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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게는 그만하자고 통보를 했다. 조금은 일방적일 수도 있으나 에쿠보의 억지스러운 행동과 나에게 속삭이는 말들 모두가 A에게는 정말로 소름 끼치는 일이 될 것이기에 나는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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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비를 많이 맞아서인지 감기에 걸렸다. 형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의 형의 반응을 보면 역시나 형은 나에게 조금의 의심도 하지 못한 채 나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며 조금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지만 에쿠보의 이름을 한번 언급한 걸 보면 에쿠보가 조금은 언지를 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서 형에게 털어놓은 것으로 나는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안했다. 조금 신경 쓰이는 형의 이상한 행동을 빼고는.


집착에 가까운 형의 행동은 정말로 이상하다. 감기에 걸린 내가 걱정된다며 갑자기 학교에서 조퇴까지 하고는 뜬금없이 나에게 달려온다거나, 자고 있는 나의 침대 옆에 바짝 붙어 멍하니 앉아 있다거나 .... 일어난 나와의 대화 이후에 갑작스럽게 입을 맞춰온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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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A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별다른 관심은 없었지만 핸드폰에 형이 A와 문자를 나눈 것을 한참 후에 발견하고서야 A가 어쩐지 학교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큰 관심을 둘 이유가 없는 나는 귀찮은 일 하나를 덜어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며 하교를 할 때에 사복 차림의 수상한 한 명의 남자가 교문 앞을 서성이더니, 하교하는 내 앞에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안녕? 카게야마 리츠가 맞니? 경찰이란다. 뭐..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고.. 간단히 조사를 할 것이 있는데 잠깐 함께 가줄 수 있겠니?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기에 따라간 경찰서에는 분주한 다른 사람들과 고개를 푹 숙인 범죄자들, 그리고 대낮인데도 술에 잔뜩 취해서 뻗어있는 노숙자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어째서 경찰들이 나를 불렀는지에 대해서 조금도 감이 잡히는 것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 경찰이 부드럽게 나에게 A의 이야기를 꺼내며 A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다시 물었다. 


A가 며칠째 행방불명이란다. 알고 있었니?

...행방.. 불명이요..?

음.. 아직 몰랐구나? 마지막 연락을 한 사람이 너였어. 그래서 혹시나 뭐 아는 게 있나 해서..

제가.... 아는 거... 라면...

조사 때문에 그러는데 혹시 문자 좀 보여줄 수 있니?


경찰은 내 핸드폰에 A와 나눈 문자를 한참이나 읽어보고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마지막 연락은 네가 아니구나?

저는 그날 아파서 자고 있었어요.

A랑 무슨 관계였니?

문자 보시면 대충 아시겠지만.. 음.. 잠깐 만났던..

네가 이 날 헤어지자고 해서 충격이 컸을까?

...아마도 그런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이 문자를 주고받은 날 A를 만났니?

낮에는 학교에서 만났지만 저녁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형은 이 A와 아는 사이니?

아니요 전혀요.. 같은 학교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그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거네?

네.

CCTV를 봤는데 너희 집으로 가는 길의 모습은 포착되어 있어. 하지만 돌아오는 길 쪽의 CCTV에는 아무것도 찍혀 있는 게 없더라고. 뭐.. 그렇게 빡빡하게 촬영되고 있는 근처는 아니었으니까 찍히지 않는 곳으로 갔는지도 모르지만... 

....

그럼 이 여자애는 평소에 어떤 성격이었니? 아니면 혹시 원한을 살만한 누군가가 있었니?


이런 것을 물어보는 것에는 실종, 납치, 혹은 자살의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것인데 그 질문에 나는 알고 있는 데로 대답했다. 얼굴도 예쁜 편인데다가 성격도 활발해서 여자들도 남자들도 모두가 좋아하는 인기 있는 사람이었고, 원한이라고 해봤자 학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여자들의 시기 어린 가벼운 질투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고. 


