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싸/구름과 솜사탕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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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잘 지내시죠? 편지 잘 봤어요. 역시 처세술이라는 건 정말 어려운 거군요.. 역시 저는 아직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 친구분께는 편지를 써주셨나요? 스승님의 조언 때문에 저도 이번엔 팬시점에 가서 편지지를 새롭게 사서 썼어요. 팬더가 그려져있는 거랑 병아리가 그려져 있는 것 둘 중 고민하다가 스승님 머리색이 노란색이어서 병아리가 그려있는 걸 샀는데 어떠세요? 마음에 드세요? 별거 아닌데 저도 괜히 기분이 좋아요. 역시 스승님의 말은 항상 옳아요.


요즘 시험 기간이라서 조금 바빠요. 저는 별로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고, 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엔 조금 성적을 올리고 싶어서 리츠에게 부탁했어요. 실은 얼마 전에 츠보미가 다른 남자애에게 조금 설레는 표정으로 수학문제를 물어보는 것을 보고 저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버렸거든요. 츠보미가 수학을 물어본 애는 츠보미네 반의 1등으로, 저희 학년에서 공부를 잘하기로 유명한 애였어요. 그래도 리츠보다는 못해요. 리츠는 저보다 낮은 학년이지만 이미 저희 학년의 수준보다 훨씬 잘 하거든요.


리츠가 옆에서 설명을 해주면서 연필을 움직이는 모습이라던가, 집중해서 문제를 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츠보미가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그 애를 보는 심정도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요. 뭐랄까... 뭔가 멋있잖아요. 

리츠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나서, 숙제를 주는 선생님처럼 내일은 여기까지 풀어 와. 내일같이 보자, 하고 말해요. 저는 숙제나 예습이나... 그런 걸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이것마저도 해가지 않는다면 리츠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 같아서 열심히 풀어갔어요. 물론 거의 다 틀려서 창피했지만요. 그래도 리츠 덕분에 항상 20~30점을 못 넘기던 수학 쪽지시험을 이번엔 42점 맞았어요! 선생님도 어쩐 일이냐며 신기해했고요! 하지만 제 점수를 보고 리츠는 조금 성에 차지 않는 표정을 보였어요. 뭐.. 항상 100점이 기본인 리츠에겐 당연하겠지요.


요즘 학교는 조금 시끌시끌해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학교가 시끄러워지면 리츠가 신경 쓸게 많아질 텐데 걱정이에요. 리츠는 학생회라서 바쁘거든요. 학생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잘은 몰라도 리츠와 너무 잘 어울려요. 학생회를 모르는 스승님께 학생회를 설명하자면요, 저희 학교의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에요. 기본적으로 학생회에 들어가려면 학교 성적은 당연히 상위권에 있어야 하고요. 리더십이라던가 카리스마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대요. 그렇지 않으면 학생회에 발탁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회장과 부회장은 카리스마가 엄청 압도적이에요. 그래서 다들 카무로 학생회장과 도쿠가와 부회장을 무서워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저도 무서워하고 있고요.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서 당당하게 빨간색 완장을 차고 있는 리츠를 보고 있으면 모두에게, 봐! 저 사람이 내 동생이야! 정말 멋있지? 하고 외치고 싶어요. 여자들이 좋아할 조건을 다 갖춘 것도 사실이에요. 전에 리츠를 찾아왔던 그 예쁜 여자애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한 심정이랄까요? 


게다가 리츠는 이번 시험에도 전국 모의고사의 순위에 들었다구요! 학생회에서도 리츠는 독보적이에요. 엄마는 리츠의 성적표를 받아 보고서 항상 그렇듯이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우리 리츠가 이번 전국 모의고사에서 또다시 순위권에 들었다면서 바쁘게 수다를 떨어요. 전국 모의고사 시즌만 되면 요란하게 걸어오는 엄마의 전화를 엄마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에겐 리츠같이 똑똑하고 현명하고 성실하기까지 해서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자식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엄마의 전화에 시큰둥하게 아아, 그랬구나 우리 집은 아직 성적표가 도착하지 않아서 모르겠어. 하고 말하면서 시큰둥한 태도로 엄마의 끈질긴 자랑이 잔뜩 담긴 이야기를 듣다가, 공격한답시고 제 이야기를 물어보겠죠. 그러면 엄마는 리츠에게 푹 빠져서 황홀해하던 도중 아차 하는 심정으로 리츠라는 환상적인 아들이 있는 반면에 저라는 못난 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리고는 시게오...는 여전하지 뭐, 어쨌든 리츠는 정말이지...! 하고 황급히 말을 돌리는 건 덤이에요. 

하지만 저는 이런 엄마를 미워한다거나, 리츠를 질투한다거나 하지 않아요! 엄마가 공부를 잘하는 리츠를 자랑하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요? 저도 리츠를 자랑하고 싶은걸요? 그리고 리츠가 그렇게나 잘났는데도 저를 무시한다거나 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저도 리츠를 질투한다거나 하면 안 돼요. 게다가 저는 리츠를 진심으로 동경하고 있어서 질투 같은 것을 느껴본 적도 없구요. 동경하는 상대에게 질투라는 추잡한 감정 따위 느낄 리가 없지요.




얼마 전에 뇌감전파부에서 다 같이 과자를 먹다가 학생회 이야기가 나왔어요. 토메 선배는 카무로 회장이나 도쿠가와 부회장은 너무 강압적이라며 불평을 늘어놓더라고요. 애초에 다섯 명이 아니면 부실을 폐지한다는 것도 정말 너무하다구! 그렇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정말이지 사람 목을 조르는 거랑 다를 게 없단 말야...! 다른 학생부 사람들은 그 사람들 아래에서 어떻게 있나 몰라, 나 같으면 하루도 안돼서 탈퇴하고 말 거야! 토메 선배는 뇌감전파부 폐부 위기일 때 도쿠가와 부회장에게 당한 것이 정말 분했나 봐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아니에요. 제 동생이 그러는데 그렇게 무섭기만 하진 않데요. 도쿠가와 부회장이 겉모습이나, 말투가 무서워 보이지만 그래도 학생회 후배들을 가장 유심하게 관찰하고 조언해주는 선배라고 했어요.

