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9.










잔뜩 구입해 두었던 수면제도 쓸모가 있었다. 조용하고 시커먼 밤.. 그 밤이 외롭게 환해지는 그 밤을 홀로 지새우지 않도록 내 눈을 얌전히 감겨주었다. 가끔은 재수 없는 악몽도 꾸지 않았다. 


직업 특성 상 지금까지 접수되었던 수 많은 실종 사건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울면서 찾아온 수 많은 사람들의 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발견 되더라도 시체로 발견이 되었고, 아니면 지금까지도 '실종'이라는 글씨가 붙은 채로 전단지에 박혀 사람들의 손으로 전달이 되어 가방이나 쓰레기통에 처박히거나, 차가운 벽에 붙어 외롭게 바람에 흩날리게 된다. 실종.. 나 역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외치는 한 명이었다. 동료가 눈 앞에서 죽는 일이야 흔하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실종이라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사메가 요구한 돈을 입금했다. 너무나도 큰 액수였지만 거절 할 수 없었다. 7번대 단장인 덩치 큰 그 놈은 꽤나 거들먹 거리는 태도로, 찾으면 연락하겠다며 사람을 시켜 전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서 우리는 하루사메의 그 어떤 일에도 우리의 권력을 내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얼마 정도 걸리겠냐는 물음에 심부름 왔던 하루사메의 단원은 글쎄요.. 저는 말을 전하기만 할 뿐이라서.. 하고 말 끝을 흐릴 뿐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가고,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겠구나.. 이 빠르고도 느린 시간에 너는 빠르게 부식 되고 있을지, 어디에선가 우리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가빠온다.


책상엔 얼마 전에 추가로 주문한 전단지 한 묶음이 놓여 있었다. 꽤 많은 양이라서 나머지 묶음은 책상 아래에 놓여 있었다. 풀어서 주문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와중에 카구라에게 전화가 왔다.


"... 웬일이야?"

[..별일 없으면 나 라면이나 한그릇 사줘라 해]

"...그런 여유 없어. 끊어"

[밥을 먹는게 여유가 있어서 먹는건 아니잖냐 해. 나와라 해]


자기 할 말만 하고서 전화를 툭 끊는다. 약간 황당하기도 해서 끊어진 핸드폰을 한번 바라보고는 주머니에 넣고 다시 책상을 바라보자 창문에서 톡톡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카구라였다. 창문을 바라보는 나에게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항상 저렇게 엉뚱하다. 





차이나와 라면 가게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뭔 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약간의 기분 전환에는 도움이 되었다. 내부에 있으면 자꾸만 히지카타의 텅 빈 책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와보는 곳이네. 형씨는 항상 가는 곳이 있잖아? 형씨랑만 돌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혼자 먹고 싶을 때 오는 곳이다 해"

"그럼 혼자 오지. 왜 이런 곳에 나를?"

"긴쨩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또 무슨 일이 터지셨길래"

"나. 해결사를 떠날거다 해"

"...갑자기 왜? 그렇게 형씨가 떠나라고 할 때는 떠나지도 않더니"

"가족을 찾았으니까"

"아..... 그렇구나"


지금이야 놀랄 힘이 없어서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많이 놀랐다. 카구라가 없는 해결사라니..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형씨도 카구라의 이런 통보에 잡지도 않을 것이고, 쿨하게 보내주겠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라고 우울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


"형씨는?"

"아직 말 안했다 해. 사실 언제 갈 지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조만간 꼭 떠날 거야"

"뭐야. 안 가겠다는 거잖아"

"아냐. 세달 안에는 꼭 나갈거다해"


이상하게 굳은 의지를 보이는 내 옆에 이상한 왈가닥..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려는 와중에 대충 주문한 라면이 나왔다. 평소라면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야 할 카구라는 이상하게 오늘 얌전하게 라면을 먹었다. 분명 복잡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했다. 


"너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해. 아무리 친해도 가족과 가족이 아닌 친한 사람의 경우는 약간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해. 내가 환상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왜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뭐.. 어쨌든 좋겠네. 가족을 찾았다니.."

"그 마요라는 아직이지?"

"....응...."


잠시의 침묵 후에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짓 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루사메까지 부탁하게 됐어. 아무래도 좋으니..."

"하루사메?"


카구라는 움직이던 젓가락을 놓고 물었다.


"아, 넌 잘 모를 수도 있겠네. 엄청 덩치 큰 범죄 조직이야"

"...그렇구나, 곧 찾게 될거다 해"


표정 없는 얼굴로 말하는 카구라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확신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카구라에게 다그치듯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카구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별 뜻 없는 위로에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느냐고 답했다. 그러게.. 요즘 아무것도 아닌 증거에도 이렇게 열 올리고 있어. 나 상태 지금 좀 별로지? 거의 한 젓가락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라면을 한 젓가락 정도 집어서 한입 먹었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

"입금 확인 됐어"

"그래?"

"단장. 정말 죽일거야?"

"응"


지하 감옥으로 안내하라며 나는 아부토의 앞에 섰다. 히지카타 그 새끼는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둘 수 없다. 정말로 빨리 죽여버리는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왜 내가 잠깐의 시간을 망설였을까? 나를 미행하는 것을 안 순간 그 즉시에 잡아다가 죽여버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더 편했을 것이다.


"잠깐, 잠깐, 단장. 일단 진정해봐"

"뭘?"

"조금만 늦게 죽이자는 거지"

"왜 그래야 하는데?"

"이렇게 하자. 돈 받고 경찰 놈들 앞에서 죽이자. 어때?"

"...."

"간만에 들어오는 큰 돈이잖아. 찾아주면 받는 돈도 큰데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리기가 너무 하잖아? 우리 단원들도 다들 기대하고 있는데.. 찾았다고 하면서 돌려준다고 한 다음에 장소 찍어주고 오라고 한 다음 그 새끼들 보는 눈앞에서 죽이자. 그래도 되잖아? 그게 더 재밌을 텐데."


아부토는 신난 듯 씨익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이런 걸 생각하는 걸 보면 확실히 아부토는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가 찾아도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는 위험한 새끼들인 것도 알고 부탁했을 거니까. 그렇게 하자"

"...뭐지? 왜 이렇게 순순해?"


아부토는 내 태도를 보고 굉장히 수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네 말대로 하겠다는데 왜? 아니면 그냥 가서 죽여?"

"아, 아니야 아니야. 그래. 잘 생각했어"


아부토는 자신이 오늘 선물로 받은 고급 양주가 있는데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잠깐 고민하는 나를 보곤, 왜 고민을 하냐며 잡아 끌었다. 다른 때라면 거절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술이 땡기기도 했고, 집에 가봤자 지금의 오키타에겐 누나의 남자친구가 너무도 가득 차서 나의 존재는 밤이 무서운 어린 아이의 곁을 지켜주는 커다란 곰인형 정도라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와 먹으려고 사오라고 시켰다며 과일도 깎아서 놓고, 얼음도 꺼내서 유리 컵에 몇 개 담은 후, 술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유리컵을 받아 들면서 꽤나 급하게 술을 들이켰다. 독한 술이라 그런지 마시자마자 몸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진다.


"어때? 괜찮지?"

"응. 독하네. 오랜만이다. 너랑 이렇게 술 먹는 것도"

"그러게. 오늘은 내가 꼭 먹고 싶어서 일부러 준비 했어"

"그런 것 같아. 근데, 무슨 날이야?"

"음.. 그냥 내가 단장 너랑 술 먹고 싶은 날이야. 사실 오늘도 바쁘다고 할 줄 알았는데.."

"뭐, 맨날 바쁜 건 아니니까"


별 말 없이 계속 잔을 부딪치면서 한참을 마셨다. 너무 높은 도수라서 그런지 금방 눈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을 기억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뭐냐 답지 않게. 단장 너 취했냐?"

"응 좀 취한 것 같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런 걸 갑자기 생각하게 되고"

"그 주변 사람들이야.... 안타깝겠지 뭐.." 


주변에서 수 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내 손으로 끝낸 적은 수없이 많다. 손에 묻은 뜨거운 피가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할 틈도 없었고....




누나는 나에게 오키타와의 관계를 물었고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가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는데, 햇빛에 하얗게 반사되어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누나는 빛나고 있었다. 누나는 굉장히 침착해서 무서웠다. 마지막까지 나는 누나를 정말 좋아했다고 말할 것이다. 누나는 마지막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겠지만.. 


죽으면 정말로 영혼이 되어서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걸까? 그리고 나를 따라다닐까? 그렇다면 나를 봐주지 않는 사람을 죽여버린다면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일까? 그럼 그건 그것대로 좋을 수도 있겠다.


'누나가 잘못 본 거니?'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내 반응은 한눈에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라면 그렇게 서투르게 행동하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반응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누나가 두려웠고, 두려운 만큼 누나에게 나의 안 좋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누나를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아, 아니에요.... 저.. 저는 오키타가...'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소고는 모르는 거니?'

'....아.. 아마도'

'.......'


누나는 그래도 내 변명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묻는 말에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확신에 찬 표정에는 진실을 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었다. 누나는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다시 말했다.


'... 계속 감시도 했었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야 할지 계속 생각했어. 결론은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제 우린 여기까지로 하자'

'네? 여기까지.. 라는 건'

'말 그대로 여기까지 라는 거야.'

'...'

'왜 소고가 너를 그렇게 싫어했는지도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나는 네가 소고에게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거야 나는.... 게다가 엄마와 아빠도 안 계시고......'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누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나에게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뻗었다.


'....다가오지마'

'누나..'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누나는 머리가 아픈 듯이 머리를 붙잡고 들고 있던 빨랫감을 떨어트렸다. 


'...저 어디가 아프신..'

'... 너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니까 그냥 좀 내려갈래?'


누나는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옥상의 난간을 붙잡고 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내려가라는 다소 격앙된 말투에 옥상에서 내려간 것 뿐이다. 누나는 분명히 홧김에 그렇게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떻게 나를 대해야 할 지도 몰랐을 것이고.. 누나는 나에게 하기 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하면서 스스로 굉장히 괴로웠던 것 같다.. 혹은, 약간 당황하기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고였는지, 경찰의 말대로 혹시 자살이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단지 자살 보다는 사고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누나가 그때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정말 그대로 쫓겨나게 되는 운명이었을까? 누나가 살아있었다면.. 그때 그렇게 사고를, 혹은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나와 오키타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누나가 나를 정말로 쫓아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쫓아냈다고 하더라도, 누나는 누나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둘의 삶의 터전을 잡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키타는? 또 다시 나에게로 눈길을 돌렸을 것이다. 어떤 루트를 탄다고 하더라도 오키타와 나는 지금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거라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니"


아부토는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나는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홀짝 들이켰다. 


"컨디션이 별론가? 얼굴이 좀 빨갛네. 원래 얼굴색 잘 안변하잖아?"


아부토는 내 얼굴에 손을 대려 가깝게 손을 뻗었다가 다시 손을 거두었다. 


졸음이 쏟아진다. 소파에 올라가 이미 앉아 있던 아부토의 무릎을 베고서 누웠다. 아부토는 자연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작게 웃었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잠들어. 집에 가야지. 동생이 기다린다며"

"...기다릴까?.."

"...당연히 그렇겠지"

"왜 당연하다고 해? 당연한 게 어딨어"

"네 옆에 있잖아. 항상 당연한 아부토가"


특유의 장난끼 있는 말투가 우스워서 잠결에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나도 모르게 감기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누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고마워 하지 않을까? 지금은 나를 조금은 용서했을지도 모르잖아. 오키타 녀석이 애타게 찾는 누나의 남자친구를 내가 데리고 있고, 어쩌면 내가 당신의 곁에 보내줄 수도 있는데.


동생의 괴로움을 보시겠습니까?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당신의 남자를 되찾으시겠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 틈을 연다. 누나와 누나의 남자친구는 내가 처음에 봤던 그대로였다. 반짝반짝 했다. 오키타는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눈빛이 복잡했다. 자신의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향하는 이상한 마음의 행방. 그 이상하고도 괴상한 마음의 방향에 자기 자신을 마음 속 깊이 증오 하고 있을 것이다. 옆에 있는 누나의 존재 때문에 더욱. 어째서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 나는 내 눈 앞의 이 둘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옆의 오키타에게 히지카타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말해서는 안된다는 압박, 그 자연스러운 압박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일까?


오키타 내 어깨를 붙들고 눈에 투명한 눈물과 터질듯한 울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외치듯이 말한다. 제발.. 제발 좀 어떻게 해줘...!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데? 이미 누나는 없고 누나의 남자친구는 실종 상태잖아. 누나가 없다니? 게다가 실종? 무슨 소리야 저기에 있잖아. 누나 옆에 있잖아.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게 무슨 뜻이야? 나도...나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까? 오키타는 내 말에 어깨를 꽉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빼고서 조금 섬뜩하다 싶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히지카타 데리고 와. 히지카타, 실종 아니잖아. 네가 데리고 있잖아. 왜 나한테 숨기고 있어? 너, 내 이런 모습 즐기고 있는 거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야. 내 말 들어봐 오키타. 양 팔을 잡자마자 내 눈앞에 있는 오키타는 나무 인형이 박살나듯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작은 파편 안 쪽으로 또르르 굴러가는 눈알이 나를 감시하듯이 천천히 굴러간다. 손에 쥐고 있는 떨어진 양팔 만을 멍하니 쳐다본다.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아부토는 날 어찌할 줄 몰랐는지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다급하게 시계를 보니 시계 바늘은 벌써 3시 22분을 가리키고 있다. 돌아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아부토가 깼는지 한 손으론 눈을 부비며 내 팔을 잡았다.


".... 깼어? 어디가"

"...이제..가야지"

"지금이 몇 신데 집에 가, 그냥 여기서 자자. 어차피 아침에 다시 올 거 아냐, 아이고 발에 쥐 났다"


아부토는 제 다리를 잡고는 괴로운 듯이 몸을 베베 꼬아 댄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다. 지금 이런 최악의 기분의 내가 왜 굳이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 그냥 여기서 자야겠다. 빠르게 납득하고는 다시 아부토의 무릎을 베고서 누웠다. 


"아악! 이 망할 놈아! 나 방금 다리 저리다고 소리친 거 못 들었냐!"


소리치는 아부토를 무시하고는 멍하니 누웠다. 동시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히지카타 그 새끼가 지금 결혼한 여자를 골랐던, 누나가 살아있어서 누나와 결혼을 했던 오키타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결국 그 녀석이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생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너는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을 언제 쯤 포기 할 수 있어? 네가 마음만 품지 않았어도 나 역시 별 마음 없이 지금 감옥에 가둬 놓은 저 새끼를 마음 편히 경찰 집단의 부국장으로만 바라보며, 집단의 실리만을 위해, 바로 죽였던가, 살려 보냈을 것이다. 벌떡 일어나서 아부토에게 말했다.


"아부토, 지하 감옥에 가자"

"....아니.. 이 시간에 거긴 왜 또 가자는 거야..."


아부토는 계속 다리를 부여잡고서 나를 원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빨리 가자. 내 표정이 꽤나 심각해 보였는지 아부토는 잠시의 침묵 후에 열쇠를 챙겨 들고는 앞장 섰다. 아부토는 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왜 가자고 하는지 물어봐도 돼?"

"... 그냥"

"그 경찰 놈 죽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 같은데.. 왜 그 새끼한테 이렇게 집착하는지..."

"집착?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짜증 나서. 그리고 아직 안 죽인다고 했잖아. 돈 다 받아 챙기고 그 새끼들 보는 앞에서 죽이기로 했잖아. 걱정하지마. 기억하고 있어."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찾아간 그 감옥에서 누나의 남자친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부토에게 문을 열게 했다. 아부토는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귀를 찌르듯이 크게 울린다. 수면제로 인한 수면 상태가 아니었는지 누나의 남자친구는 미세하게 눈을 떴다. 다짜고짜 멱살을 움켜 잡고 미친 듯이 팼다. 짜증나. 왜 이렇게 까지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데? 이 새끼는 예전부터 내 시야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입 안이 찢어졌는지 입 사이로 흐르는 피를 묶인 손 때문에 닦지 못하고서 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너무.... 재수 없어서.. 간만에 내가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흥분해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간만에 진하게 맡아보는 피비릿내와 낑낑대며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아부토와 바닥을 적시고 있는 피의 웅덩이 가운데에 누나의 남자친구가 움찔 거리고 있었다. 단장, 그만해. 진짜 죽는다 진짜. 아부토 역시 나에게 몇 대 맞았는지 입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나에게 부탁을 넘어선 사정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거친 숨을 고르며 억지로 진정된 나는 그 새끼를 말 없이 쳐다보다가 씩씩대며 감옥 밖으로 나갔다. 아부토는 그런 나를 잠시 돌아보았다가, 주위 관리병들을 불러서 쓰러진 누나의 남자친구의 입에 호흡기를 물리며 응급처치를 지도하고 있었다. 





저대로 죽었어도 괜찮겠네. 아부토와 같이 사는 집에서 피 묻은 손과 튄 옷을 갈아 입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일부러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오키타는 잠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소리에 미동 없이 앉아 있다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장난해?"

"...."

"....왜 연락도 없이..."

"...깜빡 했어. 미안"

"늦으면 늦는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거 아냐!!"


오키타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성질에 못 이겨 제 핸드폰을 나에게 집어 던졌다. 세게 던진 건지, 아니면 내가 잘 못 맞은 건지 머리에서 붉은 피가 가늘게 한 방울 흘러내린다. 손으로 스윽 닦으며 이상하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여서 그런지 평소엔 서로의 행방과 연락의 유무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저 녀석의 이런 태도가 낯설기도 하고 이상하게 기분이 살짝 좋기도 했다. 


"웃어? 핸드폰 못 봤어? 전화는 왜 안 받아?"


나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70통이 넘는 부재 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미안. 못 봤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끝이지? 내가 너를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그런 것 따윈 관심도 없었다는 거잖아"

"아냐. 했어"

"했는데도 이랬어?"

"응"

"했다고?"

"네가 나를 기다릴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내 말에 오키타는 할 말을 잃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일방적인 관계지. 지금도 그렇잖아. 너 지금 불안하지? 왜? 왜 불안한지 내가 말해볼까? 누나의 남자친구도 사라진 이 와중에 나 마저 없으면 어쩌나 그 걱정하고 있는 거 아냐?"

"....그게 잘못됐어?"

"아니. 잘못됐다고 한 적 없어. 하지만, 너도 지금 내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있잖아"


내 말에 오키타는 내 앞에 걸어와서는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 이랬어. 우리 관계가. 뭐가 더 필요해? 지금까지 내내 아무렇지 않았으면서 갑자기 왜 그러는데"

"그러게. 그러는 너는 나한테 왜 그러는데? 너도 변했잖아.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크게 간섭하는 사이였던가? 너만큼이나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갑자기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오키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치사하다. 치사하고 더럽다. 다 보여. 네 빨간 눈동자의 미세한 동요에서.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내가 다시 전처럼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잖아. 거칠게 떼어놓고는 다시 말했다.


"누나의 남자친구를 만약에 찾는다면, 더 이상 이렇게 나를 이렇게 찾지도 않을거고, 의존하지도 않을거잖아"

"아니야"

"아, 그렇네. 말을 잘못했네. 결국은 나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건가? 어차피 그 새끼 옆에는 부인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을 테니까"

"...섹스할까?"

"아니. 나 지금 너랑 섹스하면 너 죽여버릴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해"


완전 최악이다. 지금은 오키타를 만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라면 전에 이 새끼를 떠났을 그 때처럼 관계가 끝난 후, 이 새끼를 죽여버린다거나,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영영 이 곳을, 이 녀석 곁을 떠날 것 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충동적이다. 이런 상태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안 해"

"그럼 왜 이 새벽에 괜히 여기까지 왔어? 너, 내 상태 보러 왔구나? 얼마나 지랄하는지 보려고"

"아니. 그냥 너한테 이런 말 하고 싶어서. ...투정 부리고 싶어서 왔어"


네가 아니라고 세차게 부정해주길 바라서 왔어. 네가 훤히 다 보이는 거짓말으로라도, 아니야! 너를 좋아해, 시작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 그렇게 네가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어. 미안해...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해주길 바랐어. 단순히 내 입을 막기 위한 짧은 입맞춤이 아니라 나를 안심할 수 있도록 나를 한 번 안아주기를..


"...투정...?"


내 대답에 오키타는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오키타는 자신이 섹스하자는 제안에 내가 순순하게 응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털어놓을 시간도 없이, 내 스스로의 쾌락에 취해서 자기 만족 정도의 감정만으로 끌어왔고, 이 정도의 관계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쪽이 이상해진 것이 맞는가?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 녀석은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냐,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데...








오키타는 다음날 자살을 시도했다. 내가 잠이 든 후, 집에 있던 수면제를 20정도 넘게 삼킨 것이다. 옆엔 히지카타의 얼굴이 박혀있는 전단지와 미처 다 삼키지 못한 알약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다행히 집에 같이 있었던 내가 바로 발견을 했고,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다. 바로 하루사메의 의료담당에게 끌고 가선 위 세척을 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다급하게 끌고 온 적이 없었던 터라, 의료담당도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아, 7사단 단장이구나? 하고는 옆에 있는 침대에 그 녀석을 눕히는 것을 도와주고 치료를 해주었다.


"단장, 이 놈은 누구야? 처음 보는데"

"그냥 아는 사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7사단 단장 말이면 그래야지 뭐"

"심각해?"

"아니. 뭐.. 바로 발견했으니 큰 문제는 없어. 세척 다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깨어나면 이상한 공간에 의심을 품을 테니 바로 근처의 평범한 병원에 입원 시켰다. 보호자 명을 적으라는 말에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이름과 정보를 남기고 이 새끼 옆에 앉았다. 왜 갑자기 자살을 결심했을까? 정말 죽고 싶었을까? 

마침 아부토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때린 경찰 놈은 우선 치료 중이라며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는 이야기였다. 덧붙여서 정말 죽이지 않을 생각을 하긴 했느냐며 황당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오늘은 들어가기 힘드니 다음날 보자는 짤막한 대답 후 전화를 끊고서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돌아왔을 때 오키타는 이미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었다. 들어온 나와 눈을 마주치자 무엇이 우스운지 눈꼬리를 휘며 웃어 보였다.


"....정말 죽으려고 했어?"

"뭐, 죽는다고 했잖아"

"...그럴거면 더 삼키지 그랬어?"

"이 정도면 죽을 줄 알았어"

"...."

"또 이렇게 일어나서 네 얼굴 볼 줄 몰라서 뭔가 민망하네"

"..."

"표정이 왜 그래? 왜? 왜 짜증 났어?"


계속 이렇게 무기력한 네 상태가 짜증나. 게다가 죽는다는 말 하는 것도 재수 없어. 정말로 죽지도 못할 거면서 죽는다고 지껄이는 것도 짜증나고 이렇게 누워 있는 것도 짜증나. 나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짜증나.


"하... 일어났으면 됐어. 나 바쁘니까 먼저 갈게"

"......히지카타는"

"...."

"......아직도 아무 말 없지?"


병실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나에게 걸어온 마지막 말이었다. 제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을 나에게 보란 듯이 씨익 웃어 보이던 그 얼굴을 잔뜩 울상이 되어서 나에게 물었다. 걱정되어서 미치겠다는 그 표정. 그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오키타는 나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차라리 나를 좀 때려 달라고 하고 싶어. 조용히 맞아줄 테니까 때릴래?"

"....입 닥치고 잠이나 더 자. 끝나고 연락할게"

"...."

"내가 언제까지 너에게 이렇게 호의적일 거라고 생각해?" 


내 말에 오키타는 조용히 눈동자만 움직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호의뿐이야?"

