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오키] Jacob's ladder 28

2017. 12. 30. 18:04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8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던 내 옆은 또다시 거친 숨과 함께 발작하듯이 잠에서 깬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켜서 바라보고서는 안심하듯 숨을 크게 내쉬며 놀라서 쳐다보는 나를 촉촉해진 눈을 하고서 바라본다.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른다. 오키타는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또 안 좋은 꿈꿨어? 하고 묻자 말없이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걱정...이라기보다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는데,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는 것 같아서 슬슬 걱정이 된다. 등을 쓰다듬어 주면 점점 안심이 되었는지 잠에 들었다. 파르르 떠는 속눈썹과 작게 벌어진 입술을 보면 누구라도 작게 키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도 궁금하긴 했다. 날 미행하던 누나의 남자친구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 최근 들어 의미 없는 노동을 자처해서 하다 보니 나 역시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벌써 한 달 하고도 3주가 흘렀다. 오키타는 이번 주에만 실종된 누나의 남자친구를 목격했다는 제보를 13번이나 받았다. 운전해서 가면 가까운 곳은 두어 시간, 먼 곳은 다섯 시간까지 걸리는 거리였는데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모두 찾아갔다. 그리고는 뒤늦게 힘없이 새벽에 들어와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집에 쌓여있는 전단지들 사이에 털썩 쓰러져서는 잠에 들었다. 차라리 죽어서 시체로 발견되는 게 저 새끼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행복할 거라는 결론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찾은 하루사메는 한가했다. 아부토는 나를 보고는 어색해 했을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맞아주었다.


"잘 왔어! 그렇지 않아도 곧 연락하려고 했는데"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별일은 없지?"

"응. 요즘은 한적해. 근데 오늘 경찰 쪽에서 먼저 회의를 요청해왔어. 부탁이 있다던데.. 곧 올걸? 같이 들어갈 거지? 오늘은 우리에게 설설 길 텐데"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마자 옆에서 다른 사단의 부단장이 잠깐 급히 이야기할게 있으니 아부토를 데려가겠다고 했고, 아부토는 조금 있다 보고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회의는 귀찮으니 방에서 한숨 잠이나 잘까 하고 복도의 한가운데를 배회하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를 오키타를 피할 틈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정면으로 마주쳤다. 하루사메 안이라고 너무 긴장감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살짝 당황한 나와 다르게 오키타의 입장에선 이곳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물었다.


"어? 뭐야? 왜 여기에 있어? 뭐 해?"

"아.. 친구 때문에 잠시.."


오키타는 의아해했지만 바로 내 말을 믿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제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런 쓰레기 집단에게 부탁해보려고 왔어. 이런 데가 불법으로 사람 찾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 혼자 왔어?"

"아니, 난 내가 꼭 오고 싶다고 우겨서 덤으로 왔어. 아마 협상은 우리 팀의 대머리가 하겠지. 난 한마디도 안 하는 조건으로 따라왔어"


오키타가 나에게 말을 할 때도 나는 자꾸만 주변을 살폈다. 내 얼굴을 아는 함께 온 대머리, 그리고 하루사메 안의 다른 녀석들이 나를 발견하고 인사라도 하면 안 되기에 오키타의 팔을 끌어당기며 이쪽으로 오라며 보채었다.


"어디 가는데? 나 곧 회의 시작이야"

"어차피 가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걸?"

".. 물론 회의가 자주 지연되긴 하지만..."


실제로 아부토는 악취미가 있었다. 상대가 부탁이라는 걸 해올 때는 한 시간 이상 상대를 기다리게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 나타났을 때 얼굴 가득 품고 있던 불만을 싹 거두고 빌빌거리는 태도가 너무 우습다나 뭐라나.


오키타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의 장식이 꽤나 화려한 것을 보고 오키타는 문을 여는 날 보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렇게 막 들어가냐고 물었다.


"여기? 7사단 단장의 방이야"


그 말에 별로 당황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를 둘러보며 생각보다 깨끗하다고 했다.


"근데 여긴 왜 데리고 왔어?"

"둘이 있고 싶어서"

"7사단 단장 새끼 완전 제멋대로 구는 또라이라며 악명이 자자하던데.. 이런 곳에 허락 없이 있다가 죽는 거 아니야?"

"그럼 도망가야지. 내가 무사히 데리고 갈게"

"내가 믿을 놈이 없어서 널 믿겠어? 근데, 자주 와봤나 봐? 여기"


꽤 자연스러운 내 태도에 오키타가 물었다.


