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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모브는 나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이 지겨워서라도 전화를 받을 법도 한데 정말로 나의 연락에는 답하지 않기로 했나 보다. 동생에게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 어떤 것도 털어놓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까지 편지에 써서 보내는 건 도대체.... 뭐,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게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중에 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마땅히 없고, 습관적으로 내가 자신의 고민을 반드시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아직 믿고 있는 듯했다.

끊임없이 전화를 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모브. 왜 전화 안 받니? 편지는 보냈던데.. 우선 전화 좀 받아볼래? 그래야 나랑 무슨 이야기라도 하지 않겠니?]

[내가 편지에 그런 내용을 써서 보냈다고 화가 난 거잖아? 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냐? 엉? 다 좋으니까 우선 나랑 이야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달래는 듯한 말투로 문자를 해도 모브는 답장이 없었다.
분명히 나는 틀린 말을 한 적이 없고, 내 표현이 격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모브에게 틀림없는 현재 사회의 시선과 도덕적 기준을 일러준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상으로 모브에게 연락을 한다거나 편지를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옆에 있지 않은 대상에게 끈질기게 연락을 해대면서 조언을 할 정도로 나는 훌륭한 스승도 아니며, 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동생 녀석이 내가 쓴 편지를 읽고서 그만하자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그래도 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거니까.. 괜찮겠지. 뭐 하면 옆에 에쿠보도 있는데 알아서 잘 해결해줄 거고... 뭐.. 그놈도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여자친구는 오늘도 A반의 어떤 학생이 고민이 있고, D반의 어떤 학생은 집안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고, 봉사활동에서 만난 어떤 어린 애기는 곧 입양을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학생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나도 그 말에 추임새적으로 그렇구나~ 잘 됐네~ 그래~ 이 정도의 기계적인 반응을 보였다. 듣기 싫은 것은 아니다. 분명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가지각색이고 재미있었다. 자주 이야기하는 학생은 이름도 에피소드도 많이 들어서 가끔은 나도 그 학생은 잘 있어? 하고 물어볼 때도 있을 정도였다. 오늘은 간만에 라멘을 먹고 싶다기에 근처의 작은 라멘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한 후에 시답잖은 회사 이야기, 여자친구의 이어지는 학생 이야기를 나눌 때에 우리의 틈을 비집으며 핸드폰이 울렸다. 그 방해자는 모브였다. 울리는 핸드폰에 모브라고 뜬 이름을 보고 나는 액정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렇게 연락을 하자고 난리를 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화를 한 것이다.. 건방진 자식. 전화를 받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지금 중학생 녀석과 무슨 기싸움이냐 싶어서 조금 뜸을 들인 후에 전화를 받았다.

어, 모브 웬일이냐
[스승님]

모브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는 왜 그래?
[저.. 저 지금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무슨 일이야?
[그.. 그러니까요... 그.. 그게.. 그니까요.. 그.... 그... 게]
진정해,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볼래?
....

바짝 얼었는지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모브! 혹시 끊은 건 아니지? 너 왜 그래?

모브에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심하게 불안정적인 녀석의 상태를 보자 왜인지 나에게도 불안함이 덮쳐와서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브에게 말했다.

모브, 우선 진정하고 머리를 좀 식혀.. 말을 못하겠니? 지금 어디야? 내가 한번 찾아갈까? 내가 사정상 당장은 안되고... 다음 주나.. 다다음주... 정도.... 아 아니 이번 달에는 조금 힘들지도..... 음 어쨌든 나 시간 될 때 한 번 갈까? 만날래?
[.... 아뇨, 오지 마세요]
이런 말엔 대답하는 걸 보니 조금은 진정했구나?
[....]
말로 하기 힘들면 편지로 하렴. 너무 급해서 나에게 전화한 거잖아? 그렇지? 에쿠보는 옆에 있니?

내가 말하자 한참 동안 모브는 말이 없다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신을 진정시켜줄 목소리를 찾아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원래 먼저 전화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거나 하는 깡은 없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나에게 화가 난 상태라고는 해도 변하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끊겨버린 전화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여자친구는 옆에서 나에게, 당신 그 제자 만나러 갈 생각 같은 거 없지? 하고 물었다. 아, 아냐! 있어! 요즘 내가 진짜 바쁘다니까?! 하고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지만 사실 나는 조금 귀찮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굳이 내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고... 아니, 저렇게 상태가 불안정해 보이는데 에쿠보는 옆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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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얼마 전에 전화를 말도 없이 끊어버린 것은 죄송해요.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끊어버렸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저 조금 건방졌던 것 같네요. 죄송해요.

