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ing A



5.










-

사람들이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나 혼자 만이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 의한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니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너와 나, 둘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난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그 녀석은 창피하다고 생각을 했는지 그 병이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누나도,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몰랐다. 나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자신 스스로가 무서웠는지 조금씩 얼굴빛이 어두워져 갔고 간혹 나의 눈치를 보는 듯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괜찮다는 뜻으로 한번 슬쩍 웃어 줄 뿐. 그는 그런 내 뜻을 거부하는 듯이 고개를 홱 돌리곤 했지만.


하루는 그가 우리 학교까지 직접 날 찾아와서는 (그때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상상해봐.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놈이 우리 학교 앞까지 와선, 약속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완전 즐겁지 않아? 우리 학교의 불량아들은 그를 좋지 않은 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보고 지나갔지만 그는 그런 시선 따윈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보처럼 멍하니 서 있는 나를 굳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심장이 뛰어대서 이 상태에서 뛰어갔다가는 그대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뛸 수가 없었던 나는 천천히 걸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사람을 발견했으면 최소한 서두르는 척이라도 하라고"


까칠한 말투로 나에게 말하고는 내 팔뚝을 잡더니 잠깐 따라오라면서 나를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누군가 억지로 나를 데려간다는 기분은 썩 좋지 않은 기분이지만 이 녀석이 나를 잡아끌고 가는 것은 꽤나 흥미로워서 어디로 데려가려는지 궁금해서 설레었다. 그런데 데려간 곳은 텅 빈 놀이터... 뭐야? 이런 곳에서 모래 장난이라도 하자는 거야? 아무도 없는 놀이터의 벤치에 앉더니 그가 나를 보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어쨌든 우리 집에 얹혀사는 건 너잖아"


그의 말은 그다지 선명하게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이 녀석의 입술과 눈만 찬찬히 훑었다.


"그니까 참아. 내가 불편해서 싫다면 나가던지."


"무슨 소리야?"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잠깐 고민하다, 이내 이 녀석이 그 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딱히 불편하진 않은데"


오히려 나는 그런 네가 재밌으니까.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아는 건 너뿐이니까 혹시나 누군가가 알고 있다면 널 죽여버릴 거야"


애써 쓰는 명령어조. 거기다 일부러 쓰는 거친 단어 선택까지.. 다른 사람들은 정말 뭐 같은 놈이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그의 진심을 슬그머니 들여다보았다. 나한테 약간은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본인의 불안을 나에게 털어놓고 있다는 것까지.. 애쓰는구나 너? 

제 할 말이 끝났다면서 멋대로 가버리려는 녀석을 뒤쫓아가면서 말했다.


"걱정 마, 난 종종 봤어. 그런 사람들 말이야. 고아원에 있는 고아들은 그런 병을 꽤 많이 앓고 있거든."


"... 내 할 말 끝났으니까 이 이상으로 말 걸지 마."


쳇, 단호하긴.




아부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별 관심 없는 나에게 억지로 사진을 내밀어서 보게 되었는데, 꽤나 표독스럽게 생긴 여자였다. 눈이 양옆으로 째진 데다가, 속 눈썹은 왜 이렇게 뾰족한지 손이 닿으면 그대로 찔릴 것 같다. 입술엔 쥐라도 잡아 뜯었는지 끈적해 보이는 시뻘건 루즈로 덕지덕지.. 도저히 내가 봤을 때는 어느 면이 좋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런 취향이구나?"


"좋아한다기보다는..... 암튼, 어때? 예뻐?"


"전혀"


내 말에 아부토는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었다. 


"다들 예쁘다던데"


"뭐, 취향이니까 이해할게"


"네가 여자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엄청 쎈 여자가 있다면 싸우는 걸 구경해보고 싶긴 하네."


"그게 다야?"


아부토는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습관적으로 웃었다. 


아부토의 여자친구라는 그 여자는 소위 말하는 창녀 같았다. 사실 아부토가 왜 만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같은 직종에 관련 있는 여자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에서 본 그 여자에게서 위협적으로 보이려는 새파란 문신이 파인 티셔츠의 사이로 조금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러 살짝 보이는 위치에 문신을 했음은 확실했다. 

그날 우연인지 뭔지 그 여자는 아부토를 만나러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근처에 다가오자마자 진한 화장품 냄새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학교라는 배경과는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었지만, 나와 아부토도 학교라는 배경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럭저럭 그 여자와는 조금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는 옆에 선 나를 보고는 애기네? 하고는 허락 없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나에게 허락 없이 손을 대는 건 현재 우리 가족 정도였고, 뭘 했는지 모를 지저분한 손으로 나를 만지는 것은 끔찍해서 그대로 그 얇은 손목을 잡고는 뒤로 밀쳐냈다. 잡은 손목이 너무 얇아서 가죽이 없는 해골 뼈를 잡은 것 같았다. 왜 인지 아부토는 바로 나에게 괜찮으냐고 물어왔고, 그런 아부토와 나의 태도에 황당해하는 그 여자의 표정을 보고서 나는 인사 없이 뒤돌아 갔다. 그리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토했다. 그 여자에게서 진한 향수의 역겨운 냄새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부토는 나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사실 여자친구가 아니란다. 조직에 있는 그냥 여자일 뿐이고, 내가 여자에 관심이 없어 보여서 장난쳐 본 거라고. 가끔 아부토는 이상한 장난을 친다. 


"너는 이상형도 없어?"


"음.. 이상형?"


"남자들이 모이면 다 그런 이야기하잖아. 환상이지만 뭐 이런 사람이 좋다거나, 페티시라던가 그런 거"


"음......"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내 가족과 그 녀석뿐이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가족이려나?"


아부토는 내 말에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좋다'라는 말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녀석. 

집에서 겉으로는 엄마나 아빠에게 항상 웃어 보이며 활달한 척하는 그 녀석.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엔 그에 합당한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고 하듯이 그에게도 눈 부신 가족들에 의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어둠의 중심이 나였다. 하지만 착실하게도 그는 한 켠에선 나를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기뻐.


그의 증상이 다시금 시작되는 우리의 까만 밤 하늘 아래에서 나를 깨우는 그 녀석의 뒤척임이 신호가 되어, 내 앞에 흐릿한 눈망울로 서 있는 이 녀석의 도톰한 입술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서 가만히 핥는다. 스르르 열리는 그의 입술이 나를 적당히 애태워서 좋았다. 그의 목덜미는 너무나 물어뜯고 싶은 욕구가 들어서 좋아하는 것일수록 지켜보는 것이 취미인 나였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살며시 입술에 닿는 따스함, 기분 좋게 콩닥 콩닥거리는 심장소리. 쪼옥 빨아들이면 불긋게 물드는 자욱이라던가.. 너무 좋아서 깨물어버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고, 이 녀석과 닿는 내 모든 부분이 데인듯이 뜨거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목덜미와 어깨가 연결되는 부분을 한참이나 미끄덩거리는 혀로 핥고 빨고 물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나와는 무엇하나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이 녀석은 어느새 처음는 가족을, 그 다음엔 온도를, 그 다음엔 타액을, 그 다음엔 살결을 나눈 것이다.

이 녀석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린 서로를 몇 번이고 나누었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봐, 이렇게 나를 찾아오는 것은 너의 본심이야.











-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


"표정이 쭉 안 좋길래"


"원래 웃는 얼굴은 아니잖아"


"뭐, 그건 그렇지"


부 활동이 끝나갈 무렵에 히지카타가 나에게 물었다. 히지카타는 일부러 내가 혼자 떨어져 있을 때만 다가와서 말을 건다. 내가 본인에게 존댓말 같은 거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오늘 가서 맛있는 거 먹을까? 하고 그 녀석은 애써 날 풀어주고 싶다는 듯이 물었다. 그닥 먹고 싶은 건 없었지만 이 녀석 돈이나 뜯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간 김에 여전히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찾아간 녀석의 집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이런 면은 누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나 역시 흐트러진 모습을 내게 보인 적이 없다.


"너, 이렇게 나랑 공부하는 거 애들한테 말하면 안 돼. 이거 다르게 생각하면 불법이다?"


"왜, 네가 나에게 시험 문제 유출이라도 할까 봐?"


"뭐, 그렇지 설령 내가 그렇지 않더라고 해도 사람들이 오해하기 쉽잖아"


"유출해주라. 나 알려줘"


"안돼"


이런 이야기를 말 할 생각도 없었고, 내가 누구에게나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수다스러운 사람은 아니었기에 소문 같은 것이 날 이유는 없다. 


"나 물어볼 거 있는데.."


"뭐"


"너 병 같은 거에 대해서도 잘 알아?"


"병? 그런 건 의사가 알겠지. 선생이라고 뭐든 다 아는 줄 알아?"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가, 다시 나를 홱 보더니 뭔데? 말해봐 하고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른다며. 됐어"


"말해봐"


"됐다고"


"말해"


"싫어"


한참 둘이서 조금은 이상한 신경전을 벌이다가 히지카타는 됐다, 하고는 조금은 열받은 듯 내 시선을 피했다. 


"삐졌냐?"


"..삐지긴, 내가 너같은 애새끼도 아니고. 니가 말하기 싫다는데"


그의 말에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볼펜 끝을 잘근잘근 씹어대자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너는 원래 네 이야기 잘 안하잖아. 가끔은 좀 털어놓는게 좋을 때도 있어. 우리 꽤나 친하잖아"


친하다니. 소름 끼치게..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다시 눈앞의 책을 들여보다가 슬쩍 말했다.


".. 내 이야기는 아니고, 친구 이야기인데.. 친구가 약간 몽유병이 있데. 그래서 고민하더라고"


"친구 이야기를 그렇게 고민한 거야?"


"아니.. 뭐... 그냥 걔가 곤란할까 봐"


생각해보면 난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아닌데. 다행히 히지카타는 그럭저럭 속아넘겨주는 듯 했다.


"몽유병이라.. 우리 반에도 어릴 때 몽유병 증상이 있었던 애가 있데. 딱히 치료법은 없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사라진다더라.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래"


"그래? 뚜렷한 치료법은 없는 거네 그럼?"


"그렇게 들었어. 그렇게 고민이 되면 병원이라도 가보던가. 심각하면"


"흐음..."


"그래서 고민이었던거야?"


"내 이야기 아니라니까?"


내 반응에 히지카타는 웃었다. 아, 나도 모르게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 것일까? 그래서인지 그는 더 이상으로 나에게 다른 무언가를 캐묻진 않았다. 나는 그가 내가 말한 대상이 나라고 확신을 할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


"내 친군데, 걔가 요즘 자꾸 피곤하데.. 근데 알고 보니까 그런 병이 있었다더라고.. 그래서.. 그래서 물어본 거야"


"알았어, 누가 뭐래냐."


그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고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배고픈데 머 먹을래? 하고 물었다. 야끼소바. 나는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을 말했고 그는 내가 그 음식을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일어나서 음식을 가지러 갔다. 이런 것을 보면 히지카타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누나의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렇게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동시에 들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병이 있다는 것 자체로만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내가 밖으로 나가진 않았나 해서 신발장이나, 맨발로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아침 일찍 발 바닥을 확인해봐도 밖으로 나가지는 않다는 확신을 내렸다. 내가 집 밖을 싸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인 부분이었으나, 그 증상이 있었던 날은 아침마다 그 녀석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존나 개 같았다. 그래, 그것 정도로 그쳤으면 나도 히지카타의 말대로 저절로 이 병이 사라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참고 있었겠지만 정말로 나를 화나게 하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 날 아침은 그 녀석이 나보다 늦잠을 잤고,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다 못해 경련을 하면서 뭔지 모를 민망함에 이 녀석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침대를 빠져 나왔다. 항상 늦잠을 자는 내가 일찍 나오자 누나도 엄마도 놀라면서 웬일이냐며 칭찬을 했다. 뭐, 일어나자마자 그 녀석의 얼굴을 봐서 찝찝한 하루의 일상치고는 순조로웠다. 더 자고 싶다면서 엄마의 어깨에 기대서 잠깐 장난을 치다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때, 조금 이상했다. 시뻘건 멍자국이 목과 어깨 부근에 있었고, 나는 그저 벌레에 물렸다고만 생각했다. 그냥 조금 벌레에 물린 것 치고는 심하네? 하고 생각하곤 별 생각 없이 넘겼다.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도 별생각 없이 이어폰을 끼고서 창문만 쳐다보다가 엎드려서 잤다가 하는 것을 반복했다. 별거 없이 평화롭기만 한 하루였다. 그날 오전 시간의 수업이 체육이었다는 것만 빼고. 분명히 나는 체육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려고 셔츠를 벗고서 체육복을 입을때 그나마 나와 조금 친한 야마자키가 나를 보곤 물었다.