".... 나 역시 너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 이렇게 등신 같은 모습 계속 보이지마. 오늘 이런 상황. 진심으로 재수 없으니까"


오키타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창 밖을 쳐다볼 뿐이었다.


"갈게"


병원을 나와서 하루사메로 향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계속 치밀어 오르는 화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하루사메에 들어오는 나를 보고, 아부토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아마도 경찰을 그렇게 만든 데에 대한 질책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걸었다.


"아깐 안 온다면서 왜 왔어?"

".. 그냥 답답해서"

"답답하면 같이 드라이브라도 할까? 그럴 땐 어디라도 나가야지. 이런 데에서 있을게 아니라"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부토는 자신이 모시겠다며 가자고 했다. 잠깐이라도 바깥을 보면 좋잖아? 아부토는 웃어 보이면서 바다에 잠깐 갔다가 오자고 했다. 조수석에 앉으라고 문을 열어주면서 장난식으로 오늘은 네가 내 조수니까~ 하고 말하고는 괜히 내 눈치를 본다. 그 꼴이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창 문을 다 열고 바람을 맞았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게 싫어서 원래는 바람을 맞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뺨을 스치는 거친 바람이 좋다. 아부토는 이 차가 뭐 엄청 비싼 외제차라며 차 자랑을 해대며, 누군가를 태운 것은 처음이라며 으스댔다. 오늘 따라 말이 많았다. 그렇게 오늘의 내가 폭탄처럼 보였나보다. 


"....오늘 내 상태, 그렇게 별로야?"


내 말에 아부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 아니! 그런가 아니고 그냥 오랜만이고 해서 내가 좀 신났어! 바다 본 지도 오래됐고.. 맨날 일 때문에 갔었고 하니까..... 뭐..."

"갑자기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물어봐"

"...카다를 좋아했었어?"

"아니, 절대"

"그 여자를 만약 내가 치우지 않았어도 지금의 네가 그렇게 이야기 했을까?"

"응"


아부토의 대답에 예상외로 망설임이 없어서 나는 아부토는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에 차 있어?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아닌걸 아니라고 하는데 뭐, 게다가 네가 그렇게 싫어했잖아. 단장 네가 경찰에 팔아넘기지 않았다면 아마... 내부에서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음.. 그러네"

"단장 너, 고민이 많은 것 같은데.. 나한테 말하고 싶진 않은 거지?"

"...뭐, 별 게 아니라서"


아부토는 이상하게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뭐냐 그 표정"

"그냥.. 행동이 먼저인 네가 고민도 하고, 좀 이상하잖아"

"..그래? 행동이 먼저니까 지금 운전대 내가 잡을까?"

"아냐 아냐, 내가 잘못했어 단장. 차 뽑은 지 얼마 안됐다고 방금 말했잖아 한번만 봐줘"


아부토는 한참 웃다가 다시 말했다.


"네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정도의 일이라면 엄청난 일이네. 그럴 땐 욕심을 좀 버리는 쪽으로 해봐. 왜, 옛 말에 두 마리 토끼를 잡다가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잖아"

"고민이 뭔지도 모르면서 잘도 말하네"


아부토는 그냥 가볍게 웃어 보였다. 바다에 도착 했을 때는 새빨간 노을이 바다에 가라앉는 시간이었다. 우수에 찬 듯 주황빛으로 번진 하늘과 바다.. 솨아아 하고 귓가를 울리는 바닷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밝은 웃음소리. 장황하게 별쳐진 모래밭... 부드러운 모래 사이의 삐뚤삐뚤한 조개껍데기,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서툴기 짝이 없는 삐뚤삐뚤한 모래성.. 뭔가 어색했다. 


"어때? 일로 오는 것과는 좀 다르지?"

"그렇네. 얼마전에 일로 왔을 때는 한 밤중에 바다에 바다에 빠트린다며 협박하러 왔었지?"

"협박만 하러 왔어? 전에 모래사장에 목만 빼놓고 파도에 잠겨 죽으라고 묻어 놓고 온 적도 있잖아"

"다른 사단 단장이 시멘트 붓어서 죽인다고 구경하러 온 적도 있었는데. 난 또 그 큰 바다에 뭘 어떻게 하나 했더니 단지 통에 가둬놓고 시멘트를 붓는 방식이라 실망했었는데"


웃으며 이야기 하는 나를 보며 아부토가 물었다.


"하하, 좀 풀렸어?"

".... 흠 글쎄"

"여기 앉아서 조금만 보다가 가자"


변두리 쪽에 놓인 나무 벤치를 가리키며 아부토가 말했다. 많이 낡았지만 놓인 장소가 바다의 변두리여서 그런지 나름 고급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단장. 너랑 와서 참 좋다"

"뭐냐? 전에도 자주 왔었잖아"

"응. 올 때마다 좋았어"


이상한 침묵. 


아부토는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후다닥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부토의 거친 턱, 조심스럽게 만지던 손길이 생각난다. 아, 그건 정말 명백한 실수였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걸 저 새끼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명백하게 아부토는 같이 있을 때 항상 편하고 안정을 찾게 해주는 사람이다. 내 상황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욕심을 버리라니. 내가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그럼 어떤 걸 버려야 하나? 누나의 남자친구를 죽이면 오키타 녀석의 불안한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 될 것이다. 오늘 이 후, 그 다음 번에 또다시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면.... 그때가 히지카타의 죽음을 알았을 때라면... 그때엔 정말로 확실하게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죽으려고 했다면 알약을 더 삼키지 그랬냐고 한 말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살려주기엔, 이미 납치한 우리 조직의 정체까지 밝혀버린데다가 나에 대해서 까지 알고 있다. 그걸 감안해서 넘긴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히지카타만 바라보는 오키타를 한 조직에서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는 오키타의 도청 행위, 범죄라는 이름의 장난을 통해 누나의 남자친구와의 육체적 관계를 상상하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치게 싫었기 때문이다. 함께 가까운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 나의 상상력은 자꾸만 몸집을 키울 것이고, 부정해봤자 이미 증식해버린 의심의 세포들은 멈출 수 없다. 둘 중 하나의 선택지...... 그때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마요라를 찾으려고 오키타 그 새끼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던데, 어떻게 된거냐 해? 정말 죽여버린거냐 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

[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식적 인가? 하하 아직 오키타는 오빠가 하루사메인걸 모르는 눈치던데.. 봐, 진짜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니까 그런 비밀도 존재하는 거 아니냐 해? 내 제안을 거절하지마.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거다 해.]


[연락하지마]


[나 곧 내가 해결사를 떠날거다 해. 오빠랑 같이 생활할거다 해.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나오면 오키타에게 오빠의 정체를 말할거다 해. 히지카타가 어째서 사라졌는지, 내가 히지카타에게 어떤 정보를 줘서 움직였는지까지 다 말하겠다 해]


지금 이걸 협박이라고 하는 건가? 불안하다거나, 카구라의 부탁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되려 카구라가 나에게 선택의 고민을 덜어준다고 생각되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비밀은 숨길수록 거대해지며 몸집을 키울대로 키웠을 때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번의 일을 통해서 나의 진짜 직업에 대해서도 밝혀야겠다.


[너 가고 나서 나도 생각해봤는데, 오늘은 부탁이니까 집에 들어오지마. 이번엔 내가 널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이번엔 오키타에게 문자가 왔다. 우겨서 퇴원은 한 모양이다. 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게다가 이렇게 나에게 죽여버린다는 말도 하는 걸 보니 약간은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엔 부숴 버리는 게 나은가? 멀리서라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 할 것인가? 


파도에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느니, 내가 다른 방법으로라도 붙잡고 있자. 하루사메와 경찰의 사이는 윗 쪽이 알아서 해주거나 뭐하면 우리가 쳐도 된다. 무서울 것은 없다. .....아니, 사실 무섭다. 누나의 남자친구와 오키타 사이의 변수, 그리고 이제 정말 오키타와 나의 관계가 충동적으로 끝을 맺자며 마냥 서로에게 욱해서 외치는 것 만이 아닌, 나와 오키타 서로가 정말 끝을 인지하고 헤어지게 될까봐.. 정말로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그런 이별을 맞이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불길함...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될 까봐 두렵다.... 그 어떤 선택을 해도 똑같은 결과가 올 것 같은 그런 막연함...이 무섭다.


아부토는 자판기에 파는 게 이런 것 밖엔 없다며 음료수를 들고 왔다. 시원한 음료수 캔을 받아들자 이상하게 머릿 속이 정리 되는 기분이다. 음료수를 받아 들면서 내가 물었다.


"아부토. 그 경찰놈 상태 어때? 많이 안 좋아?"

"음.. 많이 안 좋다기 보다는.. 5일에서 7일 정도면 회복 될 것 같기도 하고..? 왜?"

"아냐. 그냥 궁금해서"

"언제쯤 알릴까 생각하고 있어. 너무 길게는 끌지 않으려고"

"음.... 3일... 이나 5일 정도로 하자"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로 받지 않았다. 그래, 네가 전에 나에게 전화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두어통 전화를 하다가 문자를 했다.


[누나의 남자친구, 찾았는데. 전화 안 받을거야?]










-

너무 추워요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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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28

2017. 12. 30. 18:04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8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던 내 옆은 또다시 거친 숨과 함께 발작하듯이 잠에서 깬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켜서 바라보고서는 안심하듯 숨을 크게 내쉬며 놀라서 쳐다보는 나를 촉촉해진 눈을 하고서 바라본다.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른다. 오키타는 옆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내 품에 와락 안겼다. 또 안 좋은 꿈꿨어? 하고 묻자 말없이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걱정...이라기보다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는데,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는 것 같아서 슬슬 걱정이 된다. 등을 쓰다듬어 주면 점점 안심이 되었는지 잠에 들었다. 파르르 떠는 속눈썹과 작게 벌어진 입술을 보면 누구라도 작게 키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도 궁금하긴 했다. 날 미행하던 누나의 남자친구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을까? 최근 들어 의미 없는 노동을 자처해서 하다 보니 나 역시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벌써 한 달 하고도 3주가 흘렀다. 오키타는 이번 주에만 실종된 누나의 남자친구를 목격했다는 제보를 13번이나 받았다. 운전해서 가면 가까운 곳은 두어 시간, 먼 곳은 다섯 시간까지 걸리는 거리였는데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모두 찾아갔다. 그리고는 뒤늦게 힘없이 새벽에 들어와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집에 쌓여있는 전단지들 사이에 털썩 쓰러져서는 잠에 들었다. 차라리 죽어서 시체로 발견되는 게 저 새끼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행복할 거라는 결론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찾은 하루사메는 한가했다. 아부토는 나를 보고는 어색해 했을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맞아주었다.


"잘 왔어! 그렇지 않아도 곧 연락하려고 했는데"

"나도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별일은 없지?"

"응. 요즘은 한적해. 근데 오늘 경찰 쪽에서 먼저 회의를 요청해왔어. 부탁이 있다던데.. 곧 올걸? 같이 들어갈 거지? 오늘은 우리에게 설설 길 텐데"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마자 옆에서 다른 사단의 부단장이 잠깐 급히 이야기할게 있으니 아부토를 데려가겠다고 했고, 아부토는 조금 있다 보고하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회의는 귀찮으니 방에서 한숨 잠이나 잘까 하고 복도의 한가운데를 배회하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를 오키타를 피할 틈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정면으로 마주쳤다. 하루사메 안이라고 너무 긴장감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살짝 당황한 나와 다르게 오키타의 입장에선 이곳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물었다.


"어? 뭐야? 왜 여기에 있어? 뭐 해?"

"아.. 친구 때문에 잠시.."


오키타는 의아해했지만 바로 내 말을 믿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제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런 쓰레기 집단에게 부탁해보려고 왔어. 이런 데가 불법으로 사람 찾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잖아"

".. 혼자 왔어?"

"아니, 난 내가 꼭 오고 싶다고 우겨서 덤으로 왔어. 아마 협상은 우리 팀의 대머리가 하겠지. 난 한마디도 안 하는 조건으로 따라왔어"


오키타가 나에게 말을 할 때도 나는 자꾸만 주변을 살폈다. 내 얼굴을 아는 함께 온 대머리, 그리고 하루사메 안의 다른 녀석들이 나를 발견하고 인사라도 하면 안 되기에 오키타의 팔을 끌어당기며 이쪽으로 오라며 보채었다.


"어디 가는데? 나 곧 회의 시작이야"

"어차피 가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걸?"

".. 물론 회의가 자주 지연되긴 하지만..."


실제로 아부토는 악취미가 있었다. 상대가 부탁이라는 걸 해올 때는 한 시간 이상 상대를 기다리게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 나타났을 때 얼굴 가득 품고 있던 불만을 싹 거두고 빌빌거리는 태도가 너무 우습다나 뭐라나.


오키타를 데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의 장식이 꽤나 화려한 것을 보고 오키타는 문을 여는 날 보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렇게 막 들어가냐고 물었다.


"여기? 7사단 단장의 방이야"


그 말에 별로 당황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를 둘러보며 생각보다 깨끗하다고 했다.


"근데 여긴 왜 데리고 왔어?"

"둘이 있고 싶어서"

"7사단 단장 새끼 완전 제멋대로 구는 또라이라며 악명이 자자하던데.. 이런 곳에 허락 없이 있다가 죽는 거 아니야?"

"그럼 도망가야지. 내가 무사히 데리고 갈게"

"내가 믿을 놈이 없어서 널 믿겠어? 근데, 자주 와봤나 봐? 여기"


꽤 자연스러운 내 태도에 오키타가 물었다.


"아.. 뭐.... 응! 내 친구가 7사단 단장과 꽤 친분이 있어"

"그래? 히지카타를 찾고 나면 히지카타랑 그 7번대 단장이라는 놈도 잡고 싶네.. 그때 좀 도와줘"

"뭐, 생각해볼게"

 

오키타는 한숨을 푹 쉬며, 그래.. 히지카타를 찾은 후의 이야기니까.. 그리고는 옆에 있는 가죽 소파에 풀썩 앉았다. 항상 내 공간이 아닌 곳에서 오키타를 접해왔었기에 내 공간에서 만난 이 녀석은 조금 더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근히 긴장한 듯 보이는 표정과 주위를 둘러보는 초조함까지 더해서, 얼굴에 내려앉은 음울한 기운이 왜인지 내 가학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한참 쳐다보다가 나도 소파에 앉은 이 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키타는 옆에 온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이 없었다.


"왜 그래?"

"그냥 괜히 걱정되네... 이 악당 놈들은 얼마나 신나겠어. 경찰 쪽 무리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을 하러 왔는데.. 아마 히지카타가 있었다면.. 절대 이런 상황 용납하지 않았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런 짓은 안 한다고 했겠지. 분명 이런 루트로 자신을 찾는다고 해도 돌아온 후에, 나.. 엄청 깨질 거야..."


오키타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는 그래.. 그렇게 날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네.. 하고 작게 말했다.


"찾을 거야. 우리도 찾고 있잖아"

"그래...."


오키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상하게 거부하지 않고 이 녀석도 내 뒷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핥아댄다. 그러다가 미끌거리는 혓바닥이 서로 닿자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확 밀쳐내었다.


"그만하자. 우리 미친 것 같아."

"왜 뭐 어때"

"뭐 어때 라니 미친 새끼야. 그 단장 새끼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런 곳에서.."

"걱정 마. 안 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거 놔"

"아냐 진짜야, 안 온다니까? 내가 알아"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오키타는 내가 끌어안은 내 팔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려 나를 밀어내고, 나는 괜찮다고 달래며 하얀 목덜미를 애무하기만 했다. 앉은 자리에서 균형을 잃고 가죽소파에 서로의 몸이 겹쳐져 눕게 되자 오키타는 다시 내 머리카락을 잡으며 그만하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겁을 먹었어?"

"겁? 이게 지금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또라이 새끼의 방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


나는 오키타의 옷가지의 단추를 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절쯤 단추가 풀렸을 때, 오키타는 다시 내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행동에 조급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해서 말했다.


"왜? 이런 상황, 스릴 있고 재밌잖아"

"아니, 하나도 재미없어"

"빨리하자. 빨리 끝낼게"

"놔. 나 지금 그럴 기분 아니야"

"요즘 맨날 그럴 기분 아니라고 했잖아"


거부하려는 양 팔을 짓누르며 말했다. 그리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다시 한번 내 아래에서 빠져나오려 안감힘을 썼다. 


"봐, 밖에서 소리 나잖아! 나가자"

"그냥 밖에서 소리가 나는 거잖아. 여기로 온 것도 아닌데.."

"야, 생각을 해봐. 자신의 방에 왔는데 웬 낯선 두 명이...."

"문 잠갔어. 됐지?"

"그럼 못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열쇠가 있겠..."


그만 이야기하라는 뜻으로 다시 입술에 진득하게 키스를 하며 손으로는 나머지 단추를 풀었다. 그러자 내 입술을 깨물면서까지 내 입술을 떼어놓고는 말했다.


"그만둘 생각. 없다 이거지?"

".. 응 없어"

"왜 하필 여기서... 하 씨발.. 그럼. 이렇게 하자.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곳? 그럼 너 도망갈 거잖아"


셔츠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동그란 유두를 한쪽은 살살 문지르면서 한쪽은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접촉하자마자 빨갛게 솟아오르는 모양이 작은 열매 같다. 


"하앗... 아.. 안 도망갈게.. 가자.. 장소를 옮겨서.. 옮겨서.. "


이미 몸이 조금 나른해졌는지 처진 눈으로 짙은 신음을 뱉던 오키타는 이제는 저항을 할 의지보다는 들킬 우려가 더 큰 것 같았다. 


"나가자... 읏.. 옮겨서.. 계속..."


대답 대신에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추고 바지 버클을 푸른다. 처음으로 오키타가 공포감과 함께 열받아 죽겠다는 혐오를 담을 표정으로 나를 보며, 빨리 끝내라고 말했다. 차가웠던 가죽 소파가 온도로 데워져 따스했다. 내 품 안에서 풀어진 셔츠를 입고 상기된 뺨을 붉히는 그 모습은 적어도 나만 볼 거라는 우쭐함. 맞닿은 허벅지가 뜨겁다. 어느새 질척이는 소리가 속도와 함께 빨라진다. 아,아,아, 너.. 너무 급한 거 아..아니야..? 하아.. 빨리 끝내라며? 그렇게 여기서는 안 한다던 녀석이 결국은 거친 신음을 뱉으며 내 뒷목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신음이 좀 크다고 생각했는지 내 목덜미를 깨물며 신음소리를 참고자 했다. 귀 옆에서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미처 참지 못하는 작은 신음을 흘리는 이 녀석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아.. 아,아, 조..좋아.. 

하.. 좋아? 

으..응... 좋아.....


이 상황을 더 즐기는 건 이 새끼 같았다. 집에서 할 땐 이렇게 흥분하지도 않았던 놈이 오늘따라 스킨십도 더욱 진하게, 일부러 흥분시키듯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끝나고 나서는 한번 더 하자고 했다. 몸을 일으켜 내 목을 거칠게 끌어안고 입술을 얽혀오며 내 위로 올라탔다. 그러면서 말로는 빨리 끝내자... 하고 버릇처럼 말했다. 척추뼈를 손끝으로 느끼듯이 훑으며 이번엔 빨리 끝내기 싫은데? 하고 웃어 보이자, 말없이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목과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키스를 퍼붓는다. 


관계가 끝나고 첫 섹스에서 이 녀석이 어찌나 목을 세게 물었는지 목이 욱신욱신했다. 셔츠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는 오키타는 숨을 몰아쉬며 아래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를 주우려 손을 뻗었다. 


"저기 샤워실도 있어. 샤워하자"

".... 샤.. 워? 야.. 그런 것까지 쓰면..."

"괜찮아. 진짜 안 온다니까? 아마 얘네도 얘네 나름대로 회의하고 있을 거야. 가자"


내 말에 오키타도 조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있다가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불안했는지 꽤나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서 내가 건네준 수건으로 후다닥 닦고서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튄 정액을 보고서 급하게 닦았다. 나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어서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머리, 안 말리고 그대로 나갈 거야?"

"... 머리?"

"그냥 가면 왜 머리가 젖어 있는지 의심할 거 아냐. 가볍게라도 말리고 가"


멈칫하던 오키타는 내가 드라이기를 보여주자 잠시 고민하더니 와서는 머리를 말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갑작스럽게 이곳에 와서 샤워한 듯이 젖어 있는 머리로 가면 수상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드라이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모래색을 띤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린다. 잠시 멍하니 드라이기를 들고 있던 오키타는 거울을 바라보다가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 진짜 미쳤다"

"응?"

".... 여기 온 이유가.... 참.."

"..."

".... 결국 내가 너랑 한 것도..나 역시 하고 싶었던 거잖아. 내가 정말 싫었으면 끝까지 싫다고 하면서 안 했을 텐데.. 사실 나도 은근히 흥분했나 봐. 이런 스릴 있는 상황이.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히지카타 찾으려고 부탁... 그러니까 고개 숙여서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한테 부탁하러 온 건데.. 만약 들키면 이 방 주인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부탁하러 왔다는 경찰 놈이 겁도 없이 여기에서.. 참.. 나도 진짜... 긴장이고 뭐고 다 없어진 거잖아. 진짜 한심하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전, 오키타는 이미 이 상황에서 오는 회의감과 자기 혐오감에 빠져서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갈게. 집에서 봐"


오키타는 그대로 방을 나갔다.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나는 우두커니 아무 말도 못했다. 나 역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혼자서 섹스 후의 쾌락과 오키타의 적극성에 들떠 있었다. 지금 이 녀석이 여기에 왜 왔는지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왜 오키타가 저렇게 미친 듯이 찾는 그 새끼... 어쩌면 부인이 없었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오키타가 가장 안기고 싶어 했을.. 아니 어쩌면 찾아가서 안겼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어째서 찾아야 하는가? 어쩌면 내가 평생을 옆에 있는다고 해도 그 새끼에 대한 오키타의 마음을 지울 수도 없고, 내가 더 많이 가질 수도 없을 거라는 불안함이 생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뒹굴었던 소파에 앉아서 잠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한 장 넣어놨던 전단지를 찾아서, 한참 바라보다가 아부토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들하고 회의 끝났어?"

[아니, 이제 슬슬 시작하려고. 참석하려면 와]

"아냐, 안 가. 그 경찰들의 부탁은 아마 사람을 찾아달라는 부탁일 거야. 그 말에 응해줘. 대가는 너 하고 싶은 대로 비싸게 부르고.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나 좀 봐"

[.. 무슨 일인데?]

"아니, 별일 아닌데 그냥 할 말이 좀 있어서"


그대로 전화를 끊고 나서 30분 정도가 지나자 아부토가 내 방의 문을 두드렸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단장, 어떻게 알았어? 그 항상 오던 경찰, 그놈 찾아달라는 부탁하던데... 뭐, 단장 네 녀석이 들어주라고 해서 일단 들어줬어. 선으로 8억 받고 찾은 후에 7억 더 받기로 요구했어. 너무 적다 싶으면 더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은 기세고.. 그리고 우리 거래하는 술집이나 상가들의 거래 조건도 수월하게 다 바꿨고.. 뭐 더 요구할 거 있으면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해도 되고, 다음 회의 때 말하면 될 것 같아. 혹시 뭐 더 요구할 거 있어?"

"아냐, 그 정도면 됐어."

"나에게 할 말이 뭐야?"