동생? 네 동생이 학생회? 누구? 토메선배는 제 말에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어요.


모르세요? 리츠요. 카게야마 리츠. 

뭐? 카게야마 리츠? 정말? 그 잘생긴? 공부도 잘하는 그... 카게야마 리츠 말하는 거야? 

네.

와, 말도 안 돼....


토메 선배는 나를 보고 입을 떡 벌리고 있었어요. 사실 누구라도 제 동생이 카게야마 리츠라고 말하면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해요. 그 광경을 보면 저는 뿌듯해서 어깨가 으쓱해지고요. 그리고 이 이후에 이들이 하는 말은 이거죠. 모두가 똑같이 말합니다. 


동생은 정말 굉장하구나, 그런데 넌 왜......


이 말을 들은 적이 너무 많아서 사실 별 감흥은 없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이렇게 대답해요.


저와는 달라요. 리츠는 정말 대단하니까요.

 





어제는 하나자와군을 우연히 만났어요. 저를 보자마자 웃으면서 카게야마군 오랜만이야! 하고 웃어 보이더라고요. 햄버거를 같이 먹자길래 얼떨결에 따라갔어요. 얼마 전에 뇌감전파부와 놀러 가는 바람에 용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하나자와군이 눈치를 챘는지 먼저 자기가 사주겠다면서 사줬어요. 남에게 얻어먹는 것은 별로 좋은 게 아니라고 엄마와 아빠가 말했었지만 이번 만은 얻어먹기로 했어요. 다음에 제가 꼭 사주겠다고 했더니 하나자와군은 됐다면서 웃더라고요. 그래도 안돼요! 다음에 용돈을 받으면 꼭 제가 사줄 거예요. 

저는 햄버거와 우유를, 그리고 하나자와군은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했어요. 


하나자와군은 초능력 컨트롤이 뛰어난 만큼 여러 가지를 습득하는 것에 대해서 열정적이었어요. 저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초능력 사용법을 잘 알지도 못하고, 제 힘이 무섭고 두려워서 잘 사용하지 않으려는 저에게는 관심 없는 이야기에요. 


하나자와군은 초능력 컨트롤에 관심이 많구나. 그것 외에는 관심 있는 게 없어?

뭐야, 지금 비꼬는 거야?

그렇게 들었다면 미안해. 그런 의미는 아니고 순수하게 궁금한 거야. 음... 예를 들자면 운동이라던가.. 공부라던가...

... 공부는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면 되잖아? 그리고 운동은 좋아해서 틈틈이 하고 있어. 정해놓은 시간에 운동을 해.

저.. 혹시 운동이나 공부 잘해?

운동은 사실 좀 잘하는 편인 것 같아. 자랑은 하는 건 아니지만. 하하 이미 자랑이려나? 하지만 공부는 특출나게 잘하진 않아. 이번엔 시험을 조금 못 봐서 전교에서 18등 밖엔 못 했어. 


하나자와군은 은근한(아니 사실은 완전하게) 완벽주의자인가 봐요. 뭐든지 특출나고 싶어 하고요. 실제로 머리도 좋고 운동신경도 타고 난 듯 하구요.. 전에 저와 처음 마주쳤을 때 자신의 존재의 특출남을 느끼며 자의식과잉적인 모습을 보인 데에는 저와 비슷하지 면서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실제로 오늘의 하나자와군은 음.. 뭐랄까 조금은 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어요.


카게야마군은 공부라던가 운동이라던가 잘해? 전에 보니까 부 활동으로 운동을 하는 것 같던데.


하나자와군의 질문에 저는 잠깐 생각하다가 공부는 못 해서 안 하게 되는 건지, 안 해서 못하게 된 건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잘 하지 못하고, 운동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그러자 하나자와군은 웃으면서 역시 카게야마는 무슨 일이던지 열심히 하는구나! 나도 본받아야겠어. 하고 웃더라구요. 하나자와군의 입장에서 제가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해 라고 말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기준에서 못하는 것이니, 제가 얼마나 못하는지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아까 말하듯 시험을 못 봐서 전교 18등 밖엔 못했어.라는 하나자와군의 말처럼 저와는 기준이 다른 거죠. 그래서 제가 못한다고 말을 해도 공부도 운동도 뒤에서 10등 안에 드는 어마어마하게 허접한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할 거예요. 이런 하나자와군이 제게서 본받을 구석이 있는 걸까요? 제가 봤을 때에 하나자와군은 모든 것을 다 잘하는데 말이에요. 처음으로 조금 치사한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머리도 좋고 운동신경도 좋고 거기에 초능력 컨트롤도 좋으며 얼굴도 잘생기고 인기도 많아요. 완벽.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요? 부러워요.


그러고 보니 하나자와군이 저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고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제 초능력 덕분이네요. 전에 모가미씨가 보여준 잠시의 장면처럼 저에게 초능력이 없었다면 이런 부류의 사람과 가까워질 수나 있었을까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자와군은 여전히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군림하고 있고, 저는 그런 사람과는 마주칠 일도 없는, 지나치게 평범해서 아무도 모르는 엑스트라처럼 육체개조부와 함께 운동장을 뛰고 있겠죠. 그리고 다른 학교와 시비가 붙으면 이유도 모른 채 얻어터져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역할, 육체개조부를 불러내기 위한 가장 만만한 미끼, 그리고 쓰러져있는 학생 1098번의 돌멩이 같은 주위 배경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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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우체통에 어색하게 꽂혀있는 노란색 편지봉투를 엄마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에 모브 녀석은 항상 하얀색 규격봉투에 검은색 줄이 쳐진, 정말이지 옛날 아버지 시대의 사람들이 쓸 법한 편지지에 편지를 써왔던 녀석이기에 색깔 있는 편지봉투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것은 조금 별 일이었다.


