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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감사합니다. 맞아요. 저는 리츠의 형이니까 제가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저도 모르게 자꾸 그런 생각을 해버리나 봐요. 스승님 말대로 제 옆엔 스승님이 꼭 필요한 걸까요? 


저 핸드폰을 샀어요. 제가 사달라고 한 것은 아니구요. 엄마와 아빠가 리츠와는 연락이 되는데 저와는 안되는 것이 답답하다며 무작정 사오셨어요. 정작 연락이 꼭 필요한 사람은 저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스승님의 번호를 아니까 문자를 보낼게요! 혹시나 모르는 번호라고 무시하신다거나, 귀찮다고 무시한다거나 하시면 안 돼요!


얼마 전에는요, 저에게 조금은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그날 쉬는 시간에 저는 수업시간 내내 참아왔던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교실이 시끌시끌했어요. 물론 쉬는 시간은 항상 시끄럽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애 한 명이 저에게 호들갑을 떨면서 저를 깨웠어요. 어이, 모브! 어떤 굉장히 예쁜 아이가 너를 찾아왔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츠보미가 혹시나 저를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급하게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저를 찾아온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두리번 거렸어요. 츠보미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책을 빌려달라는 정도의 가벼운 부탁 때문이었겠지만 아쉽게도 츠보미는 아니었어요, 전에 리츠를 찾아왔던 그 여자아이가 절 찾아온 거였어요. 하지만 다시 봐도 정말 예뻤어요. 밤이 아닌 낮이어서 그런가 더 화사했거든요. 그 여자아이 근처에만 햇빛이 반짝반짝 더 환하게 비추는 느낌이었어요. 


아, 안녕하세요 지난번엔 실례가 많았어요.


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이야기하는데 정말이지 다시 봐도 인형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날 학교까지 따라온 에쿠보는 옆에서 저를 보고는 뭐야, 고백이라도 하려는 거 아니야? 하고 계속 저를 놀렸어요. 리츠를 좋아하는 이 여자애가 저에게 고백을 할리는 없어요. 하지만 여자 앞에 섰다는 이유만으로도.. 안 봐도 알아요. 제 얼굴 엄청나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을 거예요. 


아.. 아니에요. 그.. 그땐 잘 들어가셨죠?

네, 물론이죠!


리츠는 어째서 이런 여자애가 싫은 걸까요? 제가 전에 리츠에게는 이 여자애가 혹시나 그렇게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취해온다거나 한다면 단호하게 말해주겠다고 말해놓고는 막상 제가 이 애 앞에 서니까 입이 얼어붙은 듯이 아무 말도 못했어요. 옆에서 우리 반의 다른 남자애들은 다들 힐끔힐끔 저를 쳐다보고 있었고요. 너무 긴장해서인지 저는 뜬금없는 말을 뱉었어요.


저... 혹시 리츠랑 가... 같은 반인가요?

아뇨, 옆반이에요. 저... 그때의 답례를 하고 싶은데 오늘 같이 주스라도 마시지 않겠어요?


거절해야 한다는 걸 알았는데... 알면서도 저는 거절을 못했어요. 이런 여자아이가 저에게 거절당해서 시무룩해 있는 것은 뭔가 불쌍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전 여전히 츠보미를 좋아하고 있다구요.. 

옆에서 우리 반 애들.. 그니까 사실 말도 한 번도 안 해본 데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들이 다들 저에게 관심을 쏟으면서, 누구야? 진짜 예쁘다, 하고 잔뜩 호들갑을 떨면서 물어봤는데 대답할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 여자애의 이름도 모르는 데다가 저와 관계된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냐, 리츠의 친구야.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다들, 아아 어쩐지~ 하고는 돌아가더라고요. 리츠라면 저 정도 여자애랑 아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한 반응.. 뭐.. 사실 제가 생각해도 그렇긴 해요.