"거기 왜 그래?"


"아, 벌레에 물렸나 봐"


"물린 거 치고는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아파?"


"아니"


"가렵거나 그래?"


"그렇지도 않아"


"저.. 오키타.... 이거, 잇자국 아니야?"


약간은 망설이다가 묻는 야마자키의 표정이 본인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나도 식겁했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일이 없었으니 태연한 척하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고는 체육복을 입었다. 야마자키도 내 말에 웃으면서 하긴, 네가 그럴 일이 있기나 해야지 하고는 곧바로 내 말을 믿었다. 야마자키는 나름 순진했다.



야마자키의 말을 그럴 리 없다며 넘겼지만 내 머릿속에 야마자키가 말한 잇자국이라는 단어가 심히 거슬려서 체육시간 중간에 슬쩍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거울으로 벌레에 물렸다고 생각한 그곳을 비춰 보았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서 몰랐지만 실제로 있었다. 그 붉은 멍 자국 주위에 동그란 잇자국이. 그리고 곧바로 오늘 아침 눈앞에서 바로 본 그 녀석의 얼굴과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던 나를 떠올리면서 그 순간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그 새끼는 내가 생각한 대로 정신병자 새끼가 맞았다. 시뻘건 멍과 잇자국을 보자마자 이 녀석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혐오스러운 그녀석이 내 살결에 행함이 확실해 보이는 그 수치스러운 행위가 나를 미치게 만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뛰어나가서 그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무섭도록 침착해졌다. 그런 말이 있다. 분노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증오는 사람을 침착하게 만든다고. 나는 분노했다가 이내 그를 증오하면서 침착해졌다. 


다음 시간은 과학시간. 그날은 재미없는 물리학 실험 따위를 해서 수업을 전혀 듣지 않고 과학실에 주욱 늘어져 있는 갈색 유리병들만 무의식적으로 쭈욱 훑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 새끼를 우리 가족들에게서 떼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 새끼를 그냥 죽이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게 해줄까. 




증오심 덕분에 나는 그 녀석을 어떻게 망가트려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그와 얼굴을 마주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 날 몽유병의 증상이 일어, 그 녀석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아침이면 샤워하면서 내 몸을 거울에 비춰보며 병적으로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때 남은 그 붉은 멍 자국은 점점 희미하게 변해갔고, 그 자국이 사라지기 전에 그 새끼를 반드시 내 가족으로부터 떼어 놓으리라 다짐했다.


아무렇지 않게 가족 앞에서 웃음을 짓거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녀석의 모습은 증오와 분노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의 폭풍으로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그런 내가 단순히 그 녀석을 향한 질투라고 생각한 누나는 나를 불러다가 또 다시 잔소리를 했다.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누나에게 나는 까칠하게 한마디 했다.


"그만. 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만해요"


나의 태도에 누나도 약간은 당황하고선 입을 다물었고, 나는 2차로 히지카타에게도 연락을 받았다.


[야 너 무슨 일 있어?]


아.. 나와 누나의 일을 다 알고서 히지카타가 나에게 물어오는 일이야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런 단순한 투정까지 일일히 히지카타에게 일러바치는 누나의 태도에도 너무 짜증 나서 히지카타의 연락엔 핸드폰을 꺼버렸다.




전에 그 녀석에게 먹였던 약품은 과학실에서 장난으로 슬쩍 훔친 신나였다. 조금 먹어서는 목숨에 지장이 가진 않는 것 같다고는 했지만 먹는 순간 입안이 바짝 바짝 마르는 텁텁함이 기분 나빴다면서 야마자키는 어릴 때 모르고 먹었다가 뱉었던 경험을 잔뜩 흥분한 상태로 말했었다. 나 역시 그 녀석의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서 내밀었었는데... 설마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아주 먹음직스럽게 마셔 넘길 줄이야.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약간은 안심했다. 진심으로 죽일 작정으로 그에게 덤벼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그 안도감에 의한 희열로 나는 즐거웠고 다시 한번 떠오르는 증오에 의해서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갔다.


과학실 청소는 꽤나 번거로워서 한번식 번갈아가면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나는 다음 차례였지만 그냥 먼저 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서 그 날 과학실 청소당번에게 찾아가서 청소당번을 바꿨다. 원래 청소 같은 건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꿔달라고 이야기를 하자 청소당번은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갈색병이 쭉 늘어져 있는 약병들의 진열장으로 가서는 염산/위험 물질이라고 강력하게 쓰여 있는 그 병을 집어 들고는 근처의 화단에 곧바로 숨겼다. 나는 과학실이 정말 좋다.


그리고 나는 과학실 담당인 우리 담임에게 염산이 하나 비었다고 말했다. 




우리 반 담임은 히스테리적으로 나를 제외한 우리 반 모두를, 그리고 그 과학실에서 그날 실험한 모두를 조사하면서 짐을 뒤졌고 당연히 찾지 못 했다. 담임은 완전히 질색을 했고 학교에서는 우선 그 사실을 덮었다. 학교에서 그런 위험 물질이 사라졌다는 소문만으로도 그것은 충분히 학부형들의 신임을 깎아먹는다고 판단했는지 그 염산병을 찾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 화단에 숨겨놓은 그 액체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겨 놓은 병을 가방에 집어넣고서, 그 새끼가 자주 오가는 길의 골목에 있는 위치한 건물의 2층의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그 녀석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새끼가 이렇게 기다려지는 순간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녀석이 걸어오는 그 시각, 그 순간 나는 위를 보라는 의미로 작은 돌맹이를 그 녀석 앞에 툭 던졌다. 내 계획대로 위를 올려다보는 그 녀석.. 그리고 나는 그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염산을 그대로 쏟았다. 성공이었다. 염산이라는 액체는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액체였다. 투명한 액체였는지 애초에 붉은 액체였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얼굴에 쏟아지자마자 장밋빛 붉은색으로 번지는 그 광경은 최근 봤던 그 어떤 광경보다도 아름답게 꽃 피었다. 그 액체를 맞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서 제 얼굴을 만지는 그 녀석의 손에도 붉은빛이 전이되고, 그 녀석은 다시 나를 올려다본다. 아깝게. 눈은 살아 있는 건가? 나와 눈을 마주친 그 녀석은 조금은 소름 끼치게 웃었다. 


아.. 실수. 그 녀석이 나를 봐버렸다. 나는 곧바로 창문에서 떨어져서는 후문을 통해 다른 건물로 건너갔다. 설마 그 녀석의 눈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나와 눈이 마주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달리고 있는 나는 왜 인지 정신없이 떨고 있었다. 하지만 기뻐서 피식피식 웃음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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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4

2016. 1. 25. 14:36



4.








하느님, 혹시나 살아계시다면 제발 내 아래층에서 자는 저 새끼 좀 우리 집에서 치워주세요. 저 미친 새끼에게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은 모두 속고 있다고요. 기괴하게 웃는 저 낯짝 뒷면으로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칼자루를 쥐고서 나에게 슬금슬금 들이대고 있어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분이잖아요? 그렇다면 내 기도를 꼭 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나보다 저 새끼의 실체를 더 낱낱이 파악하고 계실 거 아녜요?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저 정말로 말 잘 듣는 착실한 학생으로서 착하게 살겠습니다요. 교회까지 가는 것은 끔찍이 싫지만 이뤄주신다면 한번 생각은 해볼게요. 아아,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죠? 노력이 있을 때 기도를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준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럼 저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제발 이 새끼 좀 꺼지게 해주시라고요. 네? 나 꽤나 착하잖아요. 엄마 아빠 누나 말도 엄청 잘 듣고 걱정할까 봐 항상 마음 졸이면서 살고 있어요. 게다가 저, 착한 아이들은 괴롭히지도 않는다구요. 그렇죠? 네? 저 착하잖아요.




부산하게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 아침이라는 걸 깨달은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매일 아침 깼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 순간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집에서 침대에 올라가서 잤었는데? 분명히 천장에 빛나는 야광 별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들었던 것까지 똑똑히 기억이 난다. 눈을 비벼대면서 이부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나 앉자, 마침 샤워를 끝낸 그 녀석이 목에 하얀 수건을 걸친 채로 이제 일어났어? 하고 묻는다. 아아, 기분 나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거다. 기분 나쁘게.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그 녀석의 침대에서 덫에 걸린 사냥감 마냥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녀석을 지나치려 하자 그가 말했다.


"자는데 남의 침대에 불쑥 들어오는 건 뭐야? 정말 놀랐다고"


"... 내가?"


"응. 기억 못하는 거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지만 이 녀석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대꾸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재수 없어. 왜 이렇게 피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도 잔 것 같지 않은 나른함에 샤워실로 향한 후 따뜻한 물을 틀고서 그 아래에 우두커니 서서 그 물을 맞았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기분이 좋다.


나는 그 녀석보다는 당연히 우등하다고 믿고 있었고, 절대로 그 녀석은 나와 비교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내가 이 녀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녀석이 나와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다른 모든 조건과 변명의 여지를 더하더라도 일단은 그의 학급 안에서의 등수가 나보다 높게 나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그게 싫다. 나는 20등, 그 녀석은 16등. 하지만 우리 학교는 공부를 더 잘해요. 뭐 이런 부가 설명 같은 거 붙이는 거 싫어. 내가 왜 비교 대상조차 안 되는 저 녀석을 상대로 이런 세세한 설명을 해야 되냔 말이지. 


학교가 끝나고 그날은 내가 먼저 히지카타를 찾았다. 교무실 문을 열자 퇴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던 히지카타는 가방을 메다가 찾아온 나를 보고는 약간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태워다 줘? 하고는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머리 만지지 마! 키 작은 사람들은 머리 만지는 거 싫어한다고! 뭐, 그렇다고 내가 키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나, 공부 가르쳐줘"


"드디어 미친거냐?"


히지카타는 그런 말을 하는 나를 보고는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웃었다. 선생이라는 새끼가 학생이 공부 좀 하겠다는데 이렇게 비웃어도 되는 거야? 나는 한참 웃는 그 녀석을 노려보기만 했고 그 녀석은 한참을 웃다가 다 웃었는지 멈추고는 새삼 놀란다는 듯이,


"진심이야?"


하고 다시 물었다. 아 열받아. 괜히 이 새끼한테 왔어. 그나마 가장 내가 막 대할 수 있는 선생이라서 찾아온 것이긴 하다만.. 아냐 됐어. 하고 뒤돌아서 가려고 하자 다행히도 이 새끼가 그냥 돌아가려는 날 붙잡고는 공부하자며? 가자, 하고 말하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다시금 웃었다. 이 새끼는 가끔 선생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 때가 있다. 그럴 땐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자신의 집에서 공부를 하자 길래 순순히 그 녀석을 따랐다. 혼자 산다는 녀석 집이 생각보다 크다. 게다가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성격답게 정리도 깔끔히 잘 되어 있어서 그의 성격을 바로 보여주는 듯하다. 곳곳에 놓인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여성스러운 소품들은 딱 봐도 누나가 선물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저기에 있는 하얀색 탁상시계는 누나가 나에게 여러 번 물어봤던 시계였다. 뭐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에게 선물을 줄 건데 어떤지 좀 말해달라면서 나에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었다. 동료는 무슨, 저렇게 신중하게 고르는 거면 히지카타에게 주는 거지 뭐. 귀찮아서 대충 누나가 물어 본, 저기에 놓인 저 시계를 사라고 한마디 했는데 내 말을 듣고 정말로 그걸 사서 줬는지 히지카타의 방에 놓여 있는 걸 보면 기가 차서 웃음이 다 나온다.


