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오키/압캄압 요소 주의*





30












히지카타를 찾았다고?

이번에도 거짓 제보 일 수도 있다. 수백 번을 거짓 제보에 헛걸음을 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는 정말로 히지카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그 막연한 희망.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새끼는 찾았다는 내용의 문자 하나를 보내놓고는 내가 바로 전화를 걸자 이번엔 전화를 안 받는다. 시발 사람 돌아버리게.


[전화 왜 안 받는데? 너 장난이었어 이딴 소리 하면 진심으로 죽여버린다]

[너도 내 전화 안 받았잖아]

[진짜로 찾았어? 어디야 너]

[무서워서 말하겠어? 눈에 띄면 죽이겠다고 하던데.. 집에도 오지 말라며?]

[미안 내가 잘못했어... 어디야?]

[내가 어떻게 믿어? 이러다가 만나면 돌변할지?]

[제발 부탁이야. 미안해. 나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 정말 찾은 거야? 오늘 몇 시에 와? 빨리 와 주면 안 돼? 못 오면 어디서 찾았는지 그런 정보라도 알려줘 혹시 지금 히지카타와 같이 있는 거야?]


답이 없다.

정말이지 거의 30분가량을 핸드폰만 붙잡고 통화 연결음만 들었다. 나는 어디든지 바로 뛰어갈 요량으로 차 안에서 이 새끼와 연락이 닿기 위해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잘못된 걸까? 그래서 전화를 못 받는 건가? 아냐, 아닐 거야 이 새끼 지금 나 약 올리려고 안 받는 거야. 


[저녁 11시 반에 하루사메 후문 앞으로 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제복 입고 오지 마]


문자 하지 말고 전화받으라고 씨발놈아 라고 썼다가 애써 정신을 붙잡고서 쓴 내용을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작성해서 보냈다.


[전화 좀 받아]

[받을 상황 아니야]


하 씨발.... 씨발 뭔데... 현재 시간은 7시 15분이었다. 4시간 정도 남았다. 4시간이나 남은 이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갑자기 온몸이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핸들에 머리를 기대고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모두에게 알려야 할까?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아냐 이번에도 아닐지도 모르는데 우선 침착하게 기다려보자.. 무사한가?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의 히지카타가 맞을까?




10시 반부터 하루사메의 후문 근처를 서성였다. 모자를 눌러쓰고서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을 하나하나 본다. 밤의 요시와라 라는 말이 헛되지 않듯이 곳곳에 술 취한 사람들과 잔뜩 꾸민 여자들이 내 앞을 수도 없이 지나갔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불빛들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왜 이렇게 시간이 가질 않는지 시계를 볼 때마다 1분, 2분씩 지나 있었다. 조금 진정해볼까 해서 시간도 떼울 겸 근처의 적당한 크기의 가게에 들어가서 바 테이블에 앉아서는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가게는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시끄러운 웃음소리와 이야깃 소리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조용했다면 내 안으로 삼키는 상상으로 5분도 견디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것과 별개로 이 와중에 술 먹을 정신도 있느냐고 다그칠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진정되지 않는 나를 억지로라도 진정시켜야 했고,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빨리 지나가도록 독촉해야 했다. 주문한 맥주를 앞에 놓아주었다. 차가운 물 방울이 옆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 떨리는 손 때문에 한 손으로 맥주를 들지 못하고 양손으로 맥주 잔을 들고 벌컥 벌컥 들이켰다. 옆에서 나를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들이키기 힘든 사약이라도 마시는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11시 3분. 자꾸만 시간을 확인을 하며 단숨에 마셔버린 빈 맥주 잔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대체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옆을 돌아보자 카무이가 내 옆에 앉아서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 이 씨ㅂ...."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멱살을 잡자, 카무이는 여전히 웃으면서 내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


"대장님~ 왜 이렇게 일찍 왔어? 30분이라고 했잖아?"

"씨발 전화받으라니까 전화도 안 받고........"

"받을 상황 아니랬잖아"

"어딨어? 가자. 왜 여기로 오라고 했어?"

"아직 시간 안돼서 못 가. 그래서 내가 30분에 오랬잖아"

"넌 왜 이렇게 빨리 왔는데? 여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우연히 지나가다 봤어"

"그보다, 말 좀 해줘. 어떻게 된..."

"기다려. 곧 보여줄게. 이거 놔줄래?"