경찰은 순순히 나에게 알겠다고 말하며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혹시나 뭐든 생각나는 거라던가, 뭔가 A가 갔을 만한 장소라던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연락 달라면서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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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떠들썩했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가 이 A의 실종사건에 대해서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모두가 무서워했다. 나에게 다들 A가 어떻게 된지 아냐며 슬쩍 묻기도 하고, 나와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라며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모두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A에 대해서 납치가 아니냐, 살인사건이 아니냐 하고 수군거리며 알 수 없는 범죄의 그림자에 안색이 파리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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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나에게 에쿠보가 내민 것은 한 쪽면이 이상하게 찌그러져버린 A의 플라스틱 명찰이었다.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집 앞에 떨어져 있었다고 말하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집에 찾아왔었던 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에쿠보가 말했다. 아, 조금 안타깝네 이 여자애, 시게오에게 완전히 소멸당했다고. 우리가 이용하기도 전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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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형은 무서워.. 나 또한 이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릴 거야. 본인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형은 나 또한 이렇게 죽여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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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보는 나에게, 시게오가 너를 좋아해 하고 말을 꺼냈다.

 

레이겐에게 보내는 편지를 언뜻 훔쳐봤는데 네 이야기를 가장 많이 써서 보내고 있어. 너, 아팠을 때 너에게 입을 맞췄었다며? 봐, 너에게 조금 이상하고 유별난 감정이 있다니까? 너도 실은 알고 있잖아? 


뭘 알고 있다는 건지.. 그런 감정이 뭔데.. 우린 가족이자 형제인데. 모든 걸 떠나서 가족끼리는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반박하고 나서자 에쿠보는 안심하는 듯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다행이다 리츠, 혹시나 네가 시게오에게 정말로 마음이 있어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 가장 쉬운 길로 가자고 우리. 너도 널 지켜야 하잖아? 나는 너의 편이야 릿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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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 이건 내가 행한 그 어떤 일보다 더럽고 추악했다. 동시에 나를 믿고 있는 부모님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과 형에게 느끼는 공포심이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조금 강하게 압박되어서 조금의 자극으로도 나는 터져버릴 듯한 상태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형은 학교에 자자한 A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나는 형에게 그 어떤 말도 해 줄 수가 없는 위치였다지만 형 역시 주위 사람들이 수군 거리는 이야깃거리에 정말이지 놀라울 만큼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학교에서 학생회가 실시하는 방과 후 학교의 보안에 대해서도 신기해했다. 어떻게 이렇게 떠들썩한 이런 분위기를 모를 정도로 무신경한 것인지, 정말로 모르는 것은 맞는지, 혹시 형은 일부러 A를 죽인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했다.


주머니 안에 넣어둔 경찰이 건네주었던 명함을 늦은 밤에 꺼내어 보면서 결론이 없는 고민을 했다.

결국은 찢어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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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 더럽다


