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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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출장을 다녀왔다.

다녀온 사이에 책상에 놓여있는 몇 통의 모브의 편지를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커다란 짐가방과 함께 돌아온 나를 보고는 수고했다는 짤막한 인사 다음으로 내 등짝을 후려치면서, 이놈 새끼야 너 저 제자라는 저 애기한테 사기라도 친 거야? 그게 아니면 무슨 편지가 저렇게 자주 와? 답장도 안 하는데? 하고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덧붙여서 편지를 뜯어볼까 고민까지도 했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번 등짝을 연속으로 때리셨는데 부정할 틈도, 말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등짝을 맞았다. 그저 이럴 때에는 아아, 아니야 아니야, 하고 말하면서 몇 대 맞아주고서 어머니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엄마, 그런 거 아니고.. 그저 저 녀석이 이 스승님께 상담할게 있다며 잔뜩 보내는 거야. 나 그런 거 절대 아니야! 너 까짓 놈이 상담은 무슨.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차시면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셨다.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내는 어머니에게 어째서 아들을 믿지 못하느냐며 한 소리를 하면서, 출장 다녀온 사람에게 하는 첫 마디가 고작 이거냐며 툴툴대자 그제야, 정말로 그런 거 아니지? 하고는 마지못해 의심의 눈빛을 조금은 거두는듯했다.

그래도 나의 격렬한 부정에 조금은 안심을 하셨는지 어머니는 저녁을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서는 어서 먹으라며 자상하게 말했다. 아까는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우리 아들 수고 많았어. 많이 먹어. 하고 등을 다독거리면서 반찬을 손수 올려주신다. 어머니도 이제 확실히 나이가 드셨는지 조금은 감정적으로 변하신 듯하다.


저녁 식사 후에 과일을 먹으면서 출장 때 있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다가 늦게서야 침대에 누워서는 날짜를 확인해 가면서 모브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었다. 잠들기 전에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편지를 뜯은 것인데,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 녀석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온 편지까지 다 읽고 나서 내 머리를 후려치듯이 떠오른 단어는 '근친'이라는 단어.

별다른 생각 없이 멍해졌다. 그리고서 머릿속에 한편의 영화처럼 영등등사무실을 운영할 때 알고 있는 모브와 모브의 동생 녀석의 이미지가 자꾸만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에이.. 설마, 하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편지를 그대로 덮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덥석 집어서는 반복해서 천천히 읽었다. 조금 애매하게 쓴 부분도 많았지만 이건 틀림없는...

 

모브는 동생의 말이라면 순진하게 그래, 그래, 하고 따라주는 녀석이었다. 동생이 모두가 말하는 악행, 예를 들자면 폭력이라던가 도둑질이라던가 하는 악행이 아닌 이상 그의 행동이 모두 옳다고 믿고 있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입 버릇처럼 리츠는 정말 굉장해! 나는 리츠가 정말 부러워! 하고 말했고, 나에게 전에 보내왔었던 편지에도 그 동생의 이야기에 대해서라면 존경과 동경에 가까운.. 아니 조금 더 이상할 정도의 모호한 감정들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이 눈에 보이는 나쁜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형, 내가 한 짓이 아니야 믿어줘, 하고 말한다면 모브는 곧바로 그래! 리츠가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지! 하고 웃으면서 믿어버릴 정도로 동생에 대한 애정이 큰 녀석이었다.

모브는 그런 가족 간의 행위가 옳은지 어떤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똑똑한 그 동생이 그런 행위가 어떤지 모를 리가 없다. 모브는 지금 헷갈리고 있고, 그 동생이란 녀석의 호기심 섞인 장난에 반강제적으로 받아주다가 정말로 그 동생을 그런 감정으로 착각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다시 생각했다. 모브가 사실을 적어서 보냈을 리가 없다고 나는 믿기로 했다.






[모브 미안해. 긴 출장이 있어서 집에 이제야 왔다. 그래서 편지들도 이제야 봤어. 어머니가 네가 이렇게 편지를 자주 보내니까 수상하게 생각하시더라. 덕분에 또 엄청나게 잔소리 들었지 뭐냐. 하하..

근데 모브, 궁금한 게 있는데 이 편지 무슨 상황이니? 모브의 상상... 이니? 상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상상은 조금 이상한데 말이야.. 게다가 너 츠보미를 좋아하고 있지 않았니? 여전히 좋아하고 있는 거지?

네가 동생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네 동생 역시 너를 잘 따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음... 뭐랄까... 뛰어난 네 동생이라도 전부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넌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밖엔... 이 편지에 쓴 거, 사실이 아니지? 그렇지? 꿈이라도 꿨니?