수업이 끝나고 부 활동은 어쩔 수 없이 빠졌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제가 해준 것도 딱히 없는데 답례라는 이름으로 주스를 얻어먹어도 될까요? 저는 그냥 집에 있는 오렌지 주스를 따라서 준 것뿐이고... 게다가 저 일단 남자인데다가 한 학년 높은데요.. 얻어먹기 좀 미안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용돈이 다 떨어지고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리츠를 불러서 빌려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교문 앞에서 만난 리츠에게는 이 여자애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용돈이 떨어져 버렸다며 빌려달라고 했어요. 리츠는 딱히 상관없다는 듯이 알겠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줬고요. 그러면서 친구라도 만나러 가는 거야? 하고 물어봤어요. 음... 친구...는 아니지만 주스를 마시러 가기로 했어. 그러자 자기는 그냥 좀 걷고 싶다면서 절 데려다주겠다는 거예요. 괜찮다고 했지만 되려 리츠가 자신도 괜찮다면서 별소리 없이 저를 따라왔어요. 저는 리츠와 함께 그 장소에 가면서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리츠가 싫어할 텐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리츠는 여기지? 하고 그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리츠의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요. 먼저 와 있던 그 여자아이는 우리를 보고 놀랐듯이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뒤에 찌그러져 있는 저보다 먼저 리츠를 발견해서 그랬던 거겠지요. 리츠는 그 여자를 발견하자마자 잘못왔다는 듯이 나가자고 했고요. 저는 그런 리츠를 붙잡아야 했어요. 말을 더듬으면서 그.. 그니까 잠시만.. 여기에... 하고 말까지 더듬으면서요. 그 여자아이는 리츠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카게야마군, 뭔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내가 볼일이 있는 건 네 쪽이 아니고 네 형이야.


그 말을 듣는데 저는 그 순간 리츠의 표정을 보는 것이 무서웠어요.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리츠는 저에게 자상하잖아요? 화를 내지는 않았어요. 다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저에게 웃으면서,


몰랐네. 먼저 집에 있을게. 천천히 와

아니, 아니 아니.. 가.. 같이... 가자.... 제... 제발


저 진짜 찌질하고 얼간이 같죠.... 저도 알아요..


저는 이 자리에서 엄청나게 예쁜 여자애와 있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조금은 화가 난 듯 보이는 리츠 때문인지 몸을 덜덜 떨고 있었고요. 리츠와 그 여자애는 계산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나랑 형 것은 내가 할 테니까 넌 네가 먹을 것만 계산해

왜? 카게야마군, 전부다 내가 사줄게

너한테 얻어먹기 싫어


그 대화를 듣고 말로만 들었던 리츠의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을 처음 봤어요. 표정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저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요. 평소라면 리츠, 여자애에겐 다정하게 대해야 해! 하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찌그러져서 조용히 있는 것 밖엔 없었어요. 이 여자애는 덜덜 떨며 양쪽 눈치를 보는 저를 보고는 말했어요.


설마 카게야마군과 함께 와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고마워요.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그런데 카게야마군, 오늘은 형의 부탁이라서 같이 와준 거야? 나 참,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마~ 나 정말로 그냥 카게야마군의 형이 너무 자상하게 대해줘서 주스 한잔 사드리고 싶어서 불러낸 것뿐이야. 내가 리츠군을 꼭 데리고 와주세요~ 하는 부탁 같은 거 한적 절대 절대 없어! 지금 우리 약속의 방해자는 너라고?


리츠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자리에 앉아서 좋지 않은 표정으로 사온 주스만 조금씩 마시고 있었고요. 저는 한 모금도 못 먹었어요. 


형, 왜 그래? 별로 맛이 없어?


하지만 역시, 저에게 말을 걸 때의 표정은 달라요.


아.. 아니 맛있어

안색이 안 좋은데 집에 가자.

응?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가자.


나는 얼떨결에 리츠에게 끌려나갔고요. 그 여자애는 나가는 우리를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고 있었어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치를 보면서 잡혀가는 저와 저의 손목을 잡아끌고 가는 리츠를 보면서 저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하지만 이내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는 저를 뒤돌아 봤어요. 미안해 형, 내가 너무 빨랐지? 하고요. 그 웃음을 보면 이내 곧바로 안심이 되는 거예요. 아냐! 난 괜찮아. 그보다.. 혹시 화났어..? 내가 왜? 그럴 리 없잖아. 집에 가서 게임이라도 할까?