"아.. 뭐.... 응! 내 친구가 7사단 단장과 꽤 친분이 있어"

"그래? 히지카타를 찾고 나면 히지카타랑 그 7번대 단장이라는 놈도 잡고 싶네.. 그때 좀 도와줘"

"뭐, 생각해볼게"

 

오키타는 한숨을 푹 쉬며, 그래.. 히지카타를 찾은 후의 이야기니까..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가죽 소파에 풀썩 앉았다. 항상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 오키타를 접해왔었기에 내 공간에서 만난 이 녀석은 조금 더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긴장한 듯 보이는 표정과 주위를 둘러보는 초조함까지 더해서, 얼굴에 내려앉은 음울한 기운이 왜인지 내 가학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한참 쳐다보다가 나도 소파에 앉은 이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키타는 옆에 온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이 없었다.


"왜 그래?"

"그냥 괜히 걱정되네... 이 악당 놈들은 얼마나 신나겠어. 경찰 쪽 무리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러 왔는데.. 아마 히지카타가 있었다면.. 절대 이런 상황 용납하지 않았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짓은 안 한다고 했겠지. 분명 이런 루트로 자신을 찾는다고 해도 돌아온 후에, 나.. 엄청 깨질 거야..."


오키타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는 그래.. 그렇게 날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네.. 하고 작게 말했다.


"찾을 거야. 우리도 찾고 있잖아"

"그래...."


오키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상하게 거부하지 않고 이 녀석도 내 뒷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핥아댄다. 그러다가 미끌거리는 혓바닥이 서로 닿자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확 밀쳐내었다.


"그만하자. 우리 미친 것 같아."

"왜 뭐 어때"

"뭐 어때 라니 미친 새끼야. 그 단장 새끼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런 곳에서.."

"걱정 마. 안 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거 놔"

"아냐 진짜야, 안 온다니까? 내가 알아"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오키타는 내가 끌어안은 내 팔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려 나를 밀어내고, 나는 괜찮다고 달래며 하얀 목덜미를 애무하기만 했다. 앉은 자리에서 균형을 잃고 가죽소파에 서로의 몸이 겹쳐져 눕게 되자 오키타는 다시 내 머리카락을 잡으며 그만하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겁을 먹었어?"

"겁? 이게 지금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또라이 새끼의 방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


나는 오키타의 옷가지의 단추를 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절쯤 단추가 풀렸을 때, 오키타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행동에 조급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해서 말했다.


"왜? 이런 상황, 스릴 있고 재밌잖아"

"아니, 하나도 재미없어"

"빨리하자. 빨리 끝낼게"

"놔. 나 지금 그럴 기분 아니야"

"요즘 맨날 그럴 기분 아니라고 했잖아"


거부하려는 양 팔을 짓누르며 말했다. 그리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다시 한번 내 아래에서 빠져나오려 안감힘을 썼다. 


"봐, 밖에서 소리 나잖아! 나가자"

"그냥 밖에서 소리가 나는 거잖아. 여기로 온 것도 아닌데.."

"야, 생각을 해봐. 자신의 방에 왔는데 웬 낯선 두 명이...."

"문 잠갔어. 됐지?"

"그럼 못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열쇠가 있겠..."


그만 이야기하라는 뜻으로 다시 입술에 진득하게 키스를 하며 손으로는 나머지 단추를 풀었다. 그러자 내 입술을 깨물면서까지 내 입술을 떼어놓고는 말했다.


"그만둘 생각. 없다 이거지?"

".. 응 없어"

"왜 하필 여기서... 하 씨발.. 그럼. 이렇게 하자.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곳? 그럼 너 도망갈 거잖아"


셔츠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동그란 유두를 한쪽은 살살 문지르면서 한쪽은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접촉하자마자 빨갛게 솟아오르는 모양이 작은 열매 같다. 


"하앗... 아.. 안 도망갈게.. 가자.. 장소를 옮겨서.. 옮겨서.. "


이미 몸이 조금 나른해졌는지 처진 눈으로 짙은 신음을 뱉던 오키타는 이제는 저항을 할 의지보다는 들킬 우려가 더 큰 것 같았다. 


"나가자... 읏.. 옮겨서.. 계속..."


