밤중에라도 들어올까 봐 절대로 안 썼어. 혹시나 하고 은근히 기다리게 되더라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샤워 하고 와. 정리해놓을게"

아부토는 잘 정리해 둔 옷을 꺼내어 주면서 말했다. 막연한 기다림과 어두운 방 안에서 멍하니 있었던 것과 비교하니 진작 여기에서 좀 있다가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샤워기에서 따스한 물이 나오며 샤워실에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내 시야를 기분 나쁘게 가리는 뿌연 안개처럼 이상하게 답답한...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나오자 아부토는 머리를 말려주겠다면서 내가 들고 있는 수건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간다. 잊고 있었지만, 종종 아부토는 나의 머리를 말려주곤 했었다. 큰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나는 졸리다며 짜증을 내곤 했었다. 아부토는 나에게 머리가 많이 길었다고 말했다.


"그야.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맨날 있었을 땐 잘 몰랐는데"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이 머리칼을 휘감고, 아부토의 큰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부토를 만난 건 나에게 참 다행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머리를 다 말린 후, 아부토는 내 침대 아래에 깔아둔 침구에 누웠다. 불이 꺼지자 나는 침대에 누워서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아부토,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응?"


아부토는 내가 말을 걸자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 카다가 싫었던 이유에 너와 친했다는 이유도 있었어"

"...."

"참 이상해.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옆이 아닌 너를 보기가 싫었나 봐.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나 원래 이렇게 욕심이 많아"

"아. 그랬나?"

"기억 못 하면 죽는 거니까 기억해"

"네네. 단장님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죠. 없는 기억도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네가 전에 그랬잖아. 평생 옆에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응"

"네가 내 옆에서 없어진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


아부토는 잠시의 침묵 후에 피식 웃으며, 그렇네 당연한건데 내가 감히. 하고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서는 누워있는 내 침대쪽으로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나는 멍하니 아부토를 쳐다보고 아부토는 바닥에 앉은채로 침대에 몸을 기대어 내 얼굴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얼굴 한번 만져봐도 돼?"

"되겠냐?"

"머리카락 만져보고 싶어"

"안돼"

"단장 너랑 키스해보고 싶어"


아부토와 나는 잠시의 침묵 후에 입을 맞추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 서로 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 머리카락 끝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아부토의 손길이 생각이 나고, 가깝게 다가오던 우리의 실루엣도 기억이 난다. 맞닿은 턱이 까슬까슬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이 오키타와는 약간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도. 오키타 녀석은 왜인지 모르게 이렇게 여유 있게 나를 만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뭐.. 그게 좋았지만. 아부토의 큼직한 손은 어울리지 않는 망설임까지 느껴져서 우습기까지 하였다. 키스 또한 굉장히 서툴어서 설마 키스를 처음 해보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내 입술을 조심스럽게 핥다가 내가 키스를 끝낼 요량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자 나를 보며 내 어깨를 잡고서는 가벼운 입맞춤을 두어 번 정도 하더니, 목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큰 한숨을 쉬고서 잘자... 하고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이 키스로는 나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키타가 생각났다. 그 새끼는 정말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오지 않으면 난 이제 어쩌지?




다음날은 이상하게 온종일 얼이 빠져있었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옆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단원들은 오늘은 단장의 상태가 이상하니까 피하자며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를 피한 건 다른 단원들뿐이 아니라 아부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눈을 피한 후 사라졌다.


밖은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었을 때 내 시야를 가린 것처럼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다시 아부토와의 어젯밤의 입맞춤이 다시 상기된다. 왜 나는 어제 아부토와 키스를 했을까? 약간 후회...를 하기도 했다. 아부토도 분명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흐릿한 형체들만이 보이는 게 약간 기분 나쁘긴 하지만 우산이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는 참 좋다. 약간 습하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잘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 살짝 젖은 바닥, 하얀 연기와 함께 윙윙거리며 울리는 작은 소음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 어디서 피우는지 모를 담배 냄새, 옅은 술 냄새, 이상하게 삐딱한 것 같은 맨홀 뚜껑, 깨진 유리 파편을 아직 치우지 않은 수상한 건물, 그리고, 다시 담배 냄새,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 희미한 시선, 뽀얀 안개, 그리고 곧 나오는 수상한 골목, 살짝 흩날린 듯한 담뱃재, 그리고 떨어지는 담배꽁초, 익숙한 구두의 마찰 소리. 나는 지금 미행당하고 있다. 누구에게?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