[모브, 잘 지냈니? 난 잘 지낸다. 뭐.. 여자친구에게는 정말 온갖 정성을 다하면서도, 하면 안 되는 말을 걸러서 쓰느라고 길게는 못썼지만 나름 분홍색 하트 가득한 편지지에 또박또박하게 글씨를 써서 줬더니 그래도 웃으면서 넘어갔어. 정말이지 한숨 놓았다. 근데... 나는 너에게 정말 있는 대로 대충 쓰는데 네가 나에게 이렇게 정성들여서 쓰면 내가 미안하잖냐.. 나한테는 이렇게 편지지까지 구입하면서 쓸 필요는 없는데 말야.. 하지만 뭐.. 나도 기분은 좋네. 뭔가 전에는 편지봉투나 편지지 자체에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조금은 우울해 보였었어. 편지 봉투를 열어서 편지지를 펼치면 무서운 아버지의 호통소리가 들릴 법한 그런 느낌이었거든. 


근데, 또 시작이냐 모브,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마이너스적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니까..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 등등의 특징이 있고, 너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이란다. 하나자와가 네가 가진 초능력을 보고 너와 친해졌다면 그건 그거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친구를 사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말을 하면 조금 시무룩할지도 모르겠지만.. 초능력을 보여줘도 아직 너를 좋아하지 않는 츠보미같은 부류도 있잖니.. 이 사실을 들먹인 것은 미안해. 하지만!! 지금 노력하고 있으니까 반드시 너를 봐줄 거라고 믿고 있다고 이 스승님은!


내가 생각했을 때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너 역시 내가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하하, 이건 농담이고, 이미 상당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공부를 잘하면 멋있어 보인다..라, 하지만 사람마다 멋의 기준이 다르니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할 말은 없네. 나도 공부를 잘하진 않았거든. 하지만 공부야 열심히 해두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엔 큰 도움이 되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떤 목적으로라도 동생 녀석에게 공부를 배우고 있는 거라면 열심히 하렴! 큰 도움이 될 거야. 자신감 향상에도 좋을 거고.


그러고 보면 네 동생의 의외인 면은 그거야. 나한테 행동할 때는 쪼그만 꼬맹이 녀석이 따박따박 한마디도 안 지면서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들고 따져오길래 너한테도 엄청나게 싸가지없는 동생일 줄 알았어. 근데 너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르게 자상한 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이런 말 하면 네가 화내겠지만 이중인격자인 줄 알았다고, 하하. 


그 녀석처럼 주변에서 그렇게 떠받들어주고, 자랑스러워하고 모두가 선망의 눈길로 보는 그런 사람은 본인이 싫어도 남들에게 튀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야. 선생님의 입장에서도 그 녀석이 단연 돋보일 것은 마찬가지고. 공부를 못하는 녀석과 잘하는 녀석 똑같이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성실하고 잘하는 녀석은 믿을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너희들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어떻게 성적 따위만 보고서 차별을 하죠? 하고 따져올 수 있겠지만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예뻐하는 학생이 있고 싫은 학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야. 공부를 잘하고 성실한 아이들을 기본적으로 선생님이라면 조금 더 예뻐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는 차별이 시작되는 거지. 그러면 그 아이는 스스로 아, 나는 대단하구나. 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리는 거고. 뭐.. 하나자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런데도 그렇지 않고 스스로를 잘 붙들고 있는 것은.. 뭐.. 인정하기 싫지만 네 동생 녀석 스스로가 정말 착실.... 하고 성실한 거고, 다른 의미로 말한다면 형인 너를 형으로써 존중해주고 있다는 거 아니겠니? 그런 동생의 기대치를 부응하려면 너 스스로가 그렇게 너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으면 안 돼! 동생을 이끌어주는 형의 역할이 뭐겠냐? 잘못된 동생(잘못되진 않았지만)을 이끌어주고 모범을 보이는 거 아니겠어?]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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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정말로 사진까지 보내주셨네요. 감사해요. 제 책상 앞에 있는 게시판에 붙여놓을게요. 이 게시판에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붙여 놓거든요. 엄마랑 아빠, 그리고 리츠, 그리고 어릴 때 함께 찍은 츠보미와의 사진, 그리고 체육대회 때 찍은 육체개조부, 얼마전에 놀러 가서 찍은 뇌감전파부 정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아서 기뻐요. 사진을 보니까 정말로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네요. 처세술만은 너무 어려워서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연애는 못하신다고 하셨었는데 이제 처세술까지 익히신 건가요?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에요? 역시 엄청 예쁜가요? 스승님만큼 훌륭한 여자겠죠? 전에 책상 아래에 숨겨놓으신 책을 보면 항상 속옷만 입고 있는 여자들 사진이 가득하던데..... 사진이 아닌 여자가 스승님 옆에 있다는 게 정말이지 상상이 안 가요 그래서 더 궁금하네요 역시 스승님은 대단해요. 


저는 어제도 토메선배와 함께 하루 종일 초능력자를 찾으러 벤치에 앉아 있었어요. 토메선배는 진심으로 외계인하고 교신할 수 있는 초능력자를 찾을 생각이신가 봐요. 저는 찾을 생각은 별로 없기도 하고... 초능력자를 알려주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멍하니 앉아 있어요. 그러다가 가끔 눈에 띄게 확 반응될 정도의 능력자가 있어서 보면 멀리서 지나가고 있던 하나자와군 정도였어요. 멍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꾸만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에 스승님하고 같이 봤던 영화에 나온 좀비들 같기도 하더라고요. 다들 표정도 없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쁘게 앞만 보고 걸어가잖아요...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저와 토메 선배를 보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멍하니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고, 토메선배도 사람들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고..


스승님도 지나가는 좀비처럼 살고 계신 건가요? 아니 아니, 그래도 스승님은 무표정이 아니라 웃으면서 살고 계시죠? 스승님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시잖아요.


스승님, 요즘 조금 쓸데없지만 사소한 생각이 많아요. 제 동생 리츠 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 했었어요. 저로서는 이런 쓸모없는 능력을 도대체 왜 가지고 싶을까 하고 의문이 들지만 전에 스승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법이다'라고 말이에요. 리츠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리츠가 가진 많은 것을 부러워하는 만큼 리츠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싶은가 봐요. 근데요, 조금 안타깝게 느껴지긴 하다만, 제가 동경하는 사람이 저를 부러워해준다는 것만큼 기쁜 게 없어요. 