그제야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그래도.. 이상했다. 똑같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 새끼가 있다는 것에 내가 조금은 안정을 찾고 있었다.


"확실한 거야?"


내 말에 카무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인사는... 확인하고 할게"

"그래"




시간을 대충 확인하고서는 카무이는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어디론가 향했다. 


"하루사메 안에 있는 거야?"

"조용히 하고 따라와. 소리 내지 말고"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수월했다. 하루사메의 보안이 이렇게 부실했었나 싶게 다른 비밀 통로도 아닌 정문, 제대로 된 문으로 꽤나 당당하게 침입한 것이다. 지키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많진 않았지만 몇 있긴 있었다. 하지만 가서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무슨 엘리베이터를 타서야 내가 작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이렇게 허술했었나? 보안이? 외부인이 이렇게 막 침입해도 되는 거야?"

"되겠어? 당연히 안되지"


한참 후, 엘리베이터가 열린 곳은 감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두침침하고 조용했다. 그 어두운 광경... 흡사 감옥 같아 보이는 그 광경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심장박동이 증가했다. 혹시나.. 혹시나 이 하루사메 놈들이 히지카타를 고문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어디 하나라도.. 내가 마지막 본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니면 어쩌나...... 나는 무서워서 앞서가는 카무이의 어깨를 급히 잡았다. 카무이는 나를 조금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야.... 야... 여.. 여기... 감옥.. 같아 보이는데..."

"... 근데?"

"히지카타의 상태를 봤다고 했지?"

"...."

".. 머.... 멀쩡해?"

"곧 나오는데 보면 되잖아"

"아니.. 나.. 너무..... 하....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어"


카무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공포에 떠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다소 거칠게 잡으며 말했다. 


"뭐야, 왜 이래. 여기 앞까지 왔잖아. 볼 용기도 없이 날 보챘어?"


그리고는 내 팔을 격하게 잡아끌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식어간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고, 동시에 겁에 질렸다.. 겁에 질린다는 감정.... 자주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만, 급격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다가오는 무력감과 한동안 나를 괴롭혀 올 그 잔상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움츠리게 되었다. 곧 보게 될 히지카타의 몰골.. 그 몰골이 너무 두렵다. 그것을 보고 내가 후에 느끼게 될 감정이 너무나도 두렵다. 그 광경을 보고 내가 어떤 패닉을 겪게 될지 두렵다. 하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이 무자비한 놈은 나의 거친 저항과는 상관없이 그 두려운 장소의 앞으로 나를 잡아당긴다. 발이 꼬여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지만, 이 새끼는 나의 그런 상태에 대해서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 여기야"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마에 차가운 땀을 닦으면 저 어두운 창살 사이를 덜덜 떨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두려워 했음에도... 히지카타가 있다는 곳의 앞에 끌려오니 궁금함을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급하게 창살 앞으로 다가가서 안을 살폈다. 히지카타다... 정말 히지카타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하듯이 어.....어? 히지카타...? 하고 홀린 듯이 창살에 붙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맞지...?히....히...지카타.. 히지카타.. 히지카타!!!!... 나.. 나야, 나... 나왔어....! 히지카ㅌ.....!"


카무이는 뒤에서 내 입을 거칠게 막았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미쳤냐며 다그쳤다.


"네가 그렇게 소리 내면.... 확인하러 올 거 아냐...!"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현실적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녀석이야 히지카타와 관련이 없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 자잘한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카무이에게 입이 막아져선 한참을... 왜 흐르는지 모르는 눈물이 한참을... 카무이 녀석의 손과 내 뺨을 적시었다.  


".. 좀.. 다쳐서 치료하고 있다고 했어. 너희에게 연락이 가기까지는 3일에 정도 후에.."


한참을 있다가 대답을 하려 내 입을 막고 있는 카무이의 손을 가만히 풀고 말했다.


"..... 이상은.. 없는 거야...? 확실히 풀어주긴 하는 거야? 이놈들이?"

".... 확실해"

"못 믿어. 지금 내가 데려갈 거야."


나를 잡으려는 카무이의 손을 뿌리치고서 잠겨 있는 철창의 문을 억지로 잡아 뜯으려 잡았다. 밑도 끝도 없이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고 굉장히 어이없다는 듯이 카무이는 나를 뜯어말렸다.


"미친놈아! 소란 피우지 마. 여기서 죽고 싶어?"