"뭐 먹을래?"


"아니"


"근데, 왜 갑자기 공부야? 너 정말로 안 어울리는 거 알어?"


"일단은 나 학생이잖아"


내 말에 그 녀석이 다시금 한참을 웃는다. 아니 내가 뭐 웃긴 말 했어? 그 녀석이 펼쳐 놓은 좌식 탁자에 앉아서 책을 펴자, 그 녀석이 음료수 한잔을 내 옆에 내려놓고는 갑자기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얼굴 맞았어? 좀 부은 것 같은데?"


아이고. 귀신이시네 귀신.


"계단에서 굴렀어"


"계단에서 구른다고 얼굴이 다쳐? 이거 맞은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야"


내 턱을 손으로 콱 쥐어 잡고서는 자세히 보는 그 잿빛 눈동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있는 힘껏 이 녀석을 뿌리쳤다. 힘의 반동 때문에 뒤로 넘어진 나와 너무 거센 몸부림이 어이없었는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녀석.


"공부나 가르쳐 달라고! 이런 거 걱정해 달랬어?"


".. 딱히 걱정한 건 아닌데?"


아, 그러셨구나? 이 새끼... 그는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똑바로 앉아. 하고는 장난스럽게 선생님의 얼굴로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이지 당장 누나에게 달려가서 헤어지라고 말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약간 민망함에 씩씩대다가 한참 문제를 푸는데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히지카타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진짜 말해봐. 무슨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다 가르쳐달래?"


"학생이 공부를 잘하고 싶은 게 이상한 거냐고요. 선생님"


"너는 이상하지. 너 이번에 그나마도 시험 잘 본거 아니었어? 오늘 웬일로 찾아왔길래 성적올랐으니까 맛있는거 사달라고 하려나 했는데 공부를 하자고 하다니.. 너 죽을 때 된 거 아냐?"


저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원래 난 더 후반이었다고.. 23, 24등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20등 까지 올라온 건데, 그 녀석이 16등까지 할 줄은 정말로 생각도 못했지. 물론, 엄마도 나에게 잘했다고 했고 성적이 올랐다고 좋아하긴 했지만 나의 성적을 보기 앞서 카무이 녀석의 성적을 보고는 엄마가 그렇게 격렬하게 좋아할 줄은.. 앞자리에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기뻤던 걸까? 아니면 전혀 기대도 못 했던 그 자식이 예상외로 잘해서? 


"그... 우리 집에 온... 음.. 집에 같이 있는 그..."


"네 형?"


"형 아니고 그 녀석"


"그래, 그 녀석이 왜?"

 

내가 형이라는 말을 콕 집어서 고치자 우스운지 피식 웃으면서 묻는다.


"그 녀석의 반 등수가 나보다 높아서 짜증나"


"비교 대상이 생겼구나? 좋지 뭐. 라이벌 의식도 있고. 아 너 지금 푸는 그거 틀렸다"


아 씨발 못해먹겠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펜을 신경질적으로 책에 내던졌다. 책에 떨어지는 마찰음과 함께 튕겨져 떨어지는 펜, 사실 열받음을 표시한 것인데 그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잽싸게 주워선 내 손에 꼭 쥐어주고는 다시 말했다.


"너, 이러니까 못하는 거야. 빨리 다시 봐봐"


이렇게 승질내는 수법 너무 많이 써먹었나.. 이제 안통하네. 전엔 이러면 왜 또 이러냐면서 약간은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했었는데. 내 승질 긁는 건 이 새끼도 마찬가지다. 아, 하느님 한 개 더 추가. 이 재수 없는 녀석이 누나와 빨리 헤어지게 해주세요.











-

아부토는 묻지도 않은 제 이야기를 곧잘 했다. 듣기 싫었다면 듣지 않았겠지만 나도 흥미가 있어서 주의 깊게 들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그가 속한 그 조직의 이야기로 다양한 범죄와 연관이 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마약거래라던가, 유흥업소(예를 들자면 창녀를 팔아넘기는 일과 여러 가지 성에 관한 범죄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다.), 살인청부 등등. 범죄의 이야기를 듣고서 정의를 외치는 타입은 아닌지라 항상 그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고, 가끔 아부토는 이야기를 해주다가 답지 않게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 하고 중간중간에 망설임을 표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뭐야? 다 말해놓고"


그럴 때 보면 10살이나 많다는 게 확 느껴진다. 평소에 나를 애 취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보면 애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 얼핏 보인다고. 살인 이야기를 할 때 해봤어? 너도 직접 죽여봤어? 어땠어? 하고 물어보면서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서. 내 질문에 아부토는 크게 웃으면서, 이런 걸 뭐 하러 자세히 알려고 들어? 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엔 대답 없이 그냥 웃음만 보이자 뜬금없이, 나에게 넌 나중에 뭘 하고 싶어? 하고 고아원에서 자주 만났었던 진부하고 따분한 어른처럼 물었다. 


"? 글쎄"


"글쎄가 뭐야? 대통령이라도 되고 싶다고 하던가, 아니면 초등학생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던가 뭐 자라나는 새싹다운 파릇파릇한 꿈 말이야. 없어?"


"흠... 자라나는 새싹다운 꿈이라.. 살인 청부 업자 같은 거 재밌겠네"


내가 장난으로 손가락을 총 모양으로 하고는 총 쏘는 시늉을 보였다. 사실 총이라는 무기가 들고 있으면 멋있긴 하지만 썩 좋아하는 무기는 아니다.


"너 그런 말 어디 가서 함부로 했다간 잡혀간다? 내가 했던 말 들도 다 비밀이야"


본인이 나를 물들였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뜨끔하면서 아부토는 말했다. 어째서? 


"날 세 살배기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정도는 된다고 아저씨"


그러자 그는 그냥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던 것이었고 갑자기 오키타 녀석은 무엇이 되고 싶어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뭘 하던지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같이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그래도 지금과 다르지 않게 그 녀석은 나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말이야, 살인 청부업자 같은 거 쉬운 일 아니야. 이렇게 밝은 곳에 나올 수나 있을 것 같아? 항상 컴컴한 곳에서 그 죽일 대상만 노려보고 있어야 하고, 또 들키지 않게 숨겨야 하고..."


아부토는 이런 식의 훈계를 꽤나 좋아하는 듯했다.






항상 7시에는 집에 들어오던 녀석이 집에 오지 않는다. 어디 갔을까? 마침 들어온 누나에게 살짝 그의 행방을 물어보니 누나는 내 말에 웃으면서,


"소고 말이야, 공부하고 있다는데? 아, 이거 비밀이야"


안 어울리게..공부?


"내 남자친구가 지금 가르쳐주고 있나 봐. 그 학교 선생님이거든. 공부하는 거,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엄청 난리 쳤다니까 너도 모르는척해야 해 알았지?"


하고 수줍은 듯이 미소 지어 보였다. 누나의 미소는 언제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웃어 보였다. 공부라.. 저번의 보였던 그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 나한테 이기려고 하나 보네. 그런 걸로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그러고 보니 그때 차에 같이 탔었던 그 선생이 누나의 남자친구였구나. 누나가 예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친구도 꽤 잘 생겼다. 생각보다 날카롭게 생겼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그나저나 이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누나나 엄마와 아빠는 집에 오지 않는 그 녀석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왜 인지 모르게 나는 그 녀석을 한참을 기다렸다. 자꾸만 보게 되는 시계는 쉽사리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참 힘든 것이었다. 별로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만나봤자 그 녀석은 나를 싫어하는 그 특유의 표정만 지어 보일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지만 나는 그런 네가 좋았으니까.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암흑에 잠기었다.




삐걱, 삐걱, 삐걱,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내 귀를 찌르듯이 자극했다. 사람의 뼈가 어긋나 마찰이 나는 듯한 듣기 싫은 그런 소리, 내 뼈마디가 욱신욱신 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름이 일어난다. 다시 삐걱, 삐걱, 삐걱, 하고 들린다. 잠귀가 예민하지 않은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미세한 작은 소리가 기분이 나빠, 작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깬 것이 틀림없다. 짙은 먹색이 안개처럼 뿌려진 듯한 방 안에서 동그란 실루엣이 천천히 위에서 내려온다. 저 녀석이 내려오면서 미세하게 자극받은 교묘한 틈새의 신음이었나 보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내가 기다렸던 저 녀석. 저 녀석도 깬 건가? 하는 생각에 내려온 그 녀석을 쳐다보고는 말을 걸었다.


"깼어?"


내 말이 들리지는 않는지 그저 방에서 나가려 손잡이를 맥없이 잡고 비틀으려는 그 녀석의 뒷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평소와는 달리 힘이 하나도 없어서 툭 치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내딛는 발걸음도 자연스럽지 않게 투박했고, 비틀비틀 대고 있었다. 딱히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한 호기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 녀석의 어깨를 잡고서 물었다.


"어디가?"


힘없이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그 녀석의 눈은 초점이 정확하지 않고 흐릿해서 잠이 덜깬 것인가? 하고 생각할 무렵, 그는 갑자기 나를 저돌적으로 와락 껴안고 내 품에서 중얼거렸다.


"..어.. 엄마.. 나.. 너무 싫...싫어요...나.. 나만 봐주세요..."


"응?"


"...말.. 잘 들을...게요.. 웃으라고 하면.. 우..웃을게요...나로서는 만..족이 안됐...던 거예요..? 그냥.. 우리 넷이면 되는건데....왜 있지도 않...은 다른 사람..을 데려와요.. 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손을 들어 그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아원에 있었을 적에 동생이 가끔 이렇게 매달려온 적이 있다. 왜 그러는지 몰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본 고아원 원장은 자상한 척 웃어 보이면서, 그렇게 안겨오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거야. 하고는 알려주었다. 왜요? 하고 묻자 당황하면서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했지만, 내가 등을 살짝 토닥여주자 동생은 꽤나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진정시키려는 의도도 아니고 달래주려는 의도도 아니고, 그저 학습에 의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던 이 녀석이 안겨왔던 내 품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 말했다.


"너....."


그리고는 다시금 내 목을 간지럽게 휘감아오는 그의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바닥. 그의 그런 행동은 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나에게 살기가 있는 것인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설레어서 눈 앞이 아득하기까지 하였다. 유혹이었다. 내가 이렇게 설레이고 있으니까. 그러더니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듯, 나를 보고는 누나라고 했다가, 히지카타라고 했다가, 엄마라고 했다가, 아빠라고 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잠꼬대 하듯이 드문 드문 말을 이었다. 


누나, 누나는 그래도 내가 더 좋지? 누나는 내 편이었으면 좋겠어요... 히지카타, 빨리 누나랑 헤어져. 내가 딱히 널 인정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엄마.. 나로는 부족해요? 내가 더 노력할게요. 그 녀석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진짜로.. 이상해요 진짜로... 누나.. 그 녀석 진짜로.. 이상해.. 누나는 내 말을 믿어줘야 해! 히지카타 너 그때 봤었잖아. 그 녀석 어때? 조금.. 이상하지 않아? 그 새끼 가끔 또라이 같다고. 엄마, 엄마! 엄마! 그 새끼 말이에요. 가끔 나 쳐다보는 눈빛이 끔찍해요... 응... 끔찍해요... 진짜 이상해요....


으응 그래?


이상해서..나 무서워..


그랬어?


그 새끼.. 죽었으면 좋겠어.. 아.. 죄송해요.. 난 착한 아이인데... 말이 잘못...나왔.어요


이 녀석의 초점은 여전히 흐릿하고 날 보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게 허공의 한 점을 향해 있었다. 부드러운 뺨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어도 반응도 없고, 여전히 초점이 없는 적갈색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나에게 홱 등을 돌리고는 다시 터덜터덜 걷더니 내 침대에 걸터앉고서 말을 걸 틈도 없이, 기절한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쓰러져 잠든 그의 옆에 앉아서 그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헝클었다.