모브. 너는 네 주관이 조금 더 필요해. 무조건 동생이 하는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고는 생각해선 안돼. 설마 혹시나, 아니겠지만 혹시나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라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네가 있는 곳까지 가서 네 동생 녀석을 붙잡고 어떻게 된 거냐며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봐야 될 것 같다.

너는 때로는 너무 물들기 쉬운 타입이라는 게 걱정되는 부분이야. 우선, 가족끼리는 그런... 짓은.. 상상으로도 하는 게 아니야. 만약 사실이라면.. 부모님이 알게 되신다면 아마 엄청난 충격을 받으실 거야... 남자끼리의 그런... 그래 그건 취향 문제라고 치고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가족끼리의 그런 행위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문제란다. 그런 건...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되는.... 더러운 거야. 사실이 아닐 거라고 믿기 때문에 더 강한 표현을 쓰는 것을 이해해줘. 하지만 그만큼 잘못된 행위라는 것을 인색해두길 바라는 마음이야.
오랜만에 답장하는 건데 좋지 않은 소리만 하게 되네. 미안해. 하지만 이런 내용이 편지로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

뭐.. 이런 이야기는 이쯤하고.. 요즘 츠보미와는 어떻니? 츠보미는 잘 지내고 있니? 츠보미와의 일에 대해선 언급이 없네? 츠보미 일에 대해서 상담한다면 이 스승님이 더 자세히 상담해 줄 수도 있는 데 말야.]


내용이 내용인 만큼 모브의 반응이 불안해서 그랬는지 나 답지 않게 일부러 편지지도 여자친구에게 쓰려고 샀었던 상큼한 분홍색에다가 썼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모브의 편지를 다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분명히 모브는 스승님! 무슨 소리예요! 하고 그런 게 아니라~ 하고 해명해 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믿고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올지, 괜한 걱정에 가득 찬 나의 오지랖이라는 것을 스스로 계속 되뇌이면서.
 



다음의 편지는 보자마자 답장을 써서 보냈는지 곧바로 답장이 왔다. 유난히 빨리 왔다는 것이 조금 수상하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내용도 내용인 만큼 모브 본인도 분명 나에게 해명하는 것이 급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봉투를 뜯어서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편지를 떨어트렸다.

[당신, 리츠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렇게 잘난 척 이야기하는 거야? 우리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


....

모브답지 않게 거칠고 커다란 글씨로 스여 있는 저 짧은 문장을 보고서 지나치게 놀랐던 것은 사실이다. 톱 스타들이 스토커에게 편지를 받으면 이런 심정인 것일까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릴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 떨어트린 그 편지를 얼른 주워다가 접어서 방 한쪽 구석에다가 숨겼다. 왜 인지는 모른다. 그냥 뭔가 저주가 섞인 말 같기도 한 것이 이유를 모르게 섬뜩했다. 내일은 찢어서 불태워버려야지.


모브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초조하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한참 생각했다.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날 전화를 걸어보았다. 일부러 수업시간을 피해서 전화를 걸어도 좀처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안 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초조함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지만 조금 웃긴점은 모브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면서도 나는 모브가 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고민이 있다는 것을 느낀 여자친구는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제자와의 작...지만 조금 심각한 일이 생겼다고 말하자 또다시 상담을 해준다며 털어놓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털어놓을 일이 따로 있지, 내 제자가 친동생과의 진지하고 심각한 사랑 때문에 고민이 많나봐 라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저 작은 문제니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손을 저었다.

그렇게 1주하고도 몇일이 지났을 때에 전화도 받지 않던 이 이상한 녀석에게 또다시 편지가 왔다.

이제 나는 녀석의 편지가 무서웠다. 그래서 한참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는 생각하다가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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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어쩌죠? 스승님의 편지를 리츠가 봐버렸어요.. 스승님의 편지를 읽고 나서 제가 엄청나게 화가 났던 건 사실이에요. 지금도 화가 나있고요. 그래서 그 편지를 버리려고 잔뜩 구겨서 책상 위에 던져놓았는데.. 제가 부 활동이 끝나고 왔을 때에 리츠가 그 편지를 읽고 있었어요. 리츠는 제 책상 앞에 서서 들어온 저를 보고는 덤덤하게 구겨진 편지를 내려놓으면서, 레이겐씨에게 우리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던 거야? 하고 침착하게 물어봤어요. 저는 들고 있는 가방을 그대로 떨어트리고는 부들부들 떨었어요. 정말 너무 놀라서 현기증이 일 정도로 놀랐어요. 리츠는 덜덜 떨면서 대답을 못하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예쁜 편지지인데 이렇게 구겨져 있길래 형이 또 러브레터를 가장한 협박편지라도 받은 건가 해서 봤는데.. 레이겐씨의 편지였네? 생각도 못했어.