물론 리츠가 어릴 때 이후로는 입 밖으로 초능력이 가지고 싶다, 형이 부럽다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일기장에 쓰여 있는 걸 봤어요. 아, 훔쳐본 건 아니에요. 엄마가 공부하는 리츠에게 간식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피곤했는지 리츠가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었어요. 그 옆에 쓰던 중으로 보이는 일기장이 펼쳐져 있어서 간식을 놓아주다가 우연히 본 것 뿐이고요. 


리츠는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여름방학 숙제로 한 달 동안 일기 써오기 숙제가 있었는데 전 쓰지 않은 일기를 채우느라 일주일 동안 지난 한 달동안 뭘 했는지 생각하면서 이미 생각나지 않는 제 생활을 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허둥대면서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리츠는 제 일기장을 보면서 저에게 형, 이날은 나랑 게임했었잖아 그 이야기를 써. 그 다음날은 할머니 댁에 갔던 이야기를 쓰면 되겠네. 하고 도와줬었어요. 리츠는 숙제가 아닌 다른 때에도 꾸준하게 일기를 썼었어요. 신기하다고, 귀찮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일기를 나중에 읽어보면 뭔가 얻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완 정말 다르죠? 하여튼 리츠는 정말이지 따라갈 수 없다니까요.. 에쿠보는 리츠를 볼 때마다 정말이지 더럽게 성실하네,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해요. 사실 남이라면 당연히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성실함이기는 해요. 


어쨌든, 일기장에는요, 초능력이 있다고 해서 내 생활이 지금에 비해서 나아진다거나, 없다고 내가 열등감과 비슷한 이상한 감정에 시달릴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단지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보다. 라고 쓰여있었어요. 그 한 줄을 읽자마자 리츠가 일어나 버려서 그 뒷부분은 읽을 수 없었구요. 자다가 깬 리츠는 간식을 놓아주러 온 저를 보고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형 고마워! 하고 상냥하게 웃어주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지고서도 이런 쓸모없는 능력을 부러워하는 게 저는 참 이상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줄 곳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 하길 원하고 있었다면 차라리 저를 대신해서 리츠가 가지고 태어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기도 했어요. 그렇지 않나요? 제가 이 말을 에쿠보에게 했더니 에쿠보가 그랬다면 세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음흉하게 웃었어요.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더니 네 동생은 너와는 다르니까! 하고 말했어요. 물론 리츠는 저와 다르죠.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그래도 제 동생인 만큼 저와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다구요. 가끔 에쿠보는 이상한 소릴 한다니까요? 역시 제령해버릴까요? 하하 이건 농담이에요. 요즘 에쿠보에게 이런 농담을 하는 게 재밌어서 에쿠보가 이상한 말을 할 때 가끔 하고 있어요. 떨면서 아냐 미안해! 하고 말하는 게 웃기거든요. 저도 약간 바뀌었죠?


곁에 조금 더 계셔서 제 고민을 조금 더 들어주실 수 있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멀리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편지로나마 제 고민 상담을 들어주세요. 역시 전 스승님 같은 조언 상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저에게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구요.. 그저 자잘한 고민 같은 거요. 스승께서도 제 나이엔 고민이 많은 게 당연하다고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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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오늘은 14일이에요. 저녁 공기가 시원하게 불고 있어요. 이런 날은 괜히 생각이 부쩍 많아진다니까요. 창문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리츠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 않냐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저의 손을 잡아끌어요. 리츠가 이렇게 제 손을 잡으면 저는 뿌리칠 수가 없어요. 리츠의 손은 정말 따뜻하거든요.. 리츠는 항상 자상하게 형, 아이스크림에서 '한 개 더'가 나오면 줄게, 하고 말하는데 그렇게 기대하면 이상하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실망해서 아쉽다고 시무룩하는 표정도 귀여워요. 몰랐는데 리츠는 학교에서 조용하고 예의 바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이미지래요. 저에게는 이렇게 따뜻한데 말이에요. 아마 이런 표정은 저만 알고 있는 거겠죠? 돌이켜보니 스승님께도 항상 리츠는 차가웠던 거 같아요. 리츠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조금 예민하게 구나 봐요. 제 동생이니 형인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사할 때 리츠가 던져버린 노트북은 괜찮은가요? 


얼마 전에는 리츠를 짝사랑하는 어떤 여자애가 집 앞에 찾아왔어요. 밤 9시였나.. 늦은 시간이었는데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려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날 엄마와 아빠는 모임에 나가시고 집에 안 계셨기 때문에 제가 문을 열어줬거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여자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는 것에서 한번 놀랐고요, 그다음으로는 그 여자애가 너무 예뻐서 놀랐어요. 장난감을 사러 가서 우연히 본 금발 인형 같았어요. 금발의 긴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반짝반짝하고 눈이 엄청 커다랗고 투명했거든요. 눈이 너무 커서 눈동자 안에 빠져버릴 것 같다는 표현은 이런 여자아이에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물론 저는 츠보미를 좋아하고 있구...저에겐 츠보미가 최고로 예쁘지만, 츠보미 다음으로 예뻤어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 저...카게야마군...을 만나러 왔는데요.. 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이야기하더라구요. 리츠는 공부 중이라서 방에 있었어요. 이렇게 저녁에 찾아온 여자를 문 밖에 오래 세워두는 건 신사로서의 행동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선 들어오라고 해서 소파에 앉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오렌지 주스가 괜찮냐고 물어본 다음에 유리컵에다가 따라서 한잔 마시라고 주기까지 했어요. 그 여자는 조금 얼떨떨해했지만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하더라구요. 


리츠의 방에 가서 리츠, 손님이 왔어. 하고 말하니까 올 사람이 없다며 이상하다고 하면서 거실로 나와선 그 여자를 보곤 적지 않게 놀라 하더라고요 그 여자는 리츠를 보고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카게야마군.. 저... 아무리 연락을 해도 받질 않길래.. 하고 우물쭈물거렸어요. 리츠는 그 여자아이의 연락을 피하고 있었나 봐요. 리츠는 아무 말없이 잠시 있다가 한숨을 크게 쉬었어요. 그리고는 그 여자아이에게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어요. 그 여자를 데리고 가려다가 뻘쭘히 서있는 저를 보고는 이 여자아이를 데려다주겠다고 금방 오겠다고 했어요. 와아 데이트를 하는 걸까? 하고 제가 웃으면서 묻자 그런 건 아니라고 딱 잘라서 말했어요. 말은 저렇게 해도 역시나 데이트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들어오더라고요. 왜 인지 조금 화가 난 눈치였어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고 물어보니까 이내 표정이 밝아지면서 아냐 형, 별일 아니야. 하고 평소처럼 웃어주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리고는 소파에 털썩 앉아서 하는 말이, 저런 여자애들은 정말 무서워. 라고 했어요. 