고아원에서 본 적이 있다. 몽유병. 그때는 선생님들의 철저한 억압과 관리 속에 있었기에 그런 증상을 보이는, 일명 '환자'들에겐 관심도 없었던 터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 그때의 교육으로 알았던 것은 몽유병 환자들은 그 병의 증상이 시작되어 나돌아 다닐 때의 기억이 전혀 없고,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하지 않으며 잠꼬대하듯 말을 할 뿐이라고 했던 것 같다. 더 심한 경우엔 여러 가지 과한 경우도 많다면서, 몽유병의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그 행동을 억지로 하지 못하게 말린다면 발작이 일어나므로 조용히 잠자리에 들 때까지 놔두어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려는 경우엔 꼭 말려야 한다고 단단히 당부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귀찮은 발작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고아원의 '환자'가 몽유병 증상이 시작되고서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했고 내가 모르는 척했던 그 아이는 두 번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오지 못 했다. 나는 무언가에 적극적이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도망 아닌 도망을 즐겨 했으며 보고도 못 본 척, 하고도 하지 않은 척하는 것에 능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실종된 그 아이에 의해서 고아원의 모두가 슬픔에 잠겼을 때도 나는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에 그 아이가 나가던 그 뒷모습이 잠깐은 생각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 아이를 잡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그 아이는 나의 동생이었다.











-

최근에 자주 꾸는 꿈에서 그 녀석의 목을 졸라 죽이려는 시도를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그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고, 그 녀석 위에 올라타 있는 나는 그 녀석 특유의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보면서 이내 소스라치게 손을 떼었다. 그러면 그 녀석은 그런 나에게 다가와서는 뺨과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키득키득 웃는 것이었다. 아무 위협이 되는 행동은 없었지만 그저 나를 만지는 그 손길이 차가운 시체, 혹은 나의 혼을 쓱 빨아갈 것 같은 사자(死者) 같아서 나는 그 녀석의 몸에서 똑바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다리가 풀려 우스운 꼴로 뒤로 물러난다. 그러면 그 녀석은 반대로 내 목을 한 손으로 쥐고는 어디 가? 하고 언뜻 들으면 정겹게 느껴질 말투로 물어왔다. 숨이 켁켁 막혀서 눈이 돌아갈 것 같은 그런 개 같은 상황, 그 녀석의 거센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그 녀석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양손으로 쥐는 순간 나는 전기 쇼크를 받은 듯 다급하게,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일어나면 또 다시 그 녀석의 침대 위였다.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꽤나 끔찍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이도 없고, 항상 끔찍이 소름 끼치는 그 녀석의 침대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은 더더욱. 그러면 그 녀석은 또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났어? 하고 웃는 낯짝으로 묻는다. 그것은 진심으로 죽이고 싶은 공포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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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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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우리 반 애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싸움을 걸지도 않았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저들끼리는 그렇게 서로 싸우고 싶어서 안달나 하면서 왜 나에겐 시비조차 걸지 않을까 하고 약간은 의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나서서 싸움을 걸거나 할 정도의 가치를 느끼는 이는 없었기에, 학교에선 그저 엎드려서 자거나, 옥상에서 가끔 바람을 쐬거나 했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 관심을 가져주는 한 명은 옆자리에 앉은 10살이나 많은 아부토였다. 한 번씩 매점에서 우유나, 빵 같은 걸 사다 주기도 했다. 나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날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연히 옥상에서 마주쳤을 때 아부토가 말했다.

"애들이 너 무섭데"

"내가 왜?"

"몰라 그냥 무섭데 그래서 너한텐 시비도 못 걸겠데. 근데 애들이 그런 말 하는 게 왜 나는 이해가 가냐"

"응? 뭐가?"

"몰라 인상이 더러운 것도 아닌데 그냥...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너도 그 애들의 말에 동의하는 거야?"

"응"

"근데 왜 너는 나에게 말을 걸어?"

"나는 너 같은 애한테 관심이 많으니까" 

나 역시  아부토가 나쁘지 않았다. 아부토는 나이가 많아서인지 반에서 애들이 모두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험악하게 생겼고 실제로 일반인들 사이에 있다면 무서운 존재로 비춰질 것이나, 우리 반의 양아치들의 사이에서는 그들을 통솔하는 리더같은 격이었다. 반의 아이들도 나이가 많아서인지 대들지 않았고, 다들 말을 조용 조용히 듣는다. 
우리 반에서 가장 까칠하고 기세등등한 한 녀석은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 봤자 나와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조용히 관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녀석과 다른 녀석의 이야기를 엎드려서 자다가 들었다.

"옆 학교에 싸움 좀 잘하는 애 있잖아. 누구지?"

"아, 알아 누군지. 근데 걔 옆에 항상 어떤 꼰대가 있어서 함부로 못 건드린다던데. 그 새끼가 그랬데 자기랑 싸우고 싶으면 사복 입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서로 얼마든지 다쳐도 신고하지 않는 걸로 합의 보고 싸우자고, 미친 새끼래 완전. 그래서 그 학교에서도 아무도 안 건드린데 걔 누나랑 부모님도 그냥 조용한 범생이 정도 되는 걸로 안다더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학교에서도 싸이코로 유명하다는데 가족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걔 이름이... 오키타 맞아? 연갈색 머리카락? 그렇게 안 생겼던데"

오키타? 나는 그 이름에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 녀석에게 물었다. 

"오키타?"

내 반응에 이야기하던 그 무리들이 흠칫 놀라더니 어.. 어어... 왜? 아는 사람이야? 하고 묻는다.

"싸워본 적 있어?"

"아니 뭐.. 아직은... 아는 애야?"

"아니, 그냥 궁금하네. 혹시나 만날 일이 있다면 나도 불러주겠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들, 그리고는 이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
과학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실에서 실험은 참 재미있다. 항상 재밌는 것은 아니고 전에 금붕어나 토끼를 해부 실험한 이후로 나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여자아이들은 꺅꺅대면서 징그럽다고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처음에만 그럴 뿐이지 곧 잘하잖아? 거봐, 너희들도 똑같다니까? 오늘의 실험에 쓰일 실험용 금붕어가 살랑살랑 물속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입을 뻐끔거린다. 곧 죽을 이 녀석은 뭐가 좋다고 이렇게 하늘하늘한지. 심심해서 실험용 막대로 금붕어를 툭툭 건드리면 흠칫 놀라면서 재빠르게 좁은 어항을 헤엄치는 행색이 우습다. 한참 장난을 치는데 옆에 있는 어떤 아이가 나에게 와서는 말을 걸었다.

"저.. 오키타...? 서.. 선생님이 가만히 놔두라고.... 하셨어..."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무시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홱 피한다. 방금 나에게 말을 건 저 새끼는 초반에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는 새끼였다. 나의 첫인상이 조금은 만만해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와서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뭐라고 지껄였던 것 같은데 무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원래 남자들이란 초반의 기싸움이 중요하다고, 나는 그대로 그 새끼의 손목을 잡아서 사물함 방향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물함의 마찰음이 퍼지고 순간 교실에선 적막이 맴돌았다. 그냥 뭔가 도구를 쓰는 게 더 좋아 보일 것 같아서 의자를 집어 들고 내리치려는데 마침 등장한 히지카타가 내가 들고 있던 의자를 잡고는 가만히 빼앗아서 조용히 내려놓았다. 덜덜 떠는 내 앞의 그 자식은 하얗게 질려서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었다. 이후에 히지카타는 나를 따로 불렀다. 누나에겐 따로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누나의 걱정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로써도 다행인 부분이고. 아무 말도 없이 삐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히지카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면서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머리를 좀 식히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어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나는 대놓고의 거친 폭력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히지카타가 누나에게 말할 것을 약간은 두려워하고 있었나 봐. 


집으로 가는 길에 앞서 걸어가는 카무이 녀석을 봤지만 부르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슬그머니 따라가는데 그 녀석이 뒤를 홱 돌아보더니 나에게로 걸어왔다. 

"같이 가는 길인데 왜 부르지도 않아?"

"부를 이유가 없어서"

그 녀석은 그저 씨익 웃는다. 말없이 걷다가 정말로 뜬금없이 그 녀석이 말했다.

"다른 집의 부모님들도 우리 엄마 아빠와 같을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

"흠.. 그런가? 전에 있던 곳의 엄마 아빠는 참 이상했어. 근데 지금의 엄마 아빠는 정말 다정하신 것 같아"

전에 있던 곳? 

"다른 곳에도 입양되었던 적이 있는 거야?"

"응 입양됐던 적이 있었어. 두 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덤덤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약간은 치사하게 어떤 이유로 나왔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상 더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내 마음이 설레었다. 한 번이 있으면 두 번이 있고, 두 번이 있으면 세 번이 있고... 반복이 있다는 것은 더 큰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기에. 사실 그 녀석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가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 나는 그가 우리를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것이다.(화목한 우리 가족이 그렇듯 가족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세뇌 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그래서 나는 새로운 가능성에 그 순간이 자꾸만 설레었다. 다행이다 전의 두 곳에서 버렸졌든, 니가 버렸든 간에 너도 이곳을 떠날 수 있겠구나? 내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사라져 버려.

갑자기 급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답지 않게 그에게 오늘 저녁은 뭘까? 하고 그 녀석에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약간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나는 그 녀석이 나에게 보내는 미소와 닮게 웃어주었다. 약간 피식하고 웃는데 그 미소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전의 엄마 아빠가 이상했다고 했지? 우리 엄마 아빠가 다정해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내가 너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게.





이 녀석이 다니는 Y 학교와 우리 학교는 사이가 좋지 않다. 나도 실제로 몇 번 싸워본 적도 있었고. Y 학교는 남고, 우리 학교는 공학이지만 사이가 안 좋아서 우리 학교의 여자들은 여자로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욕을 할 정도였다. 물론 우리 학교 여자애들 중 예쁜 애가 한 명도 없다는 것도 큰 몫을 하겠지만.

지나가는 골목길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Y 학교 교복을 입은 양아치 몇 명이 담배를 허세 가득하게 물고서는 나를 까칠하게 쳐다본다. 나 역시 지지 않고 까칠하게 쳐다보고 지나가려는데 뒤에서 한 명이 외친다.

"오키타.. 소고였나?"

나를 알아? 내가 돌아보자 스윽 하고 꺼내드는 각목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여러 명. 사실 저런 양아치 새끼들이 시비를 거는 데엔 다른 이유가 딱히 있겠냐만은 나를 알고 온 것은 조금 의외였다.

"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그래서 우리가 좀 궁금해서 말이야"

뒤에는 다섯 명 정도가 서 있었다. 아, 괜찮아 저 정도면. 여긴 사람이 많으니 다른 쪽으로 가지 않겠어? 내가 말하자 그 새끼들은 뭐가 웃긴지 킥킥 웃는다. 저런 새끼들이 꼭 초반엔 저렇게 있다가 나중엔 처맞고 질질 짜고 있겠지. 사람의 인적이 거의 없는 어느 으슥한 골목에서 그 녀석들은 위협적으로 몸을 푸는 듯 보이기 위한 액션으로 허공에 각목을 휘둘러 댄다. 아냐 아냐,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너 그런 식으로 휘두르면 어깨 나간다? 


10분, 아니 15분인가? 내 옆에 쓰러져 있는 새끼들을 그 녀석들이 들고 있던 각목으로 툭툭 치면서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시시해.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것 들을 왜 가지고 와? 나도 팔과 다리가 약간은 다치긴 했지만 기세 등등하게 오기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드럽게 재미없어. 집에 다친 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절뚝절뚝 그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차마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서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일어나려 땅을 짚는데 웬 그림자가 내 앞에 드리워져서는 나를 한참 쳐다본다. 위를 올려다보니 카무이 녀석. 