"내가 너를 어떻게 믿어? 아니 네가 아니라, 이 하루사메 놈들을 어떻게 믿어? 풀어준다고 해 놓고 안 놓아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야, 정신 좀 차려!"

"뭔 정신을 차려? 이 상황에서 내가 지금 진정하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 조금만 더 생각해봐. 야, 나,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갑자기 또 무슨 개 소리야 씨발"


욕을 하고 나고서야 급 이상하다는 생각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워서 생각을 정리할 틈은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이 녀석의 행적들이 잠깐 떠올랐을 뿐이다. 사실 전부터도 약간은 짐작하긴도 했었던, 그런 여러 가지 사실들이.


".... 나, 네가 굉장히 잡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이야"

"....... 대충 알고 있었어. 근데? 지금 그 이야기 왜 하는데?"

"그러니까 더 확실한 거라고. 너 진짜 멍청하구나"


.....


"정말 믿어도 좋아. 만약 3일 이내에 연락이 가지 않는다면 네 쪽에서 먼저 말해도 되잖아. 네가 먼저 확인한 거니까"

"..... 아..."

"오늘은 제발 조용히 하고 가자. 우선 살아있는 거 알았잖아?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하루사메도 불필요한 잡음을 내고 싶어 하지 않아"

"........." 




카무이가 나를 진정시키기에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겨우 옮기며, 우선 그곳을 나왔다. 나오면서도 다시 카무이에게 말했다.


"네가 너를 믿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니까.... 히지카타를 반드시 보낸다는 그 말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

"응 책임질 수 있어. 지금 하루사메가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저 새끼가 다쳤기 때문이야. 옆에 있는 의료 기구들 못 봤어? 게다가 몰래 빼가면 너도 입장 곤란해질 거 아냐. 저 집단하고 맞서서 계속 싸울 거야?"


확실히 그건 곤란하다. 하루사메와 진작 맺어놓은 협정도 있고, 하루사메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면 우리가 눈을 피해서 몰래 침입했다는 증거도 많이 있을 것이고... 


"3일이 너무 길어서 그러면 2일 후에 연락하라고 할게"

"너, 네가 말하면 다 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래봤자 너 속해있는 조직에서 들었을 거면서. 허세 그만 부려. 새끼야"

"..... 너무 그렇게 이야기했나?"


어쨌든 히지카타를 봤고,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2일, 혹은 3일 후면 히지카타가 다시 내 앞에 올 것이다. 그 희망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이상하게 확신하는 이 녀석까지.. 나는 너무 피곤했고.. 안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에 터덜터덜 돌아온 후, 급 몰려오는 피로감에 침대에 풀썩 쓰러져 배를 깔고 누웠다. 그러자 카무이도 내 옆에 따라 눕는다. 잠깐의 침묵 후에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키곤 눈이 마주쳐도 눈을 피하지 않는 이 새끼의 파란 눈을 계속 응시하다가, 말했다.


"고마워. 그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해줘서 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어. 고마워."

"....음.. 나는 네가 내 직업에 대해 별 반응을 안 보인 게.. 약간 의외였어"

"왜? 그럼 막장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날 속였군요..?! 같은 대사라도 했어야 했나?"

"뭐.. 그런 건 아니었어도 충격받은 표정이라도 할 줄 알았지"

"딱 봐도 너 양아치 같아. 너 같은 놈을 그런 놈들이 평범하게 살게 놔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나, 이대로 체포할거야?"

"조사해 보고 결정해야지"


카무이는 내 팔을 잡아끌어서 제 얼굴 앞에 바짝 나를 끌어왔다. 이상하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키스해줘"

"....키스?"

"남에게 책임을 이야기할 때 얼마나 확실해야 하는지 알지?"


응? 하고 금방이라도 닿을 거리에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미묘하게 쓰다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야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쓰다듬는 머리 부분부터 소름이 돋듯이 쫘악 온몸에 열기가 퍼진다. 나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 잠깐만"

"응?"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확실하게 할 것은 해야 했다. 아직 히지카타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잠깐 사이에 하루사메 새끼들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 아냐 그럴 일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럼 히지카타가 돌아올 때까지 하루에 한 번은 내가 히지카타의 상태를 볼 수 있게 해줘"

"...."

"왜? 안돼?"

"..아냐, 그렇게 해줄게"

"정말로 가능해?"