대답 대신에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추고 바지 버클을 푸른다. 처음으로 오키타가 공포감과 함께 열받아 죽겠다는 혐오를 담을 표정으로 나를 보며, 빨리 끝내라고 말했다. 차가웠던 가죽 소파가 온도로 데워져 따스했다. 내 품 안에서 풀어진 셔츠를 입고 상기된 뺨을 붉히는 그 모습은 적어도 나만 볼 거라는 우쭐함. 맞닿은 허벅지가 뜨겁다. 어느새 질척이는 소리가 속도와 함께 빨라진다. 아,아,아, 너.. 너무 급한 거 아..아니야..? 하아.. 빨리 끝내라며? 그렇게 여기서는 안 한다던 녀석이 결국은 거친 신음을 뱉으며 내 뒷목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신음이 좀 크다고 생각했는지 내 목덜미를 깨물며 신음소리를 참고자 했다. 귀 옆에서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미처 참지 못하는 작은 신음을 흘리는 이 녀석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아.. 아,아, 조..좋아.. 

하.. 좋아? 

으..응... 좋아.....


이 상황을 더 즐기는 건 이 새끼 같았다. 집에서 할 땐 이렇게 흥분하지도 않았던 놈이 오늘따라 스킨십도 더욱 진하게, 일부러 흥분시키듯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끝나고 나서는 한번 더 하자고 했다. 몸을 일으켜 내 목을 거칠게 끌어안고 입술을 얽혀오며 내 위로 올라탔다. 그러면서 말로는 빨리 끝내자... 하고 버릇처럼 말했다. 척추뼈를 손끝으로 느끼듯이 훑으며 이번엔 빨리 끝내기 싫은데? 하고 웃어 보이자, 말없이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목과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키스를 퍼붓는다. 


관계가 끝나고 첫 섹스에서 이 녀석이 어찌나 목을 세게 물었는지 목이 욱신욱신했다. 셔츠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는 오키타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저기 샤워실도 있어. 샤워하자"

".... 샤.. 워? 야.. 그런 것까지 쓰면..."

"괜찮아. 진짜 안 온다니까? 아마 얘네도 얘네 나름대로 회의하고 있을 거야. 가자"


내 말에 오키타도 조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있다가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불안했는지 꽤나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서 내가 건네준 수건으로 후다닥 닦고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튄 정액을 보고서 급하게 닦았다. 나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어서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머리, 안 말리고 그대로 나갈 거야?"

"... 머리?"

"그냥 가면 왜 머리가 젖어 있는지 의심할 거 아냐. 가볍게라도 말리고 가"


멈칫하던 오키타는 내가 드라이기를 보여주자 잠시 고민하더니 와서는 머리를 말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갑작스럽게 이곳에 와서 샤워한 듯이 젖어 있는 머리로 가면 수상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드라이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모래색을 띤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린다. 잠시 멍하니 드라이기를 들고 있던 오키타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 진짜 미쳤다"

"응?"

".... 여기 온 이유가.... 참.."

"..."

".... 결국 내가 너랑 한 것도..나 역시 하고 싶었던 거잖아. 내가 정말 싫었으면 끝까지 싫다고 하면서 안 했을 텐데.. 사실 나도 은근히 흥분했나 봐. 이런 스릴 있는 상황이.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히지카타 찾으려고 부탁... 그러니까 고개 숙여서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한테 부탁하러 온 건데.. 만약 들키면 이 방 주인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부탁하러 왔다는 경찰 놈이 겁도 없이 여기에서.. 참.. 나도 진짜... 긴장이고 뭐고 다 없어진 거잖아. 진짜 한심하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전, 오키타는 이미 이 상황에서 오는 회의감과 자기 혐오감에 빠져서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갈게. 집에서 봐"


오키타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나는 우두커니 아무 말도 못했다. 나 역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혼자서 섹스 후의 쾌락과 오키타의 적극성에 들떠 있었다. 지금 이 녀석이 여기에 왜 왔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왜 오키타가 저렇게 미친 듯이 찾는 그 새끼... 어쩌면 부인이 없었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오키타가 가장 안기고 싶어 했을.. 아니 어쩌면 찾아가서 안겼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어째서 찾아야 하는가? 어쩌면 내가 평생을 옆에 있는다고 해도 그 새끼에 대한 오키타의 마음을 지울 수도 없고, 내가 더 많이 가질 수도 없을 거라는 불안함이 생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뒹굴었던 소파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한 장 넣어놨던 전단지를 찾아서, 한참 바라보다가 아부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들하고 회의 끝났어?"