"꽤 하네"

나를 지켜본 것일까? 언제부터 봤을까? 놀라서 쳐다보는데 그 녀석이 넘어진 내 앞에 시선을 맞추어 몸을 숙이고 내 턱 끝을 살짝 잡고서 한참 내 눈을 쳐다본다. 내가 무어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혹은 소름 끼치게 톡톡 쳤다. 기분 나쁘게 뭐야?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슬쩍 눈웃음을 짓고는 그대로 내 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순간 머리가 쿠웅 하고 울리면서 피 맛이 비릿하게 입안 가득히 번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너무 황당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홱 돌아간 고개를 다시 똑바로 할 생각이 들지도 않아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는 혼자서 일어나서는 그대로 홀연히 가버렸다. 아니... 뭐야..? 씨발 저 미친 개새끼. 


한참 후에 혼자서 주섬주섬 일어나 절뚝거리며 집으로 향하면서도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나에게 단체로 달려들어 싸움을 걸어온 녀석들보다도 그런 싸움을 몰래 감시하듯, 혹은 영화같이 재밌는 것을 관람하듯이 지켜봤을 저 정신병자 같은 새끼가 끔찍히 소름이 돋아 몸이 파르르 떨린다. 아아,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근데 그 상황에서 지나갈 거면 그냥 갈 것이지 때리는 건 뭔데. 내가 막내이기에 응석을 부리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런 취급은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들어와서는 나의 가족들과 과일을 먹고 있던 그 새끼는 엉망이 되어 들어온 나를 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처음 본다는 듯이 웃으면서 어서와, 꼴이 왜 그래? 하고는 능청스럽게 묻는다. 놀란 누나는 달려와서는 나에게 걱정스럽게 왜 이렇냐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능청스럽게 사각사각 베어 무는 그 녀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그 녀석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서는 시선을 돌린다. 아 죽여버리고 싶어.




밖에서 엄마 아빠와, 누나와 과일을 먹던 그는 자기 직전에 내 침대 옆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화났어?"

병주고 약주냐? 자는 척 하려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말 섞기 조차 싫어서.

"안 자는거 알아"

꼭 이런 새끼들은 눈치도 빠르단 말이야.

"....화났냐고? 별로. 그냥 어느 때처럼 니가 싫어"

"왜?"

아니..  한밤중에 더 열받게 이 새끼가. 나는 누워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고선 그에게 말했다.

"그런 것을 묻는 의미를 모르겠네. 어차피 우리는 원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잖아. 그저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 뿐이야"

"하하, 그거 오해야. 난 너를 좋아해"

"....미친새끼"

나는 그 말을 하고선 거칠게 돌아 누웠다. 그러자 그가 킥킥 작게 웃어댄다. 이 새끼 정신병자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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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엔 전혀 취미가 없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이 반의 새끼들이 더 못한 것인지 생각보다 성적이 좋게 나왔다. 성적표를 보고 나서 약간이지만 나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오키타는 눈에 보이게 당황해 했다. 엄마는 내 성적을 보고는 잘했다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물론 우리 학교가 저 녀석의 학교보다는 공부를 못하는 학교였지만, 반 등수나 전교등수가 그 녀석보다 약간 높다는 이유로 그 녀석은 자존심이 상한듯 보였다. 사실 나도 이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했지만 나를 꼭 안아주는 느낌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싫지 않았다.

하긴, 나에게 이런 걸로 밀릴거라고 생각을 못했겠지. 나도 예상 못했는걸. 풀이 확 죽은 와중에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신경끄라는 듯이 매섭게 노려보는 것이다. 귀여워. 나한테 졌다고 생각해서 분한가봐. 귀여워. 


나에게 기를 쓰고 달라드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 모습 그대로 귀여워 해주고 싶어. 부모님의 관심을 받는 나를 질투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부모님의 관심을 일부러 받으려는 거야. 내가 받으면 그대로 너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어리광 아닌 어리광을 부리면서 관심을 기대 하고 있으니까. 그게 너무 귀엽잖아! 그럴때 니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 당황하는 표정, 화가 나서 어쩔줄 몰라 하는 표정,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표정 다 좋아 다.

교실에 있는 시커먼 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같은 학교를 다녔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같은 반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그 녀석도 친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옆 자리에 앉아서 엎드려서 자고 있으면 조금은 요란하고 과하게 울리는 수업 종을 듣고 깰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싶어. 
옆자리가 안된다면 내가 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지켜보고 싶어. 시선이 신경 쓰여서 가끔씩 날 돌아봐 준다면 그건 더 좋고. 매점도 함께 가봤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같이 옥상에 한번 누워있어 보고 싶기도 해. 너와 같이 받는 햇빛은 뭔가 약간은 다를 것 같아.. 물론 넌 날 굉장히 싫어 하겠지만 난 그 편이 재밌어.

햇빛은 참 좋다. 그래서 옥상에도 자주 가서 누워 있었고 나를 찾을때 아부토는 항상 옥상으로 왔다. 나를 찾는 사람은 아부토 뿐이니까 옥상에 누워 있다가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 지면 나는 감은 눈도 뜨지 않고 아부토? 하고 묻는다 그러면 그냥 웃으면서 매점에서 사온 우유나 빵따위를 내 옆에 놔주고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아부토는 확실히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부토가 참 편했다. 아부토 역시 가족이 없다고 했다. 이미 다 사고로 죽어서 없다고 씁쓸하지만 덤덤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서 내가 이 녀석이 싫지 않았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사실 나 말야.. 하고 저 혼자 거듭 뜸을 들이면서 말했던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사실은 아니었다.

"나 사실은 폭력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

"아, 그래?"

"놀라진 않네?"

"그렇게 생겼어 너"

내 말에 아부토가 풋 하고 웃었다. 햇빛이 눈이 부시네. 이만 들어갈까? 하고 물었고 나는 아냐 조금 더 있다가 갈래 하고 가만히 말했다. 아부토는 먼저 가보겠다면서 들어간다. 몸에 와 닿는 햇빛이 따스해서 나는 멍하니 햇빛을 쐬었다. 







오키타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냥 가끔 보면 나오는 성향이랄까 엄마나 아빠, 누나는 이런 그 녀석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진즉에 그것을 눈치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녀석의 사냥 대상이 지금 현재는 나였으니까! 나는 그것이 참 기뻐.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얼마나 연구하고 있겠어? 귀여워.

"카무이, 이거 먹어"

딱 봐도 수상하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건네는 음료수.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이 안에 무언갈 탔을 거야. 먹고 죽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뭐. 내가 이런 것쯤은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게다가 나를 괴롭히려고 열심히 준비한 이 녀석의 기대를 받아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기꺼이 투명한 유리 잔을 붙들고 들이켰다. 뭔진 모르겠지만 입안에서 싸하게 맴돌고 텁텁한 인공적인 맛이 내 목 사이를 조금은 뜨겁게 통과하는 걸 보니 확실히 기분 좋게 먹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보라는 듯이 먹음직스럽게 다 삼켰다. 목울대가 울리는 것을 본 그는 처음엔 기분 좋게 웃다가, 멀쩡하게 내가 컵을 내려놓으면서 잘 먹었어. 하고 대답하자 당황해했다. 귀여워.

"왜?"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 녀석의 조금은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서 묻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 아니. 하고는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화풀이로 나에게 건네었던 유리 잔을 조금은 야속하게, 조금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맛있네 앞으로도 종종 부탁해"

귀여워. 실패해서 인지 약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귀여워. 먹을만 했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는지, 내가 마신 컵을 들고서 한참 들고 서 있다가 컵 내벽에 있는 약간 남은 액체를 손으로 찍어서 한번 맛을 본다. 촉촉한 새빨간 혓바닥으로 손가락 끝을 가볍게 핥는 모습이 꼴린다. 핥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살짝 스쳐지나갔다. 확실히 저 얼굴에 반항적인 표정은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그게 끝이였어도 귀여운데. 이 녀석이 작정을 했나.

잘 때에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무게감이 들어 자다가 살짝 깼다. 내 위에 그 녀석이. 오키타 녀석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 힘이 아주 많이 들어가 있진 않았어서 숨이 막힌다거나 하진 않았다. 나를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그 녀석의 시뻘건 눈동자엔 빛이 하나도 비추지 않아 까만 색을 띄고 있어 매력적이다. 진심으로 나를 싫어하는 표정으로 목에 양 손을 가져다 대고 있는 손바닥의 온기가 적당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 목에 따듯하게 자리한 그 녀석의 손목을 가만히 잡고선 나도 모르게 소리내서 웃어버렸다. 아아.. 어떻게 해 너무 귀엽잖아. 너. 그런 나에게 당황했는지 손에 그나마 엷게 있었던 힘이 스르르 풀렸고 나는 몸을 반쯤 일으켜서 그 녀석을 나도 모르게 와락 껴안아 버렸다. 어떻게 해. 너무 사랑스럽잖아. 
분명히 빠져 나가려 안간힘을 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어떤 이유 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있다가 내 품 안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내 어깨에 얼굴을 가만히 기대고 있어서 설레었다. 작게 숨을 뱉으며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 간지러운 리듬도, 더운 숨도 좋아. 그대로 옆에 눕혀 놓고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어둠 속 가까이에서 그를 하나하나 관찰했다. 감은 눈을 조심스럽게 만져 보기도 하고, 속눈썹을 가만히 쓸어보기도 하고, 부드러운 입술 끝을 한 번 만져보기도 하고, 하얀 뺨의 감촉이 어떤지 조심스럽게 한 번 문질러 보기도 하고, 코 끝을 한 번 만져 보기도 하고...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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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2

2015. 12. 21. 08:3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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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녀석과 끈끈한 정으로 진득하게 엮이는 가족이 될 생각은 크게 없다. 그냥 적당한 거리로 바라보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 

그 녀석은 엄마 아빠와 누나 앞에서는 참 착한 아이였다. 절대 속은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특히 누나에겐 더 그랬다. 누나가 나에게 이것 좀 먹을래? 하고 조금이라도 챙겨주는 것 같으면 어느새 달려와서는 나도 나도! 하고는 나를 잔뜩 노려본다. 흐음 귀여워

쟤가 좀.. 까칠할 때가 있지? 하고 누나는 물었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쟤가 어릴 때부터 너무 우리가 응석을 받아줘서 저래. 하고는 나에게 웃어주었다. 아 누나 걱정하지 마요. 난 충분히 저 녀석이 좋은걸요?
그 녀석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과 누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날은 가족끼리 소풍을 가자면서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왔다. 전 다 잘 먹어요. 하고 이야기하자 그 녀석은 옆에서 유부초밥이 먹고 싶다면서 잽싸게 대답했다. 둘이서 장을 봐오라면서 우리 둘을 떠밀다시피 보냈는데 그 녀석은 가족 앞에선 다녀올게요 하고 착실하게 대답하고서는 나오자마자 나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떨어져서 따라와"

"싫으면 네가 나에게 떨어지면 되잖아?"

"너는 내가 좋아?"

"응 좋아"

내 대답에 완전히 황당하다는 듯이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나는 너 존나 싫어. 그 실실 쪼개는 낯짝부터 존나 기분 나쁘다고"

"그래? 그래도 어떻게 해. 우리 가족이라잖아."

"..나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혼자 다녀오지그래?"

약간 열받은 표정이다. 

"내가 기다릴게 네가 다녀와"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이 녀석은 정말로 화가 났는지 표정이 싹 변했다. 아, 이 표정이야 이 표정. 가끔 이렇게 살기 띄는 표정 말이야. 내 앞에 살기를 띈 표정으로 한걸음 바짝 다가와서는 나를 노려본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내가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멱살을 잡더니 주먹으로 나를 노린다. 생각보다 정확히 들어오는 공격여서 약간은 놀랐다. 나는 원래 싸움을 잘해서 져본 적이 없다. 져본 적이 없다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다들 너무 약해서 시시하다고. 하지만 이 녀석이 이렇게나 나에게 맞서서 잘 싸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에게 대적해서 꽤나 하는 녀석은 오랜만이야. 내가 너를 좋아한 이유가 이거였나 봐. 마음에 들어! 이 녀석도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싸움을 거는 것 같지는 않았다만, 휘두르는 주먹이나, 나를 피하는 움직임을 보면 대충 보인다고.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재밌어 너.
 