리츠는 정말이지 착하고 자상해요.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올려놓은 리츠의 핸드폰은 계속 울리고 있었어요. 리츠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언뜻 보자, 그 여자아이인가 봐요. 문자가 연달아서 왔어요.


[한결같다 너]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이 싫은 건지 궁금해. 하지만 그래봤자 싫은 데에 이유가 어딨어,라고 늘 하던 대답만 하겠지만]

[근데 솔직히 나 예쁘지 않아?]

[다시 봐도 네 형은 너와 정말 다르다. 저렇게 찌질한 형이 있다는 건 봐도 봐도 신기해. 네 형에게 만나자고 한 건 네가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려고 했던 것은 맞아. 결국 물어보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너와 함께 음료수를 마셔서 굉장히 좋았어. 넌 굉장히 싫었던 것 같지만 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는 사람도 많은 그곳에서, 인사도 없이 나 혼자 두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다니 조금은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조금은 그럴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막상 당해보니까 이런 기분, 정말 최악이었어]

[이제 됐어. 너 재미없어. 그만할래. 나의 아름다움을 몰라주는 사람은 질색이야]


아름다움,이라..

이 문자를 보고 문득, 저도 궁금해졌어요. 리츠에게 예쁜 것은 무엇일까 하고요. 예쁜 것을 대표하는 대명사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피어있는 꽃이라던가, 반짝이는 물건이라던가, 뭉게구름 사이로 슬며시 나오는 햇빛이라던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것 말이에요. 리츠의 기준은 저에게는 애매한 것 같아요. 츠보미도, 이 여자애도 보고 예쁘다고 느끼지 않나 봐요. 역시 똑똑한 만큼 자신의 기준도 엄격한 거겠죠? 저처럼 단순하지 않고요.


스승님의 여자친구는 어떤가요? 예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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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저를 놀라게 하는 일은 예상도 하지 못한 시점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무서운 강도처럼 저에게 다가오나 봐요. 


에쿠보의 입을 통해서 들었어요. 에쿠보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시게오, 역시 네 동생이라서 그런가 초능력의 재능은 가지고 있었나 봐. 역시 잠재되어 있었던 거야. 리츠도 .... 하고요. 제가 눈을 크게 뜨고는 리츠가? 리츠가 정말? 하고 되묻자 에쿠보는 입을 다물었어요. 정말 신기하죠? 근데 어째서 저는 몰랐을까요? 하나자와군은 보자마자 알았는데 말이에요.


정말? 와, 정말 놀랐어. 가서 축하해줘야지.

음... 저기... 시게오, 모르는 척해두는 게 어때?

왜? 리츠는 초능력을 엄청 가지고 싶어 했었는데..! 기뻐하고 있지 않아?

흠.. 글쎄.. 여튼 우선은 모르는 척해둬. 리츠도 딱히 너에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아 한 거잖아? 어쨌든 너도 내 입을 통해서 들은 거고.

그러게?.. 리츠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으려나.. 근데 에쿠보는 어떻게 알았어? 어째서 나한테 말한 거야?

음... 실수야. 말 실수. 어쩌다 보니...


실제로 리츠는 그날 이후 조금은 기뻐 보이기도 했고요. 뭔가 평소보다는 더 활력이 있어 보이는 듯도 했어요. 게다가 조금 변했어요.

교문에서 만난 리츠는 얼마 전에 '너 이제 재미없어, 그만할래.' 하고 문자를 했었던 그 인형 같은 여자아이와 함께 있었어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리츠는 저를 못 봤는지 인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한참 쳐다보다가 리츠를 지나쳐갔구요. 그때 그 여자애가 저를 발견하고는, 어? 카게야마군의 찌질한 형이네?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어요. 당황한 저는 희미하게 손을 흔들었지만 리츠는 저를 힐끗 보고서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그때 저를 피하는 듯한 리츠의 행동에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꼈어요. 뭐지? 리츠가 저를 외면한 적은 없었는데. 내가 뭘 잘 못한 걸까? 저는 집에 가면서 하루 종일 생각했어요. 그 여자애와는 얼핏 봤지만 손을 깎지 낀 채로 잡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리츠는 절 못 봤던 거겠죠? 