처음에는 이상하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히지카타는 따로 잠복근무 중일 거라고 생각했고, 나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얼굴을 못 보는 줄로만 알았다. 전화도 안 되고, 그렇게 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쿠리코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엔 받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전화가 끊길 무렵에야 전화를 받아들었다.


[저... 오키타씨 안녕하세요. 저]

"저에게 따로 연락하실 일은 없는 거로 아는데"

[아니... 다름이 아니고.. 저 혹시... 히지카타씨... 보셨나요?]

"그걸 왜 저에게 물으세요?"

[히지카타씨가... 3일째 연락도 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세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엔 나도 놀랐다. 최근 너무 안 보이기는 했다지만 내가 너무 과민하게 찾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경 쓰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니..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다.


"지금 장난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다시는 이딴 일로 전화하지 마세요"


쿠리코는 내가 말을 하는 순간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흐느끼며 울고 있었고 나는 손을 떨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순찰을 하던 발걸음을 돌려 둔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지나가는 모두를 붙잡고 물었다. 히지카타를 본 적이 있어? 어디에 있어? 언제 봤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3일 전쯤.. 지금은 어디 잠복근무 중이신 거 아니에요? 하는 두리뭉실한 대답뿐이었다. 아무도 히지카타의 부재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게 아랫급의 한 명이 없어졌다면야 히지카타가 어딜 갔는지 애타게 찾았을 것이고, 대장급이 한 명 없어졌어도 히지카타가 어딜 갔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없을 때 누가 그를 찾아야 하는가? 곤도씨에게 히지카타의 부재에 대해 말하자 곤도씨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소고, 왜 이렇게 걱정해? 토시라면 무슨 일이 있어서 잠시 어딜 갔나 보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 곤도씨의 그 미소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은 처음이다. 그래.. 이때만 해도 1번대 대원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웃으면서 나에게 부장님이 없으시면 오키타 대장이 부장이 되는 겁니까?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그런 농담을 평소엔 내가 자주 했었다만 지금은 그런 농담엔 웃지도 못할 만큼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틀이 더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모두 이상하다고 말하며 히지카타의 실종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던 일을 중단할 수는 없으니 한쪽은 히지카타를 찾고 나머지는 일에 전념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나는 기를 쓰고 히지카타를 찾는 쪽으로 넣어달라며 난리를 쳤다. 나 혼자만 너무 급했다. 그래서 우선 가장 원초적이고 무식한 방법인 전단지를 제작하기로 했다. 전단지를 제작하는 인쇄소에는 한시가 급하니 돈을 더 얹어주며, 제발 일정을 조금이라도 앞당겨달라고 졸라서 1연 정도는 발주 당일 저녁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단지 앞에 인쇄되어 있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보니 문득, 지금까지 내 옆에서 사라져간 부모님과 누나가 떠오르면서, 이대로 히지카타까지 내 옆에서 사라진다.. 라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갑자기 온몸이 미친듯이 떨렸다. 자꾸만.... 히지카타가 없는 나의 삶이 자꾸만 떠올라서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안된다. 나는 히지카타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히지카타 그 새끼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이런 식으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쿠리코는 이후에도 몇 번 전화를 해왔다. 나 역시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던 나는 이 여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히지카타를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얄팍한 질투심 때문에 네 번 연달아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모든 월급, 시간이 모두 히지카타를 찾는 데에만 온 신경이 기울어져 있었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사람을 찾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겨우 찾은 CCTV는 알고 보니 히지카타와 뒷모습이 닮은 흑발의 남자였고, 우연히 담배를 사러 와서는 히지카타가 피우던 담배와 같은 담배를 사서 갔던 것뿐이었다. 전단지에 의한 제보 전화도 가끔 오긴 했는데, 모두 포상금을 노리는 사람들의 거짓 진술뿐이라 횡설수설했으며, 돈을 먼저 주면 그 뒷이야기를 해준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런 실패를 며칠 겪으며 내가 내린 결정은 하루사메라는 조직에 부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내 의견에 다른 대장과 윗사람들은 경찰이 무능해서 사회의 악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이 지금 1번대 대장의 입에서 나올 소리냐며 다들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히지카타가 없는 이 무능한 조직을 믿을 수가 없다고 혼자 판단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찰에 곤도씨는 머리가 아픈 듯 말을 아끼고 내 눈을 피했다. 결국, 뭘 얼마나 해봐서 벌써 다른 곳에 부탁하자는 말이 나오냐면서 최대한 우리의 손으로 찾자는 방식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또다시 신센구미의 태도 논란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는 윗대가리들은 겁이 많았다. 개새끼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혹시 모르는 조바심에 잔뜩 챙겨온 전단지를 들고 나가려는데 카무이를 마주쳤다. 