한참을 서로 한 대씩 주고받는데 우리가 하도 안 와서 걱정되어 쫓아온 누나에 의해서 우리 둘 다 진압되었다. 아쉽다. 조금만 더 싸웠으면 정말로 전력을 다해서 싸울뻔했어. 너도 그렇지? 너도 마지막쯤엔 흥분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잖아.
결국 셋이서 같이 장을 봐와서는 엄마와 누나는 도시락을 싸고 나와 그 녀석은 벌을 받았다. 집 안에서 무릎 꿇고 반성문을 쓰라고 했는데 난 태어나서 이런 벌은 처음 받아본다. 다른 가정은 보통 이런 벌을 주나? 옆의 이 녀석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너 같은 녀석 때문에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먼저 싸움을 걸었던 건 너잖아? 그리고, 너는 이런 벌을 받는 것만으로도 억울하구나? 생각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

이것을 어떤 감정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나를 경멸 섞인 눈으로 쳐다보는 게 좋다. 그리고 얼핏 나오는 살기를 띄고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도 너무너무 좋아! 그 표정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럴 때면 나 역시 참을 수 없이 흥분할 것 같다고. 이 녀석과 몇 년이고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나는 좋아하는 반찬일수록 아껴먹는 법이니까 참은 기간만큼 나를 만족시켜줘. 

가벼운 벌이 끝나고 서로 화해하라면서 서로 껴안으라고 엄마와 누나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와 누나도 이 녀석이 싫어하는 표정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질색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날 꼭 안아줬고 나는 그때 내 품 안에 들어온 이 녀석에게서 풍기는 섬유 유연제 섞인 가벼운 살냄새가 달아서 좋았다. 나와 똑같은 샴푸를 쓰는데도 머리카락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뭔가 편안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아.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커다란 대공원이었다. 커다란 관람차가 천천히 느리게 돌아가고 주변에는 어린 꼬맹이들, 연인들, 가족들이 정답게 돌아다닌다. 허공에 떠다니다가 덧없이 톡톡 터지는 투명한 비눗방울, 어린애들이 가지고 다니다가 놓쳐버려 저 광대한 하늘에 정처 없이 떠다니는 캐릭터 헬륨 풍선까지. 정겹다면 정겨운 느낌이긴 하지만 왜 인지 감각이 날카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은 들떠 보이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웃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 표정을 굳히는 녀석. 수많은 사람들 인파에 치여 조금은 부모님과 누나와 뒤떨어져 우리 둘이 걷게 되었을 때. 그때도 녀석은 나를 힐긋 쳐다보고는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듯이 사람들 인파 속에서 허겁지겁 그들을 찾는다. 

"저 앞에 있잖아 천천히 가"

불안한 듯한 그 녀석의 뒤에서 팔목을 붙잡고 귀에 속삭였다. 천천히 돌아보는 그 녀석의 눈동자. 나를 한번 보더니 손을 홱 뿌리치고는 이내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와글와글한 사람들 가운데에 얇은 막으로 쌓여진 다른 공간에 우리 둘이 남겨진 기분이어서 묘하다. 사람들에 부딪쳐서 가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풍기는 너의 체취가 좋다. 햇빛을 받아서 레몬빛으로 밝게 빛나는 머릿칼을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희 둘이 아까 싸웠으니까 둘이 저거 타고 와 벌이야"

누나가 조용하게 나란히 걸어오는 우리를 뒤돌아 보면서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말한 것은 커다란 관람차였다. 누나는 질색하는 그 녀석과 나를 양쪽에 두고 팔짱을 끼고 관람차 앞까지 끌고 가서는 1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밀실에 우리를 반 강제로 밀어 넣었다. 잘 타고와! 유리문이 서서히 닫히는 밖에서 누나는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내 앞에 이 녀석은 나를 한번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의자에 앉는다. 지루하다 못해 움직이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움직이는 관람차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살짝 맴돌았고 입을 먼저 연것은 나였다.

"누나는 나와 네가 잘 지내길 바라나봐"

"..."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우리가 같이 있게 되는 날이 얼마나 되겠어?"

"...그래, 근데 나는 이 일 분도 일 초도 너와 마주치는게 싫거든"

녀석은 그냥 그 안에서 고집스럽게 바깥을 쳐다보면서 나른한 톤으로 말했다. 

"왜, 니가 말한대로 그냥 친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 같은 친구 없어"

"하긴, 친구 없게 생겼어 너"

"너도 마찬가지야"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내 눈앞에 이 녀석은 여전히 나를 경멸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이 녀석이 나를 좋아했다거나, 혹은 부모님이나 누나와 비슷하게 천사같이 친절했다면 정말로 끔찍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깨끗해서 불결할 정도의 새하얀 것들 사이에서 아마 숨이 막혀서 죽어버렸을지도 몰라. 너 같은 애가 이 가족이라는 구성원의 일부여서 다행이야.




 
 
 
 
-
"소고, 잠깐 이리 와봐"

아... 요즘 누나가 부르면 무섭다. 약간 머뭇거리다가 무거운 걸음으로 누나에게 가자 누나는 나에게 앞에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의 표정을 약간 살펴보다가 뒷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앉았다. 누나는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그래서 난 누나가 나를 혼낼때가 가장 무섭다. 그 때 집 안에는 나와 누나 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소고, 누나가 처음에 카무이가 왔을 때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니?"

"...네"

"그럼 누나가 왜 불렀는지도 잘 알겠네?"

...그 녀석 이야기구나

"...네"

"카무이는 불쌍한 아이야. 동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만 어쨌든 처지가 딱한 아이잖아 그렇지?"

"..."

"그런 그 아이가 우리에게 노력하는 건 안 보이니?"

"... 보여요"

아니, 누나.. 그건 그 새끼가 해야 할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 새끼는 갑자기 끼어 들어온 이방인인 만큼 우리에게 노력을 해야 하는 존재잖아요.

"서운하니?"

나는 대답 대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누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네 서운해요 하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단호해 보여서 나는 마주친 눈을 피해서 다시 고개를 숙이곤 작게 대답했다.

"..아뇨"

"그래,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줘. 얼마나 힘들겠니? 웃고 있어도 속으론 많이 힘들 거야."

나는 대답 대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밝게 인사하는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씨발. 누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왔니? 하고 그 녀석에게 가서는 친절하게 물었다. 나도 누나의 뒤를 따라 그 녀석에게 다가가서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어서와 하고 작게 말했다. 그러자 그 녀석은 그냥 피식 웃는다. 뭐야 기분 나쁘게.

누나, 저희 반에는 저보다 10살이나 많은 학생이 있어요. 신기하죠? 하고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는 녀석. 남자밖에 없어서 걱정이네, 괴롭히는 아이는 없니? 하고 물으면서 누나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듣기 싫어. 누가 네 녀석 학교 궁금하데?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다가 뭔가 나는 이 둘의 사이에서 고립된 기분이 들어 방으로 들어왔다. 그 녀석이 오고 나서 누나는 나보다도 그 녀석을 먼저 챙긴다. 그 녀석을 이해하는 만큼 나의 심정도 좀 이해해주지 그래요?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감정이 주체되지가 않아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위잉 하고 울린다. 히지카타였다. 

[뭐하냐?]

[그냥 있어]

[내일 검도부 모이는 거 들었어?]

[어]

[이 자식이 자꾸 선생님한테 반말.. 진짜 죽을래?]

[나 기분 안 좋아 할말 끝났으면 그만]

[이 자식 봐라]

[심심해서 연락하고 싶으면 누나랑 해 나한테 문자 하지 말고]

그렇게 보내고 1분 정도가 지나자 바로 전화가 왔다. 그냥 끊어버렸다. 나 기분 안 좋댔잖아 꼰대 새끼야. 아, 그러고 보니 이 새끼한테 맛있는 거나 사달랠까?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저 둘을 보니 이 집에 있기가 너무 역겨워서 히지카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나오라고 했다. 자꾸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그냥 맛있는 거나 사달라고 화를 내면서 불러냈다. 누나한텐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까지. 히지카타는 그냥 별말없이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편하게 막 불러내서 짜증을 낼 수 있는 상대가 이 새끼뿐이라는 것은 조금, 아니 매우 재수 없다. 그래 봤자 누나의 애인이어서 아마 뒤에서 다 이야기하고 있을 것인데... 옷을 대충 입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밖에 있던 그 녀석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말을 걸었다.

"뭐 해?"

"나 약속 있어 나갈 거야"

"친구도 있구나 너?"

이 새끼가 진짜

"너와는 다르다고 했잖아. 너야말로 그 학교에서 실실 웃고 다니다가 처맞고 다니지나 마. 그 학교 평 안 좋기로 유명해서 너 같은 애들은 처맞고 다니기도 쉬워. 말 안 했나? 너 그 실실 쪼개는 낯짝, 존나 만만해 보여"

사실, 진심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싸웠을 때 이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내 주먹을 가볍게 피하는 것도 그렇고, 날 때릴 때의 주먹도 사실 꽤 강해서 싸움 좀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싸움에서는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아,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그래. 잘나신 우리 형님께서 어디 가서 찌질하게 처맞고 다니면 어쩌나 하고 밤새도록 걱정돼서 미치겠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는 그 녀석의 어깨를 확 밀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누나가 소고! 하고 나를 다그치는 듯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서 뛰쳐나갔다. 누나는 내 편이어야 하잖아요. 왜 저 녀석 편에 서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

나를 몰아붙이 듯이 행동하는 엄마도, 누나도 싫어. 
밤의 까만 하늘에 물든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서 잠시 앉아 있으니 히지카타가 왔다. 내 꼴을 보고는 청승맞게 뭐하냐?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선생이란 새끼가 학생앞에서 담배나 피우고 말이야.

"나 맛있는거 사줘."

"그래 가자"

내 차를 타는 듯이 조수석 문을 벌컥 열고는 히지카타의 차에 타서 히지카타에게 제차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면 죽여버리겠다고 수 없이 말했고 히지카타는 절대로 만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하니 누나에게 전화가 3통 와있다. 뭐야, 더 해야지 내가 안 받는데 걱정 안돼요 누나? 하긴, 원래라면 내가 누나의 전화를 피할 이유도 없었겠지. 약간 야속하다는 듯이 핸드폰을 쳐다보는데 마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누군가 해서 약간 망설이다가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어? 내 전화는 받는거야?]

말 뒤에 작게 비웃는 듯한 웃음 소리. 재수없는 그 새끼였다. 

[뭐하는 거야 너. 누나가 너 전화 안받는다고 걱정하셔. 친구랑 있어도 문자 하나 정도는 해주지 그래?]

니가 뭔데 나에게 조언질이야

"내가 알아서해 우리 집에서의 규율은 내가 더 잘알고 있거든. 다시는 내 번호로 전화하지마"

내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자 히지카타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묻는다.

"집에서의 규율?"

"...몰라 운전이나해"

"미츠바에게 들었는데, 새로운 가족있다더니 그 애에게 전화 온거야?"

"...운전이나 해"

입을 쭉 내밀고서 창밖만 쳐다보는 나를 잠시 보던 히지카타는 다시 말했다.

"누나가 너 걱정하더라. 너는 왜 승질이 그 모양이냐? 역시 한쪽이 바르게 자라면 한쪽은..."

"아 좀 닥치고 운전이나 하라고!"

내가 열받아서 소리치자 히지카타는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그런다.

"새삼스럽게 네 누나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너 같은 애를 자기 앞에서는 꼼짝 못하게 만들어? 대단하네"

....이 새끼가 오늘따라 자꾸... 



같이 들어간 곳은 그냥 평범한 햄버거 집이었다. 나는 히지카타 앞에서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 표정으로 음료수 빨대를 쪽쪽 빨고 있고 이 새끼는 나머지 주문을 한 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짐작하건데 누나였다. 통화를 하다가 자꾸 내 눈치를 흘깃흘깃 보는걸 보니 틀림없다. 게다가 누나와 전화를 할때 이 녀석의 표정이나 말투는 굉장히 부드러워져서 옆에서 들으면 가끔은 오그라들어서 죽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누나도 이 녀석이랑 통화를 할 때는 굉장히 기분좋게 이야기 하곤 한다. 싫어.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친구랑 있으니까 못 받나보지뭐, 니가 너무 과잉 반응 하는거야. 들어오면 다시 이야기 잘 해봐."
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확실하네. 누나는 왜 저 새끼한테 전화를 해? 걱정이 되면 나한테 해야지. 