무섭다니? 역시 너무 예뻐서? 

형은 정말 착하구나. 예쁘다고 말해주고.. 저 애가 들었다면 정말 좋아했겠네. 

응? 하지만 진짜 예쁘던데.. 

난 저런 애 무서워. 본인의 마음이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거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부럽다. 근데 저런 여자애 면 정말 모두가 좋아할 만큼 예쁘지 않아?.... 어쨌든 오늘 여기엔 왜 온 거야? 

.... 몰라 내가 보고 싶어서 왔데. 

역시 리츠는 인기 정말 많구나! 부럽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뭐가 부러워.


저렇게 예쁜 여자애가 찾아와 준다면 저는 정말이지 그날 밤 잠도 못 이룰 정도로 행복했을 텐데, 리츠는 그렇지 않은가 봐요. 어쨌든 이렇게 저로서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다가 리츠는 자기 폰을 저에게 보여줬어요. 부재중 전화 22통에 문자가 34개 와있었어요. 대충 보니까 34개의 문자에는 34개의 문자 가득, 카게야마군 뭐하고 있어? 카게야마군 오늘은 뭐해? 바빠? 한 번만 만나면 안 될까? 앞에서 기다릴게. 집으로 찾아가도 괜찮을까? 연락 일부러 피하는 거지? 반장 전화는 받던데.. 카게야마군 아까 집으로 안 가고 다른 곳 돌아다니고 있던데 어딜 가는 길이었던 거야? 뭐하고 있어?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나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공부 좀 알려줄 수 있어? 집 앞인데 잠시만 나와 줄래? 카게야마군.. 카게야마군......


보는 순간 저도 소름이 쫘악 일었어요. 리츠가 번호도 저장해두지 않아서 동그랗고 딱딱한 이상한 형태들의 숫자가 잔뜩 떠있었어요. 그 동일하게 쭈욱 떠 있는 게 너무 징그러웠어요... 리츠는 한숨을 푹 쉬었어요. 저도 조금 무섭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여자에게 모질게 대하면 안 돼, 리츠! 그런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사람이야! 제 말에 리츠는 말했어요. 형은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 하는구나? 난 인기 같은 거 필요 없는데.

물론, 분명히 저 여자아이의 행동이 잘못된 건 맞아. 하고 제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다음엔 혹시나 또 찾아온다면 내가 꼭 한마디 해줄게! 형이? 리츠는 제가 열정을 보이며 말하자 재밌다는 듯 웃었어요. 


스승님, 물론.. 여자에게 모질게 행동을 하면 신사가 아니지만.. 잘못된 행동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좋아하는 감정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제가 츠보미를 오랫동안 좋아해 왔지만 집 앞에 이유 없이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거나, 어디엘 가는지 하루 종일 지켜본다거나, 무리하게 전화를 한다거나 하진 않잖아요?


역시 사람들은 어떤 위치에 있던 다들 고민이 있나 봐요. 그래도 저는 제 동생만큼은 고민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리츠는 정말 친절하고 상냥한 제 동생이니까요.


스승님의 여자친구는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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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에게 편지를 두통을 연달아 받았다. 날짜는 달랐지만 날짜 텀을 많이 두지 않고 연달아 보낸 탓에 동시에 배달이 되었다. 


[모브.

잘 받았다. 두통이나 보내다니 놀랐어. 요즘 뭔가 고민이 많은 거냐? 사실 편지만 읽어서는 도대체 뭐가 고민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네 동생이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니? 설마? 뭐.. 그런 게 고민이라면.. 뭐, 어쩌겠냐.. 네가 초능력을 쓴다고 한들 저 녀석에게 그 재능까지 심어줄 수는 없는 부분인데.. 그건 네 탓도 아닌 데다가, 네 동생 녀석은 초능력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 네 동생 녀석은 지금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뭐,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네 편지엔 동생 녀석 이야기가 정말 많네.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정말이지 신기하다. 사이가 그렇게 좋은 형제는 흔치 않거든. 보통 형제라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야. 내 주변 사람들 보면 나이 먹어서까지 맨날 치고받고 싸우더라. 물론 그런 것보다야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당연히 좋지. 부모님은 너희 둘이 사이좋은 것만 봐도 마음이 참 편하시겠다. 얼마나 보기 좋으시겠니. 그리고..... 네 동생 녀석이 던져버린 노트북.. 다행히 심한 고장은 없었어. 그러니까 걱정 마라.


그리고 말야, 네 동생은 정~말 의외로 인기가 많네? 사실 난 왜 많은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리고 말이야, 그 여자애는 그렇게 예쁜데 네 동생 녀석을 왜 따라다닌다냐? 자길 좋아해 주는 다른 남자애들도 많을 텐데. 뭐,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더 흥미가 갔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런 진드기 같은 여자애들은 잘해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너한테 자꾸 부탁하면서 그 녀석에게 접근하려고 할 거야. 일명 스토커라고도 하지. 넌 이용당하기 쉬운 타입이니까 조심해야 해.


뭐 이 부분에서는 이 정도 해놓고, 너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전에도 말했듯이 너의 초능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마이너스적인 요소만 생각하지 마라. 너에게 도움받고 있는 사람도 많잖냐! 지금이야 내가 옆에 없지만 내가 전에 가르쳤던 대로 행동하면 된다! 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헛되이 하지 말 것!

이렇게 길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걸 보니까 뭔가 너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로는 표현을 못하는 걸 글로 표출하는 것 같네. 덕분에 너에 대해서 지금도 옆에 있는 것 이상으로 알아가는 것 같아서 이 스승님은 기분이 좋다. 고민이 아닌 그냥 하고 싶은 말이라던가.. 여튼 뭐든지 좋으니까 앞으로도 쭉 써주렴. 나도 최대한 바로바로 답장해줄게.]