게다가 리츠는 요즘 조금 늦게 들어와요. 그래서 딱히 대화를 할 일도 별로 없구요. 엄마와 아빠는 늦게 온 리츠에겐 딱히 어째서 늦었는지에 대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요. 리츠라면 분명히 타당한 이유로 늦을 것임을 굳게 믿고 계신 거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엄마는 제가 누워 있을 때 쯔음에 무거운 철문 소음과 함께 들어오는 리츠에게 달려가서, 밥은 먹었니? 시간이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렴~ 하고 엄마의 토닥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리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구요. 요즘 리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뭔가 허전했어요. 형, 하고 부르는 리츠의 목소리는 정말 좋거든요. 저에게만 따뜻한 표정도 정말 좋은데...


하루는 일부러 리츠를 기다렸어요. 엄마에겐 리츠는 내가 기다릴 테니 먼저 주무시라고 했어요. 엄마는 저를 조금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못 미덥지만.. 리츠가 와서 배고프다고 하면 샌드위치라도 주렴. 하고는 식탁 위에 샌드위치를 놔주고는 자러 들어갔어요. 식탁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기다렸는데 리츠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어요. 기다림에 지쳐 졸아버린 제 앞에서 이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저는 졸음을 쫓으려 눈을 비비면서 말했어요.


어!.. 리츠.. 미안 내가 졸아버렸네. 요즘 쭉 만나지도 못했고.. 해서 오늘은 내가 기다리겠다고 했어. 피곤하지? 혹시 배고프면..

왜 기다렸어? 어서 자


조금 쌀쌀맞은 말투였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외로움을 리츠 때문에 느끼게 되었어요.


저.. 리츠! 얼마 전에 교문 앞에서 그 여자애랑 있던데.. 역시 사귀게 된 거야?


하고 물어보니까 리츠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 대고, 저는 잘 자! 하고 외쳤어요. 리츠는 대답이 없었어요.








스승님! 저는 지금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에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창문으로 쏟아지는 가로등의 주황색 빛이 얌전하게 들어오고 있어요.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지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만 들려요.


편지를 쓰다가 있다가 문득 저는, 리츠에게 조금 서운함을 느꼈어요. 제 감정은 항상 한 발짝 늦게 저에게 인식된다니까요.. 리츠가 단순하게 저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일단, 늦게 들어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쌀쌀맞은 것도 조금은 짜증이 치밀었던 것도 조금....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상대는 리츠인걸요? 지금 리츠는 분명 무언가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가진 초능력이라는 것을 간절히 원했고, 갑작스럽게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막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함에 조금 우울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동경이라는 것은 멀리 있을 때야 비로소 동경이잖아요. 그 이면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어두운 면을 조금도 알지 못할 때, 그때가 바로 가장 행복한 상태의 동경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기에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는 그 상태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몰라요. 햇님이 우리를 쭈욱 지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예요.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는 그 엄청난 거리감! 그것을 알기에 아무도 거역하지 못하고 동경만을 품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린 행복한 거예요.


리츠가 초능력에 대한 허무함을 이기고 온다면 저도 리츠와 함께 초능력을 쓸 수 있겠죠? 리츠가 제 방 문을 벌컥 열고서, 형! 사실은 나도 초능력을 쓸 수 있게 됐어! 하고 웃으면서 저에게 털어놔 주길.. 그렇다면 저는 정말 기쁠 것 같아요. 

하지만 리츠가 이제 더 이상 자신보다 특별할게 없는 저를, 저의 힘을 동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전 어쩌죠? 예전의 제가 알던 리츠가 아니게 되어버리면 전 어떻게 하면 좋죠? 괜한 걱정이겠죠? 그렇지 않겠죠.. 저는요, 리츠가 너무 좋아요.. 리츠는 정말로 소중한 제 동생이니까요. 


이제 슬슬 자야겠어요. 저 너무 피곤해요. 스승님도 좋은 밤 되세요. 편지가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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