[아니, 이제 슬슬 시작하려고. 참석하려면 와]

"아냐, 안 가. 그 경찰들의 부탁은 아마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일 거야. 그 말에 응해줘. 대가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비싸게 부르고.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나 좀 봐"

[.. 무슨 일인데?]

"아니, 별일 아닌데 그냥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대로 전화를 끊고 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자 아부토가 내 방의 문을 두드렸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장, 어떻게 알았어? 그 항상 오던 경찰, 그놈 찾아달라는 부탁하던데... 뭐, 단장 네 녀석이 들어주라고 해서 일단 들어줬어. 선으로 8억 받고 찾은 후에 7억 더 받기로 요구했어. 너무 적다 싶으면 더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은 기세고.. 그리고 우리 거래하는 술집이나 상가들의 거래 조건도 수월하게 다 바꿨고.. 뭐 더 요구할 거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해도 되고, 다음 회의 때 말하면 될 것 같아. 혹시 뭐 더 요구할 거 있어?"

"아냐, 그 정도면 됐어."

"나에게 할 말이 뭐야?"


나는 아부토에게 내가 봤었던 전단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이 찾으라던 이 새끼. 찾자마자 죽여버려. 그리고 시체로 끌고 와. 내 말에 아부토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니 갑자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뭐야? 내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묻자 아부토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단장, 이 새끼 지금 우리 지하 감옥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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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말한다는 게, 나도 참 바빠서 말 못했어. 설마 이거 말 안 했다고 화난 건 아니지? 아부토는 웃으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 말을 안 해서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안심하기도 했고(혹시나 오키타 쪽이 먼저 찾을까 봐 조금은 불안했었으니까), 그동안 오키타와 이 이상한 전단지를 들고 다니면서 붙이고 다니던 고생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부토의 말을 들어보자, 나를 미행하는 경찰을 아부토가 발견을 했다고 한다. 어찌나 나에게만 집중을 하던지, 뒤에서 누가 다가와도 모르더랬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왜? 아쉬워? 단장 네 녀석이 잡았어야 했는데 내가 가로채서? 근데 말이야, 바보 단장 너는 바로 죽여버렸을 거잖아. 이 새끼 꽤나 경찰에서 위치 있는 놈인데 그렇게 죽여버리면 좀 아까운 놈이라.. 죽이더라도 경찰을 협박하는 데라도 쓰다가 죽이자는 생각으로 데리고 있었어. 경찰이 먼저 찾아달라고 손을 내밀 줄은 몰랐지만.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묘한 긴장감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참 좋아했다. 내가 직접 사람을 가둬본 적은 없지만 은근히 인질극을 자주 벌이는 아부토는 자주 이용을 했었다. 생명을 구걸하는 그 이상한 신음소리와 은근한 피 냄새를 맡고 있으면 이상하게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부토는 내가 이곳에 자주 가는 것을 금지했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아부토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왜?"

".... 감히 내 뒤를 밟아온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을 내가 살려두는 거 봤어?"

"그런 이유라면 뭐.. 하긴, 네가 뭔 이유가 있겠냐"


아부토를 따라서 간 그 감옥에는 누나의 남자친구가 눈이 가려진 채로 손과 발이 묶어져 있었다. 혹시나 혀를 물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에 재갈까지 물려놓았다. 튼실한 팔뚝에는 어떤 목적인지 알 수 없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기절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얌전하게 있는 것을 보아 지금 정신이 들어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주사바늘은 뭐야?"

"수면제야. 깨어있을 때 하도 발작을 하길래 연기로 재우고 재우고 하다가 주사로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깨울까?"

"응. 깨우고 넌 먼저 올라가 있어. 이야기 끝날 때쯤 부를게"


아부토는 내 말에 가둬놓은 그 안으로 들어가서는 전기 충격기를 꺼내어 전기 충격으로 이 새끼를 강제로 깨웠다. 충격으로 깨운 이후 나에게 눈도 풀을까? 하고 물었고, 나는 상관없다며 풀으라고 했다. 지하 감옥을 관리하는 다른 단원은 나에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아부토는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고, 입에 있던 재갈까지 푼 이후, 나에게 무슨 리모콘을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누르면 수면제가 작동하는 거야. 꽤 강해서 누르면 20초 이내에 바로 잠들어. 대화 후에 이거 누르고 나 부르면 돼"


아부토는 그 말을 마치고는 올라가 있겠다며 너무 큰 사고를 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혹시나 감옥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니 감옥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간다며 열쇠를 챙겨서 올라갔다. 지금 당장 이 새끼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누나의 남자친구는 전기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이 한참을 숨을 몰아쉬다가, 가두어 놓은 바깥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서 살기를 띄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이 새끼..."