"응 그렇게 할게"


카무이는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잠시의 입맞춤 후에 밀쳐내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차질이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럼..."

"내가 납치라도 해서 데려다줄게"

"...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 정도로 확실하다는 거야. 왜 이렇게 못 믿어?"

"지금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네 일이 아니라서 나를 이해 못하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확신하는 저 녀석의 여유가 짜증스러웠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태의 네가 싫어"

"나는 불안한 내 상태가 좋은 줄 알아? 나 역시 이런 내가 미치게 싫어! 나도 불안하기 싫고 그냥 네 말 믿고 맘 편하게 쭉 뻗고 자고 싶다고!"

"... 그래"


카무이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러나 공감을 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 그래도 정말 고마워..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정말 안심했어.. 정말이야..."

"..."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가 걱정되는 건.. 네가 이해해야 돼. 나에게 히지카타는..."


카무이는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 입에 거칠게 키스했다. 방금 전에 나누었던 간지럽고 부드러운 입맞춤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깨를 밀어내려 뻗는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손목이 저려온다. 놓으라는 의미로 저항하는 내 몸부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되려 더욱 거칠게 내 옷 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강제로 옷을 벗기려는 이 행동을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늘 섹스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강제에 가까운 시작은 역시나 기분이 좋지는 않다. 결국 이 새끼의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동시에 입안 가득 번지는 피비린내가 역하게 다가온다. 그제야 카무이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는 입 근처에 살짝 번지는 피를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불쾌한 표정의 나를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표정이 더 화가 치민다.


".... 씨발!.... 뭐 하는 건데"

"....아퍼"

"어쩌라고, 갑자기 뭔데 이 미친새끼야"


카무이는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지금 기분이 별로야"

".... 별로? 내 기분은 존나 개 같아"


내 말에 조금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입을 떼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그 새끼를 찾아주는 데엔 조건이 있어"

"갑자기 무슨..."

"그 새끼 때문에 내가 열받는... 그런 상황 만들지 마. 지금처럼 그 새끼 이름 부르면서 나를 이해시키려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조건 한번 더럽네? 그냥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끝인 거잖아"

"뭐, 그렇지"

"치사한 새끼"


상관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히지카타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만 하면 되고, 이 새끼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엄청난 사람도 아닌데다가, 단순하게 하지 말라는 수준의 가벼운 구두상의 조건이야 별 효력도 없다. 히지카타가 돌아올 때까지만 적당히 비위 맞춰주며 부려 먹으면 된다. 이 녀석은 꽤나 유능한데다가, 단순해서 부려먹기가 편해서 좋다. 


"계속하자"


거칠게 벗기려 들어 반 정도 벗겨져 있는 옷을 벗으며 말했다. 카무이는 씨익 웃으면서 내 목에 입술을 묻었다. 오늘은 나도 애무가 길어지는 시간이 좋아서 한참 서로의 몸을 핥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달콤하게 침대를 뒹굴게 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안함. 물론 있다. 하지만 이 불안함이 촉매가 되어 내 몸에 닿는 이 촉감 하나하나가 모두 그 이상의 쾌감이 되었다. 카무이는 귀를 핥으며 오늘은 왜 이렇게 더 느끼는 것 같지? 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허겁지겁 입을 맞출 때에 우리의 혀를 섞는 마찰음 사이로 핸드폰 벨소리가 눈치 없이 울렸다.


"아... 하....ㅅ, 잠깐만"


핸드폰을 찾으려 몸을 반쯤 일으켰다.


"왜, 어딜 가"


카무이는 반쯤 일으킨 나를 다시 허무하게 홱 눕혔다. 


"아니, 전화 오잖아. 전화. 받아야... 아...아앗... 야아.."

"....너...그 새끼 관련 전화인 것 같아서 그런 거잖아? 하아....이미 찾았는데 받아야 돼?"

 

능청스럽게 일부러 민감한 부분 만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자신의 아래에 나를 가두었다. 


"...아...ㅅ... 비...비켜! 그래도 받아야 돼...!"


내가 손을 뻗자 카무이는 자신이 먼저 핸드폰을 홱 낚아채었다.


"내놔!"

"싫어. 내가 받을게"

"미친 새끼야 장난치지 마....!" 


카무이는 내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핸드폰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을 읽었다.


"...쿠..리..코?"


쿠리코...?


"응?"


생각지 못한 이름에 맥이 탁 풀린다.


"이거 누구야? 지금 새벽인데?"