편지를 쓰는 도중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10시 반이었고 그저 뭘 하는지 궁금해져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응 나 뭐... 전에 말했던 제자에게 두통이나 편지가 와서 답장 쓰고 있어. 와아 답장? 레이겐씨 편지도 쓴단 말이야? 나에게는 한 번도 쓴 적 없지? 내일 나 만날 때 나에게도 편지 써와! 아... 아니 편지랄까... 그냥 이거... 에이포 이면지에 대충 쓰는 건데.... 다 알겠으니까 에이포 용지던 뭐든 좋으니까 나한테도 쓰라구!





[하아.. 모브, 처세술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단다. 방금 괜히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다는 한 마디 때문에 나는 오늘 여자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야 하는 고생을 해야잖냐. 처세술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꺼내야 한단다. 정말 머리 터지는 일이지. 너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편지 쓰는 게 왜 힘든가요? 써주면 되잖아요?.. 하지만 말야, 정말 여자친구가 어떤 형태로도 상관없으니까 편지를 써달라고 했더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절대 안 된단다. 너한테 하듯이 이렇게 에이포 이면지에 써서 주면 전쟁의 시작이 되고 말아. 제자에게 쓰듯이 나에게도 이렇게 쓰면 어떻게 해? 당신 제자와 내가 같아? 라는 말로 시작해서, 성의가 없다며 자기를 사랑하긴 하냐는 둥 변했다는 둥 난리를 칠 거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는 편지지도 필히 예쁜 팬시점에서 구입해서 쓰도록 하렴. 글씨도 분명히 또박또박 써야 한다! 이건 스승님의 처세술 조언이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는 상냥이라던가 친절... 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물론 착실하고 때론 자상하지만 오히려 털털하고 재밌는 성격이란다. 세상 모든 여자가 마냥 자상하고 상냥하진 않잖니? 네 옆에 있는 토메나 메자토만 봐도 알잖냐. 세상엔 동그라미 세모 네모 육각형 등등 다양한 형태의 사람이 있고, 또 그 모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야. 그리고 처음엔 동그라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세모나 네모였다는 걸 나중에 알아채고도 하고.. 뭐, 아직 너에겐 너무 고급 처세술이라 넌 아직 모를 거다.


조금씩 나에게 상담하면 이 스승님이 하나하나 답해주마!

몸 건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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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싸 8화는..... 정말이지 레전드군요ㅠㅠ

01












"스승님.. 진짜로 이사 가시는 거예요?"

짐 정리를 도와준다며 온 모브는 내 옆에서 짐 정리를 하다 말고 조금은 촉촉한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이 생활과 이별을 한다.


먼 곳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가 혼자 생활하시기는 너무 외롭고 삶의 낙이 없다는 둥 나에게 내려오면 안 되겠냐며 조금은 우울한 문체로 편지를 하셨다. 뻔히 전화를 할 수도 있는데 나에게 편지를 하셨다는 것은 손편지가 사람의 감정을 더욱 극대화해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교묘하고도 얄팍한 수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손으로 꾸욱 눌러쓴 그 반듯한 글씨라던가 종이의 빳빳한 감촉은 수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실 내려갈 생각이 많지는 않았다만, 어머니의 처지 한탄을 들으며 나 역시 이곳의 생활에 약간은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현재 의지할 수 있는 친구조차 없는 쓸쓸한 처지를 의식하며 조금은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게다가 나이도 나이인지라 곧 결혼도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중학생인 코찔찔이 모브를 데리고 다니면서 영능력자라는 사기꾼 행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허탈한 생각도 들었고, 이제 나이를 드실 대로 드신 어머니와 함께 살 날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후회라는 것을 할 시간도 없이 재빠르게 이사를 결정하고 사무실을 내놓았다.


이런 연유로 약간은 정든 이 사무실을 끝내면서 잘 굴려먹던 제자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를 도와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모브에게 타코야키를 사주었다. 내가 먼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말하자 모브는 이사를 도와주겠다면서 이삿짐을 싸는 날엔 제 동생까지 데리고 왔다. 자잘한 이삿짐을 싸주다가 내가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는지 조금 눈물을 글썽거리는 듯했지만 뭔가 마음을 다 잡은 듯 나에게 말했다.


"스승님 편지할게요. 가서도 연락 계속해주셔야 해요"


"그래 모브. 나야 그렇다 치지만 너나 잘 살아라. 이용당하지 말고 말이야"


"레이겐, 이제 네가 없으니 이용당할 일이 있겠냐?"


얄미운 에쿠보는 모브의 옆에서 초록색 빛으로 둥실둥실 떠다니면서 비웃듯이 말하고는 나에게 잘 가라, 앞으로 볼일은 없었으면 좋겠네~ 하고는 피식 웃었다. 어이, 모브 다 좋지만 저 녀석만큼은 꼭 조심해야 한다. 내 말에 모브는 살짝 웃어 보였다. 이제 스승님이 없이도 제 고민은 제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하고 뭔가 결심한 듯이 말하고서는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스승님 제가 편지 쓸게요. 아서라, 계집애도 아니고 웬 편지? 하지만 이제 핸드폰도 없구 연락할 방법도 없잖아요. 혹시 스승님 제가 귀찮다거나... 아니 아니 아니 설마! 모브! 꼭 편지하렴! 설마 내가 이렇게 귀여운 제자를 귀찮아하겠니? 옆에서 에쿠보는 백 퍼센트 귀찮구먼~ 하고 모브에게 속닥이고 있다. 이사를 도와준다는 모브의 부탁으로 끌려온 모브 동생 녀석은 표정부터 왜 내가 이 자식의 이사 따위를 도와줘야 하는 거지? 하는 엄청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이제 당신이 없으니 형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한 명 줄었네요. 하고 내 이삿짐을 박스 안으로 던져 넣으며 말했다. 야야.., 거기에 노트북 들어있는데 좀 살살 다뤄주라고.... 저기... 모브 동생아...? 이럴 거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 울고 싶어...