전화를 끊은 후에 히지카타가 나에게 다시 말했다.

"좀 풀렸어? 집에 가면 누나에게 핸드폰 못 봤다고 해."

"..내가 알아서 해"

"하긴, 니 승질에 그런 녀석 한명 들어와서 있으면 열받긴하겠다. 그래도 생각보단 양호한데?"

누나에게 대충이야기를 들었는지 그가 말했다.

"양호하다고?"

"응. 생각보다는. 그래서 네 형은 어떤 녀석이냐?"

"....존나 재수 없는 새끼"

"니가 싫어하는 걸 보니까 조용한 스타일은 아닌가보네"

음.. 뭐라고해야하지 말이 많지도 않은데, 조용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웃고 있다고 만만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하자 히지카타는 그냥 웃으면서 궁금하다고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다면서. 네 녀석이 그 새끼를 봐서 뭐하게? 그리고 너, 본 적 있잖아.

들어가라면서 집 앞까지 태워다 줬는데 나는 그냥 일찍 들어가기가 싫어서 잠시 집 주변을 배회했다. 
생각해보면 나만 돌봐주던 누나는 오래전에 히지카타를 만나면서 히지카타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지금 내가 위치하고 있는 그나마의 내 위치까지 저 새끼가 위협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누나를 빼앗아간 히지카타도 싫다. 물론 지금도 죽도록 밉다. 하지만 그 녀석은 더 싫다. 내 옆에 꼭 붙어서 나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거야.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일 순위였다가 이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곤 했다. 그 쪽이 나를 원한다면 내가 실증을 느껴서 버리는 경우가 대수였고, 그와 비슷하게 내가 원하는 쪽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졌던 것 같다. 

방금 전에 히지카타는 나에게 말했다. 네가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열등감을 느끼는 듯한 행동을 보이는 거야?, 하고. 열등감이라는 단어에 발끈해서 그런게 아니라면서 또 다시 한바탕 지랄을 했지만 나, 정말로 그 녀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무엇 때문에? 하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집에 돌아왔을 때 누나는 그냥 별 말 없이 잘 놀다가 왔냐면서 웃으며 맞아주었다. 내가 조금은 서운하게 느꼈다는 것을 알아서 그랬는지 밥은 먹었는지, 춥진 않았는지 하고 평소에 묻는 것 들을 다름없이 자상하게 물어봐 주었다. 그냥 네,네 하고 대답을 한 후 방으로 들어오자 그 새끼가 침대에 누워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냥 저 새끼한테 위에 쓰라고 할 걸 그랬나. 존나 기분 나쁘네.

"어서와"

슬그머니 올리는 입꼬리. 아 알았다. 나는 이 녀석의 분위기가 싫은 것이었다. 누나도 엄마도 아빠도 다들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이 녀석 특유의 분위기가 싫다. 가둬놓고 관찰하면서 서서히 조여오는 거미같아서 소름끼쳐. 하지만 이것도 그냥 나 혼자의 느낌일 뿐이니.. 
전에 놀이공원을 같이 갔을 때도 그렇다. 관람차 안 이라는 허공에 붕 떠 있는 공간에서 웃으면서 나에게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건넬때도 이 새끼에게는 뭔지 모를 기분 나쁜 느낌.....살기? 그래 살기에 가까운 기운이 항상 동반하고 있다. 옷을 갈아입고서 침대의 사다리를 오를 때에도 그 녀석은 나를 쳐다보면서 나와 눈이 마주쳐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친놈.. 하고 중얼거리고서는 침대에 누웠다. 원래, 시간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평안을 싫어한다고 했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평화의 끝은 상상못할 불행의 전초라고, 나는 내 아랫층에서 아직도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저 미친놈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불이 꺼짐으로 생긴 이 공간의 우주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아니, 그 녀석을 향한 멸시로 인한 허황된 상상을, 아니 이상한 공포를 펼치고 있었다. 누나가 붙여줬던 야광별 중 몇 개는 수명이 다했는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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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무오키] Jacob's ladder 1

2015. 12. 14. 11: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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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집은 재벌 같은 상류층도 아니고 아주 못 사는 하류층도 아닌 중상위권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살고 있는 집 역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 과소비를 하지도 않지만 과하게 아낄 필요도 없는, 모두가 말하는 평범한 집. 우리 가족은 지나치게 화목하다. 적당하게 돈을 잘 버는 아빠, 그리고 예쁜 엄마, 착한 누나..

나는 내 위의 누나를 특히나 잘 따랐다. 누나는 너무나 천사 같아서 가끔 못된 생각을 품은 나를 반성하게끔 만들어준다. 엄마 아빠의 큰 기대에 부흥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어서인지 누나는 공부도 잘하고 취직도 괜찮은 곳에 했다. 가끔 누나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항상 나를 존중해주었다. 누나는 나보다 8살이 많아서 나에게는 엄마가 두 명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의 외동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고, 호칭만 누나라고 부를 뿐이지 거의 엄마였다. 나는 이런 누나를 늘 자랑스러워했고, 누나가 있는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이 예쁘냐고 물어온다면 난 망설임 없이 응. 예뻐 하고 대답한다. 내가 이렇게 대답하면 10명이면 10명 다 놀란다. 지 누나 혹은 여동생이 예쁘다고 하는 새끼는 처음이라며. 아냐 새끼들아, 정말로 예쁘니까 예쁘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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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나다. 나. 나는 공부에도 큰 흥미가 없었고, 애들이랑 가볍게 싸움질이나 하는.. 하지만 큰 문제로 학교에 불려간다거나 하지는 않는 평범한 그런 위치였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가족에게 불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쭈욱 우리는 살아가면 되는데.. 엄마는 그게 아니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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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푸석푸석 떨어지는 건조한 어느 날. 오랜만에 가족끼리 어딘가에 간다기에 함께 길을 나섰다. 엄마가 묘하게 들떠 있는 것이 괜히 신경 쓰였다. 간 곳은 고아원. 봉사를 하러 온 건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알고 보니 입양을 한단다.. 왜? 엄만 누나도 있고 나도 있는데 어째서 입양을? 하고 생각했는데 누나가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듯이 몰래 나에게 와서는 말했다. 내 위로 형이 있었는데 어릴 적에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아직도 가끔 생각하신다고.. 그 어린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하고 아직도 생각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꼭 남자아이 한 명을 더 입양하고 싶다고 지금까지 나 모르게 우겨왔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부족한 거야 엄마는? 하고 내가 까칠한 표정으로 누나에게 묻자, 누나는 내 뺨을 위로하듯이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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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부족해서가 아냐, 말했잖아. 음... 누나가 말을 잘못했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 가족을 다시 찾아오는 거야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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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누나에게 이 상황을 이해해 보여야만 했기에 못 이기는 척 수긍하는 척을 했고, 그럼 형인 거야? 하고 애써 웃으면서 물었다. 누나는 비로소 내 웃음을 보고서야 안심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부모님이 선택해서 데리고 온 아이는 유감스럽게도 나와 동갑이었다. 나와 동갑이라는 점이 걸렸다고는 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눈엔 그가 가장 좋았고, 보자마자 두고 갈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고아원의 수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원래 입양은 내가 어떤 조건의 아이를 입양해야겠다 해서 그 조건에 맞는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와서 보고 절대로 두고 갈 수 없는 느낌이 드는 아이를 데려가게 된다나 뭐라나...

웃는 낯짝에 분홍색을 띈 듯한 주황색 머리카락. 주제에 꽤나 당당하게 행동하는 그의 첫인상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만, 아무래도 내가 받는 관심을 나눠가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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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칙칙한 분위기. 가끔씩 단체로 찾아오는 봉사자들. 뭐 잘났다고 그렇게 선심 쓰듯이 말을 거는 거야? 그래 봤자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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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사실 절대로 입양을 기대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눈치 따가운 고아원에서 조금만 버티다가 어디든지 떠나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다. 혹시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 나이를 먹고 입양을 간 아이들은 말도 못하면서 지내고, 기존의 가족이 있는 경우엔 더더욱 의기소침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서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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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나에게 무언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입양 운은 참 좋았다. 입양하기 최적의 나이가 아닌데도 입양에 몇 번이고 선택되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다른 고아원 아이들과는 약간은 달랐다. 이미 나는 다른 가정에 맡겨졌다가 쫓겨난.. 아니 쫓겨났다고 말하기는 뭐 하지.. 음... 홀로 남아버린 적이 몇 번, 그래서인지 항상 웃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세뇌하면서 웃음 외의 다른 감정은 얼굴에 드러내지도 않았고 나를 입양한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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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인사해.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될 카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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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잠시 있다가 3번째로 입양 가게 된 곳은 어느 가정 집. 돈이 아주 많다거나 여유가 한 것 같진 않았지만 다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집이었다. 분위기가 따스했다고 해야 할까? 레몬 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분위기. 그와 비슷하게 머리칼도 모래 빛의 밝은 색. 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딱 봐도 아, 저 아이는 저기 식구가 아닌가 봐 하고 모두가 알아챌 것이다. 괜찮아. 나는 고아원에서 이미 고아가 받는 시선을 질리도록 받아내고 있었으니까 그쯤이야 뭐.

나는 그 가족에 합류하자마자 붙임성 좋게 엄마, 아빠 하고 불렀다. 그러자 잠깐 놀라 하던 부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기쁜듯 환히 웃었다. 그 집엔 누나 한 명, 그리고 나와 동갑인 남자애가 한 명 있었다. 그 동갑인 녀석은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진 않았지만 그의 누나나, 부모님들은 나를 곧 예뻐해 주었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까칠한 그 녀석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나와 그 녀석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둘 다 욕심이 많았다는 것과, 양보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초반부터 우린 많이 싸웠다. 자상한 그의 누나는 나와 그를 항상 말려주었고, 공평하게 우리 둘 다 혼났다. 아니지, 정확히 말한다면 그 녀석 쪽이 더 혼났다. 아마 나를 배려하는 했던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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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붙여야 한다면서 고민하기에 나는 성은 필요 없고 기존에 불리고 있던 이름인 카무이가 좋다고 했다. 어차피 가족이고 족보에 올리니 뭐니 그런 귀찮은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고 말했다. 성이 몇 번이나 바뀐 것에 신물을 느껴서 그랬는지도? 물론 내 '부모님'들은 그런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고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기뻤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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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누나, 그리고 그 녀석과 나는 서로가 누가 위인지 가족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 생일이 6월 1일, 그리고 그 녀석이 7월 8일이어서 다들 나에게 형이라면서 그 녀석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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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같은 소리. 저 녀석이랑 나 동갑인데 왜 내가 그렇게 불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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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녀석은 정말로 나를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딱히 상관은 없어. 나라도 저 녀석에게 형이라는 소리는 하기 싫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그 녀석이 열받아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종종 나 스스로를 형이라고 자처하면서 놀려댔다. 내가 형이잖아? 하고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는지 노려보는 눈빛이 참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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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을 같이 썼다. 내가 그 녀석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는 당연히 질색하면서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다른 가족들 앞에서는 내색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부모님은 둘이 같이 쓰라면서 이층 침대를 사줬다. 그 녀석이 윗 층, 나는 아랫 층이었다. 그 녀석은 혹시나 침대가 부서져도 나는 너를 짓밟고 살 거야 하고 말하면서 윗 층을 골랐다. 옆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귀찮다고 투덜투덜 거리는 건 덤.