카무이는 내가 들고 있는 전단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게 뭐야? 하고는 한 장 집어 들었다.


"뭐긴 뭐야, 보는 대로 사람을 찾고 있잖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가 들고 있는 전단지를 잡아채고는 거칠게 지나쳤다. 그러자 카무이는 다시 나를 쫓아오면서 그걸로 뭘하게? 하고 뻔한 질문을 해댄다.


"뻔한 걸 왜 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벽에도 붙일 거야"

"사람들은 받자마자 버릴걸? 벽에 붙인다고 누가 자세히 보기나 하나"


그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이 새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버릴지도 모르고, 보지도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나.. 보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

" 아니면 옆에서 이딴 식으로 찬물 끼얹지마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아냐, 같이 가서 도와줄게"


카무이는 내가 들고 있던 전단지의 반절을 가져가며 말했다.


"자세히 못 봤었는데 누나의 남자친구였네"

"……."

"...근데, 만약 죽었으면……."

"…. 그런 소리 옆에서 하지 마! 나 지금 불안해서 미쳐버리겠으니까"


내가 갑작스럽게 소리치자 조금 놀란 듯 말을 멈추고 미안해, 몰랐어.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그랬듯이 사람들은 나누어 주는 전단지를 잘 받지 않았다. 받아도 몇 걸음 가서는 버리기 일쑤였고 몇 명은 받아들고 보더니, 어? 이 사람 경찰 아니야? 꽤 높은 사람인 거로 아는데? 하며 약간의 조롱의 어투를 담은 말을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커다란 벽들과 가로등, 전봇대에도 붙였다. 지저분하게 이런 건 붙이지 말라며 지나가는 어떤 오지랖 넓은 나이든 노인에게 잔소리도 들었다. 카무이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뭔 상관이냐며 나서지만 않았어도 내가 나섰을 것 같이 화가 치밀었지만, 이 시점이야말로 문제를 일으키면 치명적일 수 있기에 카무이를 말렸다.


들고 나갔던 전단지를 다 소진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상에서 일하는 녀석이고.. 아까 내가 말을 막는 바람에 못 한 그 뒷말도 아마 자신의 정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옆에서 나란히 걷는 그 녀석을 힐끗 보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먼저 살갑게 손을 잡으면서 말을 건넸다.


"야 너. 정보상이잖아"

"응?"

"좀 알 수 있는 거 없어?"

"음.. 글쎄 나는 잘....친구에게 부탁이야! 혹시라도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면 안 될까? 대가는 나중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를게.. 제발"

"어.....그래 한번... 물어는 볼게"


갑작스러운 나의 부탁에 카무이는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 했다.


"진짜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줘.... 제발"

"뭐...그래.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카무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이상한 믿음이었다. 왠지 카무이라면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경찰 내부를 믿을 수 없기에 경찰이 아닌 다른 사람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에 신센구미를 구해주었을 때와 같이.. 내 고민을 가볍게 덜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 카무이는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카무이에게 키스했다. 새벽 내내 붙여서 덕지덕지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사이에서.