나는 아부토에게 내가 봤었던 전단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경찰이 찾으라던 이 새끼. 찾자마자 죽여버려. 그리고 시체로 끌고 와. 내 말에 아부토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니 갑자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뭐야? 내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묻자 아부토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단장, 이 새끼 지금 우리 지하 감옥에 있어"











-

진작 말한다는 게, 나도 참 바빠서 말 못했어. 설마 이거 말 안 했다고 화난 건 아니지? 아부토는 웃으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 말을 안 해서 화가 난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안심하기도 했고(혹시나 오키타 쪽이 먼저 찾을까 봐 조금은 불안했었으니까), 그동안 오키타와 이 이상한 전단지를 들고 다니면서 붙이고 다니던 고생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부토의 말을 들어보자, 나를 미행하는 경찰을 아부토가 발견을 했다고 한다. 어찌나 나에게만 집중을 하던지, 뒤에서 누가 다가와도 모르더랬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였다. 왜? 아쉬워? 단장 네 녀석이 잡았어야 했는데 내가 가로채서? 근데 말이야, 바보 단장 너는 바로 죽여버렸을 거잖아. 이 새끼 꽤나 경찰에서 위치 있는 놈인데 그렇게 죽여버리면 좀 아까운 놈이라.. 죽이더라도 경찰을 협박하는 데라도 쓰다가 죽이자는 생각으로 데리고 있었어. 경찰이 먼저 찾아달라고 손을 내밀 줄은 몰랐지만.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묘한 긴장감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참 좋아했다. 내가 직접 사람을 가둬본 적은 없지만 은근히 인질극을 자주 벌이는 아부토는 자주 이용을 했었다. 생명을 구걸하는 그 이상한 신음소리와 은근한 피 냄새를 맡고 있으면 이상하게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부토는 내가 이곳에 자주 가는 것을 금지했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아부토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왜?"

".... 감히 내 뒤를 밟아온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을 내가 살려두는 거 봤어?"

"그런 이유라면 뭐.. 하긴, 네가 뭔 이유가 있겠냐"


아부토를 따라서 간 그 감옥에는 누나의 남자친구가 눈이 가려진 채로 손과 발이 묶어져 있었다. 혹시나 혀를 물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입에 재갈까지 물려놓았다. 튼실한 팔뚝에는 어떤 목적인지 알 수 없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기절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얌전하게 있는 것을 보아 지금 정신이 들어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 주사바늘은 뭐야?"

"수면제야. 깨어있을 때 하도 발작을 하길래 연기로 재우고 재우고 하다가 주사로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깨울까?"

"응. 깨우고 넌 먼저 올라가 있어. 이야기 끝날 때쯤 부를게"


아부토는 내 말에 가둬놓은 그 안으로 들어가서는 전기 충격기를 꺼내어 전기 충격으로 이 새끼를 강제로 깨웠다. 충격으로 깨운 이후 나에게 눈도 풀을까? 하고 물었고, 나는 상관없다며 풀으라고 했다. 지하 감옥을 관리하는 다른 단원은 나에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아부토는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풀고, 입에 있던 재갈까지 푼 이후, 나에게 무슨 리모콘을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누르면 수면제가 작동하는 거야. 꽤 강해서 누르면 20초 이내에 바로 잠들어. 대화 후에 이거 누르고 나 부르면 돼"


아부토는 그 말을 마치고는 올라가 있겠다며 너무 큰 사고를 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며, 혹시나 감옥 안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니 감옥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간다며 열쇠를 챙겨서 올라갔다. 지금 당장 이 새끼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누나의 남자친구는 전기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이 한참을 숨을 몰아쉬다가, 가두어 놓은 바깥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서 살기를 띄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이 새끼..."

"그쪽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해봐. 애초에 날 미행했던 것도 뭔가 목적이 있었을 거 아냐?"

"...... 우리 소고가 네가 범죄자라는 걸 알고 있나?"

"..우리 소고...? 우리 소고.. 라.. 뭐 어쨌든. 일단 오키타는 아직 몰라"

"계속 같이 있는 이유가 뭐야? 나는 너에 대한 의혹이 아주 많아. 미츠바부터.. 네 새끼가..."

"어? 그걸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그건 오해. 정말로 누나는 사고였어. 나랑 대화하다가 발을 헛딛었거든... 누나의 사고는 나도 안타까웠어... 아.. 생각하니까 나 눈물 날 것 같잖아... 내가 떠난 건 그저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거야. 증거도 없이 심증으로 사람 의심하지 마시고.."

"... 하나 더 있어. 소고... 소고의 문제로 돌아가서.. 네 녀석이 떠나기 전에 그 녀석에게 한 짓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으실까?"

".....아"

"...이 낯짝도 두꺼운 새끼.... 그렇게 해놓고서 우리 소고 앞에 다시 나타나?"


그런 일이 있었네. 순간 나도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을 꺼내고 있었다. 새삼 내가 그때 처음 오키타를 가지고자 했을 때의 내 생각과 태도가 지금과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처음 대화를 할 때부터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사실을 말해주려 했다. 우선 지금 이 새끼에게 내가 감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 후 우리가 죽일 수 있는 장난감 인형 같은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뭐.. 할 말이 없지만.. 지금의 나와 오키타는 많이 달라졌어. 지금 오키타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뭐.. 네가 정말 만약에 나가서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한 기억도 없는 오키타에게 찾아가서, 말해줬다고 하더라도 그 녀석의 말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거야 네 생각이지.. 네가 오키타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걸 확신하지?"

"그럼 넌 왜 확신해?"

"....."


누나의 남자친구는 내 대답에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아무 말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열받는다. 어떻게 저렇게 있는데도 잘생겼을까?


"음.. 여기 가둬진 지가 대략 두 달이 되어가나?"

"..... 소고는 어쩌고 있어?"

".... 너 찾고 있지"

".. 기왕 나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나를 죽여. 그리고 끝내"

".... 지금 명령하는 거야? 우리가 당신을 위해서 그래줘야 할 이유 없잖아"


내 말에 누나의 남자친구는 다시 한번 살의를 잔뜩 보이며 나에게 소리쳤다.


"너는...! 소고 옆에 있다면서...! 그 녀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왜 오키타가 힘들어할 거라고 확신해? 찾고 있다고 했지 힘들어한다고 전한 적은 없는데"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너야말로 소고가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확신은 왜 하는데?"

"그 새끼는 나한테 맞아서 입원을 했어도 결국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했어. 그쪽이야말로 멋대로 망상하지 마. 오키타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새끼는 찾으라는 명령에 너를 찾는 것뿐이지 그 이상의 별다른 감정은 없어"

"미친 소리 한번 재밌게 하네"

"원래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게 재밌잖아. 하지만 난 지금 굉장히 사실적인 정보만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 할 이유 없으니까. 사실은 알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뭐, 다 알았으면 쓸데없는 희망 품지 말고 여기서 천천히 죽어"


 









-

시간이 점점 지체되기 시작하자 처음엔 미친 듯이 뒤지던 대원들도 대장들도 곤도씨도 점점 치쳐가는 듯이 긴장이 풀어졌다. 경찰의 총동원에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 이런 답답함과, 이젠 어딘가에서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점점 드는 듯했다. 전에 사라졌던 웃음도 조금씩 돌아왔다. 웃음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나와 곤도씨, 쿠리코, 마츠다이라 아저씨 정도였다. 물론 쿠리코의 상태에 대해선 모르지만 곤도씨를 통해서 들었다. 너무 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잘 때에도 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어 한다며 엄청나게 많이 말랐다고 걱정을 해댔다. 나에게 최근까지도 쿠리코에게 두어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침착해졌다. 히지카타가 없으면 나도 죽어야지. 살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 죽어야지. 그리고 나는 다시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대량으로 샀다. 뽀얀 알약이 정말 순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먹으면 나 또한 이렇게 하얘질 수 있을까? 내가 이 약을 하나씩 먹으면  히지카타를 만날 수 있을까? 쿠리코는 저렇게 안정제를 먹고 나서 꿈에서만 너를 그리겠지만 나는 너를 만나겠지. 영원히 사라지는 죽음이 아닌.. 우리 같이 실존하겠지. 아... 그러면 누나도 함께 있겠구나. 결국 나는 어디에서도 히지카타 옆에서 제대로 내 감정 한번 나타낼 수 없는 존재였다.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 놓고 하얀 알약을 하나 집어 들었다. 별로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 한 모금과 함께 삼키려는 와중,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전단지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네! 거기가 어디시죠?"


그 전화 한 통에 집어 들었던 알약을 내팽개치고 또다시.. 뛰어나갔다. 혹시나 히지카타가 올 수도 있잖아.. 이번엔 정말 히지카타 일 수도 있잖아.. 물론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건 없었다. 이번에도 나를 기다리는 건 히지카타가 아닌 어느 검은 머리를 한 남자였다. 원인이 뭔지는 몰라도 말을 하지 못했고 마치 고장 난 나무 목각 인형처럼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데다가 입고 있는 옷도 상당히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에 키와 골격이 비슷해서 히지카타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에 심장이 멎는듯했다... 하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는 저런 추한 몰골의 사람이 히지카타가 아니기를 바랐다. 히지카타가 저런 몰골로 나타났을까 봐 마음속으로도 그 짧은 순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히지카타가 저런 꼴로 나타날 리가 없어..! 그리고 가까이에서 히지카타가 아님을 알고서 은근히 안도하는 것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내가 기억하는 히지카타의 모습이 아닌 저런 추한 몰골로, 온통 망가져서 나타날 바에는 차라리 죽어서 나타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히지카타를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맞는가, 추한 몰골로라도 나타나주길 바라는 것이 진정으로 히지카타를 생각하는 사람인 것일까, 그렇다면 내 마음은 지금 거짓일까? 쿠리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고민했다. 이상한 고민이었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고민이었다.






카무이도 찾고 있다고는 했지만 나만큼의 간절함이 없는 이 새끼에게 얼마나 큰 것을 바라겠는가? 외출 후에 집에 온 카무이는 멍하니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물었다. 힘이 있는 게 이상하지. 저런 질문을 하는 것 부터가 얼마나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다가와서 내 허리를 끌어안는 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물었다.


"넌 왜 힘이 나는데?"

"...글쎄"

"너 나 없어지면 찾을 거야?"

"...말이라고 해?"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그런 일 없어"

"죽으면?"

"....안 죽어. 너"

"그걸 어떻게 단언해? 오늘 건강하게 살아도 내일 죽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그런 일 없어"

"많잖아. 그런 일이 왜 없어. 히지카타 죽었으면 나도 죽을 거야. 실종이 이 이상으로 지체되어도 그냥 죽어버릴 거야. 돌아온 히지카타가 자신 때문에 죽은 나를 보면.. 적어도 행복하게 살진 못할 거 아니야"

"아니, 행복하게 잘 살걸?"

"왜 그렇게 생각해"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아니야"

"죽고 못 살던 너네 누나 죽었어도 저 여자랑 지금 행복하게 잘 살잖아. 그만큼 거대한 존재도 아닌 너 하나 죽었다고 그 새끼가 평생 불행해? 절대 아니지. 게다가 그런 말이 있어. 가장 못 잊을 것 같은 소중한 사람이 죽어도 3년이면 잊혀진다고 했어"

"그럼 너도 나 죽으면 3년 지나면 잊겠네"

"넌 내가 죽으면 이렇게 같이 죽는다고 할 거야?"

"그래 할게"

"...뭐야 싱거워"

"넌 안 죽을 것 같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

"그래도 넌 안 죽을 것 같아"

"...절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더니"

"네가 이 대답을 기대할 것 같았어. 뻔하잖아"

"..."

"....졸려..."


어깨에 기대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들었다. 그때 병원에서처럼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를 불러주던 히지카타가 그립다.. 그리고 무섭다. 돌아왔을 때의 네가 어떤 모습일지.. 돌아 왔을때도 네가 변함없이 우리를 통솔하는 위엄있는 부국장이기를 바란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네가 죽었다면... 내가 너의 죽은 모습을 내가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복잡한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다. 아무런 고통 없이 이대로 죽고 싶다. 











-

이번엔 좀 빨랐죠?^-^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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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27

2017. 12. 14. 22:33

*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7.











해가 질 무렵이었다. 비가 올듯이 어두웠고 사람들의 손엔 비상 우산이 들려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햇빛 덕에 답답한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러웠다. 그런 틈을 타고 카구라가 나를 찾아왔다. 항상 카구라와 만나는 그 카페는 이제 카구라가 오기만 해도 나에게 보고가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상한 신호처럼 나는 그곳에 가게 된다. 가면서도 왜 내가 카구라가 왔다는 말에 그곳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이상하다. 카구라는 이번엔 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로…. 굉장히 여유 있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팔짱을 끼고서 당당하게, 바보 오빠야, 내가... 조금은 잘못한거냐해? 아니면 오빠에게... 좋은 일을 해준 거냐해? 하고 밝게 웃었다.


"좋은 일이라니?"

"웃긴 일이 있었어 얼마 전에. 근데 그 전에 이 사람하고 무슨 사이야?"


카구라는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정확히 오키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사진 속에도 오키타는 히지카타와 그 국장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 갑자기 뭐야?"

"어떻게 아는 사이야?"

"... 뭔데"

"가족... ?"

"아니야"

"거짓말 싫어"


그 말을 할 때 카구라는 표정을 확 굳혔다.


"뜬금없이 뭐야?"

"그런 게 아니면 고아원에서 보낸 편지가 왜 오키타가(家) 앞으로 되어 있는 건데?"

"편지?"

"응 이거다 해"

카구라는 편지를 내밀었다. 그 편지는 전에 오키타가 나에게 건네주었던 편지였다. 받아서 주머니에 구겨 넣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편지였다. 그래서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던 그런….


"... 언제 가져갔어?"

"가져간 거 아니다 해! 나도 얻은 거다 해!"


카구라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떨어트린 편지.... 아침에 오키타가 건네줬었던 그 편지는 내가 히지카타 그 새끼의 책상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볼 때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걸 몰랐다. 이후 히지카타는 오키타를 입원을 할 지경까지 폭행한 녀석, 그러니까 나를 조사하던 중 자신의 책상 아래 떨어져 있는 이상한 종이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 편지를 봤을 때는 오키타의 단순한 개인 편지인 줄만 알고 입원해서 자리를 비운 그 녀석의 자리에 얌전히 올려두었다. 하지만 보낸 이에 쓰여있는 고아원의 이름이 미치게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럴 나이도 아니었기에 가능성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돌봐줄 사람이 없이 혼자가 된 오키타가 고아원을 알아본다거나, 절대 그럴 리 없지만 가족을 잃은 고아들의 상심을 이해하고 혹시 봉사 활동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쓰럽다는 생각도 함께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이상한 고민과 함께 망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고아원에서 편지를 받기까지의 모든 일을 자신의 결혼과 즉시 연결시키며 다시금 납덩이처럼 무거운 죄책감을 느낀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죄책감을 덜을 것인지 더 얹을 것인지 모를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이 편지를...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게 된다. 그 편지 안의 내용은 간단했다.


[카무이, 잘 지내니? 원장님이란다. 카구라를 찾았단다 꼭 알려주고 싶었어. 연락 부탁해]


편지 봉투 앞에 쓰여 있는 오키타(家) 앞으로 라는 수신인, 그리고 편지 안에 적혀 있는 카구라라는 익숙한 이름. 누나의 남자친구는 혼란과 함께 동명이인 일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하다가 편지를 들고 카구라가 있는 해결사로 뛰어와서는 편지를 보여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다.


'너, 고아원 출신이야? 아,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은 실례인가…? 사과할게. 하지만 궁금한 게 있어서….'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카구라로써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예민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카구라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히지카타는 이상하게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며 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카구라 역시 그 편지를 보자마자 나와 자신의 옆에서 친분이 있었던 오키타 녀석에게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바보 오빠야,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이 뭐였는 줄 아냐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제자 중 한 명에게 팔려 상처받은 예수가 된 기분이었어...."

"예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배신감 같은 걸 왜 느꼈겠어?"

"... 어쨌든!"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눈치 없는 백발 무사는 뭐야, 오빠 찾는다더니 찾은 거야? 하고 심드렁하게 물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정보를 흘렸다 해. 조심해"

"그 말은 내가 아니라 그 쪽에게 하는 게 맞을 텐데"


내 말에 카구라는 웃으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다. 큰 비는 아니었지만 직접 맞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비는 아니었다. 우산을 쓰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여전히 양털 같은 시커먼 구름이 하늘이 보이지 않게 잔뜩 메우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도 손을 꽉 붙잡고 놓아줄 것 같지 않은 그런 먹먹함을 담고서.

아부토는 어두운 한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까지 오는 음침한 날씨에 저런 거구에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뭐야? 왜 기다리고 있어? 수상하게?"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잖아. 별일은 없으신지 궁금해서 말이야"
"말은 잘하네? 있으면 네가 먼저 알았겠지"
"그래. 사실 얼굴 본지도 오래되었잖아. 보러왔어"
"뭐야 시시하게"
"난 시시하지 않은데"
"그래?"
"꽤 오래 못봤잖아"

그 말에 비웃듯이 웃었다. 가끔 나의 목을 죄어오는 듯한 아부토의 집착다운 행동이 나를 약간 짜증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해. 짜증 나려고 하니까"

".... 뭐가 짜증 나는데?"
"이런 너의 태도. 내가 어떻게 뭘 하던 내버려 둬"
"내가 최근 단장 너에게 얼마나 많은 간섭을 했다고 그래? 우리 요즘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냥 알겠다고 하고 가"
"단장, 나는..."

"그냥 알겠다고 해"

보통은 그냥 가벼운 한숨과 함께 그래... 그럼 먼저 가볼게. 하고 말한 후 뒤돌아서 간다거나, 왜 기분이 안 좋냐면서 날 위로하려 들어야 할 아부토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할 말을 해야겠어."

조금 기어오르려는 태도에 열이 뻗쳐서 빤히 쳐다보다가 말을 들어주겠다는 긍정의 태도를 취하며 아부토를 바라보고 섰다.


"네가 카다를 싫어하고 팔아넘긴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 여러 가지 이유 중 나와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렇지?"

"그렇게 오래전의 일을 꺼내면 어떻게 해. 기억 안 나"

"그렇게 내 옆에서 카다를 치워버렸으면 그 자리를 채워주려 하는 사람은 단장 너 일 거라고 생각했어"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뭔 개소리야?"

"그럼 단순히 카다가 싫다는 것이 이유였어?"

"그랬겠지."

"... 참 이상해"

"뭐가"


나는 피곤하고 아부토의 이런 잔소리에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 단장, 나는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아.... 그러니까 나는... 이상해... 분명 너와 있으면 손해 보는 일이 많은데.... 왜 인지 모르게 함께 있는 게 항상 해.. 행복한것 같아.. 네 모든 행동에 내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 너에게 내 모든 충성을...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이상하게 굉장히 어색해하며 말을 살짝 더듬으며 뭐 굉장한 말이라도 늘어놓듯이, 꽤나 감춰왔던 말을 쏟아내듯이 말을 뱉었다.


"... 평생은 너무 긴데.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행복? 그래 나도 너와 있으면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너와 계속 있잖아. 충성도 지금 정도면 됐어. 오늘따라 왜 이래?"


시시한 말을 거창하게 하는 아부토에게 덤덤하게 답하고는 지나쳐 나무다리를 건넜다. 빗소리는 바닥을 치며 조금 더 시끄럽게 울렸다. 강의 물은 점점 불어나선 꽤나 성질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아부토는 나를 돌아보지 않고서 왜인지 조금은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사실.. 안심했다. 아부토가 나에게 카다를 이야기 해왔을 때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혹시나 나를 원망하고 있다거나, 나를 떠나려는 의지가 있으면 어쩌나 하고 나답지 않게 생각했다. 아부토가 나에게 먼저 충성을 이야기해줘서 안심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역시 그 여자 같은 건 아부토에게도 필요 없었던 거라는 우쭐함마저 들었다.


빗줄기는 조금 더 거칠어진다. 내가 향하는 목적지는 오키타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틀어 놓고선 오키타를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정체 모를 발걸음 소리에 몇 번이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며 다시 불안함이 엄습한다. 어제 병문안에서 많이 다친 거 같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도 오지 않으려나? 아부토에게 갈까? 아냐, 오키타가 오면 다시 나를 찾을 텐데 올 거야. 여기가 어딘데... 올 거야. 오겠지? 그리고 나를 보고 다시 웃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자식도 나를 보고 다시 웃어주겠지? 기다렸다는 듯이 침묵을 깨며 핸드폰의 문자음이 울렸다. 오키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겁지겁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집에 핸드폰 액정의 푸른 빛이 말갛게 번진다.


[오빠, 건강해야 해.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나의 덕분이니 잊지 말고!]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지만... 더 이상 짐덩이 같은 여동생이 아니야. 이젠 몽유병을 앓으며 헤매던 꼬맹이가 아니야]

[이제 잠에서 깨어서 오빠를 쫓는 여동생이 될 거야. 오빠를 다시 만난 이후 내 꿈엔 항상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가 손을 꼭 붙잡고 있거든^^]











-

며칠이 지났다. 오키타는 오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해볼까? 아냐. 내가 전에 직접 병문안까지 가서 말도 했는데 올 거야. 오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왜일까? 잠시 나에게 화가 난 걸까? 잠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일까? 시계 초침 소리가 짹각짹각하고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상하게 깊은 침묵과 어둠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어둠의 한 켠에 먹힐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문틈이 살짝 벌어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나오는 달빛을 타고 이상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이 나를 슬그머니 안아 올리며 핥아대는 이상한 기분....! 도망치듯이 이 집에서 뛰어나와서는 아부토의 집으로 달려갔다. 몇 번이나 느껴본 적이 있는 익숙한 공포심이었다. 검은 하늘속에서 발하는 형형색색의 빛들 조차 이상하게 나에게 공포감을 주는 것이었다. 망설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아부토가 청소를 하고 있었는지 손에 잡동사니 따위를 들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 단장...?"


나는 숨을 적당히 고르다가 말했다.


"어... 아부토.. 오늘 나...여기에서 있으려고"

"그래. 어서 와"


아부토는 조금 이상해보이는 내 상태에도 다른건 묻지 않고서, 웃으면 왜 이렇게 땀을 흘렸어? 하고 물으며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동생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자주 와"

"... 내 침대 쓴 거 아니지?"

"걱정 마. 혹시나 밤중에라도 들어올까 봐 절대로 안 썼어. 혹시나 하고 은근히 기다리게 되더라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샤워 하고 와. 정리해놓을게"

아부토는 잘 정리해 둔 옷을 꺼내어 주면서 말했다. 막연한 기다림과 어두운 방 안에서 멍하니 있었던 것과 비교하니 진작 여기에서 좀 있다가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샤워기에서 따스한 물이 나오며 샤워실에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내 시야를 기분 나쁘게 가리는 뿌연 안개처럼 이상하게 답답한...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나오자 아부토는 머리를 말려주겠다면서 내가 들고 있는 수건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간다. 잊고 있었지만, 종종 아부토는 나의 머리를 말려주곤 했었다. 큰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나는 졸리다며 짜증을 내곤 했었다. 아부토는 나에게 머리가 많이 길었다고 말했다.


"그야.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맨날 있었을 땐 잘 몰랐는데"


따뜻한 드라이기 바람이 머리칼을 휘감고, 아부토의 큰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부토를 만난 건 나에게 참 다행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머리를 다 말린 후, 아부토는 내 침대 아래에 깔아둔 침구에 누웠다. 불이 꺼지자 나는 침대에 누워서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아부토, 갑자기 생각난 건데"

"응?"


아부토는 내가 말을 걸자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 카다가 싫었던 이유에 너와 친했다는 이유도 있었어"

"...."

"참 이상해.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옆이 아닌 너를 보기가 싫었나 봐.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나 원래 이렇게 욕심이 많아"

"아. 그랬나?"

"기억 못 하면 죽는 거니까 기억해"

"네네. 단장님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죠. 없는 기억도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네가 전에 그랬잖아. 평생 옆에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응"

"네가 내 옆에서 없어진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

"……."