어찌어찌 누구의 잘나신 동생님 덕분에 엉망진창으로 아슬아슬한 이사를 마치고 나서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삿짐 차에 몸을 싣고 정든 이곳을 떠났다. 막상 떠나자니 아쉬웠는지 이곳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처음 모브와의 만남부터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있었다. 제령 일도 그렇고 갑자기 나타난 에쿠보의 존재도 그렇고... 모브에게는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뭐... 우선 값싼 시급으로 많은 일을 해주었다는 부분이 가장 고마운 부분이고, 그다음으로 고마우면서도 조금 미안했던 부분은 모브 녀석이 나를 진심으로 동경하는 듯 올려다 봐주었다는 점이다. 그 눈을 보면 사라진 줄 알았던 내 양심의 한 부분이 나를 약간은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인간이고, 최저임금도 쳐주지 않으며 중학생을 굴려먹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된다면 자신을 이용하고 속여왔다며 이빨을 갈며 달려들지 않을까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이렇게 적당한 시기에 가장 적당한 이유로 좋은 이별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나에게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도 있다고, 어차피 언젠간 헤어져야 할 운명이다 모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이 스승님처럼 말이야!


도착한 곳은 여유롭고 한적했고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삶이라는 곳에 조금 유식하게 음악을 빗대어 본다면 이곳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정도?에서 조금은 은은한 음색 정도 되는 경쾌한 삶의 리듬이 있었다. 뭐 중학교 수업시간에 들어본 게 마지막이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전에 있던 곳이 회색이었다면 이곳엔 조금의 파스텔톤의 색조가 자리 잡아 편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서 영능력자라는 사기꾼 생활은 이제 접어두고 어느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이 회사는 바쁠 때는 바빴지만 전에 영등등사무소를 했던 것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일단 사무실 월세 걱정도 없고 일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 졸일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적당히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니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어머니가 함께 있음으로써 밥도 빨래도 청소도 모두 해준다는 점이었다. 일단 모든 걱정이 다 덜어졌고 나와 함께 있으면서 어머니도 눈에 띄게 밝아지시는 것을 보니 나 역시도 안심을 하게 되었다. 이런 평범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자, 모브와 함께 일을 할 때의 나는 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까지 스펙타클한 생활을 해왔는가에 대한 고찰이 뜬구름처럼 머리를 떠다녔다. 초능력자? 애초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누가 믿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초능력자나 악령 이야기 같은 거 여기에 있으니 소식조차 모른다. 그저 가끔 뉴스를 보다가 이상한 초자연 현상 같은 것을 보면 나 혼자 속으로 아아, 저거 혹시 초능력자들의 짓이려나? 하고 혼자 지레짐작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옆에서 아이고, 저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서 어째.... 세상이 말세다 말세, 하고 한숨을 푹푹 쉬신다. 그래. 이런 것들이 전부 평범한 인간의 삶이다. 모브와 함께 있으면서 영능력자인척하는 것에서도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지금은 마음이 한결 편하기도 했고... 그리고 사실 누군가에게 스승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부담을 안고 가야 하는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이런 나라도 그런 부담이라던가 압박감은 있다고!


여튼 나는 이곳의 삶에 꽤나 많은 만족을 하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거의 정확하고 남들 쉴 때 쉬는 평범한 회사를 다니기에 취미생활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오가다가 인연을 맺게 된 핑크색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이쁘장한 여자를 만나서 연애도 하게 되었다. 아, 얼마나 모두가 바라는 삶인가? 물론 가끔은 전의 영등등사무소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리움이라던가 그런것은 아니고, 그저 아~ 전에 그런일이 있었지, 그때 웃겼는데, 하고 스치듯이 추억하는 정도였다. 여자친구에게 말한다면 꽤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될수도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영능력이 없다고 해도 여자친구가 나를 조금은 으스스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봐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물어온다면 그저 작은, 별볼일 없는 사무소를 운영했었다고 둘러대기에 바빴다. 그렇게 안정적인 평범한 삶의 기운은 차차 나를 집어삼켜버렸고 전에 있던 그곳의 삶을 떠올리기며 긴 여운을 느끼며 회상하고, 그 추억의 흔적을 쫓아가기엔 지금의 일상에 너무 많이 빠졌다. 우선 떠올릴 틈이 없이 바빴다. 회사를 갔다가 돌아와서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고 혹시 여자친구가 바쁘다면 집에 돌아와서 여자친구를 만날 때에 못 봤던 밀린 드라마를 몰아서 봐야 한다. 아니면 여자친구와 갈 데이트 장소를 몰색한다던가.... 그렇기에 모브라던가, 밉상인 에쿠보라던가, 싸가지 없는 모브 동생 녀석이라던가 다들 잊어버렸다. 깨끗하게!


그럴 터인데... 그 다음날 그런 나에게 제 존재를 각인시키는 듯이 모브 녀석에게 편지가 왔다. 전에 편지를 한다더니 정말로 편지를 쓴 것이다. 어머니는 편지를 전해주면서 카게야마...시게..오? 레이겐 스승님께 라고 쓰여있는데 설마 너 어린애 상대로 스승이라면서 사기 치고 다녔니? 하고 황당해하면서 편지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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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겐 스승님께

스승님 안녕하세요. 저예요 시게오예요. 스승님이 떠나신지 벌써 다섯 달이나 지났어요.. 혹시나 스승님께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스승님은 먼저 연락을 하실 분은 아니었어요. 잘 지내고 계세요? 설마 아예 절 잊고 살고 계셨던 것은 아니죠? 만약 그렇다면 전 정말 슬플 것 같아요.. 