-

CCTV에서 히지카타를 발견했다.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차를 타곤 어디론가 향했다. 히지카타가 타고간 차량은 굉장히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차량에서 내려서는 어느 골목으로 뛰어가는 게 찍힌 게 지금까지 발견한 모습이었다. 그 골목을 정말 미친 듯이 뒤졌다. 그 골목으로 이어지는 건물들, 건물의 틈, 쓰레기통까지 다 뒤졌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혹시나.. 혹시나 시체의 일부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숨을 헐떡였다. 밤에도 혹시나 히지카타의 죽음을 알리는 연락이 올까 봐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쓰레기통을 계속 뒤졌다. 먹다 버린 우유 팩, 소주병, 담뱃갑, 과자봉지 먹다 남은 음식물, 꼬여있는 파리, 커피 캔, 검정 비닐봉지에 싸진 검은 옷가지..... 그리고 휴지통의 마지막에 흘러나온 건 윤기 있는 머리칼.... 창백한 피부의 히지카타의 잘린 머리.....! 아아...히..히.. 히지카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 그걸 보자마자 주저앉아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짧게 아..아.. 아.. 하고 신음만을 뱉는다. 이런 재수 없는 꿈을 몇 번이나 마주했다. 꿈에서 깰 때는 심장이 멎는 기분으로 발작하듯이 잠에서 깨었다. 그리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혹시나 꿈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급히 뒤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아직 찾아낸 것은 없습니다] 라는 무능한 어느 대원의 마지막 문자가 나를 위로해준다. 옆에선 카무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왜 그래? 하고 물으며 식은땀을 흘리는 내 이마를 훑어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나를 끌어안으며 자자.. 하고 안아주었다. 물론... 그래도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지만.


그리고 나는 곤도씨에게 처음으로 대들었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신센구미가 항상 욕을 먹는 거 아닙니까? 없어진 동료 한 명 찾지 못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없어진 후 아무런 의심 없이 가만히 앉아서 이틀이나 시간을 버린 것도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건 모두 우리가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아 씨발 너무 답답해서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고요! 내가 모두의 앞에서 잔뜩 흥분해서는 곤도씨에게 소리치자 대원들도 곤도씨도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잔뜩 흥분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조차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버렸다. 죽었으면 어떡할 거야? 신센구미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죽어서 시체로 나타나면 어떡할 거냐고! 차라리 시체라도 발견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평생 이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끝나버리면 어떡할 거야? 계속 이렇게... 계속...... 그다음의 말은 급 목이 메어서 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을 흐리자 대원들과 곤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멍청하게 있는 모두에게 다시 소리쳤다. 뭘 멍청하게 있어? 움직여! 상황에 진전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는 이런 상황과 자꾸만 나타나는 히지카타가 죽는 꿈 때문에 극도로 예민했기 때문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결사 형씨도 사방으로 히지카타를 찾기 위해서 힘쓰고 있었다. 그날 찾아간 해결사에서 카구라는 애완동물에 올라타서는 이상하게 우산을 받쳐 들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약간의 멍한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약간 슬픈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오키타군, 우리도 알아보고 있어. 걱정은 당연히 되겠지만 그래도 너무 최악까지 생각하면서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마라. 얼마 전에 신센구미에서도 난리 한번 쳤다고 들었어. 다들 너와 같은 마음이니까.. 아이고... 모르겠다, 나도 위로에는 체질이 아니어서 말이야"

"..."

"왜 이럴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생각하라잖아. 히지카타의 이상한 상황이나, 누굴 만났다거나.. 뭐 그런 게 있었을 거 아니냐"

"알아볼게요. 아직까지는..."

"아무런 흔적도 없어?"

"...아직은요. 히지카타를 마지막으로 언제 보셨다고 했죠?"

"나? 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너 입원했을 때였어. 카구라에게 뭐 물어보러 왔었는데 그치?"


형씨는 카구라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카구라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형씨는 약간 카구라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히지카타 그 자식 집은? 찾아봤어"

"집은 왜요?"