"그쪽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해봐. 애초에 날 미행했던 것도 뭔가 목적이 있었을 거 아냐?"

"...... 우리 소고가 네가 범죄자라는 걸 알고 있나?"

"..우리 소고...? 우리 소고.. 라.. 뭐 어쨌든. 일단 오키타는 아직 몰라"

"계속 같이 있는 이유가 뭐야? 나는 너에 대한 의혹이 아주 많아. 미츠바부터.. 네 새끼가..."

"어?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그건 오해. 정말로 누나는 사고였어. 나랑 대화하다가 발을 헛딛었거든... 누나의 사고는 나도 안타까웠어... 아.. 생각하니까 나 눈물 날 것 같잖아... 내가 떠난 건 그저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거야. 증거도 없이 심증으로 사람 의심하지 마시고.."

"... 하나 더 있어. 소고... 소고의 문제로 돌아가서.. 네 녀석이 떠나기 전에 그 녀석에게 한 짓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으실까?"

".....아"

"...이 낯짝도 두꺼운 새끼.... 그렇게 해놓고서 우리 소고 앞에 다시 나타나?"


그런 일이 있었네. 순간 나도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을 꺼내고 있었다. 새삼 내가 그때 처음 오키타를 가지고자 했을 때의 내 생각과 태도가 지금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처음 대화를 할 때부터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말해주려 했다. 우선 지금 이 새끼에게 내가 감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 후 우리가 죽일 수 있는 장난감 인형 같은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뭐..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의 나와 오키타는 많이 달라졌어. 지금 오키타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뭐.. 네가 정말 만약에 나가서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 기억도 없는 오키타에게 찾아가서, 말해줬다고 하더라도 그 녀석의 말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거야 네 생각이지.. 네가 오키타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걸 확신하지?"

"그럼 넌 왜 확신해?"

"....."


누나의 남자친구는 내 대답에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아무 말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열받는다. 어떻게 저렇게 있는데도 잘생겼을까?


"음.. 여기 가둬진 지가 대략 두 달이 되어가나?"

"..... 소고는 어쩌고 있어?"

".... 너 찾고 있지"

".. 기왕 나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나를 죽여. 그리고 끝내"

".... 지금 명령하는 거야?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그래줘야 할 이유 없잖아"


내 말에 누나의 남자친구는 다시 한번 살의를 잔뜩 보이며 나에게 소리쳤다.


"너는...! 소고 옆에 있다면서...! 그 녀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왜 오키타가 힘들어할 거라고 확신해? 찾고 있다고 했지 힘들어한다고 전한 적은 없는데"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너야말로 소고가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확신은 왜 하는데?"

"그 새끼는 나한테 맞아서 입원을 했어도 결국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했어. 그쪽이야말로 멋대로 망상하지 마. 오키타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새끼는 찾으라는 명령에 너를 찾는 것뿐이지 그 이상의 별다른 감정은 없어"

"미친 소리 한번 재밌게 하네"

"원래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게 재밌잖아. 하지만 난 지금 굉장히 사실적인 정보만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 할 이유 없으니까. 사실은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뭐, 다 알았으면 쓸데없는 희망 품지 말고 여기서 천천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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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점점 지체되기 시작하자 처음엔 미친 듯이 뒤지던 대원들도 대장들도 곤도씨도 점점 치쳐가는 듯이 긴장이 풀어졌다. 경찰의 총동원에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 이런 답답함과, 이젠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점점 드는 듯했다. 전에 사라졌던 웃음도 조금씩 돌아왔다. 웃음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나와 곤도씨, 쿠리코, 마츠다이라 아저씨 정도였다. 물론 쿠리코의 상태에 대해선 모르지만 곤도씨를 통해서 들었다. 너무 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잘 때에도 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어 한다며 엄청나게 많이 말랐다고 걱정을 해댔다. 나에게 최근까지도 쿠리코에게 두어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침착해졌다. 히지카타가 없으면 나도 죽어야지. 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죽어야지. 그리고 나는 다시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대량으로 샀다. 뽀얀 알약이 정말 순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먹으면 나 또한 이렇게 하얘질 수 있을까? 내가 이 약을 하나씩 먹으면  히지카타를 만날 수 있을까? 쿠리코는 저렇게 안정제를 먹고 나서 꿈에서만 너를 그리겠지만 나는 너를 만나겠지. 영원히 사라지는 죽음이 아닌.. 우리 같이 실존하겠지. 아... 그러면 누나도 함께 있겠구나. 결국 나는 어디에서도 히지카타 옆에서 제대로 내 감정 한번 나타낼 수 없는 존재였다.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 놓고 하얀 알약을 하나 집어 들었다. 별로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 한 모금과 함께 삼키려는 와중,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전단지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네! 거기가 어디시죠?"