아.. 아니 그.. 그니까...

근데 이걸 보니까.... 형, 레이겐씨 말대로 우리 좀 이상해. 역시 그만하자.


리츠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저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런 리츠의 말과 생각보다 덤덤한 리츠의 말투와 행동에 제가 정말로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리츠의 차가움은 이런 면이었던 것 같아요.


어째서 그런 내용을 편지로 써서 보낸 거예요? 정말로 우리가 더러워요? 정말로? 제가 모든 이야기를 스승님께 털어놓았던 것은 스승님이라면 저를 모두 이해해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어요. 다른 모두가 손가락질을 해도 스승님이라면, 모브 요즘 고민이 많구나? 너무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아라, 하고 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에 저에게 좀 더 감정을 표현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셨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아서.... 그래서 에쿠보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런 이야기를 스승님께는 털어놓았던 거였구요.

전에 말했던 적도 있지만 저는 스승님의 이야기가 100퍼센트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맞는 이야기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저에게 스승님의 말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관심 없어요. 리츠가 저에게 그만두자는 통보를 입 밖으로 내뱉은 이상, 리츠가 어떤 것을 느꼈기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느냐에 대한 것이 저에게 가장 큰 고통이고, 풀어야 할 문제거든요.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리츠에게 들어야 하죠? 저희는 달콤한 이야기만 나누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어째서 스승님의 그런 말 때문에 리츠에게 그런 통보를 들어야 하며, 이렇게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해야 하냔 말이에요.

저는 리츠에게 그런 건 말도 안 된다면서 싫다고 했어요. 제가 거의 처음으로 리츠에게 강하게 감정을 어필한 것 같아요. 스승님과는 더 이상 연락도 하지 않겠다고, 이 이상으로 더 이상 우리에 대해서 알리지 않겠다고, 내가 리츠와의 일을 스승님께 털어놓은 것은 정말로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쁜 의도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라면서 다가가서 설득했어요. 덧붙여서 스승님의 말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전에 심하게 다투었던 적도 있었고.. 내가 스승님의 이 편지에 답장으로는 우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한마디를 적어서 보냈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자 리츠는 딱히 다른 말은 없이 저를 한참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리츠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이 있었어요. 그리고는 저녁 즈음에 약속이 있다면서 나갔어요.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는 계속 기다렸어요. 엄마와 아빠는 리츠는 알아서 들어올 거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연락을 했다면서 저에게 이만 자라고 했지만.. 저에게 연락을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그것 자체가 저에게는 기다리라는 무언의 신호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기다렸어요. 하지만 작은 시곗바늘이 몇 번이나 다른 숫자로 옮겨가도 리츠는 오지 않았어요. 결국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버렸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리츠의 방에 가보아도 리츠는 없었어요. 엄마의 말로는 일찍 학교에 갔데요. 조금 실망한 채로 식탁에 앉았어요. 왜 이렇게 불안한지는 몰라도 저는 지금 당장, 빨리 리츠를 다시 만나고 싶었거든요.

입맛이 없었던 저는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깨작거리면서 뒤적였어요. 엄마는 또 시게! 맛있게 먹어야지 그게 뭐니? 오늘 리츠는 서둘러서 나가서 밥도 못 먹고 나갔는데 괜찮으려나.. 하고 중얼거렸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떠올랐는지 저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 리츠의 친구가 집에 온 것은 정말 처음이었어.
리츠의 친구요? 혹시 금발머리의 여자아이예요?
응? 아니, 남자애였어. 내가 얼마 전 집에 잠깐 들려서 뭐 가져갈게 있어서 들렸었는데 왔더구나. 리츠가 그런 친구와 어울릴 줄은 몰랐어. 조금은 의외였다고 해야 하나..