"혹시 뭐라도 남겨놓았을 가능성도..."

"......자살이라도 했을 까봐요?"


다소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아니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야. 그냥 뭐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은 거야. 이 녀석아"


형씨는 애써 웃어보이며 말했다. 웃음이 나와요? 하고 외치려다가 내가 생각해도 예민한 내 상태를 인식하고 한번 큰 숨을 쉬었다.


"고릴라도 조사하고 있다고 했고.. 곧 뭐라도 나올 거야. 우리도 계속해서 조사하고 있어. 꼭 찾아낼게. 너무 걱정 마."









-

누워 있는 틈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픈 건 아닌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나를 보곤 카무이가 옆에 와선 몸을 눕혔다. 나는 옆을 쳐다볼 기력도 없이 그대로 물었다. 찾아봤어?


"응"

"어때?"

"아직.."

"아 바짝 붙어서는 나를 끌어안고서 입술을 부볐다. 귀찮은 듯이 카무이의 입을 손으로 막고서 다시 물었다.


"찾아봤어?"

"그렇다니까"


그리곤 다시 내 팔을 잡고선 입술을 부비며 옷 속에 손을 집어넣는 움직임에 덥석 움직임을 제지하며 말했다.


"싫어"

"싫어?"

"응. 나 피곤해"

"그럼 입으로 해줘"

"싫어"

"그럼 손으로"

"싫어. 다 싫어"

"왜애"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 내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금세 목 부분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낀다. 카무이는 가슴팍을 더듬거리며 유두 끝을 살살 만지작거리며 이어서 쇄골을 타고 부드럽게 핥았다. 내뱉는 숨결이 뜨겁다.


"...씨발 읏.. 시.. 싫다니까…!"

"나는 너 도와주느라 친구한테 부탁도 하고 그러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를 만지는 손을 잡아서 뿌리치자 곧바로 내 손을 잡아채서 깍지를 끼곤 돌아누워 있던 나를 똑바로 눕혀서는 내 위에 올라탔다.


"...놔. 내가 오늘 싫다는데 왜 이래?"

"…. 난 오늘이 하고 싶은데"

"난 오늘 죽어도 하기 싫어. 다음에 하자"

"...다음?"

"응 다음에."


카무이는 내 말에 옆으로 바짝 누워서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카무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내 입술에 몇번이나 입술을 가볍게 부딪히다가 아랫입술을 귀엽게 물었다.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닌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야"

"으응.."

"이 이상이면 너 이제 하자고 할 거잖아.. 그만"

"키스만.."

"안돼"

"안돼?"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다시 두어 번 뽀뽀를 하고는 나를 꼭 끌어안고서 잠이 들었다. 덥다. 하지만 나를 끌어안은 이 손을 뿌리칠 생각은 없었다. 싫다는 표현을 해도 이 새끼가 날 이렇게 계속 들러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심리는 무얼까 잠시 생각했다.


카무이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불안함이 무엇보다 큰 상황에선 카무이와의 섹스 후 느끼는 그 감정조차 죄악으로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이 새끼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전에 보인 폭력성은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한... 이런 이중적인 새끼를 나는 어떻게 믿고 옆에 누워 있는 걸까?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이 녀석의 존재와, 그 이상의 이용가치를 이용할 뿐인 것일까? 나를 입원시킬 때까지 때린 놈이랑 같이 누워서 키스도 하고 몸도 섞는 사이라는 것을 알면 히지카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미친 새끼라면서 난리를 치겠지.. 하하..


히지카타는 지금 어디에 누구와, 혹은 무엇과 있을까? 형씨 말대로 유서라도 썼을까? 혼자 훌쩍 여행이라도 갔을까? 그 새끼 방심하다가 납치라도 당했을까? 원한도 많이 샀을 텐데 죽임이라도 당해?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납치를 당했다면 어째서 납치범은 돈도 요구하지 않을까? 뭘 원하는 걸까? 지금 히지카타의 옆에는 뭐가 있을까? 납치범이 있을까, 쓰레기가 있을까, 흙이 있을까.. 까마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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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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