형과의 관계가 더럽고, 나를 괴롭게 한다지만 그 육체적인 관계가 마냥 싫기만 하진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 자신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형과의 이상한 관계에서 크진 않더라도 약간의 괘락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더러워서 형이 잠든 깊은 밤에 화장실에서 하루 종일 토했다. 이미 뱃속에 아무것도 없어 누런 위액만 캑캑대며 뱉어낸다고 해도 형과 나의 뒤섞인 비릿한 정액 냄새가 코 끝에 머물며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형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 리츠! 하고 조금은 떨리는 듯이 부르는 그 목소리가 자꾸 귀에 들리기도 하고 뒤에서 껴안아오는 그 기분 나쁘리만치 따스한 가슴이 자꾸만 내 옆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적당히 괴롭게, 적당히 견딜만큼 내 목을 움켜잡고는 놓아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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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에쿠보를 나에게 소개했다. 악령이지만 내가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 말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에쿠보와 나는 서로를 한참 쳐다보다가, 서로 이 상황에서 아는 척을 하면 안 될 거라는 강한 직감이 통했는지 우리 둘은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에쿠보도 나와 비슷했다. 에쿠보도 형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형을 두려워하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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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겐씨가 형에게 사기를 치는 어른답지도 못하는 이상한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른은 어른인가 보다. 덕분에 나도 약간은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다음부터의 일기는 모브가 편지에 썼던 스즈키라는 녀석의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보이는 불안함의 증폭 때문인지 글씨도 엉망이고, 문체조차 엉망으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야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강의 내용을 보면 스즈키라는 녀석이 초능력 기운을 쫓다가 동생 녀석을 발견했고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소년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모브에게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자세히는 쓰여있지 않지만 동생 녀석의 공포심을 조금은 달래주는 녀석이 이 스즈키라는 녀석이 아니었나 싶다. 답지 않게 스즈키라는 소년에게 모브와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일들, 그리고 에쿠보에게 있는 두려움까지 모두 다 털어놓았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본인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런 녀석을 어떻게 믿고서 다 털어놓을 수 있는지 조금은 의아해했고 스즈키를 더 빨리 만났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고 쓰여있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약간은 편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일기에 쓰여있는 스즈키의 성격은 모브와는 완전히 다르게 외향적이고, 동생 녀석에게 남다른 호감을 표하면서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과정이나 이 녀석의 조언을 듣고서 움직여왔다는 것을 보아 동생 녀석이 모브에게로부터 숨어야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도 스즈키라는 녀석의 도움과 조언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놀랐던 사실은 에쿠보의 이야기였다. 에쿠보의 존재에 대해 스즈키는 동생 녀석에게 에쿠보를 유인해서 함께 자신에게 오게 한 뒤에, 동생 녀석의 동의나, 생각조차 들어보지 않고 없애버렸다고 쓰여있었다. 이러한 제멋대로의 행동에 놀라고 당황해서 크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스즈키는 '왜 화를 내는 거야? 이 녀석이 두렵다며? 네 옆에서 사라지면 다 해결되는 문제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하고 덤덤하고 침착하게 반박했다고 한다. 모브의 친구이기에 에쿠보가 사라졌을 때에 시게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섭다며 일기에 또다시 느끼는 두려움을 잔뜩 써놓기도 했지만, 그 다음 장의 일기장에는 또 아무렇지 않게 스즈키와의 일상에서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찾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에쿠보가 정말로 사라진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살아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정말로 소멸해버렸을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동생 녀석의 일기를 봐서는 에쿠보라는 령이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일기는 [스즈키는 나에게 '리츠, 나와 함께 있으면 걱정할 거 없어.' 하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이 녀석이 형보다 더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말에 안심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녀석 특유의 확신에 찬 말투에 안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라는 문장으로 끝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을 알아버린 나의 심정은.. 한때 모브의 스승이었다고는 하나, 나도 모브의 동생 녀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에 모브가 나에게 화를 냈던 때에도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모브가 무서워지고 두려워졌다. 모브는 나에게 이런 것을 알려줘서 무얼 하려는 걸까. 나는 이런 것에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하나? 의미 없이 일기장의 남은 공백부분을 휘리릭 넘기다가 뜬금없는 중간에 '스즈키 xx-xxxx-xx' 하고 번호로 보이는 낙서수준의 글씨를 하나 발견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 이상으로 나는 모브에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생 녀석이나 여기에 적어져 있는 스즈키라는 소년에게 무어라고 말이라도 해 볼 생각이었다. 오지랖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모브에게 이런 내용을 전해 듣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해결하는 데에 약간의 힘을 보태었다는 정신적 안도감을 얻어야 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면 그 동생 녀석이 다닌다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며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어? 저기... 여,여보세요?

[...]

응? 안 받았나? 아, 아닌데? 받은 것 같은데..? 저.. 스즈키.. 군? 아닌가?

[누구?] 

아, 역시 받았구나. 안녕? 난 세기의 영능력자...

[...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까칠하네.. 카게야마 리츠와 이야기를 하고 싶..

[... 리츠의 형?]

아냐 아냐 아냐! 그런 거 아니고.. 음... 뭐랄까... 그.. 동생 군에게 레이겐 아라타카..라고 하면 알 텐데...


내가 이름을 말하자 한참을 말이 없더니 본인에게 물어보고는 답을 주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요즘 꼬맹이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버릇이 없어? 반말이나 찍찍 해대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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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연락은 항상 늦게 온다고 하였던가? 다음날 저녁에 갑작스레 울리는 핸드폰을 발작적으로 받아 들었을 때는 생각지도 못 했던 어릴 적 고향 친구가 야!! 레이겐!! 오랜만이다야!! 하고는 핸드폰 너머로 빼액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간만에 맥주 한잔하자며 호탕하게 웃으며 친구들도 모두 온다고 했으니 보자면서 친근하게 말했다. 뭐, 할 일도 없고 오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전화를 멍하니 기다리느니, 친구들이나 만날까 하는 생각에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변한 놈은 없었다. 다 거기서 거기였다. 뭐 어떻게 지냈냐, 우리 만난 지가 벌써 15년 만이다, 여자친구는 있냐 등등 수많은 질문 세례를 던지며 나를 맞아주었다. 맨날 중학생 어린 새끼들만 보다가 다들 커버린 사회 안의 현실적인 친구들을 만나서 그렇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나누었지만 조금은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미 결혼을 했고 결혼을 안한 친구는 나와 어떤 한 친구뿐이었다. 다들 나에게 여자친구도 있다면서 왜 결혼을 안 하냐면서, 우리 나이는 이제 슬슬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야! 하고 다들 나에게 장황한 설교를 시작했다. 내가 모브에게 어쭙잖게 설교를 할 때의 모습이 이런 꼴이었을까?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레이겐. 여자친구 선생님이라면서? 프러포즈는 했어?