아부토는 잠시의 침묵 후에 피식 웃으며, 그렇네 당연한건데 내가 감히. 하고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서는 누워있는 내 침대쪽으로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나는 멍하니 아부토를 쳐다보고 아부토는 바닥에 앉은채로 침대에 몸을 기대어 내 얼굴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얼굴 한번 만져봐도 돼?"

"되겠냐?"

"머리카락 만져보고 싶어"

"안돼"

"단장 너랑 키스해보고 싶어"


아부토와 나는 잠시의 침묵 후에 입을 맞추었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우리 서로 실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 머리카락 끝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아부토의 손길이 생각이 나고, 가깝게 다가오던 우리의 실루엣도 기억이 난다. 맞닿은 턱이 까슬까슬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이 오키타와는 약간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도. 오키타 녀석은 왜인지 모르게 이렇게 여유 있게 나를 만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뭐.. 그게 좋았지만. 아부토의 큼직한 손은 어울리지 않는 망설임까지 느껴져서 우습기까지 하였다. 키스 또한 굉장히 서툴어서 설마 키스를 처음 해보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내 입술을 조심스럽게 핥다가 내가 키스를 끝낼 요량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자 나를 보며 내 어깨를 잡고서는 가벼운 입맞춤을 두어 번 정도 하더니, 목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큰 한숨을 쉬고서 잘자... 하고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이 키스로는 나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오키타가 생각났다. 그 새끼는 정말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오지 않으면 난 이제 어쩌지?




다음날은 이상하게 온종일 얼이 빠져있었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옆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단원들은 오늘은 단장의 상태가 이상하니까 피하자며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를 피한 건 다른 단원들뿐이 아니라 아부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바로 눈을 피한 후 사라졌다.


밖은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었을 때 내 시야를 가린 것처럼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다시 아부토와의 어젯밤의 입맞춤이 다시 상기된다. 왜 나는 어제 아부토와 키스를 했을까? 약간 후회...를 하기도 했다. 아부토도 분명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흐릿한 형체들만이 보이는 게 약간 기분 나쁘긴 하지만 우산이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는 참 좋다. 약간 습하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잘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 살짝 젖은 바닥, 하얀 연기와 함께 윙윙거리며 울리는 작은 소음들, 자동차 시동을 거는 소리, 어디서 피우는지 모를 담배 냄새, 옅은 술 냄새, 이상하게 삐딱한 것 같은 맨홀 뚜껑, 깨진 유리 파편을 아직 치우지 않은 수상한 건물, 그리고, 다시 담배 냄새,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 희미한 시선, 뽀얀 안개, 그리고 곧 나오는 수상한 골목, 살짝 흩날린 듯한 담뱃재, 그리고 떨어지는 담배꽁초, 익숙한 구두의 마찰 소리. 나는 지금 미행당하고 있다. 누구에게? 누나의 남자친구에게.











-

처음에는 이상하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히지카타는 따로 잠복근무 중일 거라고 생각했고, 나와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얼굴을 못 보는 줄로만 알았다. 전화도 안 되고, 그렇게 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쿠리코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엔 받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전화가 끊길 무렵에야 전화를 받아들었다.


[저... 오키타씨 안녕하세요. 저]

"저에게 따로 연락하실 일은 없는 거로 아는데"

[아니... 다름이 아니고.. 저 혹시... 히지카타씨... 보셨나요?]

"그걸 왜 저에게 물으세요?"

[히지카타씨가... 3일째 연락도 되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세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말엔 나도 놀랐다. 최근 너무 안 보이기는 했다지만 내가 너무 과민하게 찾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경 쓰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니..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말했다.


"지금 장난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다시는 이딴 일로 전화하지 마세요"


쿠리코는 내가 말을 하는 순간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흐느끼며 울고 있었고 나는 손을 떨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순찰을 하던 발걸음을 돌려 둔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로 지나가는 모두를 붙잡고 물었다. 히지카타를 본 적이 있어? 어디에 있어? 언제 봤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3일 전쯤.. 지금은 어디 잠복근무 중이신 거 아니에요? 하는 두리뭉실한 대답뿐이었다. 아무도 히지카타의 부재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게 아랫급의 한 명이 없어졌다면야 히지카타가 어딜 갔는지 애타게 찾았을 것이고, 대장급이 한 명 없어졌어도 히지카타가 어딜 갔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없을 때 누가 그를 찾아야 하는가? 곤도씨에게 히지카타의 부재에 대해 말하자 곤도씨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소고, 왜 이렇게 걱정해? 토시라면 무슨 일이 있어서 잠시 어딜 갔나 보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 곤도씨의 그 미소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은 처음이다. 그래.. 이때만 해도 1번대 대원들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웃으면서 나에게 부장님이 없으시면 오키타 대장이 부장이 되는 겁니까?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는데 그런 농담을 평소엔 내가 자주 했었다만 지금은 그런 농담엔 웃지도 못할 만큼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틀이 더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모두 이상하다고 말하며 히지카타의 실종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던 일을 중단할 수는 없으니 한쪽은 히지카타를 찾고 나머지는 일에 전념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나는 기를 쓰고 히지카타를 찾는 쪽으로 넣어달라며 난리를 쳤다. 나 혼자만 너무 급했다. 그래서 우선 가장 원초적이고 무식한 방법인 전단지를 제작하기로 했다. 전단지를 제작하는 인쇄소에는 한시가 급하니 돈을 더 얹어주며, 제발 일정을 조금이라도 앞당겨달라고 졸라서 1연 정도는 발주 당일 저녁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단지 앞에 인쇄되어 있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보니 문득, 지금까지 내 옆에서 사라져간 부모님과 누나가 떠오르면서, 이대로 히지카타까지 내 옆에서 사라진다.. 라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갑자기 온몸이 미친듯이 떨렸다. 자꾸만.... 히지카타가 없는 나의 삶이 자꾸만 떠올라서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안된다. 나는 히지카타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히지카타 그 새끼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이런 식으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쿠리코는 이후에도 몇 번 전화를 해왔다. 나 역시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던 나는 이 여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히지카타를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얄팍한 질투심 때문에 네 번 연달아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모든 월급, 시간이 모두 히지카타를 찾는 데에만 온 신경이 기울어져 있었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사람을 찾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겨우 찾은 CCTV는 알고 보니 히지카타와 뒷모습이 닮은 흑발의 남자였고, 우연히 담배를 사러 와서는 히지카타가 피우던 담배와 같은 담배를 사서 갔던 것뿐이었다. 전단지에 의한 제보 전화도 가끔 오긴 했는데, 모두 포상금을 노리는 사람들의 거짓 진술뿐이라 횡설수설했으며, 돈을 먼저 주면 그 뒷이야기를 해준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런 실패를 며칠 겪으며 내가 내린 결정은 하루사메라는 조직에 부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내 의견에 다른 대장과 윗사람들은 경찰이 무능해서 사회의 악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이 지금 1번대 대장의 입에서 나올 소리냐며 다들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히지카타가 없는 이 무능한 조직을 믿을 수가 없다고 혼자 판단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마찰에 곤도씨는 머리가 아픈 듯 말을 아끼고 내 눈을 피했다. 결국, 뭘 얼마나 해봐서 벌써 다른 곳에 부탁하자는 말이 나오냐면서 최대한 우리의 손으로 찾자는 방식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또다시 신센구미의 태도 논란이 거세질 것을 우려하는 윗대가리들은 겁이 많았다. 개새끼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혹시 모르는 조바심에 잔뜩 챙겨온 전단지를 들고 나가려는데 카무이를 마주쳤다. 


카무이는 내가 들고 있는 전단지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게 뭐야? 하고는 한 장 집어 들었다.


"뭐긴 뭐야, 보는 대로 사람을 찾고 있잖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가 들고 있는 전단지를 잡아채고는 거칠게 지나쳤다. 그러자 카무이는 다시 나를 쫓아오면서 그걸로 뭘하게? 하고 뻔한 질문을 해댄다.


"뻔한 걸 왜 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벽에도 붙일 거야"

"사람들은 받자마자 버릴걸? 벽에 붙인다고 누가 자세히 보기나 하나"


그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이 새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버릴지도 모르고, 보지도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나.. 보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

" 아니면 옆에서 이딴 식으로 찬물 끼얹지마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아냐, 같이 가서 도와줄게"


카무이는 내가 들고 있던 전단지의 반절을 가져가며 말했다.


"자세히 못 봤었는데 누나의 남자친구였네"

"……."

"...근데, 만약 죽었으면……."

"…. 그런 소리 옆에서 하지 마! 나 지금 불안해서 미쳐버리겠으니까"


내가 갑작스럽게 소리치자 조금 놀란 듯 말을 멈추고 미안해, 몰랐어.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그랬듯이 사람들은 나누어 주는 전단지를 잘 받지 않았다. 받아도 몇 걸음 가서는 버리기 일쑤였고 몇 명은 받아들고 보더니, 어? 이 사람 경찰 아니야? 꽤 높은 사람인 거로 아는데? 하며 약간의 조롱의 어투를 담은 말을 중얼거리며 지나갔다. 커다란 벽들과 가로등, 전봇대에도 붙였다. 지저분하게 이런 건 붙이지 말라며 지나가는 어떤 오지랖 넓은 나이든 노인에게 잔소리도 들었다. 카무이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뭔 상관이냐며 나서지만 않았어도 내가 나섰을 것 같이 화가 치밀었지만, 이 시점이야말로 문제를 일으키면 치명적일 수 있기에 카무이를 말렸다.


들고 나갔던 전단지를 다 소진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상에서 일하는 녀석이고.. 아까 내가 말을 막는 바람에 못 한 그 뒷말도 아마 자신의 정보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옆에서 나란히 걷는 그 녀석을 힐끗 보다가 평소와는 다르게 먼저 살갑게 손을 잡으면서 말을 건넸다.


"야 너. 정보상이잖아"

"응?"

"좀 알 수 있는 거 없어?"

"음.. 글쎄 나는 잘....친구에게 부탁이야! 혹시라도 알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면 안 될까? 대가는 나중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를게.. 제발"

"어.....그래 한번... 물어는 볼게"


갑작스러운 나의 부탁에 카무이는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 했다.


"진짜지? 최선을 다해서 찾아줘.... 제발"

"뭐...그래.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카무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이상한 믿음이었다. 왠지 카무이라면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경찰 내부를 믿을 수 없기에 경찰이 아닌 다른 사람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에 신센구미를 구해주었을 때와 같이.. 내 고민을 가볍게 덜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 카무이는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카무이에게 키스했다. 새벽 내내 붙여서 덕지덕지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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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서 히지카타를 발견했다.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차를 타곤 어디론가 향했다. 히지카타가 타고간 차량은 굉장히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차량에서 내려서는 어느 골목으로 뛰어가는 게 찍힌 게 지금까지 발견한 모습이었다. 그 골목을 정말 미친 듯이 뒤졌다. 그 골목으로 이어지는 건물들, 건물의 틈, 쓰레기통까지 다 뒤졌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혹시나.. 혹시나 시체의 일부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숨을 헐떡였다. 밤에도 혹시나 히지카타의 죽음을 알리는 연락이 올까 봐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쓰레기통을 계속 뒤졌다. 먹다 버린 우유 팩, 소주병, 담뱃갑, 과자봉지 먹다 남은 음식물, 꼬여있는 파리, 커피 캔, 검정 비닐봉지에 싸진 검은 옷가지..... 그리고 휴지통의 마지막에 흘러나온 건 윤기 있는 머리칼.... 창백한 피부의 히지카타의 잘린 머리.....! 아아...히..히.. 히지카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 그걸 보자마자 주저앉아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짧게 아..아.. 아.. 하고 신음만을 뱉는다. 이런 재수 없는 꿈을 몇 번이나 마주했다. 꿈에서 깰 때는 심장이 멎는 기분으로 발작하듯이 잠에서 깨었다. 그리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혹시나 꿈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급히 뒤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아직 찾아낸 것은 없습니다] 라는 무능한 어느 대원의 마지막 문자가 나를 위로해준다. 옆에선 카무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왜 그래? 하고 물으며 식은땀을 흘리는 내 이마를 훑어주고, 이불을 덮어주며 나를 끌어안으며 자자.. 하고 안아주었다. 물론... 그래도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지만.


그리고 나는 곤도씨에게 처음으로 대들었다. 이러니까...! 이러니까 신센구미가 항상 욕을 먹는 거 아닙니까? 없어진 동료 한 명 찾지 못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없어진 후 아무런 의심 없이 가만히 앉아서 이틀이나 시간을 버린 것도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건 모두 우리가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아 씨발 너무 답답해서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고요! 내가 모두의 앞에서 잔뜩 흥분해서는 곤도씨에게 소리치자 대원들도 곤도씨도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잔뜩 흥분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나조차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버렸다. 죽었으면 어떡할 거야? 신센구미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죽어서 시체로 나타나면 어떡할 거냐고! 차라리 시체라도 발견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평생 이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끝나버리면 어떡할 거야? 계속 이렇게... 계속...... 그다음의 말은 급 목이 메어서 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을 흐리자 대원들과 곤도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멍청하게 있는 모두에게 다시 소리쳤다. 뭘 멍청하게 있어? 움직여! 상황에 진전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그 이상으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는 이런 상황과 자꾸만 나타나는 히지카타가 죽는 꿈 때문에 극도로 예민했기 때문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결사 형씨도 사방으로 히지카타를 찾기 위해서 힘쓰고 있었다. 그날 찾아간 해결사에서 카구라는 애완동물에 올라타서는 이상하게 우산을 받쳐 들고 평소엔 보이지 않던 약간의 멍한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약간 슬픈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오키타군, 우리도 알아보고 있어. 걱정은 당연히 되겠지만 그래도 너무 최악까지 생각하면서 자신을 몰아세우지는 마라. 얼마 전에 신센구미에서도 난리 한번 쳤다고 들었어. 다들 너와 같은 마음이니까.. 아이고... 모르겠다, 나도 위로에는 체질이 아니어서 말이야"

"..."

"왜 이럴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생각하라잖아. 히지카타의 이상한 상황이나, 누굴 만났다거나.. 뭐 그런 게 있었을 거 아니냐"

"알아볼게요. 아직까지는..."

"아무런 흔적도 없어?"

"...아직은요. 히지카타를 마지막으로 언제 보셨다고 했죠?"

"나? 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너 입원했을 때였어. 카구라에게 뭐 물어보러 왔었는데 그치?"


형씨는 카구라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카구라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형씨는 약간 카구라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히지카타 그 자식 집은? 찾아봤어"

"집은 왜요?"

"혹시 뭐라도 남겨놓았을 가능성도..."

"......자살이라도 했을 까봐요?"


다소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아니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야. 그냥 뭐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물은 거야. 이 녀석아"


형씨는 애써 웃어보이며 말했다. 웃음이 나와요? 하고 외치려다가 내가 생각해도 예민한 내 상태를 인식하고 한번 큰 숨을 쉬었다.


"고릴라도 조사하고 있다고 했고.. 곧 뭐라도 나올 거야. 우리도 계속해서 조사하고 있어. 꼭 찾아낼게. 너무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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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는 틈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픈 건 아닌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나를 보곤 카무이가 옆에 와선 몸을 눕혔다. 나는 옆을 쳐다볼 기력도 없이 그대로 물었다. 찾아봤어?


"응"

"어때?"

"아직.."

"아 바짝 붙어서는 나를 끌어안고서 입술을 부볐다. 귀찮은 듯이 카무이의 입을 손으로 막고서 다시 물었다.


"찾아봤어?"

"그렇다니까"


그리곤 다시 내 팔을 잡고선 입술을 부비며 옷 속에 손을 집어넣는 움직임에 덥석 움직임을 제지하며 말했다.


"싫어"

"싫어?"

"응. 나 피곤해"

"그럼 입으로 해줘"

"싫어"

"그럼 손으로"

"싫어. 다 싫어"

"왜애"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 내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금세 목 부분이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낀다. 카무이는 가슴팍을 더듬거리며 유두 끝을 살살 만지작거리며 이어서 쇄골을 타고 부드럽게 핥았다. 내뱉는 숨결이 뜨겁다.


"...씨발 읏.. 시.. 싫다니까…!"

"나는 너 도와주느라 친구한테 부탁도 하고 그러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를 만지는 손을 잡아서 뿌리치자 곧바로 내 손을 잡아채서 깍지를 끼곤 돌아누워 있던 나를 똑바로 눕혀서는 내 위에 올라탔다.


"...놔. 내가 오늘 싫다는데 왜 이래?"

"…. 난 오늘이 하고 싶은데"

"난 오늘 죽어도 하기 싫어. 다음에 하자"

"...다음?"

"응 다음에."


카무이는 내 말에 옆으로 바짝 누워서는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카무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내 입술에 몇번이나 입술을 가볍게 부딪히다가 아랫입술을 귀엽게 물었다.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닌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야"

"으응.."

"이 이상이면 너 이제 하자고 할 거잖아.. 그만"

"키스만.."

"안돼"

"안돼?"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다시 두어 번 뽀뽀를 하고는 나를 꼭 끌어안고서 잠이 들었다. 덥다. 하지만 나를 끌어안은 이 손을 뿌리칠 생각은 없었다. 싫다는 표현을 해도 이 새끼가 날 이렇게 계속 들러붙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심리는 무얼까 잠시 생각했다.


카무이와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불안함이 무엇보다 큰 상황에선 카무이와의 섹스 후 느끼는 그 감정조차 죄악으로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이 새끼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전에 보인 폭력성은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한... 이런 이중적인 새끼를 나는 어떻게 믿고 옆에 누워 있는 걸까?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이 녀석의 존재와, 그 이상의 이용가치를 이용할 뿐인 것일까? 나를 입원시킬 때까지 때린 놈이랑 같이 누워서 키스도 하고 몸도 섞는 사이라는 것을 알면 히지카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명 미친 새끼라면서 난리를 치겠지.. 하하..


히지카타는 지금 어디에 누구와, 혹은 무엇과 있을까? 형씨 말대로 유서라도 썼을까? 혼자 훌쩍 여행이라도 갔을까? 그 새끼 방심하다가 납치라도 당했을까? 원한도 많이 샀을 텐데 죽임이라도 당해?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납치를 당했다면 어째서 납치범은 돈도 요구하지 않을까? 뭘 원하는 걸까? 지금 히지카타의 옆에는 뭐가 있을까? 납치범이 있을까, 쓰레기가 있을까, 흙이 있을까.. 까마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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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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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924님()이 그려주신 그림입니다^^ 감사합니다!



26.












불안함을 느꼈을 때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물론, 그런 예민함 때문에 사고가 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치면 모든 사고는 운명적이며 피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안해해야 하나? 그럴 바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주시지... 하지만 이상하게 그렇다. 불안은 작은 사고를, 침묵함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일이 일어난다. 꼭 그렇다.




히지카타에게 혼자서 내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통 때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을 나와 전에 있었던 말다툼이 신경 쓰여서인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곧바로 허락해주었다. 그러면서 얌전히 있어.. 하고 짧은 잔소리까지 잊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큰 둔영에 혼자 있어 본 적은 없다. 방에 혼자 있던 적은 많았지만.. 모두 나가고 혼자서 둔영을 찬찬히 돌아다니며 훑었다. 이렇게 조용했었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얌전한 아침햇살이 더불어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히지카타의 빈자리를 한번 본다. 앉아서 서류를 보던 잔상이 살짝 남아있다. 희미한 체온이 남은 히지카타의 의자에 앉아서 히지카타의 자리에선 내가 어떻게 보일지 한번 보았다. 허구한 날 어떻게하면 열받게 할까 고민하는 내가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당연하겠지만.


시간으로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카무이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가도 괜찮아? 하고 묻는 카무이의 말투는 평소처럼 장난이 가득하진 않았다. 조금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아침의 태도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덤덤한 말투에 조금은 안심했다.


카무이는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왔다. 대문을 자신감 있게 벌컥 열어젖히며 제 집에 오듯이 저벅저벅 들어온 것이다. 들어오는 이 녀석의 넘치는 뻔뻔함 때문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말을 건넸다. 


"어서 와, 옷차림만 보면 구속될 범죄자 같네"

"그럼 네 제복이라도 뺏어 입고 왔어야 했나?"


눈을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냉랭했다. 태도 역시 아침에 자리를 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상하게 내가 눈치를 살살 살피게 되는 입장이 되었다. 카무이는 들어와서 내가 있는 방을 한번 돌아보고 둔영의 구석구석의 모든 곳의 문을 거칠게 열어 젖히면서 안을 탐색했다. 그 모습이 마치 경찰이 숨어있는 범죄자를 찾는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뭐하냐 너? 범죄자라도 찾아?"

"아니, 정말 아무도 없나 해서"

"... 없어 정말로"

"그런 것 같네"


카무이는 나를 다시 보더니 다시 아까 있던 장소로 들어가서는 히지카타 토시로 라는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의 앞으로 걸어갔다. 명패를 한번 들었다가 불만이 있는 듯이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보라는 듯이 털썩 앉아서는 회전되는 의자를 휙 돌리며 여유를 부린다. 나는 그 모습을 불쾌하게 쳐다보다가 황당함에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너? 그 자리..."

"이 자리? 알아. 누나의 남자친구 히지카타 토시로 님의 자리잖아? 여기 사진도 있네"


카무이는 히지카타의 책상에 놓인 작은 액자를 들어 보이며 이죽거렸다.


"이건 너고..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이쪽은 국장인가?"

"... 내려놔"

"이야, 여전히 잘생겼네. 맞아 어렸을 때 봤을때도 엄청 잘생겼다고 생각했었어. 왜 부인 사진은 없어? 부인 얼굴 너무 궁금한데"


카무이는 책상을 살피며 말했다. 없는 것을 나는 안다. 히지카타의 책상엔 절대로 그 여자의 사진은 없다. 나는 언제나 그의 책상을 눈으로 살피고,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아, 여기에 있네? 안쪽에 넣어뒀구나"


카무이는 다시 작은 액자를 하나 들어 보였다. 그 사진은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결혼사진이었다. 카무이가 그 사진을 들어보일 때 나는 나도 히지카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히지카타에게 저 여자는 나와 곤도씨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을까? 책상에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의 동생이었던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 뿐이었구나.


"아, 귀엽게 생겼네. 누나랑 이미지가 좀 닮았나?"

"..그 자리에 다시 넣어놔"

"왜? 너 이 사람 그렇게 무서워해?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네가 어디 누굴 무서워하는 성격이야? 히지카타 토시로님께서 이런 결혼사진이나 되는 이런 걸 이렇게 깊숙이 숨겨놓은 것도 다 너 때문 아니야?"

"... 갑자기 그게 왜 나 때문이라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그나저나 기분 좋게 선뜻 온다고 해놓고서 이 까칠한 태도는 뭔데?"

"나 기분 좋아. 네가 나쁜가 보지. 왜 나쁜데?"

"...."


분명히 카무이의 지금 태도는 조금 이상하다.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섹스 후 가볍게 투정을 부린 것 정도로 이 녀석이 이렇게 화가 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작정하고 나를 떠보는 듯한 이런 태도에 나 역시도 슬슬 화가 나고 있었다.


".. 그래. 내가 예민한가 봐. 그만하자"

"뭘 그만해? 뭘 그만하는데? 히지카타 토시로님의 이야기? 아니면 그 부인 이야기?"


나는 뒤돌아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이 이상 너랑 의미 없는 말하기 싫다고. 이런 식으로 시비나 걸으려고 왔으면 그냥 꺼지던가"


그리고 말을 다 마치지 못했을 때, 퍼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의 충격, 그리고 눈앞의 시야가 급격히 아래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머리에선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 어?"