스승님 전 요즘에 그저 너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아마 스승님이 옆에 계셨다면.. 조금은 제가 나아졌을까요..? 저 어떻게 하면 좋죠? 이번은 제 감이 정말로 좋지 않아요. 이번은 조금.. 다른 때와도 조금 다르구요.. 저는 리츠와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날 이후로 리츠를 한 번도 볼 수가 없었어요. 정말이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바람처럼 제 앞에서 자취를 감춘 거예요. 엄마는 자꾸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만났어~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하는 무신경한 말만 반복하고요.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너무 이상해서 저는 학생회에 찾아가기로 했어요.

돌아오는 수요일 아침에 등교를 1시간 반이나 일찍 했어요. 수요일 아침은 분명히 학생회의 모임이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날이기 때문에 학생회실에 가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그전에도 갔었지만 이미 모임이 끝난 후라서 번번이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학생회실 앞에서 끝나길 기다리기까지 했어요. 한참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문을 열고 나온 도쿠가와 부회장에게 리츠를 만나러 왔어요! 하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작게 말했어요. 제 말에 도쿠가와 부회장은 완전하게 어이없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학 갔잖아? 장난하는 거야? 하고 말했어요. 전학이라니. 저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엔 부회장이 장난을 치는 건가 했는데, 저와 도쿠가와 부회장의 대화를 듣고 다른 학생회들도 리츠? 아 그러고 보니 리츠는 잘 지내나? 하고는 웃으면서 저에게 안부를 묻는 거예요. 아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제가 지금 알았다는 게 정말 우습지 않아요?


저는 그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멍하니 있었어요. 체육시간에는 아프다고 말하고는 양호실에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괜찮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괜찮지 않다고 했어요. 실제로 저는 갑자기 온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리츠와 이곳에 왔을 때의 학교는 참 조용했는데.. 오늘은 무척이나 시끄러워요. 제가 전에 항상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요. 리츠와 함께 있었던 그 침대에 다시 몸을 눕히자 그 온기가 다시금 저를 감싸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어요. 그저 오늘 아침에 들은 이 황당한 말들이 모두의 거짓말이기를 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구요. 하지만 그렇게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슬프게도 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물어봤어요. 엄마는 저의 말에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아.. 리츠가 말 안 했니? 자신이 말하겠다고 나에게도 시게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하고는 의아해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어서 말했어요.

리츠가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확실히 지금 다니는 중학교는 물론 좋은 학교지만 리츠의 수준에는 조금 맞질 않나 봐.
...네?
시게, 미리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도 리츠도 시게가 알면 조금 상처받지 않을까 해서 말 못했어. 리츠도 그래서 본인이 너에게 좋게 잘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적응하느라 바쁜 걸까? 음.. 그니까 그 학교는 ...

하고 말 끝을 얼버무리기에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았어요. 분명 그 학교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이 갈 수 있어서 저는 갈 수가 없는 학교였겠죠.

그날 저녁, 저 빼고 모두가 잠들어서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3시 23분. 저는 리츠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봤어요. 아직도 그 안에는 제가 좋아하는 리츠의 냄새가 잔뜩 있어요. 저는 리츠의 침대의 시트를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그대로 쓰러져서 울었어요. 계속, 계속 울었어요. 저는 모르겠어요. 리츠가 저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누구 한 명이 우리의 관계를 명확하게 단정 지은 적은 없지만, 저희 둘의 마음을 서로가 어렴풋하게 깨달은 그 시점부터 저희는 이미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자 연인이 된 거 아닌가요? 스승님이 보낸 그 편지의 내용이 옳은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설령 정말로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렇게 가차 없이 저와의 관계를 끊어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리츠에게 우리의 관계는 가벼웠던 것일까요? 아니겠죠.. 분명 다른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뺨에 뜨거운 눈물을 잔뜩 쏟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리츠의 방의 물건들이 전부다 쏟아져서 엉망이 되어 있었어요. 활짝 열려버린 창문, 나부끼는 커튼, 바닥을 뒹구는 연필, 볼펜, 왜 있는지 모르는 여러 개의 숟가락들, 쓰러져 버린 의자, 엄마가 어릴 때 사줬던 봉재 인형, 때가 지나서 걸어두었던 옷, 항상 같이 가지고 놀던 게임기, 활짝 펼쳐져 나뒹구는 책들, 넓게 펼쳐져 바닥에 널브러진 이불, 베게.....