스승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궁금해요. 아직도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스승님의 사무실이 있었던 곳에 가끔 가곤 해요. 전에 스승님의 사무실이 있던 곳에는 작은 사진관이 생겼어요. 간판도 글자만 튀어나오는 (이걸 용어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조명 들어오는 커다란 글씨로 했더라고요. 그래서 밤이면 주황색으로 빛나요. 꽤나 화려하게 되어 있더라고요. 지나가다가 보니까 손님도 꽤 많은 거 같아요. 스승님이 사무실을 할 때도 간판을 이런 걸로 했다면 손님들이 조금 더 많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사진관을 보면서 생각해보니까 스승님하고 저는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더라고요.. 아쉬워요 다음에 답장해주실 때는 사진도 한 장 넣어서 주시면 안 될까요? 저주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요즘에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요. 뭐.. 사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요.. 그래도 얼마 전에 츠보미가 책을 두고 왔다며 빌려 달라고 저에게 부탁을 해서 그걸 빌미로 이야기를 몇 번 했어요. 츠보미는 보면 볼수록 너무 예뻐요. 책에 필기도 해줬구요. 가져다 줄 때 책에 모르고 몇 글자 써버렸는데 괜찮지? 하고 웃으면서 물어봤어요! 정말이지 천사 같았어요. 메자토가 그랬는데 츠보미는 학교의 아이돌이래요. 전 그걸 몰랐어요. 하긴, 그렇게 예쁜데 좋아하지 않을 남자애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와 츠보미가 소꿉친구인 만큼 리츠와 츠보미도 서로 알고 있어요. 친하진 않지만요. 제가 리츠에게 츠보미의 이야기를 하면, 리츠는 어릴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어떤지 츠보미가 예쁜지 잘 모르겠데요. 그런데요, 전 이상하게 리츠가 츠보미가 예쁜지 모르겠다고 해줘서 좋았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뭐..리츠는 인기도 많고 같은 학년에 있는 더 매력적인 여자아이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분명 리츠 옆엔 여자애들이 많거든요. 하지만 츠보미는 분명 예뻐요! 스승님이 본다면 분명 예쁘다고 했을 거예요! 


여전히 육체개조부에서는 운동을 하고 있긴 한데 근육이라는 거.. 역시 쉽게 붙질 않네요... 리츠는 육체개조부 만큼의 근육이 없어도 운동을 잘하는데 역시 사람에게는 잘 할 수 있는 게 각각 다 다른가 봐요. 역시 스승님의 말은 옳아요. 


리츠는 얼마 전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았어요. 진짜 대단하죠? 리츠는 별일 아니라면서 일일이 칭찬해주는 거 민망하다는데 한 번도 만점을 받아본 적이 없는 저는 그런 리츠가 너무 대단해 보여요. 만약 제가 만점을 맨날 받는다면 받을 때마다 엄마 아빠에게 뛰어가서 자랑을 할 텐데.. 역시 리츠는 대단해요. 그렇죠?


요즘은 조용해서 제 초능력을 쓸 일이 별로 없어요. 악령 같은 게 나타난다면 바로 제령을 하긴 하지만 일단 에쿠보를 제외한 악령이 제 주위에 직접 오는 일은 많지 않고요, 스승님과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악령을 마주칠 일도 많지 않아요. 스승님은 그곳에서도 영등등사무소를 내신 건가요? 엄마에게 스승님이 계신 곳의 주소를 알려줬더니, 이곳에서 엄청나게 먼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찾아가고 싶어요. 스승님. 


얼마 전에는 친구들하고 노래방에 갔어요. 제가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친구들이 노래 부르고 노는 것을 보니까 저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는 리츠와는 달라서 친구도 많지 않고, 신나게 놀지도 못해요. 그래서 이렇게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좀 어색하긴 하지만 요즘은 그래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에쿠보는 여전히 저에게 신이 되는 건 어떠냐고 속닥이는데.. 사실 그런 게 되어서 무얼 하려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한결같다니까요 에쿠보는. 그래도 에쿠보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요즘엔 많이 들어요. 하나자와군이 에쿠보를 제령해버렸을때에도 에쿠보가 좋은 녀석이었다는 것을 깨닫긴 했었지만 요즘엔 더더욱 좋은 친구가 된 느낌이에요. 스승님께서는 에쿠보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에쿠보는 아직도 저에게 잘 맞춰주고 있는걸요? 게다가 스승님 만큼 조언을 잘 해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에쿠보가 저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요. 


스승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답장해주세요. 저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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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 녀석의 첫 번째 편지. 마지막에 답장해주세요. 저 기다릴게요 라는 문장이 거슬리기도 하고 조금 기분이 좋아서 답장을 썼다. 모브를 잊고 살고 있었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해주고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게다가 '혹시나 스승님께서 먼저 연락이 오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스승님은 먼저 연락을 하실 분은 아니었어요'라는 부분을 읽었을 땐 조금 미안하기도.... 


회사에 널린 에이포 이면지를 한 장 집어와서는 펜을 들었다. 여자친구에게도 써본 적 없는 편지를 이 녀석에게 쓰다니. 


모브에게 물론 절대로 모두를 잊지 못했고(이건 모브를 위한 착한 거짓말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추억들은 아직도 내 마음 속 아주 아주 깊은 곳 한구석에 보관하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지금 영등등사무소는 조금 지겨워져서 운영하고 있지 않고 평범한 회사에 들어가서 정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평범한 삶은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와 지내고 있어서 건강이 한결 더 좋아진 기분이라며 한껏 자랑을 했다. 여자친구도 생겼는데 지금 한 한 달 정도 되었다고, 미래는 모르지만 혹시나, 정말로 혹시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초대한다는 이야기까지. 장난 식으로 어이 모브, 혹시나 연애상담이나 모르는 게 있다면 나에게 한껏 상담하라고, 이 스승님은 그 힘들다는 처세술까지 완벽하게 익혔으니까 말이야! 하고 추신을 붙였다. 


최근에 찍은 사진은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집에 돌아온 엄마에게 멋있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한 30장 정도 찍은 사진 중 하나를 골라서 보냈다. 엄마는 나이 처먹고 뭘 하는 거냐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사진을 찍어주면서 꽤나 즐거워했다. 저주를 하던 뭘 하던 우선 남이 내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제일 잘 나온 사진을 가지고 있는 쪽이 기분이 좋다. 


편지봉투에 모브의 집 주소를 적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모브 녀석 정말로 편지를 할 줄이야. 책상에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써 내려가고 있을 그 녀석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르는 걸 억누를 수가 없었다. 옆에 있었다면 타코야키라도 사다 주었을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 모브 이야기를 했다. 레이겐씨 생각보다 대단하네?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도 있고 말이야, 여자친구는 웃으면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기에 종이에 대충 그려주었다. 바가지 머리를 한 모브는 특징 잡기가 참 쉬웠다. 여자친구는 웃으면서 다음에 한번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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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모브 같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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