내가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뒤가 집히지는 않을 텐데. 허무하게 바닥에 힘이 휘청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곧바로 머릿 쪽의 통증과, 이마에 흐른 액체가 검붉은 피라는 것을 흐릿한 시선으로 확인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키타. 잘 봐.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물렁한 사이였어? 응?"


내가 손바닥의 피를 보고, 위를 올려다보자마자 카무이는 내 머리카락을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잡고서는 휘청거리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봐, 야, 나 보라고"


카무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카무이가 어째서 웃는지 모른다.


"그래.. 나는 잠시 잊고 있었어.. 그리고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너는.. 나랑 하면서도..."

".. 무.. 무슨 소리..."

"너는 히지카타 이 새끼만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치?"

"..아.. 아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정말? 카무이는 대답을 할 시간도 주지 않고서 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또다시 차가운 바닥에 꼴사납게 드러누워선 변명이라도 하려 하자 내 대답 따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는 듯, 쓰러진 내 앞에 다시 와서는 사정없이 발로 짓밟고 차 댔다. 경찰이 되고 나서 나서 누구에게도 이렇게 맞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저항을 하려 손을 뻗어도 닿지 않고 허공에 우스운 꼴로 주먹질만 하다가 부딪친 책상에서 떨어진 총을 쥐고선 총구를 겨누었다. 형편없다. 나는 정말 형편없다.


"쏘게? 나를? 쏴봐 이 새끼야"


내가 쏘지 못할 거라고 믿는 건지, 배포가 큰 건지 내 손에 쥔 이 작은 총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상황에 나는 쏘지 못할 거고, 지금 맞아서 떨리는 손으로 쏘아도 이 새끼가 맞을 확률은 없다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꼴에 나를 믿었어? 어? 말해봐. 그러니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나한테 이렇게 처맞는 거 아니야. 그렇지? 왜? 나는 평생 너한테만 물렁하게 대할 줄 알았어? 항상 너는 내 위 쪽에 군림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아..아니...야.." 


내 옆으로 어디 가 찢어졌는지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바닥에서 기어 오는 것을 보면서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껴올 때, 이 새끼는 그제야 나에게 가하던 거친 폭력을 멈추었다. 이미 이 공간의 내 책상이며, 히지카타의 책상이며 모든 곳에 내 피가 조금씩 튀고, 물건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서 경련하고, 이 새끼 발밑에서 온몸을 미세하게 떨면서 작은 신음을 힘겹게 내뱉을 뿐이다. 카무이는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다가 내 멱살을 움켜쥐며 나를 강제로 반쯤 앉혔다. 옷에서는 단추가 떨어졌는지 툭 하고 옷이 헐거워짐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 아니야.... 아니... 야.."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좋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였는데.."

"... 갑자기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데..."


물론 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 자식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럼 아니야? 뭐가 아닌데? 그럼 저 새끼 침실 도청하고 있던 건 뭐야?"


.....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 외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 침실 도청이라....."

"....."


카무이는 무엇이 우스운지 피식 웃었다. 할 말이 없다. 분명히 나는 쓰레기다. 카무이 이 새끼가 말하는 그 이유까지 맞다. 처음의 시작은 그저 장난이었고, 히지카타가 당연히 그 여자와 그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 새끼도 나와 다를 것 없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신음소리와 상상 속의 히지카타의 표정에 발기해 버린 것이다.


"오키타, 자, 날 봐. 내 얼굴.. 잘 봐"


카무이는 내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손에 닿는 카무이의 피부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내 손에 묻은 피가 이 녀석의 하얀 얼굴에 붉게 물들며 촉촉해진다.


"네가 나에게 한 짓도 생각해줘. 알지? 나 역시 쓰레기 같은 너의 범죄의 희생양이었잖아"


카무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댄 후 귀에 속삭였다. 그 말에 다시 나는 울컥한다. 그리고 머리에서 아직도 흘러내리는 뜨거운 피와, 나를 탓하는 이 녀석의 폭력과.. 또 히지카타가 숨겨두었던 부인과의 결혼사진의 잔상이 계속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카무이는 잡고 있던 내 셔츠 자락을 거칠게 놓고, 나는 또다시 차가운 바닥으로 짧게 신음하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그리곤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말했다. 집에서 봐. 밖으로 나가는 이 녀석의 뒷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어두워지며 이상한 익숙함을 남기며 사라진다. 



나는 카무이 항상 이런 관계였다.

하지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가 처음으로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내가 얼굴에 염산을 뿌렸을 때부터, 가족과 누나가 사라진 곳에서 사라졌을 때, 다시 내 앞에 왔을 때..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런 사실을 이 녀석과의 섹스에 취해서 잊고 있었나? 


이번에 터무니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처맞은 이유 역시 그런 방심 때문이었다. 최근 이 새끼가 나에게 뿌려대는 호감이라는 비에 맞아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그 비가 내가 뿌린 염산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우리는 이렇게 언제든지 서로에게 등을 돌릴 수 있고 서로를 찔러버릴 수 있는 기묘한 관계였을 텐데.. 





희미한 웅성거림에 눈을 떴을 때는 야마자키의 긴급한 통화 목소리가 들리었다. 네 부장님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타격이 심한데 의식이 없어서 무얼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칼에 찔렸다던가 하는 그런 상처는 없는 것 같고요.. 총으로 맞은 것 같지도 않고.. 총이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요. 아닐 것 같지만 왠지 일방적으로 맞은 듯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부장님 일단 진정... 하시고.. 아직 저도 몰라요... 뒷자리에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히지카타의 흥분한 듯한 목소리에 다시 한번 안심했다. 다행이다. 너 아직도 나 걱정하고 있구나. 다행이야..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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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는 간호사가 나를 체크하러 왔다가 아, 이제 깨졌네요? 기분은 좀 어떠세요 하고 덤덤하게 물었다. 기분이요? 그냥.. 별생각 없네요. 하고 답하자 쉬세요, 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문을 닫고 나갔다. 시간은 새벽이었고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황금빛 달빛과 시퍼런 하늘, 텅 빈 병실, 나, 히지카타, 누나, 히지카타, 누나, 히지카타, 쿠리코.... 그리고 혼자 있는 나.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확 돌려보니 곤도씨가 음료수를 들고 바보처럼 헤헤하고 웃으면서 들어온다. 히지카타가 아니라는 것에 마음속으로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곤도씨를 따라 애써 웃어 보였다. 아까 맞아서 다 터진 입안에 비린 피맛이 씁쓸하다. 


"어쩌다 너 정도 되는 애가 이렇게..."

"...."

"아, 아니다 이런 말은 다음에 하자. 어쨌든 괜찮아? 다들 걱정 많이 했어"

"네. 뭐.."

"토시도 아까 왔다가 갔는데 그 자식은 엄청 흥분된 상태로 처음에 너 발견한 야마자키에게 막 취조하듯이 상태는 어땠냐, 그때 뭐 본 사람 없냐, 등등 엄청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도 아니었다 정말, 하하 그 녀석도 네가 어지간히 걱정됐나 봐"


근데, 안 왔잖아요. 지금 내가 일어났을 때 내 옆에 없잖아. 그럼 이게 지금 걱정한 사람의 태도예요? 히지카타 그 새끼는 항상 그런 식이지.


"아... 네"

"아까 내내 있다가 부인이 언제 오냐고 전화 와서 일단 들어갔어. 아침 일찍 온다더라. 토시는 왜 없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

"네? 아니요 무슨. 그런 새끼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데"


갈비뼈 골절, 팔, 다리 모두 부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곤도씨에게 들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일주일? 그럼 히지카타는 몇 일이나 오려나? 오늘 아침에 온다면 도대체 몇 시쯤이나 오려나. 혹시 내가 자고 있을 때 오면 어쩌나.


온몸이 아팠지만 필사적으로 히지카타가 올 때까지는 잠이 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다시 드는 생각. 아침에 온다면서 바빠서 못 왔다면서 또 안 오면 어쩌나. 내가 기대하는 히지카타가 결혼을 한 이후 나의 기대에 한 번이라도 부응한 적이 있는가.. 내가 기대해도 되는 걸까.. 


다행히도 6시 즈음이 되자 히지카타는 차가운 아침 공기와 함께 병실을 찾아왔다. 몇 번이나 간호가 들어와서 히지카타인줄 알고 쳐다보기를 반복하다가, 포기했을 때 즈음에 약간은 거친 발걸음을 하고 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서늘했고, 히지카타의 청회색 눈빛과 그 새벽하늘의 색이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도 없고, 그렇다고 잡을 수도 없는 이런 애매함조차 닮았다고 생각했다.


".... 괜찮냐"

".... 응"

"어떤 놈이냐? 어떤 새끼길래 네가 이 정도로 당해?"

"...."

"말해. 죽여버리게"

".... 됐어. 내가 방심한 거야"

".... 방심? 네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말 안 할 거냐?"

"어. 내가 쪽팔려서 그래. 게다가 얼굴도 잘 못 봤고.."

"... 퇴원하고 이야기하자"

"이 이야기 안 할 거야 이제"


내가 꽤나 완강하게 이야기하자 히지카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 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 알았어. 푹 쉬어라"


막상 옆에 앉았을 때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가, 갈 것 같은 그 말에 히지카타는 홱 돌아보며 말했다.


"벌써 가?"

"... 그럼?"

"... 아니, 뭐... 그니까...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내 말에 히지카타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의외의 반응에 나는 놀라서 히지카타를 바라본다. 최근 본 히지카타의 모습 중 제일 좋았....다. 피식 웃으면서, 아직 애는 애네? 하고 말하며 나를 보며 웃어준 것이다. 간만에 느끼는 히지카타의 따스함. 누나와 내 곁에 있을 때의 히지카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그 친근함에 나도 모르게 눈이 뜨거워진다. 얼굴도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 얼굴을 홱 돌렸다. 히지카타는 내 옆에 보조 침대를 꺼내더니, 그래. 한 시간 정도는 나도 좀 누워 있다가 출근하지 뭐. 하고는 누웠다. 히지카타 특유의 희미한 담배 향. 나를 안심시키는 이 향기가 나는 미치게 좋았다. 나의 몸 상태가 이렇게 아파서 불편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가서 푹 안겨버렸을지도 모른다. 


"... 히지카타"

"왜"

"... 히지카타씨"

"응"

"... 히지카타..."

"왜 임마"

"그냥.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어"

"...."

"하아..."

"소고"

"응?"

"나도 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우리는 작게 웃는다.


새벽의 향기와, 희미해진 달빛과, 히지카타의 담배 향과 따스한 숨소리에 나도 모르게 바로 잠들었다. 이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이 상황이 꿈이 아니길, 꿈이라면 이대로 멈추길.. 내가 인생을 언제 마치더라도 이렇게 행복한 상태에서 끝이 나길...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마저 공존하며 지금 이 행복과 함께.. 히지카타와 함께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히지카타는 작게 쓴 쪽지를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


[출근할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병원에서 주는 밥이랑 약 잘 먹고]


그냥 사라질 줄 알았던 히지카타가 반듯한 글씨로 남긴 이 쪽지는 나에게 새벽의 감흥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으며 이불에 다시 풀썩 눕는다. 온몸이 아프고 불편하지만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

카무이가 왔다. 내가 병원에 있은 지 이틀 정도가 지난 후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검은색 모자를 눌러 쓰고서.. 히지카타가 온 줄 알고 엄청난 화색을 띠며 병실 문을 돌아보고 난 후 점점 차갑게 굳어가는 내 표정 변화를 충분히 눈치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새끼는 친절하게도 커다란 과일 바구니까지 사들고 왔다. 그 뻔뻔함에 황당해서 코웃음을 쳤다.


"병 주고 약줘?"

"...."

"가"

"... 왜? 너도 왔었잖아"

"...."


반발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상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창문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카무이는 내 침대 옆에 걸터앉아서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 미친 새끼가...!"


내가 팔을 뿌리치자 카무이는 다시 웃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내가 지나쳤어. 많이 아프지?"

"... 그딴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말하지 마.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돌아가"

"왜?"

"빨리 꺼지지 않으면 네가 범인이라고 신고하겠어. 빨리 꺼져"

"그럼 어떻게 되는데?"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엔 싫어도 돌아가는 게 맞을 텐데.. 카무이는 너무 눈치가 없는지 너무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 제발 부탁이니까 꺼져, 내 눈앞에서"


내가 카무이에게서 등을 보이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하자, 카무이는 잠시 옆에 서 있다가 짧은 숨을 내쉬고는 병원을 나갔다. 그 뒷모습이 이상하게 당당해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전에 카무이의 문병을 왔을 때의 나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며칠 후,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부터가 또 문제였다. 나는 어디로 가지? 다시 집으로? 집은 아니다. 그곳엔 소름 끼치는 그 새끼가 날 기다리고 있으니 갈 수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둔영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 했다. 사실 나는 히지카타의 집에 머물며 히지카타의 부인을 더 엿 먹이면서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내가 그 여자를 싫어하는 감정에 너무 먹혀버려서 그 부인보다 내가 먼저 화병으로 뒤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평범하게 둔영으로 향했다. 


돌아간 둔영은 처음에 내가 들어갔을 때와 같았다. 이제 히지카타가 상주하는 날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보다는 자유로웠지만 나에게 그것은 너무 허전했다. 자유롭게 만화책도 보고 만취하지 않는 선에서는 몰래 나가서 술도 한 잔씩 걸쳤지만 그런 일탈에 히지카타가 내 손을 잡아주며 잔소리를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대원들 모두가 잠이 든 틈에 또다시 몰래 도청장치를 귀에 꽂고서 히지카타와 쿠리코가 어떤 대화를 하는지, 섹스 시작을 알리는 대화는 어떻게 하는지, 섹스를 하며 뱉는 말은 어떤 말이 있는지 어떤 신음을 뱉는지 듣고 있었다. 사실은 죽을 만큼 듣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에 중독이 되어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답답하게 화가 나지만 그만큼 이것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달빛 드는 병실에서의 히지카타와의 나를 생각하며 자위했다. 아, 아, 아..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꼭 안아주세요.. 너무 좋아요.. 하고 쿠리코의 아련한 말투를 나 역시 히지카타에게 뱉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정 후에 느껴지는 이상한 허탈감은 나를 너무도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런 짓을 반복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새끼가 보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단지, 내가 있을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 그래.. 과거의 흔적들.. 추억의 잔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와 그 추억을 함께 나눈 그 새끼에게 가야만 내 존재가 인식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곳에 가야 그래도 내가 이런 자위를 혼자 하며 비참해하는 감정을 조금은 덜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에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돌아간 집의 문을 열자 카무이는 불을 꺼 놓은 채, 소파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묘하게 파란 눈은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 뭐 하냐?"

".... 무서웠어"

"웃기고 있네. 너 같이 멍청한 새끼가 무서운 것도 있어?"

"네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팰 때는 죽일 것처럼 인정사정 안 보고 패더니? 너, 아예 그럴 작정으로 온 거였지?"

"...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었어. 미안해"

"미안?"

"응 미안"

".... 나도 내가 왜 여기 다시 왔는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어"

"...."

"그래.. 내가 너 탓만을 하는 게 이상한 거 알아. 어떻게 보면 내가 먼저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쓰레기여서 그런가? 너 같은 쓰레기 새끼가 내 옆에 있어야 내가 안심하는지도 몰라. 하.. 너도 그랬겠지.. 그 당시 병실에서 날 얼마나 죽여버리고 싶었어? 나 역시... 너무 열받고 진짜 죽여버리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옆에 아무도 없더라고. 그나마.. 쓰레기 새끼 같은 너에게라도 내가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안정감이... 하 씨발 이게 뭔지 모르겠는데... "


카무이는 나를 쳐다보다가 더듬더듬 말하는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 거렸다.


"놔. 아직 다 안 아물었어"

"응, 미안 미안, 아팠지?"

"아.. 씨발새끼 진짜"


카무이는 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서, 내 어깨를 끌어안고 가만히 입을 맞춘다. 이상하게 나는 그 행위가 또 싫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입술을 부빈다. 그날의 키스는 너무 부드러웠다. 나는 병실에서 히지카타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키스는 너무 달콤하고.. 황홀하고.. 그 어떤 때보다 간절했다....










-

일주일 후, 히지카타가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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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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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밝은 성격인가? 카구라는 조금 특이하다. 나와 좋은 사이도 아니고 나쁜 사이도 아닌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괴리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곤도씨의 요청으로 해결사 사무실에 간 나는 밥을 입안에 잔뜩 욱여넣고 있던 카구라를 한참 쳐다보다가 물었다.


"전에 요시와라에 갔었잖아"

"응? 응응"

"그때 찾고 있던 사람, 찾았어?"


내 말에 카구라를 밥을 먹던 손을 탁 놓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음.."

"내 질문이 고민을 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인 건가?"

"너한텐 말하기 싫어서 그런 거 다 해!"

"... 아"

"흥!"


카구라는 내 말에 고개를 홱 돌려서는 다시 먹던 밥을 우적우적 먹었다. 원래 이렇게 티격태격 대는 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행동이 크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전에 요시와라에 갔을 때 카구라가 소리 없이 눈을 움직이는 모습은 지금의 이런 장난기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게 느껴서 물은 것뿐이었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카무이에게 전보다 더 큰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친밀감이라기보다는 약간의 동질감이라고 표현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내 옆에 한 명 더 있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안심해버리는 그런 동질감. 그래서 싫다고 싫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카무이도 전보다 더 친밀한 스킨십을 시도해왔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당장 멈출 수는 없었다. 수많은 생각보다는 따뜻한 체온이 좋았다는 것 밖에는 이유를 댈 수가 없다. 뒤에서 나를 안을 때, 내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올 때, 내 옷 속으로 간지럽게 손가락을 집어넣을 때.. 그때 조그만 거부 의사를 표하는 나의 생각마저 정지할 정도로 기분 좋게 따뜻했기 때문이다. 뭐... 그런 이유와 더불어 나를 잘 도와줄... 아니 돕는다기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무이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카무이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한참을 웃으면서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해결사에서의 일을 끝내고 나서 돌아오자 히지카타가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저 새끼의 얼굴을 보자마자 귀에서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끈적한 신음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저 자리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네가 어떻게 뒤에서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런 이상한 사실이 나에게는 공포에 가까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보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떼고는 나를 보고서 물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자리에 없어서 어디 갔나 했어, 해결사에 다녀왔다며?"

"응.. 뭐.."


눈을 마주치기가 껄끄러워서 괜히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발로 굴려대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1번대에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어떤 사람이야?"

"... 전에 하루사메의 그 여자를 잡을 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 뭐.. 실력도 좋고.."

"믿을 만한 사람이야?"

"내가 봤을 때는. 근데 네 눈엔 어떨지 모르겠네"

"... 의외네"

"뭐가 의외인데?"


그제야 바닥에서 눈을 떼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뭔가 서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 표정이 나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네 입에서 '내가 봤을 때는 믿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조금 신기해서. 꽤 친한 사람인가 보다"

"아냐, 친한 거 아니야"

"친하지도 않은 사인데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네"


히지카타는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모르는 나의 인간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는 줄 곳 내 인간관계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밖엔 없다는 것에 자신하고 있었는데..


"...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제 너도 많이 컸구나 싶어서.. 전엔 네 옆에 내가 없으면 네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이 정말 많았거든.. 다행이야"

"...."

"결혼을 하고도 줄 곳 너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계속했어."

"..."

"정말 다행이다"


히지카타의 안심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로 히지카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 나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으면서도 결혼을 한 거구나 너"


나는 히지카타의 결혼에 당연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지금도 히지카타의 결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뒤에서 음란물에나 나올 법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남들과는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저 개새끼는 지금 나를 위하는 척, 착한 척, 세상에서 혼자만이 가장 깔끔하고 깨끗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것에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더럽게만 느껴진다. 내 말에 히지카타는 잠시 자신이 무언가 실수했나? 하는 의문을 담은 표정과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나를 위하는 척을 하고 싶은 거야 지금."

"... 그런 게 아니라.."

"게다가,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을 했다니.. 진짜 재수 없다 너. 네가 나에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착각 그만해. 너 같은 거 없어도 나는 똑같이 이렇게 살았을 거고, 오히려..."

"...."


나를 바라보는 히지카타의 표정이 그저 괜히 너무 재수가 없고, 어떻게 하면 더더욱 저 새끼를 열받게 하는 말을 뱉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토하듯이 말을 던졌다.


"네가..! 네가 내 옆에 없었으면 이렇게 계속 우리 누나가 생각나는 일도 없었을 거야"


히지카타는 내 마지막 말에 놀란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소고.. 너......"

"그런데, 계속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나잖아, 그 여자랑 같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나는...."

"......"

"나는.. 너.. 새끼 때문에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누나가 계속 생각나는데.."


히지카타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나는 히지카타가 나에게 더더욱 미안해 하길 바란다. 


"... 네 말을 들어보니 내가 이기적이구나.. 미안하다..."

"손 치워. 봐, 지금도 그렇잖아. 미안한 척하고 있잖아"

"네가 나 없다고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한 것은 실수야... 그런 의미는 아니고.."

"...."

"..... 나를 볼 때마다 네 누나가 생각난다고 해서 나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지?"


진심이야.

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대답을 할 타이밍도 잡지 못했고, 되려 히지카타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

"...."

"네가 수많은 욕을 해도 상관없지만 욕 하나 없는 이런 말들은 진심 같아서 무서워."

"...."

"이런 말은.. 하지마.."


히지카타는 나에게 정말로 미안한 듯이 말했다. 나는 어째서 히지카타의 이런 말에 자꾸만 약해지는가? 


"그리고 하나 변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말을 하나 더 하자면, 나 편하자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를 지금까지 생각하고 챙겨온 것은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너를.. 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건 내 의무라고 생각해. 진심이야."

"...."

"그리고.. 나도 너랑 똑같아. 나도 널 보면 미츠바가 생각나."


히지카타는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

하루 종일 생각했다. 자존심 때문에 히지카타에게 나를 보면 누나가 생각난다는 뜻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다그치듯 묻고 싶지만, 이미 끝난 상황의 그 말을 이제 와서 다시 꺼내기도 우습고, 혹시나 내가 뱉은 그 말의 의도와 같은 뜻일까 봐.. 나는 그게 미치도록 무섭다. 그렇다. 히지카타와 나의 관계는 처음부터 누나라는 중심으로 이어져온 관계였을 뿐, 다른 것은 없다. 어정쩡한 관계가 이상하게 너무 깊어져왔고, 너무 길어져버린 것이다. 이런 우리의 관계가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나는 히지카타가 어느 드라마나 소설 속에 나오는 어느 남자 주인공처럼, 죽은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평생을 혼자 살기를 바라고 있었나?

.. 그렇다. 바라고 있다. 평생 혼자, 아니.. 내 옆에서.. 그냥.. 나와 함께.. 그냥 그렇게 함께 늙어갈 것이라고, 지금처럼 이렇게 살 것이라고 나는 굳게, 아주 많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온 것이다.. 사실 결혼을 한 지금도 히지카타가 부인보다 나를 더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내 한마디면 그 여자의 어떤 말도 다 뿌리치고 내 앞에 달려오길.. 바란다.


집 앞에서 카무이를 우연히 만났다. 아, 우연이 아니다. 카무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전봇대에 기대어 서 있던 카무이는 바로 달려와서는, 어깨에 손을 확 얹으면서 왜 이렇게 늦어? 하고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피곤하다. 


"감히 나를 스카웃을 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대책 없다"

"응 맞아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근데, 그거 정말 진심이었어?"

"응 지금도 진심이야"

"나, 가서 난리칠수도 있는데? 내가 정말 경찰에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아니라고 생각해"

"하하, 하긴. 그건 너도 마찬가지긴 해"

"...."