조금 소리가 컸는지 엄마가 자다가 깨버렸나 봐요. 닫고 있는 리츠의 방문 앞에서 시게니? 리츠의 방에서 뭐 하는 거야? 안 자는 거니? 하고 졸음이 묻은 목소리로 물었어요. 저는 조그맣게 찾는 물건이 좀 있어서요 곧잘게요. 하고 대답했어요. 평소라면 더 잔소리를 했을 법도 한데 엄마는 피곤했는지, 아니면 낮의 리츠의 소식을 듣고 충격받았을 저를 조금은 배려해주는 것인지 별말 없이 어서 자라는 말만 하고 들어가셨어요.

엉망이 된 그곳은 마치 쓰레기장 같았어요. 항상 깔끔한 리츠의 공간이었는데 말이에요.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어요. 그리고 저는 엉망이 된 이곳을 청소하려고 하나씩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들었어요. 그리고 펼쳐진 책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리츠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저는요... 음..





저는 엄마에게 물어서 리츠가 전학을 갔다는 학교를 물어봤어요. 그 학교는 저희 집과는 거리가 꽤나 있는 곳으로 학교가 기숙사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어요. 육체개조부와 뇌감전파부에 물어보니까 다들 그 학교에 대해서 엄청난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감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갈 생각도 못하는 곳이지 뭐.. 하고 이야기하면서 동생이 전학 갔다던데 그쪽으로 간 거야? 하고 물어봤어요. 그러면서 역시 급이 다르네~ 하고는 웃더라고요. 자랑스러운 동생이야 카게야마! 하고 제 어깨를 두드려줬어요. 물론! 대단하고 자랑스럽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죠. 내 동생.. 리츠.

리츠와 통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리츠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직접 전화를 해봤어요. 이상하게 전화를 여러 번 해도 거의 통화 중이고, 연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이런 학교는 연락조차도 힘든가 봐요. 결국 전화를 받아든 어떤 여자는 굉장히 까칠한 말투로 네 전화받았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카게야마 시..시게오 라고 합니다. 저...
학생? 무슨 일이지? 우리 학교 학생이니?
아.. 아뇨.. 저.. 동생을... 동생을 찾고 있는데요..
동생?
네, 카게야마 리츠라고 얼마 전에 그 학교에 전학을 갔는데요...
...이상하네? 무슨 일이니? 찾는다니?
저.. 통 연락이 되질 않아서 그러는데... 혹시 연락을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직접적인 연결은 금지되어 있어. 카게야마 리츠의 형이라고 했지? 연락 왔다고 전해줄게. 됐니?
음... 아... 네.. 꼬... 꼭 좀 연락 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저.. 시오중의 카게야마 시게오.. 그러니까 형이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저기! 저, 제..제가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알았으니까...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으니 제발 연락 좀.. 연락 좀 달라고 꼭... 꼭 좀 전해주세요!
그.. 그래.. 알았으니..
스.. 스즈키라는 친구도 만났다고도 전해주세요! 묻고 싶은 게 있으니 꼬... 꼭 연락 달라고 전해주세요!

그 여자는 갑자기 어이없다는 듯이 헛 웃음을 짓더니 작게 옆의 동료에게 '뭐야, 이상한 사람이 전화를 했어' 하고 말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물론 리츠는 지금까지 연락이 없어요. 아마 전화를 받은 이 까칠한 여자분께서 제 말을 전해주지 않았나 봐요. 어째서 제가 그렇게 간절히 부탁을 했는데도 한마디도 전해주지 않았을까요? 리츠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조금이라도 말했다면 리츠는 연락을 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디지 못 했을 텐데 말이에요.










모브의 편지와 함께 이번에는 제 동생의 일기장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그 앞에 작은 쪽지로 [스승님, 저 이거.. 한번 봐주시겠어요? 저.. 이거 조금... 어렵기도 하고...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한번 봐주세요. 대신 더럽혀서도 안되고, 구겨서도 안돼요 얌전히 보시고 저에게 깨끗한 상태로 다시 돌려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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