모두가 잠이 든 밤에 나는 똑바로 누우면 천장이 보이지 않고, 그 녀석이 누워 있을 침대의 바닥만 보이지만, 고개를 돌려 옆의 다른 천장을 보면 싸구려 야광 별들이 잔뜩 붙어 있어서 불을 끄면 별이 촌스러운 형광색으로 빛난다. 종류도 다양했다. 손바닥 크기 만 한 왕 별부터 새끼손톱만 한 애기 별까지. 다른 집에 비해서 천장이 약간은 높은 편이어서 더 좋아 보인다. 누나가 해줬겠지? 나와 비슷하게 싸가지없고 귀염성 없는 녀석이 이런 걸 붙일 리는 없을 테니. 그래도 뭐.. 자기 직전에 본 풍경 중 가장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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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 이름을 빨리 가족으로 등록하고 싶은데.. 전에 있었던 곳에서 뭔가 착오가 있어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나봐. 조금만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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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별로 상관없는데요? 하고 말했지만 나보다 부모님과 누나가 더 안 될 일이라며 펄쩍 뛰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왜 나를 데리고 왔는지 의문일 정도로 사이도 좋고 화목한 집이다. 물어보고 싶어. 날 왜 데리고 왔어요? 하지만 우리 같은 고아들에게 이런 질문은 철저하게 금기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질문.

엄마와 누나 사이에서 웃고 있는 그 녀석을 보면 더 그렇다. 저 자식은 내가 얼마나 미울까. 제 자리를 나눠가진 내가 얼마나 싫을까. 하고 쳐다보는데 시선을 느꼈는지 그 녀석이 나를 딱 본다. 몰래 쳐다보던 사람과 시선이 딱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그냥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 녀석이 휙 시선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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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왔던 때가 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학교 입학의 문제를 두고 엄마는 약간 고민했다. 내가 저의 친아들과 같은 학교에 들어가도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 싸가지 없는 녀석은 죽어도 같은 학교엔 다니기 싫다면서 바득바득 우겨댔고, 나는 옆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엄마는 나를 다른 학교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다른 사람하고 통화를 하는 걸 엿들었었는데, 카무이는 소고와는 다른 학교에 가는 게 그 아이가 더 좋지 않을까? 하고 말했었다. 사실 나로써도 그 쪽이 편하다. 그 녀석 입장에서도 없었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해야할 것이고, 혹여 그것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라는 것을 알면 주변에서 정말이야? 전혀 닮지 않았어! 뭐야? 정말 쌍둥이? 닮은 곳이 하나도 없는데? 라던가 하고 물어오는 질문 세례는 피곤하잖아. 

뭐, 나야 상관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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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게 된 학교에서 내가 들어간 반은 전교의 모든 반을 통틀어 가장 문제가 심각한 학급이었다. 분위기마저도 어두컴컴해서 내가 포함된 그 반의 속칭은 일명 '수용소'였다. 교실 안에 가득 있는 거친 느낌의 낙서, 그리고 시커먼 교복과 더불어 삐딱하게 앉아 있는 학생들까지. 아, 정말 수용소가 맞네. 겉보기엔 다들 몸집이 좋아서 험악하게는 생겼지만 내가 보기에 저기 저 놈들 중에 제대로 싸움이나 할 수 있는 애들은 전혀 없는 것 같다.

공부에 큰 관심을 쏟을 생각이 없었던 나는 맨 뒤에 앉아서 엎드려서 자거나 준 책에 끄적끄적 낙서 따윌 하거나 했다. 내 옆자리엔 고등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왠 아저씨가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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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 아부토라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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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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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보다 열 살이나 많은데 초면부터 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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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이면 친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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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그는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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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은 남고여서 그런지 쉬는 시간마다 귀엽게 싸움답지도 않은 싸움을 하면서 보낸다. 지금 저걸 싸움이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자리에 앉아서 구경하는게 일상인데다가, 선생님들도 반쯤 포기했는지 크게 혼내지도 않는다.

 

첫날 점심쯤에 엄마가 학교에 왔다. 혼자 가도 상관없다고 웃으면서 뿌리치고서 혼자 수속을 밟았었는데, 아무래도 첫 날이니 걱정이 된다면서 엄마는 학교에 찾아와서는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말도 없이 찾아온 것이라서 복도에서 엄마를 마주치고는 놀라서 한참을 눈을 깜빡거리면서 쳐다보기만 했고, 엄마는 웃으면서 왜 그리 놀라냐면서 나에게 와서 용돈을 쥐어주면서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라면서 웃었다. 전에 있었던 곳에서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챙겨주는게 부모님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정말로 엄마의 친 아들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괜시리 좋아서 돈을 주머니에 넣고는 조금 있다가 하교길에 오키타 녀석을 만나면 자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슬며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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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형님 첫 등교인데 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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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마음대로 내가 동생이야? 고작 한 달 늦게 태어난 것 뿐인데. 게다가 넌 우리 가족도 아니잖아.

아침 등교 길에 그 녀석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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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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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탁 치우고 나서 나는 앞서서 걸었다. 그 녀석은 다시 내 옆으로 바짝 와서는 나! 엄마가 내가 형이라잖아? 하고는 키득키득 웃는다. 엄마 같은 소리. 그래, 네가 집에서야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좋다 이거야 하지만 이렇게 밖에서도 나대지 말라고 내 앞에서. 무시하고 가는데 나에게 다시 다가와선 집에서 봐! 하고 소리치고는 제 학교 쪽으로 걸어간다. 아직 두 달도 안 된 저 녀석은 무섭게 친화력이 좋지만 정말로 친화력이 좋은 녀석은 아닌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하나.. 느낌으로 원래 사람이 좋아서 넉살좋게 구는 타입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느낌일 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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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교에서 꽤나 조용했다. 원래 내가 소란스러운 스타일은 아니지만 우선 학교에 누나의 남자친구인 히지카타가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연히 우리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면서 누나는 안심이라면서 좋아했지만 내 입장에선 드럽게 찜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같은 학년의 선생님을 담당하는 그 녀석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항상 조용히 찌그러져 있었다. 가끔씩 면담 같은걸 하기도 했는데 까칠하게 구는 나에게 집은 어떠냐, 엄마는 어떠냐 등등을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야, 이 녀석아 너 우리 누나랑 결혼할 생각이야? 꿈도 꾸지마!' 하고 빈번하게 소리를 치는데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왜 웃냐 너. 나 진심인데. 너랑 우리 누나랑 결혼한다고 하면 나 진짜 결혼식장가서 깽판치면서 난리칠거야. 그렇게 말하자 내 성적표를 내 앞에 내 놓으면서 끝나고 남으라고 말한다. 학생과 선생의 사이에선 저가 우위다 이거지. 치사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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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히지카타는 꽤 오래 연애를 했어서 나와도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알고 보니 검도부 담당이어서 전부터 같이 부활동도 같이 했고 끝나면 밥도 사주고 가끔 누나의 부탁으로 조금씩 공부도 알려주고.. 뭐..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이 녀석이 싫다. 같은 반 여자애들은 꺄아아아 히지카타 선생님이셔 하고 자지러지고, 뭐 하나 해주면 꺅꺅대기 바쁜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 생각해보면 제일 이해 안가는 한 명이 내 가족 중에 있네. 빨리 헤어지라고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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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나의 건방진 태도 때문에 학교가 끝나고 히지카타와의 면담이 있어서 찾아가서는 뚱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이 새끼가 무슨 이야길 하나 들어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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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왔네? 안 올줄 알았는데. 나도 이제 갈거야. 같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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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사람을 오라가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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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다 줄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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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핑계대고 누나 만나러 가려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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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들었구나? 오늘은 야근한다고 못 만난다고 들었거든? 짜식아 빨리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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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뭇거리다가 차에 올라탔다.

히지카타의 차에 타니 차 방향제의 냄새가 꽃 향기다. 딱 맡는 순간 알았다. 누나가 사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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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누나가 사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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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힌 것 같아서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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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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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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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리고 얼마 안가니 그...그 녀석이 아직 집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듯이 서 있는 거다. 나도 모르게 응? 하고 반응을 보여버렸다. 히지카타는 무슨 일이냐면서 차를 세웠다. 아니.. 그니까 저.. 저 녀석이 날 기다리고 있어서.. 하고 내가 약간 망설이면서 말하자 창문을 열어줬다. 차에 타고 있는 나를 본 그 녀석은 알아보고서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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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 왜 차를 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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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이 태워다준다고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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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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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가 물었고, 그 녀석은 내 눈치를 한번 살피는 듯이 나를 본다. 나는 잽싸게 으응! 친구!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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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녀석이랑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좀 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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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으면서 뒷 좌석차 문을 열고서 대답을 듣기도 전에 휙 올라탄다.

그 녀석이 타고나서 엄청난 적막이 돌았다.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녀석도 웃는 얼굴을 하고선 창밖만 바라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창밖과 그 녀석의 눈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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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보니 옆 학교인 것 같은데 소고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히지카타가 그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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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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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은 적당히 대충 대답을 하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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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엄마가 학교에 와서 용돈줬어. 오늘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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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아, 그래? 하고 짧은 대답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듣자마자 혈압이 확 상승한다. 엄마는 저 새끼가 혼자 간다고 했으면 그냥 놔두지 쓸데없는 짓을.. 저 새끼 지금 나한테 저거 자랑하려고 나 기다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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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에게도 집 앞까지 태워다주겠다는 히지카타에게는 괜찮다고 같이 놀기로 했다면서 이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해서 같이 내렸다. 내일 보자고 간단한 인사를 하고 히지카타를 보내고 나서 그 녀석을 홱 돌아봤다. 왜? 하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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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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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잖아. 자랑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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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나에게 저가 사주겠다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하는 이 녀석을 보니, 내가 너무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같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고르고 나와서 내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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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고 말한 건, 그냥 설명이 귀찮아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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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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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야 되잖아 귀찮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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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나도 그냥 이게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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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런 웃는 낯짝. 괜히 놀리는 것 같아 보여서 잠시나마 미안했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역시 나는 저 새끼가 싫어. 나는 우리 가족과 17년 째 살고 있어. 저 새끼는 지금 고작해야 두 달이고..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심지어 동갑인 저 새끼를 바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는 당연히 싫은 것이다. 나는 우리 엄마도 이해되지 않고,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게 저 녀석에게 정말 동생처럼 대해주는 누나도 이해되지 않고.. 엄청나게 복잡하다고 지금. 모두가 나만 바라볼 때 나눠 가지는 것이 얼마나 싫은 심정인지 저 새끼는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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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상황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누나는 나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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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해 못하는 것도 알겠지만, 엄마와 내 심정은 그렇지가 않아. 오래 지났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나. 살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면 더 우리 집이 시끌벅적 했을 텐데..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 엄마가 특히나 더 힘드시겠지. 그래도 엄마가 저 아이가 오고 나서는 그래도 밝아지셨어. 그 애도 잘 웃는 애였거든.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저 아이를 통해서 그 애를 보고 있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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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게. 뭐냐고.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다. 나는 모르는 내 친형을 저 새끼를 통해서 보고 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아직도 어릴 때 같이 이야기하면서 놀았던 장면이 생생하다면서 누나는 눈물을 글썽인다. 

아, 누나 울지 말아요. 나 이미 다 이해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하 이해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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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서 빼앗는 입장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저 저...저 웃는 낯짝은 특히나 맘에 안 들어. 내가 있는데.. 뻔히 엄마의 친 자식, 누나의 친 동생인 내가 있는데 꼭 저 새끼가 있어야 해? 불쌍했고, 두고 갈 수 없는 느낌을 받아서 데려왔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꼭 우리가 데려와야 했어? 우리가 왜? 저 새끼 운명이 저런 식으로 생겨먹은 걸 우리가 어쩌라고.

역시 나는 속이 썩어빠진 새끼였다.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좋게 보이지가 않는 걸 어쩌라고. 나는 가끔 답답할 정도로 천사같은 우리 누나와 달라서 그렇게 착하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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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사준 아이스크림은 짜증나게 차갑고 또 너무 달아서 씁쓸하기까지 했다. 윽 씨발 왜 이렇게 달아. 입맛을 쩝쩝 대고 있자 이 녀석이 나에게 와서 그런다. 그렇게 급하게 바로 먹으려고 하니까 그러는 거야. 멍청아.

누구더러 멍청이래. 저 새끼가.














 

>>쇼군암살편 특히 카무오키 전투하는 부분은 무한 반복하는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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