프러포즈? 아니 그게.. 아직...

그래? 그럼 우리가 도와줄게. 차일까 봐 못하는 거야?

그런 것도 없진 않지만.. 사실 아직 프러포즈까지는 생각도 못했어.

그럼 이제 생각해봐. 우리가 도와줄게. 역시 프러포즈는 평범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러더니 다들 본인이 했던 이벤트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뭐, 차 트렁크에 풍선이랑 케이크, 그리고 반지를 넣어서 세팅을 해 놓은 다음에 뭐 좀 꺼내달라고 하며 유도했더니 여자친구가 보고 깜짝 놀라 하며 좋아했다는 녀석도 있고, 어느 장소로 오라고 한 다음에 촛불을 하트 모양으로 켜 놓은 다음에 세레나데를 불러주며 프러포즈를 했더니 여자친구가 울어버렸다는 녀석도 있고.. 아 정말 다들 왜 이렇게 하나같이 오그라드는 짓들만...


재미도 없고, 프러포즈라는 것을 해도 절대로 이 녀석들이 말하는 것 같은 어울리지도 않는 짓은 하기도 않을 것이기에 맥주를 반 잔 정도 마시다가 취했다는 핑계로 집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멋드러진 프러포즈에도 다 주인공이 있는 법이다. 나같은 사람이 저런 겉만 번쩍번쩍한 이벤트 같은 것을 하면 정말이지 우스운 꼴로 보일 것이다. 나는 나대로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서 청혼을 하면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프러포즈.. 그러고 보니 요즘 어머니도 나에게 슬슬 결혼을 물어보시기도 하고.. 나도 이제 정말 결혼을 해야 할 때가 되기도 했는데.. 하지만 지금 내 여자친구는 정말이지 나에게 너무나도 과분한 여자가 아닌가...!


취기가 살짝 올라오는지 조금은 알딸딸해지는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서 정말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해도 괜찮을까, 혹여나 여자친구는 나를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생판 처음 보는 전화번호지만 이런 늦은 시간에 웬 스팸전화인가 싶어 수상쩍은 생각을 하며 받아드는 동시에, 아..! 그 동생 녀석이 전화를 했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알았다.


....모브 동생이니?

[... 네]

와 정말 전화해줬구나. 하하 이렇게 연락을 하는 건 처음이지? 잘 지냈어? 정말로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 이 번호는 뭐야? 처음 보는 번호..

[다른 사람 핸드폰이에요]

아 그렇구나 전학 갔다던데 여전히 공부는 잘하고 있어? 요즘 날씨가..

[저와 연락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뭐죠? 스즈키의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어요? 용건만 간단히 하세요]

어.. 그니까... 대충 짐작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새벽에 핸드폰 너머로 듣는 동생 녀석의 목소리가 너무도 건조하고 불안함과 초조함을 최대한 감추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최대한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지금까지의 사정을 대충 이야기했다. 


모브가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알고 있지? 내가 모브에게 너희 관계에 대해서 조언한 것도 말이야. 모브가 네 일기를 보내줬어.. 훔쳐본 것은 미안해.. 아, 일단 화내지 말고 들어봐. 우선 스즈키라는 친구의 번호도 그 일기장에서 우연히 본 거고.. 모브는 이 번호까지는 보지 못한 것 같아. 내가 너와 연락을 하고자 한 이유는 모브가 너를 무척이나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렇게 마냥 피하지만은 말고 연락이라도 취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어.

[형에게요?]

그래, 나에게도 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수차례 이야기했었어. 네가 다닌다는 학교에 전화도 하고 말이야. 너에게 그 학교 담당이 전해주진 않은 것 같지만.. 너의 심정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넌 가족이잖니? 평생 안 보고 살 거야? 너 지금 너무 극단적이야.

[레이겐씨]

응 이야기 하렴

[전 형이 아니에요]

알고 있어.

[그러니 레이겐씨도 같잖은 스승 행세 같은 거 그만두세요. 제가 레이겐씨에게 조언이나 충고 같은 거 들을 이유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용건이 이게 전부라면 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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