"아.. 놔둬, 받지 마. 그 사람. 그.. 히지카타의..."


그리고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아, 부인?"

"..."


부인이라는 그 말에 아무런 말을 못했다. 우리의 이상한 침묵 속에 벨소리가 몇 번 더 울리다가 끊겼다. 두 번째 전화가 다시 울릴 때 나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껐다. 카무이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고.. 나는 최악의 기분이 되었다.


카무이와 나는 그날 세 번 했다.  두 번째는 카무이가 멋대로 시작했고, 그 이후엔 내가 더 하자고 했다.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했는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여자의 존재를 느끼자마자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보니 문자가 두어개 와 있었다. 뭐, 언제나 긴 전화 후에 오는 문자와 동일했다. 아직도 소식은 없냐, 뭐 그런 내용이었다. 곧 있으면 다시 저 여자에게로 돌아가게 될 히지카타....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해진다. 참 간사했다. 찾지 못할 때에는 제발 멀쩡히 돌아와 주기만을 바랐었는데,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생각지 못한 다른 많은 것들이 아쉬워지는 것이었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심정이겠지.. 저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히지카타를 다시 되찾는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치사하다. 


내가 계속 뒤척이자, 깼는지 카무이가 눈을 반쯤 뜨고는 잠에 잠긴 목소리로 왜 안자? 하고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게..."

"..... 우웅... 왜 그래... 너 그래서 맨날 늦게 일어나잖아..."

"야, 나.. 부탁이 있는데"

"... 으응... 내일... 내일 이야기해애.."

"히지카타를 이틀만 더 데리고 있어주면 안 될까"

".... 뭐?"


카무이는 내 말에 잠이 깼는지 반쯤 감겼었던 눈을 똑바로 뜨고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니까... 3일이 아니라 5일... 데리고 있어주는 것도 가능한지 물어보는 거야"

".... 뭐야? 당장 데리고 가겠다고 난리를 칠 때는 언제고"

"아니, 갑자기 조금 재미있는 생각이 나서"

"..... 그래 뭐.. 알아볼게... 근데, 뭘 하려고 그러는데?"

"그건 아직 생각 중이니까.. 이제 자자"


달래듯이 카무이를 끌어안고 말했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되는 데로 평소와 같이 전단지를 들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벽에 열심히 붙이면서 다닌다. 대원들에게 히지카타에 대한 정보가 더 없느냐고 화를 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쿠리코에게 전화를 건다. 그렇게 자주 전화를 걸어왔으니 내가 한번 만나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처럼. 만나서 그 여자의 몰골이 어떤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자. 어떤 상태인지, 어떤 몰골인지.











-

전단지를 붙였다. 아무리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고 해도 이미 히지카타가 알고 있다는 여유에 평소처럼 필사적이지는 못했다. 행동에 의미가 있음과 없음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평소에 붙이던 양을 들고 왔어도 이번엔 반절도 붙이지 못하고서 둔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정대로 쿠리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날보다 훨씬 예의 있는 태도로.


"네, 오키타 소고 입니다. 어제 새벽에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그 시간이면 보통 자고 있는 시간이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통화는 길게 못하니, 짧게 이야기하죠. 오후 한 5시쯤 정도 해서 'falle'라는 카페에서 봐요. 거기서 이야기해요"


전화를 끊자, 의도치 않게 내 통화 소리를 들은 대원들이 작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형수님 말이야. 나한테도 전화 왔었는데"

"너도? 나도 왔었어. 많이 걱정되긴 하시나 봐. 그래도 저녁에 시간이 몇 시인 줄도 모르고 전화를 하시니까.. 뭐.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건 알겠지만.. 새벽에 전화 와서 마누라가 보고 누구냐고 추긍해서 깜짝 놀랐다니까"






시간이 되어 카페로 향했다. 내가 장소로 고른 'falle' 라는 카페는 오렌지 주스가 맛있다. 신선한 오렌지를 사용하는 것 같다. 분위기는 약간 어둑한 곳에 빨간빛을 띄는 주광색 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밤에는 펍으로 사용하며 맥주나 위스키 등을 팔기도 하는 곳이다. 예전에 한번 혼자 술을 마시러 갔었을 때, 칵테일을 만드는 사장에게 벽에 장식되어 있는 사냥 총을 보고 진짜 총 인지를 물은 적도 있었다. 체포당하기 싫으니 가짜라고 웃으며 넘겼었는데, 나중에 알기론 취미가 사냥이라고 했다.  