"뭐야, 갑자기 말이 없어?"

"야, 나 물어볼 거 있는데"


내 머릿속은 아직도 계속 히지카타가 뱉은 '나도 널 보면 미츠바가 생각나'라는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뭔데? 물어봐"


카무이는 내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그.. 너를 보면 주.. 죽은 사람이 생각나"

"응?"

"이거 무슨 뜻일까?"

"아! 그거 죽이고 싶다는 거 아닐까?"


도움이 안 되네.


"아.. 참 적절한 대답 고맙다"


딱 이 새끼 다운 대답에 맥이 풀린다. 그럼 그렇지 내가 이 새끼에게 뭘 더 기대했을까?


"왜? 그거 말고 다른 뜻이 있어"

"몰라 꺼져! 도움 안 되는 새끼"


이건 내 잘못이다.. 누나와 히지카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히지카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설명을 하면.. 누나와 히지카타의 관계를 아는 이 새끼는 내가 히지카타의 말 한마디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왠지 알아차릴 것 같아서.. 차마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와서 소파에 다이빙하듯이 누워서는 과자를 우걱우걱 먹으며 티비를 켜는 이 녀석.. 관찰하듯 쳐다보다가 옆에 앉았다. 분명히 히지카타는 이런 이상한 새끼를 1번대로 데려간다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할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처음에 제안을 한 것은 분명히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또 바뀌었다. 히지카타가 이 새끼를 보고 저런 비정상적인 놈을 여기로 데려올 생각을 했냐면서 눈 뒤집혀서 난리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히지카타가 전에 이 새끼를 참 열심히 찾고자 했는데.. 내가 데려가도 찾던 놈이라고는 생각 못하겠지만. 어쨌든 히지카타가 싫어할 것이 분명한 이 새끼를 우겨서 1번대로 활동하게 만들어야지. 그것이 맘에 안 드는 히지카타는 계속 1번대를 감시해줬으면 좋겠다, 계속 나에게 연락해서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누나가 생각나는 나를 계속, 자주 보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거지. 그래. 히지카타는 그래서 결혼을 한거다. 나와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서..


"야, 한번 올래?"

"어딜?"

"면접 봐야 될 거 아냐, 내가 일방적으로 널 데려갈 순 없으니까"

".. 아 그거 진짜 진심이었구나"

"응"

"벌써 위에도 다 말해놓은 거야?"

"아니 아직"

"그럼 내일 그냥 구경하러 갈래! 아무도 없는 시간에"

"구경은 무슨. 애기냐?"

"나를 스카웃까지 했으면서 구경도 못해? 결정도 내가 하는 거잖아?"


이 씨발놈이 진짜.


"아니 이 개새끼가 진짜. 야, 너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경찰이면 진짜 존나 좋은 직업이거든? 누가 봐도 지금 네가 나한테 감사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내가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돼? 어쨌든 나한테 먼저 제의한 건 너잖아"

"아, 그럼 됐어. 그냥 너 오지 마. 왠지 계속 이렇게 맨날 싸울 것 같아"

"내일 너 내부에서 근무한다고 해! 그럼 내가 밖에서 지켜보다가 갈게!"

"오지 마"

"모자 쓰고 가도 괜찮겠지?"

"오지 말라고 했어"

"나 가면 맛있는 거 줘?"

"오지 말라고!"

"아! 가면 나도 제복 입어볼래!"

"아 제발. 스카웃 취소한다고. 오지 마 제발"


계속 옆에서 질문해대는 이 새끼가 너무 꼴 보기 싫어서 발로 머리를 퍽 하고 차버리자 웃는 얼굴로 순순히 한대 맞더니, 그대로 발목을 잡고서 나를 자신 쪽으로 휙 끌어당긴다.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눕혀져서는 스르르 끌려간다.


"뭐"

"좀 말이 많은 거 보니 뭔가 고민이 있나?"

"없어"

"그냥 느낌이 그런데.. 나 꽤나 감 좋거든"

"참나, 눈치도 없는 새끼가 그런 소리를 하네"


이 새끼는 잡은 내 발목을 만지작 만지작 하더니 종아리로, 허벅지로 손을 슬슬 내리며 다시 씩 웃어 보인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에 또다시 히지카타의 숨소리가 떠오르는 것이다. 


"야. 잠깐만. 놔"

"왜?"

"부탁이 있어"

"하기 싫다는 부탁하면 새벽 내내 건들면서 잠 못 자게 할 거야"


그 반대였다. 나는 오늘 이 새끼가 내 발목을 잡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나는 내 주머니에 있던 안대를 꺼내서 카무이에게 내밀었다. 이상한 표정으로 안대를 바라보는 카무이에게 말했다.


"오늘 내 눈 가리고 할래. 눈을 가리고 하면 더 잘 느낀다던데"

"오늘 이상할 정도로 적극적이네"

"빨리"

"나는 네가 보고 싶은데"

"좋다길래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럼 앞으로 안대만 봐도 너랑 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카무이가 조금 눈치가 빨랐다거나 조금 더 똑똑했다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카무이는 내 눈에 안대를 씌우고 입을 맞춘다. 안대를 씌울 때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이 꽤 부드럽게 느껴졌다는 것이 원인이었을까? 만들어진 어둠 속에서 나를 만지는 그 허상의 실체는 행위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던 히지카타가 되었다. 히지카타는 평소 모습보다 거칠다. 내 어깨에 손을 얹을 때는 부드럽고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히지카타는 항상 집무실에서 앉아서 책을 보며 펜을 굴리던 히지카타가 아닌, 나를 보며 누나를 떠올리고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금기에 손을 뻗어버렸지만 멈출 수 없는 흥분에 중독되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모습이 조금 흘러나와 버린 것이다. 오키타, 오키타.. 하고 부른다. 역시나..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지카타는 나를 오키타 라고 부르지 않는데. 항상 소고 라고 불러주는데.. 꽤나 낮은 목소리로.. 


"어때?... 하아... 정말로... 더 잘 느껴져?"


봐, 너 그 여자랑 할 때는 이런 거 안 물어보잖아. 짓굳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건.. 그 상대가 나 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하.. 오늘따라 정말 반응 엄청 빠른데"

"읏... 하아... 시.. 싫어.. 나...나느...싫.. .하앗..."


싫다.... 나는 네가 싫다... 네가 나를 통해 누나를 보면서 이런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이 어떻게 좋겠어.


우리가 몸을 흔드는 소파에서는 삐걱삐걱하는 엄청난 마찰음이 들리었다. 히지카타가 이렇게 난폭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부인이 아닌 나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폭해질 수 있는 거야, 하고 안심하던 찰나에 눈을 억지로 가려주던 검은 천이 스르르 내려가고, 내 허리를 잡고 접합해오는 선홍빛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아.. 그렇네.. 나 지금 이 새끼랑 하는 거였어.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카무이는 이미 발기되어 있는 내 앞을 손으로 잡고선 거칠게 문지른다. 아.... 아앗.. 엉킨 신음과 함께 내 배 위로 나와 이 녀석의 뜨거운 정액이 방울져 툭 툭 떨어진다. 긴 꿈에서 깨어난 듯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너무 좋았어. 하고 내 목과 어깨 사이에 가볍게 입술을 부비는 이 녀석에게 이상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 나도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눈을 가린 순간에 보인 히지카타의 허상과 그때 느꼈던 내 이상한 감정, 그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섹스가 끝난 후의 허무함과 함께 파도처럼 밀려온다.  


내가 히지카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히지카타만 보면 누나 생각이 난다고 외쳤던 내가.

누나의 남자친구였던 남자와의 섹스를 상상하며 발기하는 나는. 히지카타가 나를 보며 누나를 떠올린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뻐하고 있었을까? 혹시나 나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며 자위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서?


나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샤워 후에 같이 밥을 먹었다. 이상하게 얌전한 나를 보고 의아하다는 듯이 카무이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아까는 이상하게 말이 많더니 이제는 이상하게 말이 없네"

"관찰하지 마"

"관찰한 거 아니야"

"지금 이렇게 내 상태에 대해서 아깐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관찰이잖아. 멍청한 새끼야"

"물어보지도 못해?"

"물어보지 마."

"갑자기 까칠하네"

"나 오늘은 일찍 잘래"


깨작깨작 먹다가 도저히 먹을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되어서 젓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카무이는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작스러운 나의 변덕에 저 새끼도 지금 약간 짜증이 난 상태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나는 저 새끼와의 행위 후에 일어난 이상한 감정들 때문에 미칠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잘 들어가지도 않던 내 방에 들어가서 한번 쭉 훑어보았다. 머리 위 천장에 붙어 있던 야광별 들도 한 번씩 바라보고.. 저 새끼랑 같이 썼었던 이층 침대도 한번 쳐다보고... 책상에 앉았다.  서랍도 괜히 한번 열어본다. 서랍엔 예전에 왔었던 뜯어보지도 않은 이상한 편지가 처박혀 있다. 수신자는 오키타라고 쓰여있지만 발신자가 고아원인 것을 보아하니, 카무이에게 온 편지인가 보다. 내일 전해줘야지. 시계는 10시 16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습관적으로 도청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사실 죽을 만큼 듣고 싶지 않지만, 듣지 않으면 히지카타가 그 여자가 무엇을 하는지 불안함과 동시에 궁금해서 하루 종일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 뜯게 된다.


[.... 그래서 고민이 많아]


익숙한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여자와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왜인지 안심이 된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잖아요]

[.. 뭐. 그거야 그렇지만... 괜찮아. 사실 그냥 말해본 거야 그렇게 큰 고민인 것은 아니고..]

[...]

[아냐, 소고가 표현에 서툴러서 그렇게 내뱉는 거 나도 알아. 소고도 후회하고 있을 거야]


그 다음엔 어딜 갔는지 조용했는데, 나는 히지카타가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준다는 게 기뻤다. 화가 나야 할 텐데, 이상하게 기뻤다.

이상하게..











-

오키타는 급격하게 기분이 다운되어서는 잘 들어가지도 않던 본인의 방에 들어가서, 책상에 엎드려서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는 엎드려서 잠들어 있다. 이어폰. 뭘 듣고 있을까? 이상한 호기심은 분명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판도라의 상자가 단적인 예가 아닌가? 그 상자를 열고 급하게 닫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희망과 소망은 인간이 가진 가장 잔인한 고문으로, 친절하게 목을 죄여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소엔 뭘 듣고 있나 궁금하지도 않았던 게 오늘은 이상하게 궁금해져온다. 손을 조심히 뻗어서는 쉽게 빠질 것 같은 한쪽을 빼서는 내 귀에 꽂았다.


삐걱- 삐걱-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하아.. 쿠리코.. 하아...]

[사랑해요.. 읏.. 히지카타..씨..!]

[나도.. 사랑해....]


스치는 이불의 바스락대는 소리며, 질척이는 소리까지 이 소리는.... 게다가 여기에서 불리는 히지카타씨 하는 건 건 뭐지?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듣고 있는 거지? 옆에 놓인 이어폰 끝의 본체를 확인해보자 빨간 불이 보란 듯이 깜빡인다. 그 불빛을 보고 현재 진행 중인 실시간 도청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새끼 뭐야? 경찰이라더니 하는 짓은 범죄자네. 역시나 이 새끼도 평범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고 나가려다가, 문득 든 생각. 히지카타라면 누나의 남자친구였잖아? 결혼했다는 그 새끼 방을 왜 도청까지 하고 있을까? 왜 엿듣고 있지? 뭐가 궁금한 걸까? 











-

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어 버려서 새벽에 잠이 깼다가 침대로 가서는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도 이어폰을 듣다가 잠들어서인지 귀도 얼얼한 것 같고..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쑤시는 데다가, 왜인지 머리까지 아프다. 머리를 잡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기분이 좋지 않은지 표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카무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제 내가 까칠하게 굴어서 화났냐?"

"그런 거 아니야"

"오늘 정말 올 거야? 올 거면 진짜 내근하고 있을게"

"그래 연락할게"


평소라면 나보다 늦게 나가던 카무이는 일찍부터 어딜 간다면서 이미 밖으로 나갈 준비도 마쳐있었다.


"어딜 이렇게 빨리 가?"

"나도 직업이 있잖아. 가서 오늘 외출한다는 것에 대해서 미리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카무이는 덤덤하게 말했다. 맨날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하던 놈이 저렇게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어제 너무 까칠했나?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대화 거리를 찾았다.


"그.. 어제 모자 쓰고 와도 되냐고 물었잖아. 상관없을 것 같아. 아마 아무도 없을 거고..."

"응"


시큰둥한 반응이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 어제 찾았던 편지를 내밀었다.


"야, 이거"

"뭔데?"


내가 내민 편지를 보고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언제 왔는지는 모르는데 너한테 온 거야. 받는 사람이 오키타라고 되어있지만.. "

"아.."


카무이는 받아들고는 고아원 이름을 확인하고서는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 조금 있다가 보자"


카무이는 그날따라 말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렸고,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다. 










-

댓글 달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D!

오랜만에 와서 보고 너무 감동했어요ㅠㅜ!!

진짜 열심히.. 쓸..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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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캄압/히지오키 요소 주의



멜팅님(@youyoutiktik)님께서 그려주신 그림입니다^^ 감사합니다!



24











-

우리 쪽에서 세운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버렸기 때문에 완전히 비상사태가 되었다. 하루사메의 단장 한 명이 경찰에게 당해서 잡혀들어갔다는 이미지는 다른 모두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것이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나 역시도 모두와 함께 어이없어하며, 이게 무슨 쪽팔린 일이냐며 황당해하고 잡혀간 그를 비난하며 있었을 것이다.


"이상해"

"그렇지? 역시 조금 이상해"


모두들 둘러앉아서 이상하다며 수군거렸다.


"그 1번대 대장 새끼. 꽤나 유명한 놈이어서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이상해. 그 새끼 말이야. 원래 칼 쓰는 놈 아니었어? 잡힌 카다의 상태를 봐. 칼에 당한 상처가 아니잖아"

"그러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칼놀림이 특기라고 들었는데.. 진짜 이상하네"

"게다가 잡힌 그곳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아는 건 하루사메의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어"


5사단 단장의 말에 우리 모두는 숨을 죽였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물론 나도 이게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만"

"..."

"우리 안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생각해봐. 경찰에서 증거로 넘긴 신분의 증거도 그래. 카다는 사기 쪽으로는 완전히 타고난 사람이야. 우리들 신분 세탁에도 완전히 크게 관여하며 도와준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다가 미쳐서 우리로써는 한숨 놓은 거야. 만약 제정신 상태로 잡히면 정보를 불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거 아냐?"



답이 나오지 않는 회의의 결론은 결국 내부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는 짐작만을 두고서 찜찜하게 회의를 끝냈다. 아부토는 아무런 말이 없는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내 팔을 잡고서 가까이에서 작게 말했다.


"너야?"

"뭐가?"

"사실대로 말해"

"그러니까 뭐가"


회의를 마친 단장들이 옆을 우르르 지나가자 무슨 말을 하려던 아부토는 입을 다물고는 나를 제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갔다.


"맞잖아. 그 여자를 경찰에 팔아넘긴 거.. 너 아니야?"

"아니야"

"나에겐 사실을 말해. 그래야 내가 만약의 상황이 왔을 때를 대비할 거 아냐!"

"..."

"어서 말해"

"응 나야"


정말로 내가 그랬을 거라는 건 믿고 싶지 않았는지 아부토는 놀란 듯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내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듯이 눈을 무겁게 감았다.


"그래. 내가 그랬다고"

"..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묻는 이유를 더 모르겠는데? 더 이상 내 눈앞에 있는 게 보고 싶지 않아서"

"이거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

"몰라 그런 거"

"조직의 배반이야. 알잖..."

"아부토, 난 지금 그런 거 알고 싶지 않다고 했어"

"..."

"언제부터 네가 내 말에 이렇게 많은 말을 했어? 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지 마"

"... 아... 그래.. 미안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만약의 순간에 대비한다고 했으니까 이제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면 되겠네"


문을 획 열고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아부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떠나려 한 자신을 약간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카다는 아부토와 맞물려 자기 자신의 명을 본인이 재촉한 꼴이 된 것이다. 나가는 길에서 본 핸드폰에는 오키타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나 오늘 6시쯤 집으로 갈 것 같은데 너도 그 쯤 올수 있으면 와.]











-

모든 것이 원상태, 아니 그 이상으로 좋은 상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좋은 상황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공을 세우고 우리의 위기가 끝났을 때는 히지카타가 나에게 달려왔다고 하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히지카타는 다시 쿠리코에게 달려가야 하는 상황은 여전했다. 오히려 더욱 행복하게 달려갔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히지카타를 내 옆에 두기 위해서는 저 여자와 함께 있는 꼴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 정말 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틀 후, 늦은 저녁 멍하니 집에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귀에 꽂은 도청장치는 정말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그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뒤엉킨 신음소리.


아아.. 히지카타씨.. 너무 좋아요.. 응 나도 사랑해.. 하아.. 좋아요.. 조금 더 깊게 해줘도 좋아요.. 흐응~ 아앗.. 히지카타씨... 히지카타씨... 쿠리코.. 히지카타씨.. 이번에는 꼭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앗.. 하.. 사랑해요.. 사랑해.. 히지카타씨.. 쿠리코...


착착 감기는 듯한 살의 마찰음까지 더해지는 그 충격적인 소리를 듣고서 나는 이어폰을 빼려 손을 들었지만 이상하게 온몸이 굳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 하는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짧은 신음소리. 그리고 쿠리코의 잔뜩 거친 숨소리와 함께 토시로씨... 사랑해요.. 하고 말하는 그 축축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고 둘의 입을 맞추는 듯 쪽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나는 정신이 흐릿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정신을 차린 후에는 한없이 부정하다가.... 이내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다. 물론 내가 한 일은 아니었지만 큰 위기를 하나 지나간 일이 이 둘의 관계를 더욱 끈끈해지게 만들어준 것 만 같아서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겨우 이어폰을 내던지고서 홧김에 약국으로 뛰어갔다. 약국으로 가면서 머릿속엔 온통 죽어야지, 죽어야지, 죽어서 히지카타 그 새끼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어야지. 유서엔 히지카타 이름만 써놓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 밖엔 없었다. 수면제... 수면제 주세요.. 수면제 주세요.. 수면제.. 많이... 많이 주세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잘 들리지 않았을까? 내 말에 약사는 나를 한참 보더니, 어?! 뉴스에서 봤어요! 오키타 소고! 1번대 대장이죠? 와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세요! 하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손을 잡자 손을 마구 흔들더니 아, 뭐 달라고 하셨었죠? 하고 머쓱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는 더 이상 수면제를 달라고 말할 수가 없는 기분이 되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저 조금 스트레를 받는 거 같으니 약을 달라고 했다. 약사는 웃으면서 스트레스엔 푹 쉬는 게 가장 좋아요. 하고 말하고는 비타민 따위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홧김에 수면제를 먹고 죽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순간에 어이없이 소심해져버렸다. 정말로 수면제를 잔뜩 구입해서 집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입에 수면제를 물고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뱉었을 거다. 그래.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가 보다.

 

하지만 자살이 목적이 아니었어도 수면제는 반드시 구입했어야 했다. 귀에선 자꾸만 히지카타씨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쿠리코.. 하는 둘의 목소리와 행위를 알려주는 듯한 마찰음이 자꾸만 맴돌고..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본 그 침실에서 둘이 옷을 헐벗고 헉헉대며 쿠리코가 다리를 올리고 허리를 움직이는 히지카타가 자꾸만 보여서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결국 술을 꺼내어 마시다가 언제 잤는지도 모르게 소파에서 쓰러져서 잠들었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나는 그 도청 이어폰을 귀에서 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 밤 그렇게 충격을 받아놓고도 이상하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귀에 꽂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냥 별 시덥지 않은 대화였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늘은 늦게 오신다고 하셨죠? 하고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평범하고 식상한 대화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 


히지카타의 태도는 다른 때와 똑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또..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가면 쿠리코와 섹스를 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자꾸만 히지카타와 쿠리코의 엉켜있는 모습이 상상되어버려서 하루 종일 히지카타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히지카타가 나에게 와서 어디 아프냐? 하고 어깨를 툭 치며 물을 때에도 만지지 말라는 강력한 표현의 방식으로 손을 쳐내기만 할 뿐 대꾸도 안 했다. 내 반응에 히지카타는 조금 머쓱한 듯이 가만히 있다가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오늘은 히지카타를 오래 보고 싶지 않아서 카무이에게 곧바로 연락을 해서 6시에 오라고 문자를 했다. 





6시를 조금 넘겼을 때, 영문을 모르는 상태로 온 카무이를 끌고 가다시피 해서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밤의 놀이공원은 낮보다 즐겁다.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도 적당히 많고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낮에 비해 많지 않으며 무엇보다 시원하고, 맥주를 한 잔씩 마시기도 좋다. 


"뭐야, 이 시간에 놀이공원에 가는 거야?"


카무이는 내가 이곳으로 자신을 데려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놀이공원 가고 싶다며? 그래서."

"오늘 가고 싶다고는 안 했는데"

"난 오늘 가고 싶어서"

"뭐야. 그럼 무효"

".. 싫어. 나 지금 약간 후회하고 있단 말이야"

"뭘?"

"그냥.. 너한테 도움받은 것에 대해서.."

"뭐야 내가 도와줘서 뭐가 잘못됐어? 엄청난 스타가 되셨던데?"


카무이는 내 표정을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물었다.


"스타는 무슨.."

"왜 우리 사ㄷ... 아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너를 알고 있던데?"

"그런 거 관심 없어"

"인터뷰에서 뭐라고 했었더라? 제가 이렇게 이 악질 범죄자를 잡게 된 것은 국장님과 부국장님의 조언과 분석을 비롯해 모두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 범죄자를 조사하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희에 대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주셨으면. 이상입니다"


카무이는 내 앞에서 내가 인터뷰 때 했던 대사를 그대로 외워서 하면서 옆에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조사했다고 하기에 창피하지도 않았나 봐 대장님~


"아니.... 나는 같이 하자는 건 줄 알았지. 그렇게 너랑 네 친구 둘이서 이미 잡아놨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하하, 고마웠지?"

".... 물론 고맙지"

"근데 이렇게 멋대로 날짜도 잡고... 너무한 거 아니야? 나름 대가로 제안한 건데?"

"고맙지, 고마우면서도 사실.. 미치게 불안해"

"뭐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하늘에선 커다란 폭죽이 퍼엉 하고 굉음과 함께 찬란한 빛을 내며 검은 하늘을 밝혔다. 나를 바라보던 카무이는 그 소리에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혹시, 일부러 밤에 오자고 한 거야?"

".. 일부러.. 라기보다는"

"이 폭죽 보려고?"

"응. 너랑 같이 하늘을 보려고"

"..."

"너 햇빛 못 보잖아"


내 말에 카무이는 웃으면서 웬일이지? 하고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면서도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리며 불안해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 너무 치사한 것 같기도 하고..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

'미안해. 너무 늦게 말했어"

".. 뭐가?"

"너 그렇게 항상 우산 쓰고 다니는 것도 다 나 때문이잖아. 다시 돌이킬 수 없으니.. 사과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싶었어. 미안해"

"뭐지?"


카무이는 내 사과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큰 잘못을 했는데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니까.... 불안했어.. 아니면 혹시 다른 속셈이 있어서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다가 뒤통수를 치려는 건가?"

"내가? 내가 널? 음... 생각 안 해봤는데 참고할게"

"야, 나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다?"


카무이는 내 말에 다시금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지금 왜 그러는지 나는 생각도 안 나. 지금 나 불편한 것도 없고. 너한테 원한도 없어."