그 전화 한 통에 집어 들었던 알약을 내팽개치고 또다시.. 뛰어나갔다. 혹시나 히지카타가 올 수도 있잖아.. 이번엔 정말 히지카타 일 수도 있잖아.. 물론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건 없었다. 이번에도 나를 기다리는 건 히지카타가 아닌 어느 검은 머리를 한 남자였다.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말을 하지 못했고 마치 고장 난 나무 목각 인형처럼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데다가 입고 있는 옷도 상당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에 키와 골격이 비슷해서 히지카타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에 심장이 멎는듯했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는 저런 추한 몰골의 사람이 히지카타가 아니기를 바랐다. 히지카타가 저런 몰골로 나타났을까 봐 마음속으로도 그 짧은 순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히지카타가 저런 꼴로 나타날 리가 없어..! 그리고 가까이에서 히지카타가 아님을 알고서 은근히 안도하는 것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내가 기억하는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닌 저런 추한 몰골로, 온통 망가져서 나타날 바에는 차라리 죽어서 나타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히지카타를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맞는가, 추한 몰골로라도 나타나주길 바라는 것이 진정으로 히지카타를 생각하는 사람인 것일까, 그렇다면 내 마음은 지금 거짓일까? 쿠리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고민했다. 이상한 고민이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이었다.






카무이도 찾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만큼의 간절함이 없는 이 새끼에게 얼마나 큰 것을 바라겠는가? 외출 후에 집에 온 카무이는 멍하니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물었다. 힘이 있는 게 이상하지. 저런 질문을 하는 것 부터가 얼마나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가와서 내 허리를 끌어안는 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물었다.


"넌 왜 힘이 나는데?"

"...글쎄"

"너 나 없어지면 찾을 거야?"

"...말이라고 해?"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그런 일 없어"

"죽으면?"

"....안 죽어. 너"

"그걸 어떻게 단언해? 오늘 건강하게 살아도 내일 죽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그런 일 없어"

"많잖아. 그런 일이 왜 없어. 히지카타 죽었으면 나도 죽을 거야. 실종이 이 이상으로 지체되어도 그냥 죽어버릴 거야. 돌아온 히지카타가 자신 때문에 죽은 나를 보면.. 적어도 행복하게 살진 못할 거 아니야"

"아니, 행복하게 잘 살걸?"

"왜 그렇게 생각해"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아니야"

"죽고 못 살던 너네 누나 죽었어도 저 여자랑 지금 행복하게 잘 살잖아. 그만큼 거대한 존재도 아닌 너 하나 죽었다고 그 새끼가 평생 불행해? 절대 아니지. 게다가 그런 말이 있어. 가장 못 잊을 것 같은 소중한 사람이 죽어도 3년이면 잊혀진다고 했어"

"그럼 너도 나 죽으면 3년 지나면 잊겠네"

"넌 내가 죽으면 이렇게 같이 죽는다고 할 거야?"

"그래 할게"

"...뭐야 싱거워"

"넌 안 죽을 것 같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그래도 넌 안 죽을 것 같아"

"...절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더니"

"네가 이 대답을 기대할 것 같았어. 뻔하잖아"

"..."

"....졸려..."


어깨에 기대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들었다. 그때 병원에서처럼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를 불러주던 히지카타가 그립다.. 그리고 무섭다. 돌아왔을 때의 네가 어떤 모습일지.. 돌아 왔을때도 네가 변함없이 우리를 통솔하는 위엄있는 부국장이기를 바란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네가 죽었다면... 내가 너의 죽은 모습을 내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복잡한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다. 아무런 고통 없이 이대로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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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좀 빨랐죠?^-^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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