엄마가 이렇게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학교의 평범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껄렁껄렁해 보이는 친구던데? 하지만 인사하는 걸 보면 꽤나 싹싹한 구석도 있는 것 같고 말투에 자신감이 잔뜩 묻어있는 아이더라. 그래서 친구가 된 걸까?
저희 학교 학생인가요?
리츠에게 너희 학교는~ 하고 이야기하는 걸 보니 아닌 것 같았어. 게다가 사복 차림이었고.. 꽤 친해 보이던데? 시게는 들어본 적 없니?
.... 나에게는 그런 친구 이야기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하하, 안 할 수도 있지 뭐. 시게의 친구를 리츠가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엄마의 말에 저는 입을 다물었어요. 그러고 보니 제 주위의 뇌감전파부나 스승님, 육체개조부, 에쿠보, 등등 모두 리츠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리츠의 주변인이라고는 저희 학교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카무로 회장과 도쿠가와 부회장 외엔 아는 게 없어요.. 엄마에게 혹시나 그 친구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분명 들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제가 리츠를 드디어 마주치게 된 날은 리츠에게 우리의 사이를 계속 이어가자면서 설득을 한 날 이후 5일이 지나고 나서였어요. 5일 동안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이나 되세요?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리츠를 만날 수 없었거든요. 어느 때는 늦게 와서 일찍 나갔다고 했고, 어느 때는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다며 엄마가 전해줬었거든요. 게다가 전화를 걸어도 리츠의 핸드폰은 항상 꺼져 있었어요.

리츠는 저를 보자마자 움찔하고 눈에 보이게 놀라 했어요. 왜 이렇게 놀라? 하고 제가 묻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고 했어요.

핸드폰은?
..고장 나버렸어.
요즘 바빠?
조금.. 하.. 학생회 일이...
그렇구나. 무슨 일이 얼마나 바쁜지는 모르겠지만 리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저.. 리츠, 궁금한 게 있어.
응?
집에 데려왔다는 친구가 누구야? 우리 학교의 학생도 아니었다고 한거 같던데
...누구?
엄마가 이야기해줬어. 집에 네 친구가 온 적은 처음이라면서. 조금은 껄렁껄렁해 보이는..
모.. 모르겠는데? 기억이 안 나.
그래?
형. 나 지금 바빠서.. 가봐야겠어... 다음에 이야기하자.

리츠는 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달려나갔어요. 정말로 바쁜가 봐요.

이상하게 저는 그 친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기억을 할 정도의 친구를 리츠가 기억을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지금 리츠는 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겠죠. 어째서 저에게 그 친구의 존재를 감추려 할까요? 이상해요.

하지만 어쨌든 리츠의 주변 인물이라면 저와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강한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굣길의 교문 앞에서 하나자와군 정도? 아니, 그 이상의 강력한 초능력자를 마주쳤어요. 어두운 주황빛의 머리카락에 청록색 눈동자가 신비한 느낌을 주는 그런 아이였어요. 조금 까칠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그쪽도 저를 알아봤는지 저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저에게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어요. 초능력자? 하고요. 저의 소심한 성격과는 완전하게 다른 외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조금 살펴보더니 다시 물었어요.

혹시, 카게야마 리츠를 알아? 이 녀석이 연락한다더니 연락이 없네.

그 말에 저는 곧바로 알았어요. 우리 집에 찾아온 적이 있는, 리츠가 숨기고자 하는 그 친구가 이 녀석이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저는 이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꽤나 강력한 초능력의 힘에서 왜인지 모를 패배감과 질투를 느꼈어요. 리츠가 초능력에 대해서 동경심을 품던 마음은 나에게만 국한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다른 초능력자에게도 동일하게 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리츠는 내 동생이야.

하고 제가 말하자 저를 다시 보더니,

정말? 리츠의 형이었구나. 잘 됐네. 리츠의 친구인 스즈키 쇼우야 잘 부탁해.

하고는 멋대로 제 손을 덥석 잡고는 악수를 했어요.

저.. 리츠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음.. 어쩌다가? 잘 기억이 안 나네. 리츠가 형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카게야마.. 시게오? 맞지?
...아.. 응..
흠.. 뭐,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다. 혹시 리츠를 만난다면 나에게 연락 좀 달라고 전해줘.

그는 저에게 조금은 굳은 얼굴로 조금은 경계심을 보이며 말하고는 홱 뒤돌아서서 갔어요.

스즈키 쇼우, 저는 그 이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했습니다.


그날도 리츠는 엄마에게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했데요. 엄마는 그저 별 관심 없이, 친구와 요즘 친한가 봐 하고는 별 관심 없어했고요. 저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손톱을 물어뜯었어요. 지금 제 손끝에서는 맑은 핏물이 맺혀 있어요. 피비린내를 조금씩 맛보면서 저는 한참 리츠와의 입맞춤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리츠의 손가락 끝의 감촉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만나면 이렇게 핥아줘야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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