"그럼 왜 왔어? 더 이상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사이잖아"

"그건 그렇지"

"...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내 마음 편하고 싶어서 너에게 물어보는 거야. 그냥.. 단순한 질문이야"

"...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정말 별 이유 없어. 갑자기 생각이 나서 집에 왔어. 그런데 그 집에 네가 있었고.. 너를 보니까 옛날에 함께 살 던 때가 생각나서 같이 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그 여자를 잡은 건.. 너 때문.. 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함께 있어. 그러니 걱정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아. 정 계속 미안하면 내 옆에서 계속 미안해하면서 살아. 어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중에 네가 떠나라고 해도 안 떠난다?"

"음.. 좋은데 같은데 그건?"


퍼엉하고 다시 한번 거대한 소리를 내며 폭죽이 터졌다. 하늘을 수놓는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이 한번 모였다가 미끄러지듯이 넓게 퍼진다. 광활하게 퍼지는 빛이 반사되어 카무이의 눈 안에 그대로 작게 빛난다. 웃는 것이 때로는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녀석이지만 오늘 내 앞에서 보이는 웃음에는 그 어떤 악의도, 살의도 느껴지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폭죽놀이가 끝나자 신데렐라의 마법이 끝난 듯이 화려함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적당한 소음이 도는 평범한 놀이공원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제야 카무이에게 왜 이곳에 오자고 했는지를 물었다.


"음.. 그냥 여기서 솜사탕도 사 먹고 싶고.. 음.."

"솜사탕?"

"사실은 예전에 같이 탔었던 저거, 다시 타고 싶어서"


카무이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동그란 관람차였다.


"뭐야"

"왜?"

"아냐 가자, 부탁 들어주기로 했는데.. 가야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전에 이 놀이공원에서 벌칙으로 이 녀석과 나는 이 관람차를 억지로 탔었다. 지금은 그런 벌칙을 나에게 내릴 사람이 없지만... 다시 내가 이곳에 와서 같은 사람과 이 관람차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고집스럽게 창밖을 쳐다보던 때의 내가 이 관람차를 열면 그 안에 앉아있을 것만 같고 그 밖에선 누나가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들어가서 마주 보고 앉아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런 곳에서 어색하게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좋냐? 너도 참 취향 한 번 이상하다"

"... 그런가?"

"당연하지 미친놈아. 나랑 여기서 사이좋게 다른 연인들처럼 키스라도 하게? 으, 소름 끼쳐"

"... 못할 건 또 뭐야?"

"... 그냥 닥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아?"


진심으로 주먹을 쥐고 물었다.


"하하 장난이고, 그냥 한번 더 타고 싶었어. 하늘도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기도 하고"

".... 봐, 특이하다니까"

"한번 더 벌을 받는 기분이잖아"


카무이가 밖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에 잊으려 노력하던 그때의 기억이 나를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이 아파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만큼이나 이 녀석도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로 이 새끼 앞에선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뜨거워진 눈을 깜빡이며 나도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잘 보면 야곱의 사닥다리가 보일지도 모르고"


카무이는 까매진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 머리가 조금 이상해진 거 아니야? 뭐, 항상 그랬지만"

"갑자기 지금 죽으면 천국은 못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 뭐야 갑자기. 누군가에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어?"

"내가 그런 걸 당하겠어?"

"당하고도 남게 생겼지.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너 같은 놈이 딱 맞고 다니기 좋게 생겼다고.. 뭐... 이런 말하는 거 보니 생각보다 멀쩡한 것 같지만"

"...그냥 나도 너와 비슷한 이유로 내 마음이 좀 편해지고 싶어서 그래"

"응? 뭔 개소리야"

"그냥 그런 이상한 이유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카무이는 다시 밖을 바라보며 조금은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전엔 내가 고집스럽게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면 이번엔 이 녀석이 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면 아까 이 녀석이 말한 야곱의 사닥다리라도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같이 바라본 하늘은 너무 까맣다. 폭죽이 터질 때의 찬란함은 이미 찾을 수도 없게.











-

적어도 아부토와 이렇게 어색해진 관계를 약간은 회복하기 위해서 나는 카구라를 아부토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적어도 변명의 여지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다른 것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카구라는 나를 찾아왔다. 똑같이 그 지하의 카페에 가벼운 발걸음을 하고서 눈을 반짝이며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도착하기 전에 아부토도 그 카페에 있었다. 어째서 아부토가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찾는 카구라를 보며 카구라에게 어째서 나를 찾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카구라를 그런 아부토를 보고 꽤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관하지 마' 라고 차갑게 대답했다고 한다. 카구라를 내쫓으려고 하는 와중에 내가 나타난 것이다. 카구라는 나를 보자마자 오빠아! 하고 달려와선 팔에 매달렸고 아부토는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와 카구라를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정면에서 딱 마주쳤으니 굳이 숨기기도 그렇겠다 생각한 것이다.



"아, 아부토가 있었네? 얘는 내 동생.. 인 카구라라고 해"

"동생? 네가 전에 말하던 그 동생?"

"어? 아.. 어어"

"전에 없어졌네 어쩌네 하더니 아니었어?"

"뭐... 응 그냥.. 이렇게 됐어"

"집에 못 들어오던 이유가 동생을 만났기 때문이었구나? 전에도 가족을 엄청 생각하고 그랬었지 너.."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아부토는 좋은 해석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쭉 이어져 오던 우리 관계의 딱딱함이 이제 풀린 듯했다. 아부토는 오랜만에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난 또.. 걱정했잖아. 그래. 그럼 둘이 잘 이야기 나누다가 와. 난 먼저 갈게"


아부토는 오래간만에 웃어 보이면서 인사를 하고 떠났다. 


"집에 못 들어가는 이유가 나 때문은 아닌데. 누구야? 같이 사는 친구가 저 사람 아니야?"


카구라는 아부토의 뒷모습을 보고서 내게 물었다.


"갑자기 찾지 말랬잖아"

"가족을 엄청 생각하고 그랬었냐 해? 진짜냐 해? 오빠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냐해?"

"나는 너와는 달라서 바쁘다고"

"근데도 나에게는 오지 않고... 누굴까.. 오빠랑 같이 사는 그 친구가.."

"너 경찰들 잘 안다며? 요즘 기세등등한 것도 잘 알겠네?"

"...응 안다해"

"그래서 이 오빠는 힘들어. 이만 가봐. 나 바빠"

"내가 도와줄까해?"

"아니 그런 거 필요 없고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하려고 왔으면 돌아가"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카구라는 항상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찾아와 목적도 없는 만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괴상한 말투는 더욱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카구라를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늘 말하지만 나는 카구라를 같은 혈육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고 있으며, 다시 만난 것은 정말 반갑지만....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귀찮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뿐이다.


"카구라, 어쩌다 가끔 만나는 남매가 나는 좋다니까? 이런 시시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지 마"


내 말에 카구라는 또다시 가끔 나오는 마녀의 눈을 하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나 오늘 기분 너무 안 좋아. 이대로 계속 울면서 집에 갈 거다 해!"


그리고는 카페를 나가버렸다. 아... 피곤해... 


카구라의 저런 재수 없는 행동을 또다시 눈앞에서 본 것은 싫지만 그래도 한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아부토가 나에 대한 적개심을 거뒀다는 것이었다. 아부토는 카구라와의 만남 후에 나를 보고, 처음 만났을 때의 평소처럼 단장! 이리 좀 와봐! 하고 웃으면서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아부토가 나를 부를 때엔 저렇게 웃으면서 불러주어야 한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의 아부토의 웃음을 보고 약간은 안심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아부토의 저런 행동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눈치를 살피고 있나? 하고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부토는 다가온 나에게 다른 사단에서 가져온 만두를 쥐여주면서, 좋아하잖아? 어서 와서 먹어. 하고 웃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하나를 호호 물어서는 종이에 싸서 주었다. 나는 그런 아부토의 행동에 활짝 웃는다. 응! 내가 다 먹을 거야!


이제야, 나도 그렇고, 아부토도 그렇고 제자리로 온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나를 불편해하는 아부토가 아부토란 말이야? 그런 아부토는 있을 수 없다. 항상 날 이해하고 남들과 가까운 위치에서 나에게 구박도 하지만 나를 두려워해야 되고, 항상 나의 편에 서서 나를 돌봐줘.






그런 편안함과 함께 나를 더 즐겁게 해주는 건 오키타였다.

만두를 먹다가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는 아부토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 녀석은 새삼 진지한 말투로, 나에게 경찰이 되지 않겠냐고 물어온 것이다.


[생각해봤는데, 그런 큰 녀석을 잡을 정도로 전투력이 좋다면.. 그래도 조금은... 뛰어난... 것 같아서. 너 지금 하는 일이 뭔진 자세히 모르지만 시험 정도는 봐도 되잖아? 내가 추천해줄게. 나랑 같이 일하는거 어때?]










-

너므 덥네요..

다들 화 이 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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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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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의 아부토는 본의 아니게 약간의 거리를 둔 나를 조금씩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전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카구라와의 만남 후 만난 아부토의 표정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기에 그 표정을 보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부토는 나에게 누구를 만났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되려 물었다. 찾았다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부토는 작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까 긴급회의가 있어서 모였었어. 회의 내용은 조금 있다가 알려줄게. 별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평소에도 잘 알아서 하던 일이었으니 그리 걱정은 하지 않는다. 등을 돌리자 잠깐 머뭇거리고 있었던 아부토가 급하게 말했다.


"..... 요즘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도대체 어디서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야"


말투만 들어도 안다. 아부토는 지금 뱉은 그 말을 꺼낼지 말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오키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경찰이라고 하면 분명히 난리를 치며 소란을 떨 것이고, 카구라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알아도 좋을 일이었으면 내가 알아서 말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말에 아부토는 그렇지.. 하고 작은 대답 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회의 내용 알려준다며, 말해봐"


하루사메 안의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커다란 소파에 털썰 앉아서 물었다. 아부토는 계속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 듯이 조금 멍한 상태로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경찰 쪽의 소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응. 들었어."

"형식상의 교류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이나 경찰들이나 서로 굉장히 껄끄러운 존재들이지. 이번 기회에 조금 더 힘을 빼앗자는 의견이 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우리가 관계에서 확실히 큰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가장 유력한 그들의 위기 타파 방법은 대가리 두 명 중 한 명이 사퇴하는 것일 거야.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는 곤도 이사오의 사퇴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어."

"흠.. 그렇구나"

"이번에 곤도 이사오의 사퇴가 결정된다면 우리 쪽에서 경찰 쪽에게 더 이상의 교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상태에 우리까지 그렇게 나온다면 상당히 당황할 거야. 그러면서 우리에게 협상을 제안할 거라는 거지.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거야"

"좋네"

"... 회의 내용은 요약은 여기까지야. 혹시 더 궁금한 거 있어?"

"... 아니 없어..... 아, 잠깐.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와 교류하는 경찰 집단은 어떻게 되는 거야?"


오키타의 걱정하는 얼굴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숨을 쉬던 모습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음... 곤도 이사오의 아래에 있는 히지카타라는 부국장이 꽤 활동력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해체를 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힘을 잃으니 모든 행동에 제안이 많겠지?"

"...."

"경찰의 생각보다는 이제 우리 사단에 대한 걱정이나 하시지? 경찰의 직위가 낮아지면 이제 사단들끼리의 영역 다툼이 시작될 텐데 말이야"


아부토는 그 말 한마디를 하고는 문을 닫고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사단들끼리의 싸움이라니. 나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부토가 짓는 그 씁쓸한 웃음에도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부토가 말한 것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다음 날 회의에서였다. 3사단 단장인 카다는 7사단 단장인 나를 지목하며 단장의 역할을 모두 부단장인 아부토가 하고 있다며 나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나에게서 아부토를 떨어트려 놓을 것을 건의했다고 했다. 단장의 역할을 아부토가 하고 있는 것은 아부토가 능력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나에게는 그 역할을 미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 말에 다른 사단의 단장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농담 식의 어조로, 3번대 단장님은 어째서 아부토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으신가? 하고 키득키득 거릴 뿐이었다.


"떨어트려 놓는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정확히 말했으면 좋겠어. 게다가 그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아부토 본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다른 사단의 단장이 다른 사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조금 오지랖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오지랖?"

"쓸데없는 참견이잖아"


카다는 내 말에 열받은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주위의 단장들을 한번 둘러 본 뒤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말했다.


"쓸데없는 참견? 그럼 공식으로 요청하지. 7사단 부단장 아부토와 3사단 부단장의 위치를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쪽이야말로 이제부턴 쓸데없는 참견이야. 나의 요구에 대답할 사람은 본인이잖아?"


단원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많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일 잘하는 단원들이 있다면 한 번씩 다른 사단의 단장이나 부단장이 스카웃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 그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거절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본인이다. 제안을 받은 순간부터 설득은 허용되지만 압박을 할 경우는 규칙 위반으로 조직 안의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기한은 일주일이었다. 물론 아부토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카다의 어이없는 요청에 피식하고 웃기만 했다. 카다는 왜인지 아주 당당하게, 그럼 일주일 후에 봐. 꼬맹이. 하고는 부채로 얼굴 반절을 가린 채로 괴상한 눈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다른 사단의 단장들은 다들 나에게 와서는, 봐. 카무이! 카다가 아부토를 좋아하고 있다니까? 저거 완전 고백 아니야? 아부토 흔들리는 거 같은데? 사실 아부토 같은 타입이 부려먹기도 좋고 여러 가지로 활용도가 높잖아. 역시 머리 하나는 잘 돌아간다니까? 키득거리는 그들의 사이에서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부토를 찾으려 복도를 돌아다니던 도중 카다와 아부토의 대화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 고민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고민? 왜 고민을 해? 우리 사단 부단장은 7사단에 가보고 싶다고 하던데.. 너만 좋다고 하면 되는 건데.."

"아니 저도..."

"혹시.... 다른 문제가 있어?"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흠... 나는.. 꼬맹이랑 달리.. 재밌게 놀아줄 수도 있는데..."

"저.. 그럼 이만.."


카다는 자리를 뜨려는 아부토의 멱살을 겁 없이 잡아당겨서 제 얼굴 앞에 서게 하고는 다시 말했다. 


"내 말이 안 끝났잖아. 어딜 가?"

"..... 아.."

"밤에 뭐 해? 내 방에서 한잔하자. 기다릴게?"


카다는 그제야 아부토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반대 방향으로 코웃음을 치며 사라졌다. 아부토는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오다가 의도치 않게 숨어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를 마주쳤다. 차갑게 쳐다보는 나를 보고서 아부토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다. 나는 아부토의 얼굴을 보자마자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민을 왜 하지? 왜 단칼에 가지 않겠다고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고민? 고민하고 있다고?"

"....아니, 뭐.."

"가고 싶으면 가"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커다란 덩치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고 지나가면서도 화가 주체되지 않아서 씩씩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던져버렸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가 왜 화가 났지? 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화가 났어? 한참 후, 내 방에 들어온 아부토는 온통 난리를 쳐놓은 내 공간을 보고서 한숨을 쉬며 던져서 부서진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탁 소리 나게 물건들을 커다란 책상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야 단장,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뭘"

"넌 정말 이기적이다"


.....

아부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를 따라 들어와서 내가 난리 쳐놓은 물건을 주워들고 치워주면서, 고민 같은 거 안 해. 3사단 단장이고 하니까.. 예의상 그렇게 말을 한 거지. 다음에 정중하게 거절하려고 그랬어. 미안해.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부토의 정석이 아니었던가? 


"너무 피곤해.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너의 옆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뭐?"

"왜 인지는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해"

"....."

"오늘 집에 안 들어갈 거야. 뭐 너도 안 오겠지만"


그 말을 하고서 문을 닫고 사라지는 아부토를 보면서 왜 아부토가 나를 떠나고 싶어 하는지, 어째서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하는지 잠시 생각했다. 아, 내가 너무 부려먹었나?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대로 나간 아부토를 뒤쫓아서는 어깨를 잡아채고서 말했다.


"그 말투. 지금 뭐야?"

"왜. 내가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도 했어? 이 정도의 말도 못해?"


무어라 변명하려는 나의 말을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나를 제치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이었다.




그날 나는 아부토와 사는 집으로 갔다. 아부토가 집에 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흘인가? 꽤 오래 비운 집안에서는 아부토의 냄새가 났다. 예전에 혼자 살던 때의 아부토는 정돈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이 집안을 엉망으로 썼었는데, 지금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꽤나 의식하고 있어서인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혼자 쓰는 침대는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아부토가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단정하게 깔아놓은 이불이며 베개가 깔끔한 반면, 아래에 깔아놓은 아부토의 침구는 오늘 막 나간 그대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늦게라도 올 거라고 믿은 모양이다. 아부토는 항상 이렇게 나를 기다렸을까? 그렇다면 더더욱 나에게 그런 말은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오키타는 문자로 오늘 늦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에 오늘은 일이 늦게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물어봐 주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부토가 어째서 오지 않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덧 시계는 1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내가 알기로 오늘 이 늦은 시간까지 처리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있다면 낮에라도 말해주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들어서 전화를 했다. 긴 수화음이 지루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내 뚝 하고 강제로 끊는 신호가 들리었다. 그와 동시에, 낮에 카다가 아부토에게 오늘 저녁에 함께 술을 마시자며 제안한 일이 떠올랐다. 정말 그곳에 간 걸까? 술을 마시고 있을까? 왜 갔을까? 정말 3사단에 가려고 하는 걸까? 왜?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서 아부토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수백 번도 넘게 울린다. 아부토는 마지막 신호음이 울릴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그 여자가, 그러니까 그.. 미친 여자가 전화를 받아들고는 나에게, 그만 전화해. 지금 중요한 이야기하는 중이야. 안 받으면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야지 않아? 꼬맹이라서 눈치도 없어?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미친 여자를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려야겠다. 

씩씩대며 신발을 신지도 않고서 문고리를 탁하고 잡는 순간, 신발장 틈에 보이는 아부토의 비밀 서랍이 눈에 띄었다.

 











-

늦게 끝나서 들어오지 못하겠다고 답을 해왔던 카무이는 해도 뜨지 않은 파란 새벽에 찬 바람과 함께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무엇이 기쁜지는 몰라도 자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는 나를 꼬옥 끌어안고서 본인도 잠이 들었다. 


히지카타와 곤도씨는 정말로 둘 다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둘 다 마츠다이라 선생님께 가서 입장을 밝혔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딸의 사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온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는지 우선 둘에게 잠시만 추이를 지켜보자며 시간을 끌었다. 히지카타를 따로 불러서 설득을 하고 쿠리코도 히지카타에게 설득하려 했지만, 히지카타의 말이면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난다고 해도 믿을 그 여자는 금세 히지카타의 논리에(사실 논리가 아니라 그냥 그 잘난 얼굴에 설득당했는지도 모른다) 설득당해서는 뜻대로 하세요, 저는 히지카타씨의 말이면 다 믿을게요~ 하고는 설득을 포기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자면서 꿈에 나온 히지카타에게 원 없이 욕만 퍼부어댔다. 


아침에 카무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오키타! 선물이 있어! 하고는 급하게 말했다.


"... 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물?"

"진짜야 이거 엄청난 거야. 너, 분명히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 너무 그렇게 말하니까 수상하잖아. 뭔데"

"하루사메라고 알아?"

"하루사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곳은 우리가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는 커다란 범죄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조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거대한 범죄조직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거기에 단장 중 1명을 잡을 수 있는 증거와 방법을 가지고 왔어. 자 이거 봐"


카무이는 잘 정리되어 있는 파일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안을 펼치자 3사단 단장인 카다의 사진과 더불어 그간의 두리뭉실한 정황 때문에 찾지 못했던 사건의 정리 파일, 그리고 찾아도 나오지 않던 그녀 신분을 입증할 지문이라던가, 과거에 사기를 치던 이름 등등이 모두 나와 있었다. 


"어때?"


카무이는 그 파일을 지켜보며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나를 보며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아.. 좋은데.. 너무.. 좋은데.... 우선 이건 정말로 고마워 찾아서 잡아넣을 때 좋은 증거가 될 거 같아. 꼭 참고할게..."

"어디서 찾을지도 고민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요시와라에 있어"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번번이 잡을 수 없었고..."

"그 여자가 쓰는 비밀 통로가 있어. 내가 도와줄게. 내가 지표를 찍어줄 테니. 내일 새벽 5시에 그곳으로 나와. 혼자 와"


카무이는 나에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자신감.. 이 너무 넘쳐서인지 조금 섬뜩하기까지 했다.


"네가 너무 적극적이라서 불안해"

"뭐야? 도와준다는데"

"믿어도 되는 거야 너?"

"왜 의심하는 건데?"


카무이도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만 이 녀석의 하얀 피부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내가 행했던 범죄 때문에 같이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그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 새끼에게 조금은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음.. 아니야 갈게"

"성공하면 나에게 뭘 해줄 거야?"

"응? 아... 뭘 해줬으면 하는데?"


내 말에 카무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같이 놀이공원에 가줘"


뭐야 싱겁게.


"그래"









4시 3분이다. 아침잠이 아무리 많은 나라지만 카무이의 이상한 제안이 현재 나에게는 커다란 희망 고문이 되었다. 실망하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기대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하고 속으로 다짐을 해도 꼭 잡았으면 좋겠다... 하고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 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함정을 파놓고 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면 어쩌지? 되려 3사단 단장에게 날 팔아넘기면 어쩌지? 아니면.. 나와 이 새끼가 그 3사단 단장을 잡으려 덤볐지만 이 여자의 많은 부하들이 근처에 있었으면 어쩌지? 그래서 되려 우리가 잡히면 어쩌지? 내가 만약 이 시점에 이대로 잡혀버린다면 정말로 우리 조직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재 입증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나답지 않았다. 평소라면 무모할 정도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이라니.


수많은 생각과 함께 찾아간 으슥한 장소는 정말 복잡하고 정말 이곳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이었다. 골목골목을 지나고 카무이가 알려 주었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었던 비밀문을 지나자 조금 황폐한 공터 같은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 카무이는 피투성이가 된 그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조금은 놀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 뭐... 뭐야? 네가 잡은 거야?"

"그럴 리가! 친구가 도와줬어!"


카무이는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활짝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언제 봐도 별로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튄 피라던가,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과 신발에 묻은 혈흔..


".... 친구는 어디에 있는데?"

"집에 갔어. 그런 게 중요해? 자. 데려가. 얼른 전화해. 잡았다고"

"어? 아.. 어어... 그래"

"죽었을까 봐 걱정하는 거면 그럴 필요 없어. 죽진 않았으니까"


3사단의 단장을 이렇게 쉽게 잡아버리다니.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나는 너무 좋아서인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피를 뒤집어쓴 이 녀석에게 느끼는 희미한 공포 때문인지 손을 덜덜 떨면서 핸드폰을 들어서 1번대 몇 명을 불렀다. 


"잡아넣을 증거는 내가 어제 준 파일을 주면 되는 거 알고 있지?"

"... 응 아는데...."

"그럼 난 갈게! 저녁에 집에서 봐!"


카무이는 웃으면서 내 입술에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춘 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말로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우선 현실을 바로 보자면 히지카타도 곤도씨도 이것으로 조직을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카무이가 떠나고 난 뒤 도착한 대원들은 내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3사단 단장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며, 대장.. 대장이 혼자 잡으신 겁니까? 하고는 입을 떡 벌리며 놀라워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다고 했다.



잡아서 조사한 결과 이 여자는 머리를 세게 맞아서인지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드문드문 말을 하기도 했는데 미쳐버렸는지 자꾸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이 조직에 대한 다른 정보도 캐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히지카타는 전 날도 새벽까지 일을 하고 들어갔으면서, 대원들에게 이 사건의 보고를 받고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리고는 조사 중이라서 묶여있는 3사단 단장의 얼굴을 보고 그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고는 내 얼굴을 덥석 잡으며 괜찮아? 하고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다친 곳은 없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 한 거야..."