전에 내가 히지카타를 만나기 전의 그 초조함을 이 여자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렇게 전화를 해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갔다. 하지만  내가 와서 자리에 앉아서 음료를 시킬 때까지도 이 여자는 오지 않았다. 주문한 주스가 나오고도 5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유리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와서 주스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서는 내 앞에 앉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네. 늦으셨네요.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아.. 저는... "


쿠리코는 메뉴판을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자몽차 한 잔을 주문했다.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저 그보다...! 히지카타 씨는...."

"듣자 하니까 저희 대원들에게도 전화 많이 돌리시는 것 같던데.... 어제 새벽에 전화했을 때도 없었던 소식이 오늘 아침이라고 있겠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니면 혹시... 외로워요? 그래서 자꾸 전화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원래도 안색이 좋지 않았던 이 여자의 얼굴에서 불쾌함이 눈에 띄게 보였다. 


"아니, 왜 그런 거 많잖아요. 남편이나 부인이  잠깐 출장을 간 사이에 바람이 나는 그런 일화, 많잖아요. 남편이 없는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주다가 사랑에 빠진다, 뭐 그런"

"..... 오키타씨.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농담... 정말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쁘라고 한거 아닌데, 왜 이렇게 정색을 하세요? 찔려요?"

".....이런 말하려고 부른 거예요?"

"네. 그럼 저에게 무슨 좋은 말이라도 들으실 줄 알고 뛰어나오셨어요? 아니면 저와의 카페 데이트라도 상상하셨나?"


내 말에 쿠리코는 정말로 화가 난 듯 화를 주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앞의 주스를 마시며 다시 말했다.


"혹시 몰라, 벌써 우리 대원 중 하나와는 섹스 파트너로 지내고 있을지"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쿠리코는 앞에 있는 물 컵을 집어던졌다. 물 세례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물컵을 던질 줄은 몰랐다. 내 옆의 벽으로 유리컵이 와장창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큰 파편은 아래로 떨어지고, 미세한 파편 조각만이 튀어서 다친다거나 하진 않았다. 카페에 있던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놀란 주인이 뛰어와선 나에게 괜찮으냐며 머리나 옷에 묻은 물을 닦으라며 수건을 주고 후다닥 파편을 치웠다.


"물 세례도 아니고 물 컵을 던질 줄은 생각 못했네요. 쿠리코씨" 

"쿠리코씨가 아니죠! 형수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전 히지카타에게도 부장님이라고 안 해요. 그러니 당신에게도 예의를 지킬 이유 없고요"

"....제가 당신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당신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다름 아닌... 당신도 저와 같이 히지카타씨의 실종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힘들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당신의 태도는...."

"저기, 잠시만. 저의 이런 행동은요, 당신이 나에게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건 아닌데요? 게다가 저 역시 히지카타의 실종에 대해서 심각하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찾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둘의 입장이 같다고 하더라도.... 설마 당신을 대하는 제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저에게 따뜻한 위로라도 바라셨어요? 그리고 저 뿐 아니라 신센구미 모두 열심히 찾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당신이 항상 이렇게 우리를 쪼아대는게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당신이 히지카타의 부인이라고 해서 우리의 부장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저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히지카타를 찾고 있는데,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우리한테 전화질이나 한다는 게 재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왜 가만히 앉아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더 들을 거 없고요. 아무튼 전화질 그만하라고"


잔에 남은 주스를 마저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쿠리코는 나를 보면서 분해서 미치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쳐다보았다. 더 이상 쏘아붙이면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이 눈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불쌍하다? 뭐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어차피 이 여자에게 곧 돌아가게 될 히지카타... 돌려주기 전에 내가 손해 보는 만큼 이 여자도 고통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너무나 억울하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그 거대한 장벽이 나를 절대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 운 좋게 내가 먼저 찾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질 수가 없다는 것. 주인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 현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계속되는 전화질로 새벽에 잠도 못 자게 만들었으니까 음료 정도는 당신이 사요"


그 말을 하고선 카페에서 자리를 떴다. 유리문 너머로 슬쩍 보니 내가 자리를 뜬 이후로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찮은 자존심에 내 앞에서는 죽어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재수 없는 년.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어차피 곧 있으면 히지카타의 옆을 차지할 사람은 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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