"뭐래.. 나 그래도 일단 1번대 대장인데..."


그러게. 나 1번대 대장까지 하면서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거물 급을 잡아버렸네.

히지카타는 한참이나 나를 놓아주지 않고서 놀라움과 걱정을 나에게 다 쏟아내며 나를 한참 품에 안았다. 카무이의 돌발적인 행동의 의미를 찾으려 한참이나 고민하느라 불안했던 나를 괜찮다, 괜찮다 하고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쿠리코는.. 정말 부러운 여자였다.


매스컴에서 나는 완전히 주인공이 되었다. 1번대 대장 오키타 소고. 하루사메의 3사단 단장을 잡아넣었다! 그동안 우리들을 비판하던 모든 여론들은 바로 사그라 들었다. 방송사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저희들의 무능함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저희는 하루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 악질 범죄자를 잡게 된 것은 국장님과 부국장님의 조언과 분석을 비롯해 모두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이 범죄자를 조사하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희에 대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주셨으면. 이상입니다"


이렇게 건방지게 인터뷰를 해도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은 없었다. 오히려 패기가 있다는 둥,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말을 하겠냐 비판은 하되 비난은 삼가자 등등 긍정적인 반응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평소 나의 언행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주던 히지카타, 곤도씨, 마츠다이라 선생님도 오늘은 웃으면서 수고했다면서 나를 칭찬해주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지만 우선 우리 조직을 위기에서 한번 꺼냈다는 것으로 약간의 뿌듯함을 조금 느끼며, 카무이가 함께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으나 가면 이번엔 꼭 나 답지 않게 조금은 상냥하게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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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주시는 댓글을 보고 그만쓰려다가도 아.. 빨리 완결을 내자!

하고 다시 열심히 썼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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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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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온종일 시끌시끌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아닌 기자들의 다급한 소리만이 계속해서 울리는 걸 보아하니 요 근래 일들이 많이 터졌는가 보다. 다른 부대 대장들의 말을 들어보니, 한 달 전부터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터졌다고 한다. 평소에도 이 정도의 사건들은 일어나기 마련인데, 뉴스에서 이렇게 부각시켜서 터트리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찬찬히 짚어 보니, 최근 사기꾼들과 요시와라를 판치고 있는 범죄자들에 대한 의문과 의혹의 자료가 모아져서 고발을 목적으로 하는 익명의 동영상이 인터넷을 떠돌면서, 우리 조직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뉴스의 화면에는 우리 조직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며, 시민들은 도대체 그 머저리 집단은 하는 일이 뭐냐며 성내고 있었다. 공공연하게 거리를 활개 하는 범죄조직들이 여럿 있지 않습니까? 그런 집단 하나 제압을 못 하는 새끼들에게 저희가 세금을 내야 된다는 것이 억울하다 이겁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서 인터뷰를 하는 시민이 잔뜩 화가 난 듯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통계를 보니 최근 일어나는 범죄들의 치솟는 숫자들과 피해 입은 사람들의 잇따른 피해들이 수치화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서 경찰의 우두머리인 마츠다이라 선생님과 곤도 이사오에 대한 책임감의 지수가 높아지면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히지카타의 결혼과 맞물려 나도 마찬가지고 대원들도 마찬가지고, 히지카타도 그렇고 곤도씨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약간은, 아주 약간은 느슨해져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이렇게 커다랗게 터질 정도로는 아니었을 텐데....

물론 갑자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원래 이런 뉴스에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히지카타나 곤도씨 같은 경우는 분명 조금씩 올라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도 이렇게 커다랗게 몰려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리라. 이미 곳곳에서는 소규모의 대모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뉴스를 멍하니 보고 있을 적에 히지카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소고 오늘 마츠다이라 선생님과 곤도씨와 함께 회의 있어. 3시까지 뒷문으로 들어와... 조금 상황이 좋지 않다]
[아.. 나도 지금 뉴스 보고 있었어]
[여튼... 조금 있다가 봐]

히지카타는 머리 아프다는 듯이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만난 마츠다이라 선생님과 히지카타, 그리고 곤도씨는 모두 심각한 얼굴이었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어서 와 앉게, 하고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한숨과 함께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 대충은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지금 우리 조직을 향하고 있는 화살이 조금 거세. 그냥 묵인하고만 있기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을 만큼 상황이 안 좋아. 너희도 생각이 많겠지만……. 뭐…. 우리가 돌려서 말할 사이도 아니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도록 하겠다. 내가 어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는 대략 2가지 정도 있는 것 같아. 뭐 더 많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내 머리 안에 있는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이 여론을 잠재우는 방법들이다. 둘 다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만."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며 당당하게 말하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지 다시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이건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쉬운 방법이다. 현재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정도의 흉악범을 잡아넣는 것.. 이 정도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일을 못했던 게 아니라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이건…. 뭐 너희들도 당연히 잘 알 거라고 생각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도...  그렇기에 실현 가능성이 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우린 지금까지 결코 놀았던 적이 없어. 심지어 우린 요시와라의 거대 조직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지속적인 만남까지 가져가면서도 사소한 증거 하나 찾기가 힘들어서 눈앞에 두고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을 이어가고 있었지. 표면적으로만 사이좋게 지내자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 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건 아니었잖냐. 그렇게 눈을 번뜩이며 찾아도 지금까지 미꾸라지처럼 도망가는 이 녀석들을 잡지 못했다는 거야……. 사람들이 이름도 모르는 그런 작은 사건의 범인들이야 잡을 수 있겠지만 말이야."

마츠다이라 선생님의 말씀은 사실이다. 물론 나는 땡땡이도 치고 놀러 간 적도 많지만, 그래도 범죄자들을 잡는 데에는 꽤 열심히 일했었고... 내가 아닌 곤도씨와 히지카타는 항상 정말로 이 일에 몸 바쳐 일했다. 그 잠깐의 느슨함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그러한 사실은 선생님이 더욱 잘 알고 계실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서도 선생님은 담뱃재를 톡톡 털어내면서 잠시 고민하듯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묘하게 뜸을 들인다.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나와 히지카타, 그리고 곤도씨까지 모두 가볍지 않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었다.

"....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
"……."
"……. 나는 정말…. 내가 지금 말하는 방법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고…."
"……."
"……. 지금 모인 우리 넷, 그니까 현재 우리 조직에서 가장 유명하고, 이름만 들어도 모두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사람 중 한 명이 이 사건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다."
"... 네? 지금 사퇴라고 하셨...."

내 귀를 의심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내 반응에 히지카타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내 팔을 꼬옥 잡았다.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그런 나의 반응을 잠깐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한다면 현재 성나있는 민심들도 언론들도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겠지. 사퇴한 그 한 명이야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리고는 또다시 담배 한 모금.

"아, 오키타 너는 빠져라"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숨을 죽이고 쳐다보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너 같이 어린애가 뭘 알아서 뒤집어쓰며, 책임질 직급도 약간 어중간해. 오키타는 빼고 둘 중 한 명으로... 혹시나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말해도 좋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거야..... 이렇게 어려운 것을 선택하게 만들어서 정말로 미안하다. 그럼……. 선택은 맡길게. 그럼…. 난 먼저…."

그 말을 하고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우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서 자리를 떴다. 아마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더불어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의 충돌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게 된 것에 대한 이기적인 자신의 태도에 더욱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선택을 강요당한 히지카타와 곤도씨는 자리를 뜨는 마츠다이라 선생님의 등을 흐릿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남아버린 우리 셋. 나는 옆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둘을 쳐다보았다. 이 선택의 답은 나도 알고 있다. 마츠다이라 선생님은 둘 중의 한 명이라고 하셨지만, 자신의 딸과 결혼한 히지카타에게 그만두라고 할 리는 없다. 곤도씨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뜻인 것이다. 나조차 눈치챈 이 사실을 곤도씨가 모를 리가 없었다. 곤도씨도 히지카타도 한참 말이 없이 있었고, 그 답답한 침묵을 깨고서 곤도씨는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자, 이만 해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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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는 그날 이후로 내가 본 적 없는 최악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곤도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평소처럼 웃으면서 모두를 대했지만, 혼자서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힘들 것인지, 그리고 그에게 그런 선택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히지카타 역시도 얼마나 힘들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누나가 떠나고 난 이후부터 쭉 함께 했었던 곤도씨는 내가 히지카타와는 약간의 다른 마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 공간에서 사라지는 것은 나 역시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게다가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고 이 모든 시민의 항의와 언론의 화살을 받아내는 화살받이로써 묻히게 될 것을 히지카타도 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히지카타가 이대로 내 옆에 사라진다는 것은 곤도씨가 사라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곤도씨가 사라지는 것도 싫지만, 히지카타가 내 옆에서 사라지는 것은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지만, 혹여나 히지카타가 곤도씨와 함께 나가겠다는 말을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쿠리코 때문에라도 히지카타는 마츠다이라 선생님 옆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안심시키면서, 정말 싫은 그 여자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조금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소고, 오늘 바빠?"
"아니 왜?"
"같이 술이나 한잔할까 해서. 오랜만에"
"둘이?"
"응. 둘이"
"... 곤도 씨는?"
"... 바쁘신가 봐"

히지카타는 곤도씨를 묻는 나의 시선을 피해서 대답을 했다. 오래간만에 둘이 먹는 술이라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히지카타가 너무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심한 장난을 치거나 막말을 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일을 마치고 사복으로 갈아입고서 히지카타가 가자며 안내한 곳은 조용한 선술집이었다. 너무도 작은 술집이라서 손님도 별로 없는 그런 소박한 곳이었다.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거 시킬게"

히지카타는 조금은 힘없이 메뉴판을 펼치며 말했다.

".. 누가 뭐래? 맨날 네가 나한테 선심 쓰듯이 먹고 싶은 거 시켜! 하고 말했던 것뿐이잖아"
"... 그러네. 그랬었지...."

히지카타는 내 말에 희미하게 웃어 보이면서 메뉴판을 훑더니, 대충 나베 하나를 골라서 주문을 하고는 술을 시켰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서는 나에게도 한 잔 주고, 본인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답지 않게, 천천히 마시라고 말하고는 본인 입에 한 번에 툭 털어 넣었다. 어두운 녹빛을 띄는 머리칼이 뒤로 찰랑이며 살짝 넘어가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아…. 존나 잘생겼네…. 하고 감탄하고 싶지 않아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히지카타가 무섭게 술을 들이켜자 반대로 나는 한잔 정도를 띄엄띄엄 끊어 마시면서 들이키는 히지카타의 눈치를 보며 마주 앉아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히지카타가 5잔 정도 술을 연달아 마신 후에야 주문한 탕이 나왔다. 그 이후에도 한참을 술만을 시키며 술만 들이키는 히지카타를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야 히지카타. 너 원래 이렇게 술을 무식하게 마시는 사람이었어? 안주 나왔으니까 좀 먹으면서...."
"... 소고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 뭐래,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어이없다는 듯이 내뱉으면서도 나는 히지카타의 말에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고, 술에 잔뜩 취해 살짝 풀려버린 히지카타의 눈빛이 조금 섹시해 보이기도 해서, 나를 보는 히지카타의 시선을 피했다. 또다시 서너 잔을 들이키던 히지카타는 혼잣말을 하듯이 나에게 말했다.

"음... 그니까... 어떻게 생각해보며언...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생각하고.. 있어어.."
"..뭐가?"
"나나 곤도씨 중의 선택이잖아아. 일단 너는.... 남게 되었고..."
"..뭐야, 그게 다행이야?"
"그러엄! 나나 곤도씨는 다른 곳에서도 분명....! 할 수 있느은.. 사람들이잖아! 근데 너 같은 꼴통 새끼느은 어디가서 적응하기도 힘들고.. 그냥... 지금 이 곳에서어 너 받아주는 대원님들께! 감사하면서 일해 이 짜식아아"
"...."
"물론! 우리가 아닌 사람들이... 너의 윗사람으로 온다며언... 지금처럼 네가 편하게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닐수도 있겠지마안! 분명 시간이 지나면 네가 그 사람들을 이겨먹고오... 올라갈 수, 있을 거야"
"...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진심이야"

지금 이 새끼는 너무 취해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불안한 마음을 가득 품으면서 히지카타에게 물었다.

"... 너 지금 .... 그만둘 것처럼 이야기한다?"
"...곤도씨가 나간다면... 미안해서 내가아.. 어떻게 있겠어.."
"...그럼...나는?"
"너느은! 남아있으라니까"
"...아니.. 야 히지카타, 너 쿠리코도 그렇고.. 마츠다이라 선생님도 그렇고..."
"알아알아, 쿠리코는 물로온... 말리겠지.. 응.. 분명히 말릴거고.. 마츠다이러 선생님도.... 내가 타깃이 아니었다면서 잡으실거고..."
"아니, 그럴 것이라는 걸 그렇게 잘 알면서...."
"... 너도 알다시피 곤도씨와 나는 오래지냈잖냐... 나의, 내 모드은! 정신적인 기둥이야. 그런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면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이런 자리에 어떻게.... 앉아 있겠니"

처음 보는 히지카타의 술 주정..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히지카타는 이렇게 혼자서 극도의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술 자리 테이블에 잔뜩 취해서 엎드린 채로 자꾸만 어떻게 해.. 내가 어떻게 그래... 하고 답지 않게 웅얼웅얼 거리는 히지카타를 한참 보다가 지금의 히지카타를 내가 직접 쿠리코에게 데려다주기는 싫어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히지카타가 많이 취했으니 데려가라고 짧은 통화를 한 후 홀로 술집을 빠져나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간 집에는 카무이가 안테나처럼 쫑긋 솟은 바보 털을 세우고서, 힘없이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웃으며 늦었네? 하고 말했다. 아,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카무이에게 그대로, 야 우리... 할까? 하고 물었다. 그러나 바로 오케이를 할 줄 알았던 이 녀석은 어쩐 일인지 거절했다. 그리고는 내 옆에서 나를 끌어안으면서, 음…. 그냥 이렇게 조금 더 있다가 하는 것으로 하자고 명랑한 말투로 말했다. 이 녀석의 체온 역시 나쁘지 않았으므로 나 역시 무거운 머리를 이 녀석에게 살짝 기대고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카무이도 나를 따라서 커다란 한숨을 내쉰다.

"뭐야, 따라 하지 마"
"따라 한 거 아닌데"
"갑자기 왜 한숨을 쉬어 네가? 어울리지도 않게"

카무이는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우리가 서로 끌어안다시피 한 자세를 하고 보는 TV에서는 또다시 우리 집단에 대한 이슈가 방송되고 있었다. 국민의 세금, 모두 이런 썩어빠진 그룹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고 시민들의 데모 현장과 함께 시민들의 거센 인터뷰가 나오고 밉상을 한 아나운서는 더욱더 한숨을 내쉬며 정말이지 큰일입니다….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또 머리가 지끈 하고 아파져서 TV를 껐다. 카무이는 나에게 너희 쪽 이야기지? 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고 싶지도 않아서 몰라. 아 모르겠다…. 하고 눈을 감았다. 카무이는 가만히 있다가, 조금 피곤한 듯한 나를 보고 아까 그 사람, 누나의 남자친구였잖아. 방금 TV에 나왔던 사람. 잘 지내? 하고 물었다. 나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어떤 년이랑 결혼해서 혼자 잘 지낸다. 씨발놈이. 하고 탄식하듯 말했다. 그리고 나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 친구의 일을 도와준다고 했지? 그 친구는 무슨 일을 해?"
"응? 아.. 음.. 어.. 그니까.. 정보상..이라고 해야 하나...?"
"정보...상?"
"어.. 뭐..."
"....정보상이라... 뭐 좋은 정보 있으면 좀 알려줘봐. 예를 들어서 범죄자에 대한 정보라던가....."
"범죄자?"
"뭐, 당연히 없겠지만"

그리고 나는 곧바로 이 새끼에게 범죄자의 정보에 대해서 달라고 하는 내가 어이가 없어서 작게 웃었다.

"갑자기 범죄자는 왜?"
"나 경찰이잖아. 범죄자를 쫓는 건 당연한 일이지"
"흠.. 뭐.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도 안 해. 그냥 말한 거야.... 나도 답답해서"
"만약 내가 그런 정보를 주면 나에게 뭘 해줄 거야?"
"... 쓸데없이 기대 주지 마"
"왜? 혹시 모르는 건데"
"네가 말하는 혹시..라는 건 별로 신뢰가 안가"
"아냐 정말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거 고급 정보라서 보통은 돈 주고도 많이 거래하고 그렇다고"
"돈을 달라 이거야? 음.. 얼마 정도 하는데?"

나는 곧바로 머릿속으로 현재 내 통장에 대략 얼마 정도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려줄게!"

카무이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모습이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계속 생각하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저 녀석이 주는 범죄자의 정보라고 해봤자 애꿎은 좀도둑이나 가벼운 죄를 지은 날강도 정도 될 것이고.... 한숨을 다시금 푹 내쉬었다. 핸드폰에는 히지카타를 데리고 간 쿠리코가, [연락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혹시나 히지카타씨가 뭔가 폐를 끼치진 않았을지 모르겠네요] 하고 마치 저가 보호자인 마냥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씨발년.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닫자 나에게 기대고 있던 카무이가 누구야? 하고 물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있어. 내가 완전 싫어하는 년이야. 하고 대답했다. 카무이는 웃으면서 꼭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지.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 말이야.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카무이는 조금 어색하다고 느꼈다. 분명 착한 녀석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싫어하는 모습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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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구라가 찾아왔다. 전에 만났던 지하에 있는 그 어둑어둑한 카페에서 주스 한 잔을 시켜놓고서 요란하고 음란하기까지 하게 쪽쪽 소리 내며 붉은색 빨대를 빨아대면서 무엇이 좋은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평소엔 동그랗게 뜨고 있는 눈을 가늘게 휘며 눈웃음을 지었다.

"왜 왔어?"
"그야, 오빠가 보고 싶으니까 왔다해"
"그렇구나"
"오빠오빠, 나 케익도 먹고 싶은데 시켜도 되냐해?"
"먹어"
"움... 어쩌지.. 저기에 진열되어 있는 모든 맛이 다 먹고 싶은데.."
"... 다 먹어"

카구라는 신난 듯이 벌떡 일어나서는 별로 맛없어 보이는 케익이 가득 있는 쇼케이스로 달려가서는 여기에 있는 거 한 조각씩 전부 주세요! 하고 애교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카구라는 꽤나 신나 보였지만 나를 포함해 이 카페에 있는 모두는 그다지 즐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암울했고, 암울이라는 것을 뛰어넘어 조금은 음침했다. 그런 것들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무시하고서 찬찬히 자리로 돌아와서 소파에 풀썩 앉으면서 물었다.

"오빠, 근데 그거 알고 있냐해?"
"응?"
"경찰 내부가 요즘 시끄럽잖아"
"당연히 알지.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모를 수가 있나"
"하하, 오빠는 조금 즐거운 눈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겠네?"
"내가 왜?"
"사이가 좋진 않을 거 아니냐 해"
"뭐.. 관심이 없어서"
카구라는 무심하게 말하는 내 앞에서 웃으면서, 요즘 자신과 연이 닿아있는 그 경찰 놈들이 엄청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글쎄 말이야.. 뭐든지 척척해내는 긴쨩도 그들의 고민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거 있지? 하여간 긴쨩은 오지랖이 너무 넓다 해, 그러면서 본인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면서 나와 신파치에게 범죄자나 사냥하러 가 볼까? 하고 실없는 소릴 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 근데 오빠, 오빠는 이 곳, 요시와라에서 범죄 지수가 꽤나 높은.. 사람이냐 해?"
"...음.. 글쎄? 왜? 나를 사냥하러 오게?"

카구라는 내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곧 주문한 케이크가 나오자 한입 크게 포크로 찍어서 입안에 밀어 넣으며 음, 맛있다 하고는 다시 또 키득키득 웃는다. 기분 나쁜 그 키득거림을 들으면 그 누구라도 순식간에 최악의 기분이 될 것이다. 우물거리며 다소 얄밉게 케익을 먹는 카구라를 보다가 말했다.

"왜 그딴 식으로 웃는지 말해볼래?"
".. 그야...! 조금 고민하고 있어서.. 난 오빠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고.. 긴쨩이 잘 되는 것도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고.. 내 경찰 친구들이 잘 되는 걸 바라고 있기도 하고...."
"..."
"음... 하지만 역시 오빠가 제일 잘 되는 게 더 보고 싶다 해! 그러니까 혹시나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나에게 얼마든지 부탁해도 좋다 해!"
"... 됐고. 오늘처럼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마"
"역시 오빠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거냐해? 나는 오빠를 여기에 오면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하루 종일...."

아... 머리 아파.

"그만, 그런 거 아니고 내가 오늘 바빠서 그래"
"역시 그렇지?"

카구라는 내 말에 다시금 활짝 웃으면서 놀랐다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짜증나지만 역시 나는 앞에 있는 내 친동생에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엔 조금은 자상한 가족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마녀에게는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조금 서툴렀던 것도 있다. 웃을 때에는 처음에 만났던 이상한 누나가 언뜻 언뜻 떠오르기도 하고, 오빠는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거냐 해? 하고 눈을 치켜뜨며 물어올 때는 이상하게 오키타의 누나가 떠오르기도 하는 그 오묘함 속에서 이상한 긴장감과 적지 않은 갈등을 하고 있었는지도.

"나는 오빠랑 같이 살고 싶은데.. 오빠랑 같이 있다는 그 친구는 도대체 누굴까...?"

카구라는 새빨간 빨대에 다시 입술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자꾸 그렇게 묻지 마. 그렇게 물어도 난 대답하지 않을거야. 내가 너에게 그 긴쨩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며 너에게 꼬치꼬치 캐묻으면 좋겠니?"
"어..! 난 조금은 좋을 것 같기도.. 아! 오빠는 긴쨩이 보고 싶냐해? 그렇다면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다해!"
"범죄자를 사냥하겠다는 사람 앞에 나를 팔아넘기려는 거구나"
"에이.. 그런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닌 거 다 안다해"

카구라는 싱긋 웃어 보였다.

"카구라. 은혜는 은혜로 갚아야지. 실컷 널 거둬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은인이자 연인 아니야?"
"은인은 맞지만 연인은 아니다 해. 오해다 해!"
"어쨌든. 카구라. 우린 여기까지의 선을 지키며 이렇게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남매로 지내자. 이 이상으로 깊은 가족애를 느끼지 않았으면 해"

내 말에 카구라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어쩌다 한번..은 싫다해.. 자주 보는 남매가 되고 싶다해.. "

하고 파란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주위의 경찰들이 필요하냐해? 그게 오빠의 앞길에 필요하다면 내가 적극적으로 오빠를 위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볼 수도 있다해. 하고 다시금 활짝 웃어 보였다.

"어떻게 믿니 너를"
"....어떻게 믿냐니? 고아원에서 나를 잃어버려서 힘들었던 고통만큼 나를 믿어주면 된다해"

카구라는 활짝 웃어 보이고, 그 말에 나도 활짝 웃어 보였다. 삐그덕 대는 나뭇 바닥을 천천히 밟으며 카페에서 일하던 알바생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숙여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장. 부단장이 찾으십니다. 그 말에 나는 카구라에게 일이 있으니 먼저 가보겠다고 했다. 그리곤 덧붙여서 말했다.

그래 너를 충분히 믿을 테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거절하지 않고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말에 카구라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나는 거절하지 않아! 하고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다. 마지막 남은 케이크를 포크로 푹 찍어선 제 입안에 넣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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